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헐/이카루스의 추락
이카루스
그는 다이탈로스의 아들이다
다이탈로스는 미노스왕의 미움을 받아 아들과 탑에 갇힌다
탑을 탈출하기 위하여 그들은 새의 깃털을 모았다
다이탈로스는 아들 몸에도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게한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너무 높게 날았다
태양열에 밀랍이 녹았다. 이카루스는 아카리아해에 추락하여 죽는다
해운대 우동
그곳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공동주택, 즉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다
80층 남짓의 건물이다
내 뒷쪽엔 210미터 높이에서 RCS와 함께 떨어진 사람 셋이 죽은 H사 초고층 아파트.
210미터 높이에서 추락하면 사람의 형체를 찾을 수 없다
수박이 그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사람의 시신은 없고 옷가지만 널려 있었다고 한다
유가족이 농성하던, 그리고 취재하러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없다
최상층부의 철제빔에 올라선 한 노동자의 모습이 검은 새같다
평온하다고 할 만큼이다
아무 일 없었다
내 앞엔 황금색 외벽의 불탄 G아파트
역시 초고층이다
불연재여야 할 외벽 황금색 금속 판넬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불에 너무 잘탔다
햇볕을 빨아들여 찬란하며 장려하게 빛나던 황금색 그 건물은 불에 타는것도 장려했다
300미터 이상 이격된 이곳까지 열기가 훅-끼쳐왔다고 한다
가히 아비규환이었다
옥상층의 헬기 착륙지점을 가르키는 H자의 한쪽 다리가 검게 그을려 있다
그리고 불길이 맹렬하게 치솟았던 건물 골짜기의 창문들은 검은 해골의 눈두덩 같다
몇몇의 노동자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무심히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카루스처럼 밀랍이 녹은 황금빛 날개
동료가 다쳤다
회사에서는 공사의 빠른 진척을 조회시간 우리에게 요구했다
현재 63층, 올해까지 65층을 완료해야 된다고 했다
그것은 미친듯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카루스처럼 미친듯이 날개를 저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다 다쳤다
자칫하면 사망할 뻔 했다
초고층 아파트 골조 공사 현장엔 모든 것이 금속성이다
과거처럼 집을짓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했던 목재는 이제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철근을 세우고 눕혀 건물의 뼈를 만들고 금속과 금속을 조립하여 거푸집을 만들어선
건물의 콘크리트 살을 만든다
거의 100명이 모여 작업하는 이곳 63층 꼭대기엔 금속성 소음이 요란하다
금속만 요란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람, 동남아 사람, 중국 사람이 뒤엉켜 지르는 언어 또한 요란하다
바벨탑의 종말은 붕괴와 언어의 혼란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의 욕망앞엔 그깟 언어의 혼란은 큰 의미가 없다
신은 그점에서 실패했다
63층 외진곳에 나는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사를 완전히 등진 바다는 완전히 평온하고 고요하다
수평선은 희미하나 바닷빛은 슬프게 푸르다
멀리 작은 배 한척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나는 휴대폰에 적는다
푸르고 찬바다에
연필 한자루
하얀,
금긋고 가네
나뭇잎 편지로 봉함하여 발신한다
받는 이를 찾아 문자는 바닷새처럼 날아 세상으로 스며든다
63층 아래의 그 세상은 참으로 작고 참으로 조밀하다
이쯤되면 고층의 공포는 전혀없다
오히려 아늑하다 설령 추락하더라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을듯 하다
그래서 이카루스는 하늘 끝까지 날았구나....
브뤼헐의 그림
이카루스가 이카리아해에 추락했다
범선 앞에 채 잠기지 않은 다리 한쪽이 이카루스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추락사 앞에서도 모든 것이 평화롭다
범선은 돛을 한껏 펼쳐 바람을 담고 있고 낚싯꾼은 무심하다
양치기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상엔 관심이 있을 망정 사람의 사고엔 꿈쩍도 않는다
농부 역시 호들갑 떨 이유가 전혀없다
밭만 빈틈없이 갈면 된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욕망의 추락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것은 타인의 추락이다
타인이 추구했던 욕망의 추락일뿐이다
그래서 그림속의 저들은 무심 할 수 있다
우리 또한 그랬다
황금색 고급 건물이 불탔을 때 우리는 짐짓 놀라는 척 했지만 은밀히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210미터 높이에서 3명이 떨어졌을 때 경악했으나 초고층 고급 아파트의 추락을 보고
오랫동안 슬퍼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고소해했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추락일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카루스는 끝없이 날다
그 극점에서 추락했으나 또 다른 이카루스는 지금 이순간에도 상승하고 있다
내일 아침엔 또 한층의 높아진 초고층을 당신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이며 이카루스의 밀랍으로 만든 날개다.
첫댓글 피가로는 이카루스 보다 더 용감무쌍하다
어찌 80여층 꼭대기에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높은 산을 오르는건 상상도 못한다.
심지어 높은 다리위를 운전할때 아랫도리는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듯 한다.
요즈음은 쬐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런 증세를 의학적으로 Acrophobia(fear of height)ㅡ고소 공포증이라 부른다나?
젊은시절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을땐 이런 증세를 못 느꼈었는데...
나이 들어가니 더 심해진다.
왜 일까?
갈때가 가까와 질수록 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허허허
좋은 글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