잔혹한 이야기 하나.
'잔혹동화'라는 어른들이 붙인 '주홍글씨'.
그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적의미'로서의 '잔혹 vs 어린이'라는 관계(불안하고 비열하기까지한)
결국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해석'들이 있듯이.
그 시를 쓴 아이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봐요. 그저 시를 쓴거죠. 자유창작.
하나님도 6일동안 무지하게 이것저것 만들어놓고 하신말씀,
'보기좋구나'. 그리곤 7일째 쉬셨죠.
엄마와 아이는 그 시를 보곤 '보기좋구나'했죠.
그리곤 모아선 책을 냈을뿐이고요.
[전 예수의 존재를 믿지만 크리스챤은 아닌데,
하나님이 태초에 왜 그렇게 끔찍하게 생긴 동물들을 만들었는지.
그 많은 전쟁과 살인, 잔혹한 아픔들은 왜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죠.
이것들이 다 이유가 있다면, 존재의 가치가 있는것이라면
일상의 잔혹들을 제거하는 것보단, 차라리 제대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드랬죠]
따라서 그런 시를 쓰는 아이에게 '인식공격'과 '악플'을 쓴다는게 참을 수 없죠.
패륜아라니 정신병자라니 하는 말들이요.
'잔혹한 이야기는 아이에게 노출되서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
[토종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외래종같은 말도안되는]
아이이 성장과 관련해서 정신적,육체적 충격이 결국 부정적이라는 거죠.
이 얘기, 즉, '너무 끔찍한 이야기 vs 아이들 에서는 그 끔찍함이 어느정도 이상이라면 동의해요.
(물론 여기서 그 끔찍함의 정도'는 어디까지인가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요)
그러나 아이를 둘러싼 일상에서 더 끔찍한 이야기들이 매일 벌어지는 상황에서
어른들이 자신들의 방임,방기,외면,배타,이기의 끔찍함은 살짝 묻어두고
아이를 나무라고 그 부모를 나무란다는 것은 넌센스죠.
'왜 그런 이야기를 하죠. 도대체 아이들이 무슨 '더 끔찍한'일상을 겪고 있냐고 반문할수 있죠.
잘 먹이고, 학원보내고, 입히려고 얼마나 어른들이 뺑이치는데 그러냐고...
아이가 쓴 시를 보죠. 그 안에는
'학원', '시험', '어른들의 주관적 잣대', '어른들의 양면성', '감시와 통제의 시선'이...
이것들이 매일 쓰레기차에 쓰레기가 매일 넘치듯이 아이들을 갉아먹고 있죠.
아이들은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탐험과 모험을 원래 좋아하는 종족이죠.
매일 같이 어른들이 만든 '언론','가족', '사회'라는 울타리,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간,
어린이 종족의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본성을 거세하고 있죠.
분명히 그래요. 너무도 잔인하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거세란 말이 가장 적당하죠.
가지치는 정원사들은 주위에 넘쳐난답니다.
오이디푸스/일렉트라컴플렉스처럼 가족을 향한 욕망이든, 또는 바깥을 향한 것이든
사회화되는 과정은 있어야겠죠. 그러나 그것이 어른중심적이고, 당위적이며
강제적, 심지어는 폭압적인 것이라면, 그 결과는 참혹하지 않을까요.
[마치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은 잊은채 '고시과 공무원'시험에 열중하듯이요.
그래놓고는 어른들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혁신과 진보없이 어떻게 이 사회가 앞으로 갈수 있을까요]
잔혹한 이야기 둘.
그림형제의 동화를 엄마들은 매일 읽어주고 들려주는 레파토리중 하나지요.
그러나 사실, 19세기초에 그림형제가 처음 발간했을땐 잔혹(?)자체 랍니다.
민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들.
혹독한 이기심
무지막지한 증오심
인정사정 없는 복수심
소름끼치는 공포
아이들을 만난건 '잔혹'한 이야기들이었죠.
집으로 돌아오고, 따뜻한 저녁을 먹게되지만요...
바로 이 시간들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매일 주는'잔혹함'들을 견딥니다.
가벼운 때론 무거운 '잔혹'의 무게들을,
혼란과 두려움들을
배설했던거죠.
그 이야들속에서요.
아이가 쓴 표현의 잔혹함을 본 어른들은
얼마나 배설할 대상과 장소가 많나요.
그러나 과연
'학원'에서 질려버린 그 아이들의 끔찍함은
어디에서 배설한단 말인가요.
그 배설들이 예전엔 할머니의 이야기속에서 있었지만
이젠 아무도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데...(책 안읽어주잖아요)
아이폰을 하루종일 끼고 살면서 카톡과 게임으로 날을 새우는 아이들.
그래요 아이폰을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겠군요.
'거꾸로교실'이란 EBS프로그램을 보면,
게임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놀면서 게임을 안하게 된다는 장면이 있더라구요.
아이들이 게임만하는건 더 재밌는 '할거리'를 제공받지 못해서라구요.
친구들과 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은 변해갔죠.
잔혹성?을 제거한 '백미'만 주는 것이 답은 아닐것입니다.
도정이 덜 된 '현미'를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주고,
맜나게 만들어서 주었으면 해요.
저는 아이들을 더욱 '잔혹'하게 대하렵니다.
거세당하고
가지쳐진
백치미넘치는
아이들은 싫습니다.
더 무섭고
더 잔인하고
더 엽기적인
더 황당하고
더 지랄하는
이야기(책)들과 아이들이 하루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어릴적 정말 몰입해서 들었던 수양버들귀신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 시만큼이나 끔찍했던것같아요 귀신을 확인하러간 엄마가 귀신을보고 도망가다 그만 업고있던 아기를...신데렐라 책도 원작은 새엄마가 유리구두에 자신의 딸들 발을 맞추기위해 발을 칼로 깍아냈다는 내용이있지만 아이들에게 끔찍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죠? 그런이야기들을 듣고 읽으면서도 끔찍함에 몸을 떨었을뿐 별의미는 두지않았던것 같아요 한번은 친구 아들이 일곱살적에 엄마가 자기와 한 약속을 안지켰다면서 엄마를 토막내서 냉장고속에 넣어버리고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너무 놀래서 아이 정신상태를 잠깐 걱정했지만 언어적 재능을 보이는것 말고는 별탈없이
잘자라고 있답니다 ^^ 사실 아이의 글이 문제겠습니까?그런맘이들게 만든 어른들과 환경이문제겠죠ㅠㅠ 다만 아이가 자신의 창작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은것같아 안쓰럽네요 제가 아이엄마였다면.. 한국사회의 정서를 감안해서 훌륭한 글을 가족이나 이해가능한 친구들과 공유하는것으로 끝냈을것같네요(소심하게^^) 그러면 아이에게 상처가되진 않았겠죠? 어쩜 그부모님들은 그런 편견에 대해 싸우는것도 인생이다 가르침을 주려고 했을까요? 진중권씨의 "아이가 잔혹한게아니고 그 글로인해 이지메하는 어른들이 잔혹이다 "는 말이 가슴에 와닷네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어른이 누굴까하는 생각을 할때가 있죠.
잔혹의 정도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누군가가
아닐까싶어요.
그냥 끔찍하고 배터지고 뒤로자빠지는 그런 얘기보따리를 푸는 이야기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