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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공구(孔丘 전551-전479)
*병신년 소설(小雪)이 열하루 지나서 시작하다. 푸른 기와집에서는 사람들이 진실로 병신년이 되었다고 한다.(49WKA)
필사를 마친 날은 정유년 처서(處暑) 지난 나흘째이다. 족히 여덟 달이 걸렸다. (50SMG)
다음에는 불교의 입문서를 필사해 볼 예정이다.
**논어(論語),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四書)의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되어 있으며, 서술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상론(上論) 10편, 하론(下論) 10편으로 나눈다고 한다. - 서술방식으로 보아 논어와 소학은 비슷하다. 먼저 학문과 세상의 원리적 측면에 먼저 배치하고, 그와 연관된 여러 사람을 만난 세상사의 규범과 자신의 일상사의 범절을 드러낸다. 그러고 나서 하편에서, 제자들과 세상사에서 실행에서 행위와 관점에 대해, 그리고 그 적용과 응용으로 과거 역사적 사실들에 비추어 설명한다. 원리, 규범, 실행, 활용 등을 성찰하고 과거의 기억(역사)에 비추어서 살아라 라고 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최고의 문장이 .「학이(學而)」편 제일(第一)이다. 이 글에서, 점수처럼 스스로 학습[學而時習], 그리고 젊은 시절에 가능하다면 동지 만나[有朋] 세상을 논하고 뜻을 펼쳐보는 것, 그래도 세상사가 잘 안 되면 산골 어디선가 혼자 사는 뒷방 스님[君子]처럼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이다. (50S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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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과 견주어 보면, 논어(論語)는 인성론에 속한다. 서양 철학은 형이상학(존재론), 인성론, 과학론, 그리고 사회철학, 문화론(예술론), 등이 있다고 할 때, 인성론은 형이상학을 다루는 이들 중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플로티노스, 스피노자, 루소, 벩송, 들뢰즈 정도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공자의 논어에는 형이상학이 없는 인성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인성론은 심층에서 표면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대부분 표면의 안면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내용들이 생애의 일상적인 일들과 더불어 서술되어 있으며, 도덕론과 사회 실천론이 함께 들어 있다. 인성(인간본성)의 도덕, 인성의 실천론이란 의미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얼굴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사람을 대하는데, 의복을 단정히 하는 몸짓에서 탈영토화 하여, 얼굴빛과 언어의 신중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얼굴성과 풍경성이 서로 연관이 있을 경우에는 공자도 시경을 인용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시원하게 지내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깨달은 자가 생명의 안전과 사회의 변화에 참여해야 하지만, 그런 상황과 관계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 인성론과 실천론(가례, 도덕, 윤리, 국가 등)이 함께 들어 있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의 생생한 인물이라, 누구나 구체적으로 인간관계를 설립하는데 거울을 삼을 수 있다. 거울은 얼굴성의 부분성이다. 이런 저런 사건과 사태에 대해 그리고 그 많은 제자들과 인물들의 품평에 다다르면서 또한 나름대로 자기가 정립하면서, 얼굴빛과 말하는 태도를 갖추게 될 때, 본인의 인성의 얼굴성이 드러날 것이다. / 다시 말하면 공자의 말씀이 맞느냐 틀리느냐 또는 어떤 말씀이 근거(이유) 있느냐 없느냐는 앵글로색슨식의 진리론이나 의미론으로 볼 것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하는 심층의 본성이 드러나는 기호론에서 안면과 겉면의 드러나고 표현되는 방식으로 읽어 보면 흥이 있다.
/// 게다라 공자(전551-전479)주변의 인물들을 심층, 표면의 안면과 겉면, 그리고 상층으로 분류해 보라. 그러면 소크라테스(전469-전399)를 만나게 된다. 심층에 퀴니코스 학파의 흑인 혼혈아인 안티스테네스, 표면의 안면에서 퀴레네학파의 아리스티포스와 노예출신 파이돈, 겉면에서 메가라학자들과 크세노폰 등의 일반 제자들을, 그러고 나서 상층에서 귀족 출신인 알키비아데스와 플라톤을 만나게 된다. / 아래에 중국위키에서는 네 가지 기호체계로 구분하였다. 덕행(德行) 방면에 출중한 인물로는 안회(颜回, 안연颜淵), 민손(闵损 민자건闵子騫), 염경(冉耕, 백우伯牛), 염옹(冉雍, 중궁仲弓) 등이 있다. 언어(言语) 방면에서 재여(宰予, 재아宰我), 단목사(端木赐, 자공子貢). 문학(文学)방면에서 언언(言偃, 자유子游), 복상(卜商, 자하子夏). 그리고 정사(政事) 방면에서 염구(冉求, 염유冉有), 중유(仲由, 자로子路)이다. / 중위키에서 네 가지 분류가 내가 분류한 심층 표면의 양면 상층과 유사하는 점을 발견하면 중국의 사상의 분류가 기호론과 친화감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 공자는 권력(문왕과 무왕의 체제)을 별도로 두고, 이 권력을 보좌하는 권위체에 관심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상층의 두 체제에 대한 인정으로 인민 스스로 분출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 공산당은 공자 비판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권위를 인민으로부터 세울 수 있는 가능성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인민은 누구나 학습을 통해서 권위의 계열에서 실행(활용)을 할 수 있고, 그리고 그런 교육에 대해 공자는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고, 교육 받은 자들이 그 일을 담당하기를 바랐다. 이에 비해 소크라테스는 자유민들의 합의에 의해 권력도 권위체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권위를 충만하게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노예로부터 귀족의 자제까지. 인물들은 각각의 자기의 역량을 잘 발휘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 정의는 조화라고 보았고, 그 조화의 적절한 때는 고르기아스가 말한 카이로스(Καιρός, 알맞은 때)이다. 이 알맞은 때의 조화를 이루는 주권의 실행(활용), 이를 후대에서는 공화국이라고 불르게 된다. (50SMG)]
* 참조: 중:위키. 孔丘(約前551年-約前479年),子姓,孔氏,名丘,字仲尼,後代敬稱孔子或孔夫子。生於魯國陬邑,祖先为宋国人,東周春秋末期魯國的教育家與哲学家,曾在魯國擔任官府要職。為易学、儒学和儒家的创始人.
** 三千弟子和七十二位精通六藝的弟子[编辑]
参见:孔子弟子列表
古代尊师-孔子画像
据《史记》记载,孔子有弟子三千,其中精通六艺者七十二人,称“七十二贤人”。 孔子有十位傑出弟子,號稱孔門十哲:
在德行方面出众的有:颜回(颜淵)、闵损(闵子騫)、冉耕(伯牛)、冉雍(仲弓)。
在言语方面出众的有:宰予(宰我)、端木赐(子貢)。
在文学方面出众的有:言偃(子游)、卜商(子夏)。
在政事方面出众的有:冉求(冉有)、仲由(子路)。
十哲以外,在文学方面出众的有颛孙师(子張)、曾参(子輿)、澹臺滅明(子羽)、原宪(子思)、公冶长(子長)、樊须(樊遲)、有若(子有)、公西赤(子華)。
孔子死后,“七十子之徒散游诸侯,大者为师傅卿相,小者友教士大夫。”这样就在政治上打破了贵族垄断的世卿世禄制,为专制君主自由任免布衣卿相的官僚体制创造了条件。
# 참조1 서양에서 공자의 논어 수용과 관련하여(한.위키) 몇 인물들 ..
아서 웨일리(Arthur David Waley, 1889-1966) 영국의 중국학 학자. 1913~1929년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중국과 일본 미술 컬렉션 활동. The Way and Its Power: A Study of the Tao Te Ching and its Place in Chinese Thought, 1934, The Analects of Confucius, 1938.
찰스 뮬러(A. Charles Muller, 1953-) 동경거주, 한국불교, 동아시아 요가(선)수행(East Asian Yogacara)전공, Korea's Great Buddhist-Confucian Debate: The Treatises of Chŏng Tojŏn (Sambong) and Hamhŏ Tŭkt’ong (Kihwa), 2015.(정토종(淨土宗) 삼봉(정도전?) 대 함허당 득통 기화(涵虛堂 得通 己和 1376-1433) 원효의 한심(一心) 철학(Wŏnhyo's Philosophy of Mind, 2011)
수딜(William Edward Soothill, 1861–1935) 영국 감리교 중국 선교사, 중국학으로 옥스퍼드대학 교수, 논어(The Analects of Confucius, 1910) A History of China, 1927)
볼떼르(François-Marie Arouet, dit Voltaire, 1694-1778)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철학자. L'Orphelin de la Chine, 1755) / 그에게는 논어의 「향당」편에 대한 언급이 있다. 공자를 존경하여 액자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미국의 시인, 문예 비평가. 당시를 좋아하고. 미완성 시집 The Cantos(1915-1962) 속에 중국시와 중국철자의 영향을 받은 시가 들어 있다고 한다.
시몬 레이즈(Simon Leys, 필명 Pierre Ryckmans, 1935–2014) 벨기에 태생,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사망, 작사 수필가 문학비평가, 중국학 연구자. 프랑스와 영어 사용, 카톨릭이다. Les Habits neufs du président Mao, 1971), 번역으로 논어(Entretiens de Confucius, 1987가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 불가리아 태생 세파라트 유대인으로 영국인. 노벨 문학상을 탄(1981) 시인.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 1960) 해방된 혀(Die Gerettete Zunge 1977) 공자에 대한 평가가 있다는 데 영위키에서 찾을 수 없다. (50SMG)
<(한.위키) 논어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아서 웨일리와 찰스 뮬러, 그리고 윌리암 수딜의 번역이 가장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논어의 일부는 예수교 중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 볼테르와 에즈라 파운드는 열 번째 향당편에서 공자가 단순한 사람이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볼테르는 계몽철학자로서 '논어'야말로 당대까지의 허황된 형이상학이나 신학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철학서라고 칭송하며 자신의 연구실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둘 만큼 공자를 존경하였다. 근래에 논어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한 시몬 레이즈는 이 어록은 유명한 사람의 개인의 삶을 묘사한 첫 기록일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아스 카네티도 공자의 논어가 가장 오래된 지적이고 영적인 완벽한 개인의 초상이라고 말하며 향당편은 근대적인 책과 같이 감동을 주는데,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빼놓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 참조2. 프랑.위키(fr.Wiki)에서 소개되는 인물들
* Confucius (孔子) 옛 연구자들
인토르체타(Prospero Intorcetta 1625-1697) 시실리 예수회. 중국선교. Sinarum scientia politico-moralis, 1667(Canton), Testimonium de cultu sinensi, 1700(Lyon)
꾸플레(Philippe Couplet, 柏應理 백응리 Pe in li sin mo), 1623-1693) 벨기에, 브라방 예수회 신부, 중국 선교, 언어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고빌(Antoine Gaubil, 宋君榮 송군영, 1689-1759) 프랑스에서 태어나 북경에서 사망, 예수회 선교사. 프랑스 천문학자, 역사가, 언어학자. Histoire abrégée de l'astronomie chinoise, s.d.
아벨 레뮈자(Jean-Pierre Abel-Rémusat, 1788-1832) 파리 태생, 의사에서 중국학 공부. 중학학 학자, 사서. 불교에 관심.
포띠에(Jean-Pierre Guillaume Pauthier, 1801-1873) 프랑스 시인 동방학 연구자. 마르코 폴로와 공자에 관해 번역
노엘(Jean-François-Joseph-Michel Noël, 1756-1841) 휴머니스트, 프랑스 정치가. 로베스삐에르 고등하교 동기 Sinensis imperii libri classici sex, 1711 속에 공자 많이 언급.
플뤼께(François-André-Adrien Pluquet, 1716-1790)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 신부. 중국 고전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1784 7권) 번역했다.
아미오(Joseph-Marie Amiot, 1718-1793) 프랑스 툴롱 태생 북경에서 사망. 프랑스 천문학자, 역사가. 예수회 신부, 선교사, 중국 예수회 선교에서 마지막 생존자 중의 한사람이다. Mémoires concernant l’histoire, les sciences, les arts, les mœurs et les usages des Chinois(par les missionnaires de Pékin), 15 vol., Paris, 1776-1789. 이 속에 「la Morale de Confucius, 1688」
*논어 번역
Entretiens de Confucius et de ses disciples, in Les quatre livres, trilingue (chinois, latin, français), trad. Séraphin Couvreur (1896), Cathasia, 1949, p. 69-296. [1] [archive]
꾸브뢰르(Séraphin Couvreur, 1835-1919) 프랑스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죽었다.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중국 선교활동. 프랑스-중국어 사전 편찬뿐만 아니라 사서삼경도 번역했다.
Entretiens de Confucius, bilingue, trad. Anne Cheng, Seuil, coll. "Sagesses", 1981, 153 p.
앤 쳉(Anne Cheng, 程艾兰/程艾蘭, 정애란, 1955-) 파리 태생, ENS출신, 중국학으로 박사, 중국학자, 2008년부터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
Les entretiens de Confucius, trad. Pierre Ryckmans, Gallimard, 1987, 170 p.
시몬 레이즈(Simon Leys, 필명 Pierre Ryckmans, 1935–2014)
Entretiens avec ses disciples, trad. André Lévy, Garnier-Flammarion, 1994, 253 p.
앙드레 레비(André Lévy, 1925-) 중국 텐진에서 태어남, 프랑스 중국학학자. 언어학자, 번역자.
Les Entretiens de Confucius, bilingue, trad. Marie-Hélène Ferrari [2] [archive]
마리-엘렌 페라리(Marie-Hélène Ferrari, s.d.) 이 책은 본문이 소개되어 있는 데 출판 연도도 없다. 서문에는 주희의 주석을 참고하였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가 아니고 중요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4:37, 50SMG)
## *** 논어 내용 중에서 생각해 보았던 내용들 ...
學而第一
子曰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자왈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이 구절은 명심보감의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만큼이나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이란 것도 도덕적이며 인격적이다. 인격적이란 개인의 노력과 긴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소박한 금욕적 의도가 있다. 적어도 고대의 상층 철학자에게는 교육에서 무상의 원칙, 생활에서 금욕적 또는 안빈낙도가 있다. 잊지 않아야 되는 것은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노예경제 위에서 였다는 점이다 (49W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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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佾第三
子曰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7. 子曰 君子無所爭이나 必也射乎ㄴ저
“군자는 경쟁하는 바가 없으나, ˂경쟁하는 바가 있다면˃ 반드시 활쏘기일 것이다.
[注] 孔曰 言於射而後有爭이라, 孔曰:활쏘기가 있은 뒤에야 경쟁함이 있다는 말이다.
揖讓而升하야 下而飮하나니
揖讓하고 射堂으로 올라가서 ˂활쏘기를 마치고는˃ 내려와서 술을 마시니,
[注]王曰 射於堂에 升及下에 皆揖讓而相飮이라
王曰:堂(射堂)에서 활쏘기를 할 때,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에 모두 읍양하고서 서로 술을 마신다.
其爭也君子니라
그 다툼이 군자답다.”
[注]馬曰 多筭飮少筭이 君子之所爭이라
馬曰:多筭(勝者)이 少筭(不勝者)에게 술을 먹이는 것이 군자다운 경쟁이다.
[疏]‘子曰’至‘君子’ ○正義曰:此章言射禮有君子之風也. ‘君子無所爭’者, 言君子之人, 謙卑自牧, 無所競爭也. ‘必也射乎’者, 君子雖於他事無爭, 其或有爭, 必也於射禮乎, 言於射而後有爭也. ‘揖讓而升 下而飮’者, 射禮於堂, 將射升堂, 及射畢而下, 勝飮不勝, 其耦皆以禮相揖讓也. ‘其爭也君子’者, 射者爭中正鵠而已, 不同小人厲色援臂, 故曰 “其爭也君子.”
經의 [子曰]에서 [君子]까지
○正義曰:이 장은 射禮에 군자의 풍도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君子無所爭] 군자는 겸손히 몸을 낮추는 것으로써 자신을 수양하니 경쟁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必也射乎] 군자가 비록 다른 일에는 경쟁함이 없으나, 혹 경쟁함이 있다면 반드시 射禮일 것이라는 말이니, 활쏘기가 있은 뒤에야 경쟁함이 있다는 말이다.
[揖讓而升 下而飮] 堂에서 射禮를 거행하니, 활을 쏘기 위해 射堂으로 올라갈 때와 활쏘기를 마치고 射堂에서 내려올 때와 이긴 자가 진 자에게 술을 먹일 때에 그 耦들이 모두 예로써 서로 읍양하는 것이다.
[其爭也君子] ˂군자는˃ 활쏘기를 할 때에 正鵠을 맞히기만을 경쟁할 뿐이니, 소인들처럼 사나운 기색으로 팔을 길게 뻗고 쏘는 것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그 다툼이 군자답다.”고 한 것이다.
疏
[疏]○注 ‘孔曰 言於射而後有爭’ ○正義曰:鄭注射義云 “飮射爵者, 亦揖讓而升降. 勝者袒, 決 遂, 執張弓. 不勝者襲, 說(탈) 決拾, 卻左手, 右加弛弓於其上而升飮. 君子恥之, 是以, 射則爭中.” 是於射而後有爭.
○注의 [孔曰 言於射而後有爭]
○正義曰:≪禮記≫ ˂射義˃의 鄭玄 注에 “射爵(罰酒)을 먹이는 자도 읍양하고서 올라가고, 읍양하고서 내려온다. 勝者는 상의의 왼쪽 소매를 벗고[袒] 깍지[決]와 토시[遂]를 끼고서 시위를 건 활을 잡으며, 不勝者는 벗었던 소매를 입고[襲], 깍지와 토시[拾]를 벗으며, 왼손을 벌리고서 오른손으로 시위를 푼 활을 잡아 왼손 위에 올려놓고서 올라가서 벌주를 마신다. 군자는 이를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활쏘기를 할 때 맞히기를 경쟁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활쏘기가 있은 뒤에 경쟁함이 있는 것이다.
疏
[疏]○注 ‘王曰’至‘相飮’ ○正義曰:云 ‘射於堂 升及下 皆揖讓而相飮’者, 儀禮大射云 “耦進, 上射在左並行. 當階, 北面揖, 及階揖, 升堂揖. 皆當其物, 北面揖, 及物揖. 射畢, 北面揖, 揖如升射.” 是射時升降揖讓也. 大射又云 “飮射爵之時, 勝者皆袒, 決遂, 執張弓. 不勝者皆襲, 說(탈)決拾, 卻左手, 右加弛弓于其上, 遂以執弣, 揖如始升射. 及階, 勝者先升, 升堂少右. 不勝者進北面坐, 取豐上之觶, 立. 卒觶, 坐奠於豐下, 興揖, 不勝者先降.” 是飮射爵之時揖讓升降也.
○注의 [王曰]에서 [相飮]까지
○正義曰:[射於堂 升及下 皆揖讓而相飮] ≪儀禮≫ ˂大射禮˃에 “耦(한 組가 되어 활을 겨루는 두 사람)가 ˂射堂을 향해˃ 나아갈 때에 上射도 왼쪽에서 함께 간다. 계단에 이를 때쯤에 북쪽을 향해 읍하고, 계단에 이르면 또 읍하고, 사당에 오르면 또 읍한다. 두 사람 모두 그 표지에 이를 때쯤에는 북쪽을 향해 읍하고, 표지에 이르면 또 읍한다. 활쏘기를 마치고는 북쪽을 향해 읍하고서 사당으로 올라갈 때와 같이 읍하고 내려온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활쏘기를 할 때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에 읍양하는 것이다.
≪儀禮≫ ˂大射禮˃에 또 “벌주를 먹일 때에 이긴 자들은 모두 왼쪽 소매를 빼고, 깍지와 토시를 끼고서 시위를 건 활을 잡으며, 진 자들은 모두 벗었던 왼쪽 소매를 꿰고 깍지와 토시를 벗으며, 왼쪽 손을 벌리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푼 활을 잡아 왼손 위에 올려놓고서 토시로써 줌통(활 중간에 손으로 쥐는 곳)을 잡고서 처음 사당으로 올라갈 때와 같이 읍하고 올라간다. 계단에 미쳐 이긴 자가 먼저 올라가고, 사당에 올라가서 조금 오른쪽으로 비켜 선다. 진 자는 나아가 북쪽을 향해 앉아서 잔대 위에 놓인 벌주 잔을 집어 들고 서서 마신다. 다 마신 뒤에 그 잔을 잔대 아래에 놓고 일어나 읍하고서 진 자가 먼저 내려온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벌주를 마실 때에 읍양하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이다.
疏
[疏]○注 ‘馬曰多’至‘所爭’ ○正義曰:云 ‘多筭飮少筭’者, 筭, 籌也. 鄕射記曰 “箭籌八十, 長尺有握, 握素.” 是也. 多筭, 謂勝者, 少筭, 謂不勝者. 勝飮不勝而相揖讓, 故曰 “君子之所爭也.”
○注의 [馬曰多]에서 [所爭]까지
○正義曰:[多筭飮少筭] 筭은 籌(산가지)이다. ≪儀禮≫ ˂鄕射記˃에 “箭籌(화살을 만드는 가는 대로 만든 산가지)는 80개이다. 산가지 하나의 길이가 1尺 4寸인데, 손으로 쥐는 곳을 칼로 깎아 희게 만들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多筭은 이긴 자를 이르고, 少筭은 진 자를 이른다. 이긴 자들이 진 자들에게 벌주를 먹이면서 서로 읍양하기 때문에 ‘군자의 경쟁’이라고 한 것이다.
* ≪儀禮≫ ˂大射儀˃ “논어”, 박기봉 역주, 비봉, 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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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繪事後素 曰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왈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자왈회사후소 왈예후호 자왈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회사후소(繪事後素)란?
관리자
http://china.dsu.ac.kr/index.php?document_srl=476922013.03.28 18:37:47 1443
회사후소(繪事後素)란?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미련이 된 뒤에 한다는 뜻. 곧 본질(本質)이나 바탕이 먼저 이루어진 뒤에야 형식(形式) 이나 꾸밈을 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 '팔일(八佾)' 편에 나오는 말이다.
다음은 공자가 사람의 자질이 갖추어진 뒤에 문식(文飾 : 장식,꾸밈)을 가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말한 부분이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물었다. "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고우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하도다.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素以爲絢) 고 하였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
공자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다(繪事後素). "
그러자 자하가 곧 다시 "예(禮)가 뒤겠군요?" 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흥기(興起) 시키는 자는 상(商: 자하의 이름) 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만하다. "
자하의 말은 예(禮)라는 것은 마음의 표현이므로, 마음이 앞서고 그 형식인 예가 뒤라는 뜻이다. 자하는 마음을 ‘흰 비단’ 에, 예를 ‘그림’ 에 비유하여 시의 뜻을 새긴 것이고, 이에 공자는 그것을 칭찬하면서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후소”에 대한 설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대(漢代) 정현(鄭玄)은 이 구절을 “회(繪) 하고 난 후에 소(素)한다”고 보아, “그림 그리는 일은 여러 가지 색을 먼저 칠한 뒤에 흰색을 빈틈에 메꾸어 완성시킨다”고 하였고, 송대(宋代)의 주희(朱喜 : 朱子 1130 - 1200)는 “먼저 흰 바탕으로 질(質)을 삼은 뒤에 오색을 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대게 주희의 설명을 취한다.
[공자가 시를 좋아하는 것과 선승들이 시를 쓰는 것은 같은 방편이다, 회사후소(繪事後素)이란 시편의 글에서 인과 예로 읽는 것은 선승의 방식과 동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 식으로 논리(내용) 과 서술(표현) 이중구속 양태이다. 즉 두 개의 사이가 분절양태의 한 위상적 장면이다. (49W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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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주피(射不主皮)
힘세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시대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시대입니다.
<논어>에 보면 힘은 인간에 따라 선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오로지 힘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부모를 만나 물질적으로 풍요한 기반을 가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선천적인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기 때문에 힘을 위주로 세상 사람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射不主皮(사부주피)라!
화살을 쏠 때 얼마나 깊게 과녁을 뚫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爲力不同科(위력부동과)라!
왜냐하면 인간의 힘은 선천적으로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는 활쏘기 평가 방법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들도 선천적인 힘과 태어난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의 방법을 강한 자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세상이든 불평등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문만 열려 있어도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공정한 평가와 경쟁이 그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임에 분명합니다.
[출처] 사부주피(射不主皮)|작성자 청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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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불주피 위력부동과 고지도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냥을 할 때는 사냥감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는다. 힘겨루기는 과(등급)를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예로부터의 오랜 관례이다.
+ 옛날 해석을 보면 사: 활쏘기, 피: 과녁로 봤다.
활쏘기 시합을 할때 과녁을 뚫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각 개인의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날의 활쏘기 규칙이었다. 라고 해석을 했다.
사: 사냥터에서 활을 쏘아 사냥을 직접하는 행위를 가르키는 행위. 피: 사냥감. 그 당시 사냥의 주목적은 고기를 얻는데 있는게 아니라 모피를 얻는데 있었다.
(49W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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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설이 일이관지 한다는 말은 학설 전체가 하나로 통한다. 벩송도 학설의 연속성이 있다. 그 연속성 지속과 운동이다. 공자의 충서(忠恕)는 도덕 윤리적인 측면이다. 벩송은 존재론에서 인식론 문화론을 관통하는 이론이다. (49WMJ)
- 子曰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 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자왈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유 자출 문인문활하위야 증자왈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되어 있다 (내 길은 오직 하나이다).
증자는 대답하였다. 예, 선생님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길)는 오직 성심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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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子曰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삼년 무게어부지도 가위효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3년 동안을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성스럽다 할 수 있다.
[천하루밤 이야기는, 방향이 가장 꼭데기에서 고집스럽게 파랭이의 의식을 지닌 자를 바꾸는데 천하루가 걸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3년이라 여기서 3년은 만 2년일 것인데 그런 생각을 바꾸는데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힘드려 했더라도 원망하지 말라(勞而不怨). (49WNA) ]
18.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자왈 사부모 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간할 일이 생겨도 완곡하게 말씀드려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또한 공손히 거스르지 말 것이며 힘이 들더라도(마음 고생이 있더라도) 원망하지 말아라. [어떤 조직의 활동에서 다른 이들에게 마음고생을 하지만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활쏘기에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이다. ]
옹야장
13. 子曰 孟之反 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자왈 맹지반 불벌 분이전 장입문 책기마왈 비감후야 마불진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달아나면서 군대를 보호하면서 뒤쳐졌다. 성문에 거의 이르렀을 때 말을 채찍질 하며 외치기를 자신이 일부러 나서서 후위를 맞은 것이 아니라 말이 느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伐 벌: 자랑하다 / + 奔 분: 달아날 분
+ 殿 전: 군대의 행렬의 맨 뒤에서 군대를 보호하면서 행군을 독려하는 것을 전이라고 한다.
+ 맹지반(孟之反)은 기원전 484년 노나라의 성문 밖에 있었던 제나라와의 전투에서 노나라가 크게 패했다. 그래서 후퇴해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는데 퇴각하는 군대의 후위를 지키면서 군대가 안정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지킨 것. 그러면서 자기는 맨마지막으로 성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 소크라테스의 예와 같다. (50LLH)
옹야장
28.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 기유병제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자공이 여쭈었다.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자 정도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이라고 해야 할 것인다. 요순과 같은 성군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다.
인자는 자신이 일어서려고 할 때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도달하려고 할 때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해준다.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여 실행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인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린 글로 유명하다.
[이글을 소크라테스의 성애(지혜)를 찾아가는 길과 거의 같다. 도덕론으로 빨강이와 파랑이를 나누는 것이 먼저이고, 그리고 종교론으로 빨강이와 파랑이를 나누고 나서야 정치경제학적으로 좌파니 우파니 멱살을 잡던 싸움을 하던 두고 볼 일이다. (50LME)]
* 천하루가 필요하고 나라를 바꾸는 데는 30년이 필요하다...
논어(論語) 13 자로편(子路篇)
十. 子曰 苟有用我者 朞月而已 可也 三年 有成
자왈 구유용아자 기월이이 가야 삼년 유성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정치를 맡긴다면 일 년이면 효과를 볼 것이고, 삼 년이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 朞月 기월: 일주년
논어(論語) 13 자로편(子路篇)
十二.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
자왈 여유왕자 필세이후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왕도로 세상을 다스리는 성왕이 나타난다고 해도 30년은 지나야 인덕에 의한 감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 必世 필세: 한 세대. 30년 (50ONN)
*** 논어 14 헌문편(憲問篇)
六. 南宮适 問於孔子曰 羿 善射 奡 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 躬稼而有天下
남궁괄 문어공자왈 예 선사 오 탕주 구부득기사연 우직 궁가이유천하
夫子 不答 南宮适 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부자 불답 남궁괄 출 자왈 군자재 약인 상덕재 약인
남궁괄이 선생님께 여쭈었다.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육지에서 배를 끌 정도로 힘이 세었지만 두 사람 다 제명이 죽지 못했습니다. 우 임금과 후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으나 오히려 천하를 얻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꾸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물러난 뒤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교양이로다. 이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도다. 이 사람은.
+ 南宮适 남궁괄.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남용.
+ 남궁괄이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무력을 숭상하던 사람의 말로는 좋지 않았지만 덕을 숭상하던 사람은 결국 천하를 얻기까지 했다는 말이므로 공자는 이 부분을 칭찬한 것이다.
- 농업, 먹거리 해결이 문제거리를 푸는 것이다. 무력 또는 전쟁은 부의 비정상적 축적이라 곧 후유증이 발생한다. 그래서 묵자인가 농사에 기계를 도입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50PKD)]
*** 논어 14 헌문편(憲問篇)
十三. 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자로문성인 자왈 약장무중지지 공작지불욕 변장자지용 염구지예 문지이예락 역가이위성인의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왈 금지성인자 하필연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 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자로가 전인에 대해 여쭈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과 같은 지성과 맹공작과 같은 무욕과 변장자와 같은 용기와 염구와 같은 재주가 있고, 여기에 예약을 교양으로 갖춘다면 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지금의 전인이라는 게 어디 반드시 그러해야 하겠느냐. 이익을 보면 그것이 정의인지 불의인지 생각하고, 위험한 경우에 생명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어떠한 때에도 평생 입에 담고 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원문에는 성인이라고 나오는데 요즘에는 장성한 사람으로 보통 쓰이므로 여기서는 본래 뜻 자체가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해서 성인이므로 구별을 위해서 전인으로 번역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인격의 완성자가 된다는 말 중에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그것이 정의인지 불의인지 생각하고, 위험한 경우에 생명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이라는 말이 가장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퀴니코스에 가깝고 그렇게 실행한 자들이 한 학파를 이루었으며 스토아로 계승되어 갔고 혁명가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공자제자들 중에는 그런 행동을 한 자들이 학파를 형성해 나간 쪽이 묵가인가? ..]]
二. 子曰 賜也 女以予 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然 非與 曰非也라 予는 一以貫之
자왈 사야 여이여 위다학이지지자여 대왈연 비여 왈비야라 여는 일이관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자공)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마음에 새긴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학문을 하나의 기본 관념으로 꿰고 있을 뿐이다.
[심층에서 상층으로 연속성이 있다. -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심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위층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또는 지속이 있다. 그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한다. 일이관지의 일정한 회로 일 수 있다. 다른 회로에 대해서는 물어야 한다. 위영공편(衛靈公篇) 1절에서(이 앞 문장에서) 누가 공자에게 군사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하고, 예에 대해서 좀 안다고 했다. 국가 내에서 배치에 관해서 좀 안다는 것이다. 전쟁기계를 모른다고 했다. 공자는 변화는 전쟁에서가 아니라 배움과 실행에서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50PMD)]
논어(論語) 제15편 위영공편(衛靈公篇), 23절
二三. 子貢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자공이 여쭈었다. 단 한마디로 평생토록 받들 가치가 있는 말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 곧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리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김시천인가? - 공자의 논어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인(仁)이 아니라 서(恕)라고 이야기 했을 때, = 중용에서 서(恕)겠지 라고 하니, - 그는 논어에 나오는 단어의 빈도와 정도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서(恕)를 꼽는 것이 맞습니다. / 서(恕)란 남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것이며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 칸트의 도덕률도 마찬가지의 표현이 있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무엇일까. 마땅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칸트보다, 자신이 평생행해야 할 신조로 삼는 공자가 훨씬 더 유동적이다. (50PNA) ]
논어(論語) 제16편 季氏篇 2절(二節)
二. 孔子曰 天下 有道則禮樂征伐 自天子出 天下 無道則禮樂征伐 自諸侯出
공자왈 천하 유도즉례락정벌 자천자출 천하 무도즉예락정벌 자제후출
自諸侯出 蓋十世 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 希不失矣 陪臣 執國命 三世 希不失矣
자제후출 개십세 희불실의 자대부출 오세 희불실의 배신 집국명 삼세 희불실의
天下 有道則政不在大夫 天下 有道則庶人 不議
천하 유도즉정불재대부 천하 유도즉서인 불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대의명분이 행해지고 있을 때는 천자가 천하의 정치와 군사의 전권을 갖는다. 대의명분이 무너지면 정치와 군사의 전권은 제후의 손에 들어간다.
전권이 제후의 손에 들어가면 그 가문은 십대에 가서 망해버린다. 만약 제후의 나라에서 대신이 정치와 군사의 전권을 장악하면 대개 오대에 가서 망해버린다. 그리고 대신의 신하가 정치와 군사의 전권을 쥐게 되면 대개 삼대에 가서 망해버린다.
대의명분이 행해지고 있으면 제후의 가신들은 정부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대의명분이 행해지고 있으면 일반서민은 정치를 논하지 않을 것이다.
+ 자신의 역사 고찰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보인다. 역사가 변혁의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권력 투쟁이 더욱 더 격렬해지고 치열해졌다는 것.
[대의 명분을 붙잡고 밀고 나가면 .. 10대에 망한다고 하면 거의 300년인 셈인데, 한 대를 20년 잡으면 200년이다. 중국에서 천하가 어지러운 시기가 거의 200년 마다이다. (50QMF)]
** 논어(論語), 17 양화편(陽貨篇), 9절(九節)
九.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자왈 소자 하막학부시 시 가이흥 가이관 가이군 가이원 이지사부 원지사군 다식어조수초목지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반드시 시경을 배우도록 하라. 시를 배우면 연상력을 기를 수 있고, 인정과 풍속에 대한 관찰력을 항상시킬 수 있으며, 공동작업을 위한 협동력을 익히고, 정의감을 기를 수 있다. 가까이는 부모를 멀리는 군주를 섬길 때에 도움이 되며, 시에 나오는 새, 짐승,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
[순서를 바꾸어 보면, 자연에 대한 이해(鳥獸草木), 인정과 풍속의 관찰(觀)로 연상력(興)을 키우고 그리고 공동작업(群)과 정의감 그래서 나라를 평정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시편을 중요시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정(인간본성)과 상호관계를 통해 연상력을 확장하는데 있다. - 아들에게 시편을 읽히는 이유가 있다. 교육에도 마찬가지이다 (50R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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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18 미자편(微子篇)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자로왈 불사무의 장유지절 불가폐야 군신지의 여지하기폐지 욕결기신이란대륜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군자지사야 행기의야 도지불행 이지지의
선생님께서 자로에게 말하게 하려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다.
출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아무 근거가 없다. 장유의 서열은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신의 관계는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 한 몸을 깨끗이 하려 한 나머지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인간관계를 억지로 무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군주를 찾아 출사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이상이 바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이런 주가 달려있다.
子路述夫子之意如此라 蓋丈人之接子路甚倨나 而子路益恭한대 丈人因見其二子焉하니 則於長幼之節에 固知其不可廢矣라 故로 因其所明以曉之라 倫은 序也라 人之大倫이 有五하니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 是也라 仕는 所以行君臣之義라 故로 雖知道之不行이나 而不可廢라 然이나 謂之義면 則事之可否와 身之去就를 亦自有不可苟者라 是以로 雖不潔身以亂倫이나 亦非忘義以徇祿也라 福州에 有國初時寫本하니 路下에 有反子二字하여 以此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하니 未知是否라
자로(子路)가 부자(夫子)의 뜻을 서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장인(丈人)이 자로(子路)를 대한 것이 매우 거만하였으나 자로(子路)가 더욱 공손히 하자, 장인(丈人)은 인하여 그의 두 아들을 뵈었으니, 그렇다면 장유(長幼)의 예절(禮節)에 있어 진실로 폐할 수 없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밝은 곳을 인하여 깨우치게 한 것이다. 윤(倫)은 차례이다. 사람의 큰 인륜(人倫)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부자간(父子間)에 친함이 있고, 군신간(君臣間)에 의(義)가 있고, 부부간(夫婦間)에 분별이 있고, 장유간(長幼間)에 차례가 있고, 붕우간(朋友間)에 믿음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벼슬하는 것은 군신(君臣)의 의(義)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도(道)가 행하여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러 의(義)라고 하였다면, 일의 가부(可否)와 몸의 거취(去就)를 또한 스스로 구차스럽게 할 수 없음이 있다. 이러므로 비록 몸을 깨끗이 하여 인륜(人倫)을 어지럽히지 않으나 또한 의(義)를 잊고 녹(祿)을 따르지도 않는 것이다. 복주(福州)에 국초(國初)[송초(宋初)] 때의 사본(寫本)이 있는데, 노자(路字) 아래에 반자(反子) 두 글자가 있다. 그리하여 이것을 자로(子路)가 돌아오자, 부자(夫子)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옳은 지의 여부는 알지 못한다.
** 또다른 주..
○ 范氏曰隱者는 爲高故로 往而不返하고 仕者는 爲通故로 溺而不止라 不與鳥獸同群이면 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하니 此二者는 皆惑也라 是以로 依乎中庸者爲難이라 惟聖人은 不廢君臣之義而必以其正하니 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시니라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은자(隱者)는 <자신이> 고상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떠나가고 돌아오지 않으며, 벼슬하는 자는 <자신이> 통달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빠지고 중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조수(鳥獸)와 더불어 함께 무리하지 않으면, 성명(性命)의 정(情)을 파괴하여 부귀(富貴)를 탐하니, 이 두가지는 모두 미혹된 것이다. 이러므로 중용(中庸)에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오직 성인(聖人)은 군신간(君臣間)의 의(義)를 폐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그 정도(正道)로써 하니, 이러므로 혹은 세상에 나가고 혹은 은둔 하여도 끝내 도(道)에 떠나지 않는 것이다.”(50RMJ)
** - 은자만이 답이 아니라는 견해는 공자시대 일까? 불가에서 조실 스님이 있다는 것으로도 그 집단이 유지되지 않는가. 집단의 성립에서 상하 위계도 있고, 수평으로 널리 퍼지는 집단도 있다. 불가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조실 스님을 찾아가지 스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지 않는다. 공자는 자기 뜻을 펼치기 위해 군주를 찾아가야 하지만 군주가 가끔 사람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게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50RMJ)
***논어(論語) 19 자장편(子張篇) 十九節.
十九. 孟氏使陽膚 爲士師 問於曾子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 久矣 如得其情則哀矜而勿喜
맹씨사양부 위사사 문어증자 증자왈 상실기도 민산 구의 여득기정즉애긍이물희
맹씨가 증자의 제자 양부를 법관으로 입명하니 양부가 증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증자가 말했다. 윗사람이 정도를 잃어서 민심이 떠난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네가 죄인의 진상을 알게되면 슬퍼하고 가엽게 여길 것이지 기뻐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명박근혜가 정도를 잃었다. 인민이 촛불을 들었다. 인민은 관대하고 온후하다. 어벙이, 가스통부대, 엄마부대, 서북청년단 등은 스스로 파라노이아를 떨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들을 가엽게 여길 정책도 필요하다. 심층 51 : 상층 49 를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은 심층 51%를 성립시킬 때, 촛불이 혁명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제반 리좀들이 연대와 연합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50SLE)]
二十.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 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
자공왈 주지불선 불여시지심야 시이 군자오거하류 천하지악 개귀언
자공이 말했다.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紂)가 폭정을 했다고 해도 실제 세간에서 말하는 것만큼 심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제군들도 밑바닥에 머물지 말도록 하라. 세상의 악명이 모두 그곳으로 귀착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고 일베, 어벙이처럼 요강공주의 옹호에 서는 밑바닥(상층)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상층에 머무는 자들은 종교의 순수주의자 비슷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들은 주구(走狗)를 넘어 개돼지 취급을 받고 있는 지 모르고 있다. (50SLE)
二四. 叔孫武叔 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 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숙손무숙 훼중니 자공왈 무이위야 중니 불가훼야 타인지현자 구릉야 유가유야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중니 일월야 무득이유언 인수욕자절 기하상어일월호 다견기부지량야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었다. 이에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요. 선생님을 헐뜯어서는 안됩니다. 세간에서 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구릉과 같은 것이어서 그래도 넘어갈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해와 달 같아서 그 곳까지 올라 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관계를 끊으려고 해도 그것이 해와 달에게 무슨 손상을 입히겠습니까. 단지 자기들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해와 달(日月)을 단순히 환유적으로 (인간으로서는 다가갈 수 없는 거리)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비유하는 것인데, 일월 그곳까지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달까지 가는 것은 별문제가 없고, 태양까지(빛으로 8분거리, 8광분)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요즘 애들의 비유로 앞으로는 안드로메다 자리까지는 비유가 실질적고 구체적이 된 듯하다. / 게다가 요강공주는 담이 높고 문이 닫혀 들여다 볼 수 없었는데, 문재인은 문을 열어 어제께 세월호 유가족 등이 정문으로 그냥 쑥 들어갔다. (50SLH)]
*****04 fev. 17 (50MKD)
활에 관하여
논어(論語) - 07 술이편(述而篇)
26. 子 釣而不網 弋不射宿
자 조이불강 익불석숙
선생님께서는 물고기를 잡을 때 낚시를 하되 그물을 쓰지는 않으셨다. 활을 쏘아 새를 잡되 둥지에 있는 새는 쏘아 맞추지 않으셨다.
+ 網 벼리 강: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아 올리다로 새길 수 있다. 강을 網 그물 망를 잘못쓴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강자를 그대로 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 弋 주살 익: 화살인데 얇은 가느라단 끈이 달려 있는 것을 주살이라 한다. / 주살: 새를 잡을 때 사용하는 줄을 매단 화살.
* 참조: 동아 닷컴. 뉴스>문화
[한자 이야기] <115>釣而不網,弋不射宿
입력 2006-10-16 02:58:00 수정 2009-10-07 14:35:56
‘釣而不網(조이불망), 弋不射宿(익불사숙)’이라는 말이 있다. ‘釣’는 ‘낚시, 낚시질하다’라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樂釣會(낙조회)’라는 모임이 많은데, ‘낚시를 즐기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樂(락)’은 ‘즐기다’는 뜻이며, ‘會’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釣況(조황)’은 ‘낚시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고기를 많이 낚으면 ‘釣況’이 좋다고 말한다.
‘網’은 ‘그물’이라는 뜻이다. ‘漁網(어망)’은 ‘고기를 잡는 그물’이라는 말이고, ‘범인이 법망에 걸렸다’의 ‘法網(법망)’은 ‘법의 그물’이라는 말이다. ‘網羅(망라)’의 ‘網’은 ‘고기를 잡는 그물’이라는 뜻이고, ‘羅’는 ‘새 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網羅’는 ‘모든 그물’을 말한다. 따라서 ‘網羅했다’는 말은 ‘모든 것을 그물로 잡았다’, 즉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잡거나 취했다’라는 뜻이다.
‘弋’은 ‘주살’인데, 여기에서는 ‘주살로 잡다, 사냥하다’라는 동사로 사용됐다. ‘주살’은 ‘실을 매어놓은 화살’이다. ‘射’는 ‘쏘다’라는 뜻이다. ‘宿’은 ‘잠자다’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잠자는 새’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를 합치면 ‘釣而不網, 弋不射宿’은 ‘낚시를 하지만 그물질은 하지 않으며, 주살로 사냥을 하지만 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된다.
낚시는 불과 몇 마리를 잡고 말지만, 그물질을 하면 그 범위 안에 있는 고기를 모두 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기의 씨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물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아끼는 자세이다.
주살로 새를 잡는 경우에도 잠자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냥을 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이 말은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예전에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함이 이와 같았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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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 南宮适 問於孔子曰 羿 善射 奡 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 躬稼而有天下
남궁괄 문어공자왈 예 선사 오 탕주 구부득기사연 우직 궁가이유천하
夫子 不答 南宮适 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부자 불답 남궁괄 출 자왈 군자재 약인 상덕재 약인
남궁괄이 선생님께 여쭈었다.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육지에서 배를 끌 정도로 힘이 세었지만 두 사람 다 제명이 죽지 못했습니다. 우 임금과 후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으나 오히려 천하를 얻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꾸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물러난 뒤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교양이로다. 이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도다. 이 사람은.
+ 南宮适 남궁괄.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남용.
+ 남궁괄이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무력을 숭상하던 사람의 말로는 좋지 않았지만 덕을 숭상하던 사람은 결국 천하를 얻기까지 했다는 말이므로 공자는 이 부분을 칭찬한 것이다.
南宮适(拼音=kuò)[생몰불명][1]一名韜[도],字子容,中國春秋時期魯國人,孔子七十二弟子之一。又稱南宮括[괄]、南容,孔子稱讚他是個「君子」,並且將他的姪女(孟皮之女)嫁給了南宮适。《史記索隱》認為他是南宮敬叔,但很多學者以此為非。
后羿,或羿 [후예 혹예],是中国古代传说中的一位擅长射箭的人物。/ 大羿,或羿,神話傳說中的上古射日英雄,據說為尧時期人物,受天帝命令下界除害,並與妻子嫦娥一起降臨人間。先後射下九個太阳,並射殺猛禽惡獸,從此地上氣候適宜,萬物得以生長。民間因而奉他為「箭神」。(50P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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