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大乘, Maha- ya- na)이라는 용어에 대해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대(大)는 널리 포함하였다는 뜻이며, 승(乘)이란 비유로 말한 것으로 운행하여 싣는 것(運載)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레’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법설(Dharma-desana)이 무명과 생사의 괴로움의 세계에서 해탈의 세계로 중생을 태워서 건네주는 구제의 길이자 방법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대승의 신봉자들은 ‘대승’이라는 말을 자신의 교설의 위대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사용하였다. 이는 대승이 상대적으로 좁고 열등하다고 보는 소위 소승 (小乘, Hinayana)학파의 교설보다 훌륭하고 우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승불교인은 오직 자신의 구원만을 목표로 하며 고해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소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성인을 성문 (聲聞)이나 연각(緣覺)이라고 하여 대승의 보살과 차별화 하고자 하였다.
대승이라는 말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초기 대승 경전인 〈소품반야바라밀경〉이다. 이 경에 ‘대승의 참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간의 문답이 있다. “세존이시여, 대승이란 무엇입니까? 대승을 향해 뜻을 세웠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누가 그 뜻을 일으킵니까? 대승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서 이 대승은 나오는 것입니까? 누가 이 대승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이에 부처님은 “대승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큰 수레라고 한다. 그것은 욕계·색계·무색계의 3계, 즉 이 미혹한 현실 세계에서 나온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얻는 곳에 있으며, 보살들이 그 대승이라는 것을 타고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딘가에 누가 타고 나오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향해서 뜻을 세우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그것을 타고 나온다고 말할지라도 실은 타는 보살도 그 탈 것도 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실체로 파악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승의 성격을 ① 헤아릴 수 없는 것 ② 3계의 미혹한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음 ③ 모든 것을 아는 지혜 ④ 보살이 타는 수레 ⑤ 보살과 대승이라는 실체가 사실은 공하다는 것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여 수보리는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한 대승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이시여, 대승은 커다란 수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승은 모든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 등을 포함한 전 우주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허공처럼 크며, 그렇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허공은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수용하는 넓이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승도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수용하는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공은 어디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며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승도 그 나온 근원과 떠나는 곳과 지금 머물러 있는 곳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통하여 평등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보리는 모든 중생을 포용하고 제도하려는 헤아릴 수 없는 대승의 위대함을 허공에 비유하여 대승의 무한한 자비와 영원한 평등성을 밝히고 있다.
원효는 〈대법론 (對法論)〉을 인용하여 대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① 경대성 (境大性): 보살도는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경전의 광대한 교법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행대성 (行大性): 보살은 일체의 자리와 이타의 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③ 지대성 (智大性): 광대한 일체 유정과 법의 무실체성을 밝게 아는 때문이다. ④ 정진대성 (精進大性): 행하기 어려운 무량한 방편을 행하기 때문이다. ⑤ 방편선교대성 (方便善巧大性):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⑥ 증득대성(證得大性): 여래의 모든 힘과 두려움 없음과 한량없는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⑦ 업대성 (業大性)으로 생사를 벗어나 일체의 지혜를 성취하여 모든 불사를 건립하는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과 같이 대승은 심오한 가르침인 동시에 가장 대중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또한 재가와 출가, 선인과 악인, 현인과 범부를 구분치 않고 모두 구제하려는 넓고 큰 불이(不二)의 진리이며 대자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대승 이념의 근원적 원류를 찾아보면 초기 경전인 5부 니카야에 거의 다 발견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초기 불교의 자비와 연기사상을 시대적 요구에 알맞게 재해석하여, 왜곡되었던 부처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고자 했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