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치악산 가을이야기
지난 대부도 푸른섬팬션 봄모임 총회에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1년에 한 번 만남은 부족하다며 봄, 가을 두 번 모임을 갖자고 안건을 내어 통과시킨 바 있어 친구들이 첫 가을모임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시월초 총무와 회장으로부터 문자와 전화로 우리들이 만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네 번째 토요일인 10월 24일이라며 꼭 오시라는 연락을 받았다.
먼저 모인 장소는 바다를 끼고 했으니 이번에는 명산의 정기를 서린 원주의 유명한 치악산 휴양림을 옆에 둔 ‘금대가든’에서 만나기로 예약을 했다고 알려 왔다.
해마다 20회 동창회 모임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린 날 소풍가는 날처럼 설렌다. 아마도 그리운 얼굴들이 또 보고 싶고 지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날 흐리던 날이 24일 아침에는 맑게 개어서 날도 우리 만남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오후 3시 30분에 원주로 향해 출발했다. 북상주IC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문경, 수안보를 지나 충주에서 40번 평택제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충주IC를 빠져나와 19번 충주 흥업간 국도를 타고 원주로 가는 길은 토요일인데도 교통량이 비교적 한산하여 한창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산의 정취를 마음껏 받으며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었다.
목적지인 판부면 금대가든에 도착하니 5시 10분이었다. 6시가 약속시간이니 예정시간보다 50분이나 앞당겨 오게 되었다. 초행길이라 여유를 가지고 오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든 입구에 서 있던 주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먼저 온 일행이 치악산 휴양림을 돌아보고 온다고 나갔다고 하였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상주에서 왔다고 하니까 상주에 살고 있는 죽마고우가 있는데 연락이 끊긴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주소를 몰라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다면서 혹시 아는지 물어보았다. 원래 고향은 충북 옥천인데 어릴 적부터 한 마을에서 자라고 같이 학교도 다니면서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라고 하였다. 경북 의성에서 살다가 원주로 수년 전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았다고도 했다. 인연이 되려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 이름을 들으니 마침 내가 속한 탁구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주인은 무척 기뻐하며 꼭 연락처를 알려 달라며 명함을 나에게 쥐어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차가 한 대 들어왔다. 회장 상철이와 용옥이가 같이 내리면서 치악산 휴양림을 구경하고 왔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산의 중턱까지 차를 몰고 갔다가 내려왔는데 얼마간 올라가니 비포장도로에 낙엽이 떨어져 쌓여 가을 분위기를 맘껏 느끼고 왔다고 했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오자 승달이와 원주에 사는 명자가 반가운 얼굴을 나타내고 뒤이어 수도권에 사는 총무인 천수, 중권, 인용이, 부회장 정숙, 용선, 상희와 강릉의 승란이가 환히 웃으며 들어섰다. 해락이와 선희, 오현이도 모습을 나타냈다. 오현이는 서울 가는 일이 있어 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구미의 영숙이는 직장에서 4시경 퇴근하여 원주행 버스를 타고 원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있다고 연락이 왔다. 택시를 타고 금대가든으로 오도록 명자가 안내를 했다. 몇 년 만에 동창회 모임에 힘들게 온 영숙이에게 친구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대전의 종원이가 옥희와 함께 들어왔다. 종원이는 오늘 할머니 기제사로 보통 11시 넘어 지내는데 동창회 때문에 부득이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왔다고 하였다. 할머니께서 양해해 주실 것이라고 부언을 해 친구들이 한 바탕 웃었다. 동창회 모임에 대한 애정이 마음에 전해진다.
저녁식사는 우리들의 정겨운 파티였다. 친구들을 위해 직접 주워 만든 특별한 도토리떡을 가져온 명자, 오미자효소액, 도토리묵, 깐 생밤, 맛있는 김까지 해서 가지가지 알뜰하게 챙겨온 옥희의 정성에 참석한 친구들은 모두 감동을 받았다.
송어회, 토종닭백숙을 저녁으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늦은 밤까지 그동안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가든 홀에 있는 노래방에서 친구들이 열창을 하였다.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정숙이의 토끼춤, 거기에 질세라 승달이의 비비춤도 화려한 솜씨를 뽐내어 무대를 빛내 주었다. 나는 1시경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이른 여덟 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가까운 치악산 휴양림을 산책하기로 했다. 천수와 중권이는 앞개울에서 산메기를 잡아 매운탕을 한다고 남기로 했다.
치악산 휴양림은 악 소리가 나듯이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되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가는 이 길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길이다. 삼삼오오 어울려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가을 치악산의 품에 흠뻑 빠졌다.
빨간 단풍을 배경으로 찰칵, 노란 은행잎을 배경으로 찰칵, 낙엽 쌓인 산책길에서도 찰칵, 억새꽃을 배경으로 찰칵찰칵.
치악산의 가을을 담으며 즐거워하는 소년소녀 같은 모습에서 진정 동창회를 하는 참뜻을 다시금 깨닫게 하였다. 항상 바쁜 일상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 사위와 며느리로, 아들과 딸로 책임을 다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잠시나마 등에 진 짐을 내려두고 만나는 1박2일 동창회는 짧지만 그 무엇보다 깊은 우정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 친구들은 잘 알고 있다. 산길을 걷다가 주웠다는 다래를 가져와 선희가 나에게 주었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다래였다. 입에 넣어 깨무니 달콤하고 아삭한 씨앗의 씹히는 맛이 어릴 적 향수를 자아내었다. 그 옛날 머루, 으름, 다래를 따 먹으며 한 마리 노루처럼 산을 누비던 그 때, 그 친구들이 다래 하나에 밀물처럼 기억 저편에서 잔잔히 밀려들어왔다.
점심은 강원도에 왔으니 전통 음식으로 하자고 뜻이 모아졌다. 전통 음식점으로 유명하다는 소초면 ‘황골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치악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황골집 마당에 주차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집은 아주 옛날집 그대로 였다. 따끈한 감자전을 안주를 해서 치악산 막걸리로 건배를 하였다. 쫄깃한 감자전은 식감과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거듭 주문을 하여 푸짐하게 맛보았다. 이어서 손두부 전골이 상마다 차려지고 마지막 만찬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웃고 즐겁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봄만남은 사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화사한 봄날도 좋았다.
가을만남은 시월, 겨울로 가는 길목, 불타는 단풍의 아름다움도 좋았다. 또한 낙엽이 떨어지듯 한 구석 쓸쓸한 마음을 달래줄 친구들과 함께한 가을이 더욱 아름다웠다.
다음 봄날 동창회는 남쪽에 사는 친구들을 생각하여 부산에서 갖기로 하였다. 해운대, 광안리 바닷가에서, 광안대교의 야경을 달맞이고개에서 친구들과 함께 바라보는 기쁨을 상상해본다. 그 동안 못 본 부산권 친구들이 더욱 그려진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첫 모임에서 처음 만나던 날, 여러분이 들려준 시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선생님, 명전인의 놀이마당에 오래도록 남아계셔야 합니다. 우리들 가슴에 따스한 화롯불 하나 품고 살며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라던 그 구절을 항시 잊을 수가 없다.
2015년 치악산의 가을에서 우리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또 만들어졌고 그 이야기는 20회 우리들 추억의 책장에 오래오래 갈무리될 것이다.
황골집에서 명전 20회 동창회 가을모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여러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설 때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선생님도 여러분들도 가슴에 담고 돌아간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 따뜻한 마음도 선생님이 여러분을 생각하는 그 그리운 마음도 함께......
환절기 쌀쌀해지는 날씨에 모두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길 바란다.
2015년 10월 29일 상주에서 박철윤 선생님
(첨언) 상주에 와서 금대가든 주인의 친구에게 그 소식을 전했더니 그 분도 몇 번이나 의성에 가서 친구 소식을 수소문해도 찾을 길이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고 하면서 내 손을 꽉 잡고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산가족을 만나게 한 것 같아 나또한 마음이 뿌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