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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 목판(首善全圖木板) |
수선전도 목판(首善全圖木板)는 순조 25년 경에 김정호가 직접 각성한 것으로서 전하는 서울시가지도의 목판이다. 수선전도의 ‘수선’은 서울을 뜻하므로 이는 ‘서울전도’의 뜻이다.사기의 유림전에 ‘建首善自京師始(건수선자경사시)’, 즉 으뜸가는 선을 건설함은 서울에서 시작된다고 한데서 온 말이다. 이 지도는 지도의 내용·구도·필치로 보아 김정호의 청구도에 단독으로 들어가 있는 서울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헌종 12년에서 15년까지 자하문 밖에 있던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고쳐 부른 적이 있다. 이 지도에는 총신영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1915년에 측도한 2만 5천분의 1 북한산 도폭에는 총융청이 위치하고 있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신영리라고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총위영을 총신영으로 불렀던 것이 확실하므로 이 지도는‘총신영'으로 부르던 헌종 12년에서 15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37년 3월 22일에 기공식이 있었고 4월 2일에 신축 공사가 시작되어 10월 12일에 지진제가 열렸다. 당시 부지의 총면적은 야산을 포함해 171,902㎡, 관저의 연면적은 1,861㎡이었다. 1938년에 정초식이 있었고 같은 해 6월 13일에 상량식까지 했으나 중일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9월 2일에 공사가 일시 중지되었다. 1939년 4월 5일에 공사가 재개되었으며 같은 해 7월 25일에 준공되어 9월 20일에 낙성식이 있었다
관저는 벽돌조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였다. 정면 중앙에 사각 기둥으로 지지되는 캐노피를 두었고 경사 지붕으로 처리하였으며 창문 위쪽에는 차양을 돌출시켰다.
◀미나미 지로( 南 次郎 (みなみ じろう), 남차랑,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
1939년에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왜성대 총독 관저를 시정기념관으로 개편하면서 본격적으로 총독 관저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 총독 관저는 미군정의 최고 책임관인 군정장관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통령 이승만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다.
1960년대 경무대 모습
1960년 4·19 혁명 이후 탄생한 제2공화국의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은 경무대가 독재정권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하면서 1960년 12월 30일에 청와대(靑瓦臺)로 개명하였다. 명칭은 건물에 ‘푸른 기와’를 덮은 데서 유래하였다. 1990년에 청와대의 본관을 신축한 이후 1993년 10월 15일에 철거하였고 ‘청와대 구 본관 터’ 기념 표석을 세웠다
청와대(靑瓦臺 Blue House)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청와대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 입지로 예로부터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로 불렸다. 주산(主山)인 북악산과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좌청룡(左靑龍) 낙산, 우백호(右白虎) 인왕산이 청와대를 호위하고 있다. 또 명당수(明堂水)인 청계천이 북북서에서 동으로, 객수(客水)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 역사는 8백93년 전인 고려 숙종 9년(1104년) 완성된 남경(南京) 이궁(離宮)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조 들어 태조 4년(1395년)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후원(後園)으로 사용됐으며 고종 5년(1868년) 경복궁 중건 이후 건물들이 들어섰다. 청와대터가 시련에 부닥친 것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그해 경복궁이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정해지면서 오운각(五雲閣) 등 각종 누각이 하나둘씩 철거됐으며 39년에는 지금의 구본관(舊本館) 자리에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다. 당시 조선인 지관(地官)들이 북악의 용맥(龍脈)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관저부지를 잡아 일제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45년 해방이후 2년3개월간 미군정사령관인 하지중장의 관사로 사용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48년 이승만(李承晩) 초대대통령이 구본관을 「경무대」로 명명,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이후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이 청와대로 개칭했다. 현 청와대 관저와 본관은 90년 10월과 91년 9월에 각각 신축, 완공돼 「일제총독관저의 어두운 역사」를 털어냈다. 구 본관앞 중앙화단에는 7백16년수령의 커다란 주목이 청와대의 영욕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건축 및 역사
○조선시대 궁궐터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6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조선총독부에서 지금의 자리로 관저를 옮김
○1945년부터 1948년 때까지 미군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4.19 혁명 때까지 관저로 사용되어 경무대라고 불림
○한국 전쟁 중 중앙청 내부가 화재로 대통령실이 없어짐
○1961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고 9개월 동안 관저로 사용함
○그 뒤에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노태우 대통령 때 신관이 건축됨
○1993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이 과거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이 살던 구관을 철거함
○2003년 NSC 위기관리센터(지하벙커)가 만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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