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0호]
2014.11.03
인터뷰
“출세지향·회사형
남편 황혼이혼 1순위”
이혼 문제 전문가 변화순 소장이 말하는 황혼이혼
조성관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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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10월 말 중년남자의 최대 화제는
황혼이혼이었다. 10월 22일 공개된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황혼이혼 비율이 전체 이혼율에서 28.1%로 1위를 차지했다.
중년남성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5년 전 22.8%이던 황혼이혼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황혼이혼의 무게감이 달랐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은 15년 전 일본에서
등장했다. 황혼이혼이란 결혼 25년 이후 이혼하는 경우를, 신혼기 이혼에 빗대어 붙인 조어(造語)다. 황혼이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이혼을 제기하는 쪽이 여성이 70~80% 이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경우에 제기된다는
것이다. 변화순(61) 팸라이프가족연구소 소장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이혼문제 전문가다. 사회학 박사인 변 소장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연구실 실장, 여성전략센터 소장 등을 지냈으며 이혼문제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되었다. 2011년 ‘가족정책으로 바라본
여자 남자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변 소장은 2012년 팸라이프가족연구소를 열었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변 소장을
만나, 남자들이 모르는 황혼이혼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변 소장에게 결혼 25년 이후라는 시점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다. “교수나 공무원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대부분 회사에서 은퇴하고 막 나오는 시기와 맞물립니다. 남자들은 회사가 아닌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가정 경제 살림권이 아내에게 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또 25년 이상 한 지붕
아래서 살아왔지만 남자는 생활·활동·사고방식에서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결혼 25년이면 자녀가 둘인
경우, 막내의 대학 입학까지 끝났을 때와 거의 겹친다. 전업주부로 살아왔을 경우 ‘자녀 대학 보내기’가 끝나면 여자의 역할이 없어진다. 결국
덩그러니 부부만 남게 된다. 변 소장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아이들은 대학에 가면서 대부분 어머니를 떠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여성의 우울증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여자 입장에서, 퇴직해 집에 들어앉은 남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힘이 있고
당당하게 보이던 남자의 등을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느낌이 솟구치면서 부부관계를 예전과 같이 유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남편의
사소한 이야기에도 화가 나게 됩니다.” 변 소장은 그 나이의 여성은 신체적으로도 남성호르몬이 많아져 젊었을 때와는 달라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역할에서도 변했다고 말한다. “20년 이상 가정에서 있으면서 여자는 많은 경험을 자원으로 갖게 됩니다.
감정을 공유하는 자식이 있고, 경제적으로 결정권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친구가 있고, 취미생활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생깁니다.
남자들은 어떻습니까. 남자는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그게 점점 부담스럽게 되는 거죠. 남자는 점점 그림자가
되어가고,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거죠.” 인터넷에서 한동안 떠돌았던 우스개 하나. ‘영식님’ ‘일식씨’ ‘두식이’
‘삼식X’. 남자가 은퇴하고 할 일이 없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을 때를 가리킨다. 남자가 한 끼도 먹지 않을 때 여자들은 ‘영식님’이라고
존칭을 사용한다. 아침 한 끼만 먹으면 ‘일식씨’라고 예우를 하지만 두 끼를 다 집에서 해결하면 곧바로 반말조인 ‘두식이’가 된다. 만일 삼시
세끼를 전부 집에서 먹으면 ‘삼식X’이 된다. 이것은 결코 한낱 우스개로 끝나지 않는다. 은퇴한 남자를 둘러싼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는,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우스개다. 여기서 중산층 남자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다. 모든 남자가 황혼이혼의 대상이 되는 거냐는
질문이다. 주로 어떤 성향의 남자들이 여자들로부터 황혼이혼 소송을 당할까. “황혼이혼은 애들 다 키우고 나서 여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평생 남녀차별을 당하며 살아오던 응어리를 남편에게 투사시켜 폭발하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의 신혼기 이혼은 남녀의
역할갈등에서 오는 거고요. 젊어서부터 가부장적 권위로 여자를 짓누른 남자들에 대해 못 참는 거죠. 어떤 남자들은 심지어 반찬값으로 지출하는
돈까지 가계부에 일일이 쓰게 합니다. 여자들이 숨을 쉴 수 없게 억압하는 남자들이 있잖아요?” 황혼이혼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남자들 대부분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1990년에 개정된 가족법이다. 여성계의 노력으로 남녀평등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전업주부들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전업주부는 30%까지, 맞벌이 여성은 50%까지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을
분할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바로 연금분할제도에 근거해서다. “사회가 변하고 법이 변했는데 남자들만 그걸 몰라요.
재산분할에 서명하면서 남자들은 한결같이 ‘이거 내가 다 번 건데…’ 하면서 억울해 해요. 자기 걸 뺏긴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황망해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 부분은 언뜻 납득하기 힘들다. 변 소장의 말을 계속
들어본다. “상황이 급변해 펼쳐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경우를 보고 예측은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동안 집안에서 잘 대우를 받고 살았으니 나는 안 그럴 거야, 하는 거죠. 은퇴 준비를 머리로는 다 하는데.
현실에서 부닥치면서 서운한 감정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 거죠.” 한국 남자들 대부분은 여성차별적
사회에서 성장하다 보니 은연중에 성차별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류가 은퇴 후에 위험한 상황에
빠질까. “회사형 인간이죠. 그동안은 우리 사회가 경제발전, 성공, 남성 위주의 사회가 되다 보니 남성의 생활이 한쪽에
치우쳐 있었잖아요. 출세지향적 사람에게 인간성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면 비웃잖아요. 예를 들면, 출세지향적인 사람은 오래전 가족과 약속한 것도
위에서 부르면 가차없이 깨고 그쪽으로 달려가잖아요. 그래야 출세한다고 생각하죠. 그때 가족들이 받는 상처는 말도 못하는데…. 그때는 작을지
모르지만 그런 서운함이 감정의 치부책에 차곡차곡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겁니다.” 남자들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 그 ‘어느 순간’은 언제 오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탱해주는 힘이 남자의 경제력이에요. 남자가
계속 돈을 벌어 갖다 줄 때는 그나마 괜찮아요. 하지만 갖다 주는 게 있을 때와 갖다 주는 게 끊겨 (집에) 있는 걸 쓸 때는 전혀 다른
것이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혼생활의 끈을 유지하는 데는 부부생활 여부도
중요하다. “부인과의 스킨십도 중요해요. 적지 않은 남자들이 집에서 부인의 육체적 욕구를 해결해주지 않은 채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다른 여자와 스킨십을 나누는 거죠. 이것 역시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게
됩니다.” 변 소장이 상담한 황혼이혼 케이스 두 개. 남자는 자신이 가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남자가 가정적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월급 벌어서 다 가져다줬고 다 쓰게 했고, 심지어는 부인의 외도까지도 용서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이런 말에
고개를 돌리며 전혀 아니라고 했다. 부인 말을 들어보니, 부인은 남자가 젊은 시절 바람 피운 건 다 참고 살아왔다고 했다. 남자는 자기가 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고 부인이 한 거를 용서한다는 논리였다. 여자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더 이상은 이런 남자와 살기 싫다고 이혼을
선택했다. 남자와 여자는 황혼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화해했다. 여자가 이혼 서류에 서명하기 직전 마음을 돌린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남자가 부동산 명의를 여자 이름으로 변경하고 오피스텔 월세권을 여자 이름으로 변경하는 조건으로 이혼소송을
취하했다. 변 소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직장에서 은퇴한 남자들의 로망이 뭔지 아세요?” 기자가
의아하게 생각하자 변 소장이 대답했다. “그건 시골로 가서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겁니다.” 변
소장의 말이 계속된다. “왜 농사를 지으려는지 아세요? 남자들은 은퇴하면 사람을 만나기 싫어합니다. 또 사회생활에서 알게
된 인간관계는 대부분 이해관계로 만난 거니까 은퇴와 함께 사라집니다. 대민(對民)관계가 싫으니까 농사를 지으려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등산을
가거나.” 대기업 같은 큰 조직에 있다 퇴직하는 사람일수록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남을 섬기고 남을 보살피는 삶을 25년 이상 해왔잖아요. 그러니까 나이 먹어서도 몸을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호스피스 활동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은퇴한 남자들은 몸을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어요.
하기도 싫어하고요. 자신을 낮춰볼 생각을 안 해요. 여자와 남자가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황혼이혼은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용어다. 이혼율이 높은 서양에서는 왜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없을까. “서양에서는 부부관계의
만족도가 유(U)패턴을 보입니다. 보통은 동거부터 시작해 정말 마음이 맞으면 결혼을 하잖아요. 그래서 신혼기에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애정이 식을 때쯤인 10~15년 정도에 결혼 관계를 다 정리합니다. 이때 이혼할 사람은 다 이혼합니다. 이혼한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파트너와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거나 아니면 더 이상 결혼을 안 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겁니다. 그 고비를 넘긴
부부들은 솔 메이트로, 예술생활로 관계를 승화시켜 나갑니다. 외국의 오페라극장에 가면 노부부가 예술 이야기로 몇 시간씩 하는 걸 보잖아요.
왜냐하면 서구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개인의 행복추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중국에, 한국·일본에 있는
황혼이혼이 없는 것은 남녀평등의 결과다. 중국은 1949년부터 가정 안에서 여성의 지위가 인정되었고, 사회활동에서도 남녀평등을 실현했다.
1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을 때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변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 대부분은 무방비로 은퇴합니다.
안타깝게도 변화된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어요. 여자는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데 말이죠. 환상 속에 살면서 자기 자신을
안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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