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황학동에 한 때 잘 나가던(?) 박수무당이 살고 있다. 그는 휘하에 듬직한(?) 세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데 희한한 일은 세 명의 아들 자식들이 모두 다른 배에서 나왔다는 것. 그것도 나이도 똑같단다. 도대체 이 박수무당의 힘은 어디까지이길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집안에 한 여자를 주워오면서부터 일은 시작된다. 그 유명한 말이
있지 않던가!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 부자들은 하물며 이웃도 아닌 아버지를 위해 주워온 여인네를 동시에 흠모하고, 서로 어떻게 해보려고 작정한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다. 인물들은 모두 밑바닥 인생들이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감정은 인류 공통의 최대 관심사, 바로 ‘사랑’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이처럼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펼치는지 말이다. 김수현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데뷔작 <귀여워>가 바로 그것. 튜브 픽쳐스가 제작하고 김석훈, 예지원,
정재영, 장선우, 박선우가 등장하는 영화 <귀여워>의 촬영현장 공개가 지난 1월 9일
양수리 한국종합촬영소 세트장에서 있었다.
어두컴컴한 세트장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 앞에서 방금 촬영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김수현 감독과 배우들이다. 세트는 일명 “데깡’이라는 칸막이에 가려져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악명 아닌 악명을 떨친 장선우 감독의
목소리였던 것. 그가 이제는 배우로 나섰다. 그래서 더욱 <귀여워>가 재미있을 것 같고 호감이 간다. 세 명의 배다른 자식들을 둔 박수무당 아비가
바로 장선우가 맡은 장수로다. 그의 아들들은 제각기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큰아들(물론 나이는 같지만 서열이 정해져 있다) 963(김석훈 분)은 퀵 서비스 맨이고, 둘째 개코(박선우 분)는 렉카차 기사, 막내 뭐시기(정재영 분)는 양아치 건달이란다. 여기에 효자 개코가 아버지를 위해 주워온
여자 순이(예지원 분)가 존재한다. 네 부자 모두 그녀에게 ‘껄떡대는’ 상황에서, 이 날 촬영분은
963이 순이에 대한 환상을 적어둔 일기를 개코가 가족들 앞에서 읽으면서 깔깔대는
장면이다.
배우들이 출연 의상으로 걸치고 있는 옷들도 정말 재미있다. 배우로 전업한 장수로
역의 장선우는 내복에 ‘몸빼’ 바지를 걸치고 있고, 순이 역시 그 비슷한 복장으로
이 욕망의 덩어리 네 남자와 어울린다. 그
나마 좀 번드르르한 옷 매무새는 막내 뭐시기 밖에 없다. 물론 그 역시 현실에서는
돋보일 수 밖에 없는 블랙 슈트(건달들의
트레이드 마크인)를 걸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스운 복장의 인물들이
기자회견장에 한데 모이니 정말 가관일 수
밖에 없을터인데, 여기에 김수현 감독 역시 비슷한 차림새로 등장한다. 머리 모양은 모든 출연진들이 장선우의 그것을 닮아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김수현 감독이 학창시절부터 그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고수해왔다는 것을 아는 기자에겐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었지만….
<귀여워>를 통해 가장 주목을 받는 배우는 톱스타 대열에 있는 김석훈, 예지원, 정재영도 아닌 바로 장선우였다. 그의 캐스팅에 관한 질문이 주어지자 김수현 감독은
“장선우 감독은 얼굴이 배우처럼 이쁘게
생겼지 않나?(웃음) 그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시나리오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장 감독을 언급하더라”라며 너스레를
떨며 수줍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에 얼른
배우 장선우는 “감독이 날 캐스팅하려고
반쯤 협박조로 나오더라. 난 그래서 ‘망해도 나한테 묻지마’라고 말하면서 수락했다.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은 나와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연기를 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의 복이기도 또 감독의 복이기도 할 것이다”라고 받아 친다. <귀여워> 캐릭터들의 독특한 직업이 자신의 경험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감독은 “5~6년 전 내 나이와 극중 캐릭터들의 나이가 비슷한 시절, 그 나이에 가질 수 있었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사랑 등의 감정들을 이야기 속에 실어넣으려 했다. 퀵 서비스도 직접 해봤고, 렉카 차 또한 몰아봤다. 건달 역을 위해서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라고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사전 준비들을 털어 놓기도…. 그러면서도 감독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말되게 하려니 힘들다. 하지만 좋은 연기자들이 도와주고 있어 행복하다.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다”라고 자신의 데뷔작에 강한 자신감을 표력했다.
물론 이 말에 장선우는 “<귀여워>는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아마 한국의 에밀 쿠스트리차가 탄생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귀여워>로 충무로 입봉 신고를 하는 김수현 감독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87학번이다. 그는 장선우 감독과 5년의 작업시간을 함께 한 인물이다. 그러니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부터 <나쁜 영화>까지 장선우와 현장에서 함께 생활한 것. 장선우와의 인연에 관해 김수현 감독은 “5년 동안 그와 함께 작업하고 다시 5년 후
그를 배우로 기용했으니, 정말 10년이란
세월의 질긴 인연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재미있는 사실이 개코 역의 박선우라는 인물에 있다. 그는 예전 가수로 활동하면서 10대 가수에도 선정된 바 있던 인기 가수였다. 누구냐고? ‘미스터 투’라는
듀엣 그룹을 기억하는가? “하얀 겨울”이라는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그 듀엣말이다.
바로 박선우가 미스터 투의 멤버였던 것. 그가 동국대 89학번이니 감독의 2년 후배인
셈인데, 김수현 감독이 개코 역에 그를 적극 기용한 것이라 한다. 촬영장에서도 박선우는 분위기 메이커로 현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전업이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유머 감각에 있다. 물론 다른 배우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니 구태여 거론하지 않겠다.
<귀여워> 촬영현장은 장수로, 개코, 순이가 한 자리에 모여있고, 개코가 963의 일기를 식구들에게 읽어주는 도중 뭐시기가
머쓱하게 선물을 한아름 들고 들어오는 장면의 완성을 위해 한나절을 할애하는 진지함의 연속적 분위기였다. 감독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또 세트장 내를 오가며 연기지도와 카메라 위치 세팅에 대한 의논에 분주했다. 잠시 짬을 내 담배를 태우는 김수현 감독에게 <귀여워>는 언제부터 기획되었으며, 시나리오 작업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는지를 물어보자, 그는 “1997년 초부터 기획한 작품이고, 중간에 약간의 공백기를 빼고도 촬영일정까지 포함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또 자신의 영화에 대한 한 줄의 코멘트를 부탁하자, 한참 동안 머리를 긁적이다 “거친 야생의 판타지를 통해 피어나는 삶의
희망”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표현이면 멋있지 않나?”라는 말을 보태며…. <귀여워>는 어렵게 세상에 선보이는 작품인 만큼, 또 그의 청춘의 기억들이 묻어있는 작품인 만큼 더욱 기대되는 작품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부분이었다.
튜브 픽쳐스가 <파이란>, <집으로…> 이후 세 번째로 자체 제작하는 작품이자 총 24억원의 순제작비가 투입된 “순이에게 바치는 즐거운 호색기가” <귀여워>는 현재
65%의 촬영이 진행된 상태(감독의 말로는 세트장 촬영을 마치면 85% 촬영완료가 된다고 한다)이며, 2월말까지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는 5월 초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