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 성지
마을 이름치고는 꽤 정겨운 이름이다.
이곳이 바로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생가가 있는 곳이자, 1784년 호남 천주교의 발상지이며, 주문모 신부님께서 첫 미사를 봉헌하셨던 이다.
호남의 부자였던 유항검은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전라도에서 체포된 200여명이 신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항검 성인이 선교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햇살이 유난히 따가운 한낮. 논 가운데 있는 조선 최초 신자마을인 초남이 마을에는 인적조차 드물다. 언뜻 이곳에 성지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길을 돌아드니 활짝 열려있는 대문 안에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분들이 몇 분 계신다. 마룻바닥이 반질반질한 것이 살아 있는 성지라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성지는 신자들이 들러 기도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남이 성지는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루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들어 성체조배실로 향한다. 성체조배실은 이순이 루갈다의 방이었다고 하는데, 외갓집에 가서 봤음직한 초가집 방안의 모습 그대로여서 마음이 푸근해진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파가저택(破家瀦宅)’
국사범에 내려지는 죄목으로 집은 불사르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3대를 멸하는 형벌인 파가저택의 그 흔적을 지니고 있는 작은 연못. 그것을 바라보고 서 계시는 성모상과 십자가상이 가슴을 때린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행랑채로 돌아드니 고운 한복과 단정한 모습으로 이 루갈다 상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서 있다. 유항검의 맏아들 유중철 요한과 결혼한 루갈다는 이곳에서 4년 동안 동정생활을 하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남존여비의 봉건적 가치관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그 시절에 동정생활을 결심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지켜준 유 요한의 신심 또한 우러러 보인다.
남편 유스티노와 함께 두 분의 영혼을 위해 주모경을 바치고 마을 앞 논밭 사이로 이어진 ‘사도 유항검과 주문모 신부님 미사 봉헌 기념 경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벽에 그려진 달팽이 그림처럼 느릿하면서 여유로운 성지순례의 길이다.
아참!
이번 성지순례 중 곳곳에 달팽이 그림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알아보니 2009년에 전북에서 만든 ‘아름다운 순례길’표지였다. 이 순례길은 9개의 코스로 만들어져 있는데‘나바위 성당, 금산사, 금산교회’등의 이름에서 보듯이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의 성지를 둘러보게 된다. 아마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종교 간의 소통과 화합의 순례길이다. 그 둘레가 600리라고 하니 언제쯤 도전해 보려나?
첫댓글 서툰 순례기를 쓰면서
땀 흘리며 걷던 그날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봅니다.
훗날 봄울님들이랑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성지 이름들이 참 예뻐요.
그 동안 순례길의 감동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저도 따라갈 수 있는 영광을 나누어주세요~^^
그러게요
아름다운 이름이어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함께 가도록 해요 ^^
앗!
세번째 순례기~
정신없는 요즘 그래도 꿋꿋하게 잘 올리는 거 대견합니다
좋은 기회를 준 당신께 감사를
다음에는 어디일까??
궁금궁금~~~
순례기를 보며 마음으로 순례를 함께 한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부끄럽습니다.
걸어서 600 리~ 언제 도전할까요?
이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화합도 멋지고 흔적도 놀랍고.....
참으로 복받은 땅이로구나 싶어서요.
세상의 종교가 함께 순례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요?
우리 민족이니까 가능하지 싶어요
우리도 동참해야겠지요???
선생님이 들려 주시는 순교자이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치고 순교자의 정신도 본받게 됩니다.
계속 연제하심이..... 강력히 간헌드리옵니다.
쑥스러운 말씀이지만
아직도 몇 차례 더 남았답니다.
아직 전주에 입성도 못했사옵니다.
하룻밤 머문 후에 전주 성지를 향해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마!!
순교자들이 외롭다 생각하지 않은 적이 처음이옵니다.
함께하는 순례객들이 있잖아요
언제 어디나....
정갈한 성체조배실이 눈에 쏘옥 들어오네요..
얼마전에 '내년에 한가해지면 성지 좀 다녀봐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티나 언니의 글에 영향을 받은 거죠..
실행에 옮길 수 있을런지~~
한가해지면~~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을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