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 5월 5일, 바로 '단오'다.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의 첫째 말[午]의 날을 말한다. 음력으로 5월은 오월(午月)에 해당하며 기수(奇數:홀수)의 달과 날이 같은 수로 겹치는 것을 중요시한 데서 5월 5일을 명절날로 했다.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며,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
여자들은 단옷날 ‘단오비음’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으며,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의 문학사적으로 단오와 연관된 것은 단연 〈춘향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오는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인데, 환절기면서 장마와도 가까운 시기여서 여러 가지 액을 없애기 위한 풍습들이 있다. 가장 유명한 풍습인 창포, 쑥떡,·앵두화채 등으로 액을 제거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오하면 세시풍속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 다. 태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단옷날에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에게 몽룡이 첫눈에 반하면서 이 둘의 사랑이 시작됐다.

당시 춘향전이 담고 있는 혁명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바로 ‘변학도’다. 악인(惡人)의 전형이 돼 버린 그는, 조선시대 현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다.
물론 변학도가 남원에서 탐학무도(貪虐無道)한 짓을 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암행어사 이몽룡에게 응징 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짚어보면 이유는 오직 하나, 춘향을 탐했던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변학도의 대표적 악행(惡行)을 꼽자면 기생점고(妓生點考)인데, 실상은 그가 기생점고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로 처벌받아야 한다.
기생점고는 신임사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관리들이 교체될 때, 지역 현안과 추진하던 사업과 민심 동향 등은 물론 기본적 물품들과 병장기, 관청 살림살이들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당연한 절차에 관기(官妓)들도 포함된다. 관기는 지방에 출장 온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한 필수 요원으로 남원은 물론 어느 관청이든 법률로 그 숫자를 정해놓았다. 꼭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에서 지내며 정이 든 지방관이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 관기를 데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법에서 엄금했기 때문이다. 관기는 국가의 재산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점검해야 했다.

물론 춘향은 관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방관이 부르면 달려가야 했다.
춘향의 부친이 어떤 신분이든 종모법(從母法)을 따르는 조선시대에 기생 모친의 신분을 따라 천민(賤民)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타난 춘향은 이치에 닿지도 않는 소리를 연신 늘어놓으며 지방관인 사또의 수청(守廳)을 거절한다.
“소녀가 비록 천한 몸이오나, 어려서부터 예법은 알아….” 어쩌고 하며, “지아비가 있으니 수청을 못 하겠다”는 소리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망발에 현실을 도외시한 방자함의 극치다.
변학도 입장에선 속에서 천불이 날 소리다.
예법은 양반 부녀자의 것이지 천한 기생 딸년의 것이 당연히 아니었다. 또한 아무리 예법을 안다 한들 천민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전임 사또의 자제와 혼인관계라는 말은 그야말로 억지다. 정확하게는 그냥 ‘데리고 놀다 버리고 간 신세’라는 것이 옳은 상황 판단이다. 공식적으로 혼인을 한 적도 없고 첩으로 받아들인 적도 없었다. 단지 춘향 혼자서만 지아비라고 우기는 거였다.
첫날밤에 “절대 너를 버리지 않고 잊지 않겠다”는 내용을 적은 불망기(不忘記)를 작성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그냥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법적 효력은 물론 사회적 기능도 없다.
“몸이 달아서 어떻게라도 해보려고 그냥 써준 거요.”
“아니, 장난으로 써준 걸 가지고 대체 뭔 소리요?”
이렇게 오리발을 내밀면 그만이었다. 주변에서 듣는 사람들도 그냥 춘향의 안쓰러운 호소에 혀를 차며 쓴웃음을 지을 상황인 것이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었던 조선시대에 감히 천민인 춘향이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행동은 목숨을 건 용기였다.

요즘 수많은 《Me Too》로 터져 나오는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조선시대 판 사례가 바로 ‘춘향전’이 아니었나 싶다.
변학도의 권위에 의한 성폭력에 저항하며 수청을 거부하고 정조를 지켜낸 춘향의 노력. 더불어, 사또가 자신에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고을 전역에 알린 춘향의 용기는 Me Too의 정신과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어쩌면 언젠가, <변학도전>이라는 작품이 나올수도....
첫댓글 만해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