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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율비바사 제18권
물었다.
“몇 사람이면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있습니까?”
“최하 다섯 사람으로서 전(前) 안거하는 사람이면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있지만 안거를 깨뜨린 사람과 후(後) 안거하는 사람은 얻지 못합니다. 다른 곳에 사는 이도 얻지 못합니다.
만약 살고 있는 곳에서 다섯 사람이 차지 않으면 딴 절의 대중 스님을 불러서 수를 채워서 받을 수 있으며, 수를 채우게 된 객 비구는 받을 수 없습니다.
혹은 사는 곳에 네 비구가 있고 한 사미가 안거를 마치려 하면 사미에게 큰 계율을 받게 하고 다섯 사람이 차면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있으며, 새로 계율을 받은 이도 받는 것입니다. 한 비구와 네 사미가 계율을 받아도 그와 같습니다.
또 사는 곳에 다섯의 비구가 있고 다섯 사람이 넘기도 하지만 가치나 옷 받을 줄을 모르면 다른 곳에서 한 사람의 법을 아는 비구를 청하여 갈마를 하고 가치나 옷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갈마를 하게 되는데 스스로가 받지 않으면 역시 옷의 몫을 얻지 못합니다.”
법사가 물었다.
“어느 사람이 대중 스님에게 가치나 옷을 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7중(衆) 옷과 천인의 옷으로 지어지는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가치나 옷을 지을 줄 몰라서 와서 물으면, 비구는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또 승가리, 울다라승, 안타회의 하나하나의 옷으로 지어지는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있습니다.
16일 새벽이 되어서 가치나 옷을 가지고 마름질하여 와서 대중 스님에게 주면, 비구는 옷의 주인에게 바느질과 실이며 염색할 것과 옷 만들 비구의 많고 적음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단월은 듣고 옷 만드는 비구의 음식을 공양해야 합니다. 상가를 위하여 가치나 옷을 받으면 옷을 받는 법용(法用)을 알아야 합니다.
옷의 마름질이라 함은 먼저 씻어서 여러 비구들에게 주면 함께 자르고 깁고 고쳐야 하고, 그날에 물들여 점정(點淨)을 하고는 받아야 합니다.
만약 많이 어느 사람에게 가치나 옷을 보내면 하나의 옷을 받아야 하고 나머지는 나누어야 하며, 갈마하여 받아야 합니다.
상가는 가치나 옷을 가지고 누구에게 주는가?
옷이 해진 이에게 주어야 합니다. 만약 옷이 해진 비구가 많으면 옷이 해진 비구 중에서 늙은이에게 줄 것이며, 만약 늙은이가 없으면 법랍의 수가 많은 이에게 주고, 간탐부리는 이에게는 주지 못합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가치나 옷의 갈마하는 법을 지니라’고 하셨으니, 율문에서 말씀하였습니다.
만약 옷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면 일체 비구들을 불러서 같이 완성시켜야 하니, 도덕을 말하며 말미를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병든 이만은 제외합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가치나 옷에 대하여 이렇게 은근한가?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셨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연화(蓮花)라고 하였습니다. 성문인 제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수사다(須闍多)인데 가치나 옷을 짓다가 완성되지 못하자 연화여래께서는 1만 6천 비구에게 둘러싸여 함께 가치나 옷을 지어서 완성시켰습니다.
‘옷을 가진 비구’라 함은 자기가 받아가졌던 승가리를 버리고 ‘가치나 옷을 나는 이제 가집니다’라고 이렇게 세 번을 말합니다.
세 번 말하고 곧 몸에 가져다 놓고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상좌의 앞에 나아가서 합장하고 스님을 향하여 ‘대덕이시여, 나는 법답게 상가[僧]의 가치나 옷을 가집니다.
스님은 따라 기뻐하소서’라고 합니다.
상좌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합장하고 중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니, ‘장로여, 법답게 상가의 가치나 옷을 가지므로 나는 따라서 기뻐합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좌까지도 이와 같이 말합니다.
상가에서 가치나 옷을 받아 지닌 것이 아니거나 대중에서 가치나 옷을 받아 지닌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가치나 옷을 받아 가지더라도 상가가 따라 기뻐하며 대중들도 따라 기뻐한 뒤라야 가치나 옷을 가지는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세 가지 옷을 지니다가 대중 스님들에게 준 것을 가지고 가치나 옷을 지을 적에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니,
‘만약 가치나 옷을 가지려면 세 가지 옷은 다 시주의 말에 따르는 것이므로 다 옷을 받았던 사람에게 주는 것이니 다른 대중 스님은 받지 못합니다’고 하니,
가치나 옷은 이미 중이 보시로 얻은 물건 속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나 옷을 받는다’ 함은 가벼운 물건은 나눌 수 있지만 무거운 물건은 사방의 상가에게 소속된 것이므로 만약 같은 포살계에 살고 있는 데가 많이 있으면 따로는 가치나 옷을 받을 수 없고 한군데 모여서 한 번의 가치나 옷의 법을 받아야 하니, 꿰매어 만들지 못하고 수 놓아 지어야 합니다.
‘소유한 옷을 가진다’ 함은 아직 짓지 않은 것을 가지고 지경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니, 지경 밖이라 함은 다른 절입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가치나 옷을 받고는 무엇 때문에 지경 밖으로 나가는가?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려는 뜻을 짓는다’ 함은 비구가 지경 밖에 나갔다가 여기의 살 곳에 좋은 방사가 있는 것을 보고 혹은 아는 이가 있기라도 하면 돌아오지 않으려는 뜻을 짓는 것이니 먼저 살 곳을 상실하고 뒤에는 공덕옷[功德衣]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문구는 율문에서 이미 말하였습니다.
‘나는 옷도 짓지 아니하고 돌아가지도 않겠다’고 함은 생각이 끝나자마자 살 곳과 공덕옷을 함께 상실하는 것입니다.
‘옷을 지을 때에 상실한다’ 함은 지었던 옷이면 살 곳을 먼저 상실하고 뒤에 공덕 옷을 상실합니다.
‘문실(聞失)’이라 함은 먼저 공덕옷을 잃고 뒤에 살 곳을 상실합니다.
‘소망이 끊어짐’이라 함은 먼저 살 곳을 상실한 뒤에 희망하여 얻은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소망한 것이 아닌데 얻었다’ 함은 이 문구는 앞뒤가 바꿔진 것입니다.
나타난 문구가 많지만 깊은 뜻은 없으니, 율문에서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가치나 옷의 건도를 마칩니다.>
따로 삶[別住]을 행하는 사람이거나 어느 사람이 청하였거나 남과 계를 받거나 간에 행하는 법 일을 멈추면 그만두게 하고 도로 계속하여 행할 수 있습니다.
행법[行法]을 버릴 때에는 이렇게 말할지니, ‘나는 지금 파리바사를 버립니다’라고 이렇게 세 번 말합니다.
또 따로 삶의 마나타로 행법할 때를 당하여 비구가 떠나버리고 도무지 사람이 없으면 다만 뜻으로만 말하되, ‘만약 비구가 오면 나는 아뢸 것이다’라고 하고, 엿새 동안을 비구에게 아뢸 수가 없으면 역시 죄를 벗어나게 됩니다.
만약 절 안에 많은 비구가 있으면서 오고가고 하여 아뢰기가 어려우면, 낮에는 행법을 버릴 수 있고 다음 날이 밝기 전에 너더댓 비구와 지경을 나가서 두 번 돌을 던지는 밖에서 도리어 행법을 받아야 하니, 상가에게 ‘나는 마나타를 행합니다’라고 아룁니다. 약간의 날이 경과하고 약간 남아 있는데, 만약 경계 안에 비구가 있으면 그곳에 나가서 아뢸 것이요, 만약 아뢰지 않으면 밤을 상실[失夜]합니다.
만약 비구가 보내져서 행법을 받은 뒤에 돌아가면 한 사람을 만류했다가 날이 밝아짐을 기다려 행법을 버려야 하니, 함께 돌아와 절에 들어가서 앞의 법과 같이 하여 여섯 밤이 차면 죄를 벗어나게 됩니다. 죄를 벗어나는 법은 율본에서 이미 말하였으므로 말하지 아니합니다.
그때 구섬미(拘睒彌)의 어느 곳에 두 비구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율사요, 한 분은 수다라사였습니다. 때에 수다라사는 뒷간에 들어가서 세숫대야를 쓴 뒤에 물을 버리지 않고 대야를 덮어버렸습니다. 율사가 뒷간에 들어갔다가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고 수다라사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뒷간에 들어가서 물을 버리지도 않고 대야를 덮어버렸습니까?’
수다라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그러했습니다.’
율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죄의 형상을 아십니까?’
수다라사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실로 죄의 형상을 모릅니다.’
율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돌길라 죄가 되었습니다.’
수다라사가 말하였습니다.
‘만약 돌길라 죄를 범하였다면 나는 참회해야겠습니다.’
율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일부러 하였습니까?’
수다라사가 말하였습니다.
‘일부러 한 것은 아닙니다.’
율사가 말하였습니다.
‘만약 일부러 한 것이 아니면 죄는 없습니다.’
수다라사는 율사에게 죄가 없다고 함을 들었습니다. 율사는 방에 돌아가 제자들에게 ‘수다라사는 범한 줄도 모르고 범하지 않은 줄도 모르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듣고 수다라사의 제자에게 ‘그대의 스승은 범한 줄도 범하지 않는 줄도 모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는 말을 듣고 스승을 향하여 그와 같은 일을 말하였습니다. 수다라사는 제자의 말을 듣고 제자에게 ‘이 율사는 먼저는 나에게 죄가 없다고 해 놓고 지금은 나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니, 율사가 거짓말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수다라사의 제자가 스승의 말을 듣고 율사의 제자에게 ‘너의 스승이야말로 거짓말 죄를 범하였다’고 하니, 율사의 제자가 말을 듣고 스승을 향하여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차츰차츰하여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율사는 뒤에 수다라사의 틈을 얻어서 대중을 모아 수다라사의 죄를 들었기 때문에 거죄(擧罪)갈마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본에 ‘화합하여 죄를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물었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신통력으로 비구들에게 말씀하지도 않고 사위국에 가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대중에 계시다가 만약 판단을 하시게 되면 이치를 얻은 이는 기뻐하겠지만 이치를 얻지 못한 이는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편드시고 계신다’고 하며 부처님을 비방하면서 ‘사랑과 성냄을 따른다’고 할 것이니, 부처님을 비방함으로 인하여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떠나가시고 그 판단을 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구삼비 건도를 마칩니다.>
<첨파(瞻婆) 건도는 해설이 없습니다.>
서로가 언쟁하면 두 가지의 비니를 이용하여 없애니, 현전(現前) 비니와 다멱(多覓) 비니입니다.
‘억념(憶念) 비니’라 함은 애욕이 다한 비구로부터 아나함까지를 위한 것이요, 범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멱 비니’라 함은 곳곳에서 법 아는 비구를 많이 구하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멱 비니라 합니다.
‘마이(摩夷)’라 함은 2부의 바라제목차입니다.
혹은 사라(舍羅:산가지[籌])를 행할 적에 법답지 아니한 사라가 많다 함은 거두어 잡고서 ‘내일 다시 사라를 행하리라’ 합니다. 그 동안에 다시 법다운 무리들을 구하였지만 상좌가 법답지 아니한 사라를 잡으면 산가지를 행하는 이가 귀에 말로 ‘상좌는 연로하신데 무엇 때문에 법답지 아니한 산가지를 잡고 계십니까? 법다운 산가지를 잡으셔야 합니다’고 합니다.
<일곱 가지 다툼 없애는 법[七滅諍法]을 마칩니다.>
비구니 건도입니다.
어찌하여 부처님은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시지 않았는가?
법을 공경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여인을 제도하여 출가시키면 정법(正法)이 5백세만 머무르게 되므로, 부처님은 비구니의 여덟 가지의 공경[八敬]을 제정하시므로 말미암아 정법은 도리어 천 년이 되게 하셨습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천년이 다하면 부처님 법은 아주 없어져버립니까?”
대답하였다.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 년 안에 3달지(達智)를 얻고, 다시 천년 안에 애욕이 다한 아라한을 얻습니다. 3달지가 없더라도 다시 천년 안에 아나함을 얻고, 다시 천년 안에 사다함을 얻고, 다시 천년 안에 수다원의 학법(學法)을 얻습니다. 다시 5천세를 얻어서 그 5천세에 도를 얻으니, 나중 5천 년에 배워도 도를 얻지 못하면 만 세 후에는 경서와 문자들이 다 없어지고 다만 머리를 깎는 것만이 나타나서 가사와 법복이 있을 따름입니다.
<비구니 건도를 마칩니다.>
중요한 물건은 나누지 못하니, 대중 스님들의 밭ㆍ동산ㆍ못ㆍ우물은 팔아서 딴 물건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바꾸는 것만은 제외됩니다.
대중 스님들의 평상과 자리며 기물은 나누지도 못하며 팔지도 못합니다. 오직 바꾸는 것만은 제외됩니다. 안약ㆍ대통ㆍ절굿공이ㆍ귀빗치개ㆍ침ㆍ띠ㆍ작은 칼ㆍ문ㆍ갈고리ㆍ자물쇠ㆍ석장(錫杖)ㆍ작은 푯말ㆍ쇠그릇ㆍ지팡이는 나눌 수 있으며, 다른 것으로 제조된 그릇은 나누지 못합니다.
오직 이쑤시개를 쪼개는 도끼는 제외되며, 칼ㆍ가죽신ㆍ일산ㆍ도구들도 제외되니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와 풀과 토지를 보시하면 나누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약을 보시하면 나눌 수 있으며 상자는 나누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승방 중에 소용된 기물을 보시하면 일체 나누지를 못합니다. 오직 기름 담는 통만은 제외됩니다.
<법(法) 건도를 마칩니다.>
선견율비바사 제18권
[대덕 사리불이 우파리에게 묻는 율행출품(律行出品)]
사리불이 우파리에게 물었다.
몇 가지 죄를 몸으로 얻으며
몇 가지 죄를 입으로 얻으며
덮고 감추면[覆藏] 몇 가지 죄가 되며
서로가 대면 또 몇 가지가 있습니까?
우파리는 게송으로써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몸으로 여섯 가지 죄를 얻으며
입의 업으로 다시 여섯 가지 있습니다.
덮고 감추면 세 가지 죄가 되며
서로 대면 다섯 가지 죄가 됩니다.
두 번째 물었다.
동트는 것에는 몇 가지 죄며
세 번 말하는 데에도 몇 가지 있으며
여기에 여덟 가지의 일이 몇 개며
일체의 취(聚)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동트는 것에는 세 가지 죄요
세 번 말[三唱]하는 데에 두 가지가 있으며
여기에 여덟 가지의 일은 한 개며
일체의 취에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세 번째 물었다.
여래는 분별하여 맺으셨으며
비니에 몇 가지 형상이 있습니까?
비니에 중한 것이 몇 가지가 있으며
또 몇 가지 추악을 덮는 것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으며
비니에 두 가지 형상이 있습니다.
비니에 중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며
추악을 덮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네 번째 물었다.
마을 사이에서는 몇 가지의 죄며
강을 건너는데도 몇 가지 있습니까?
고기를 먹으면 몇 가지 투란차며
고기를 먹으면 몇 가지 돌길라입니까?
대답하였다.
마을 사이에서는 네 가지가 있으며
강을 건너는 데도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의 고기가 투란차며
아홉 가지 고기가 돌길라입니다.
다섯 번째 물었다.
밤 말[夜語]에는 몇 가지 죄를 얻으며
대낮에도 몇 가지가 있습니까?
보시에 몇 가지가 죄를 얻고
보시를 받는 데는 몇 가지 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밤 말에는 두 가지 죄가 있으며
대낮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시에 세 가지 죄를 얻으며
보시를 받는 데는 네 가지 죄를 얻습니다.
여섯 번째 물었다.
몇 가지 죄를 머리 맞대어 참회하며
몇 가지 죄에 갈마가 필요합니까?
지은 뒤에는 참회할 수도 없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맺으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 죄는 참회해야 하며
여섯째에는 갈마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 죄는 참회할 수도 없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맺으셨습니다.
일곱 번째 물었다.
비니에 중한 것이 몇 가지가 있으며
부처님은 몸, 입의 업을 말씀하셨습니까?
때 아닌 적의 곡식에 맛이 몇 가지며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는 몇입니까?
대답하였다.
비니에 두 가지 중한 것이 있고
몸과 입도 그러합니다.
때 아닌 곡식은 한 가지 맛이고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는 한 가지입니다.
여덟 번째 물었다.
바라이에 몇이 있으며
같이 화합하는 자리는 몇입니까?
또 밤을 상실[失夜]함에 몇 가지 있으며
두 손가락을 맺은 것에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바라이에 둘이 있으며
화합하는 자리에도 둘이 있습니다.
밤을 상실함에도 두 가지 있으며
두 손가락을 맺은 것에도 둘이 있습니다.
아홉 번째 물었다.
몸을 때리는 것에 몇 가지가 있으며
몇 가지로 대중 스님들을 깨뜨립니까?
처음 죄를 짓는 것에 몇이 있으며
아룀을 짓는 것에 몇 가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몸을 때리는 것이 두 가지 있으며
둘로 말미암아 대중 스님들을 깨뜨립니다.
처음 짓는 것에 두 가지 죄가 있으며
아룀을 짓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열 번째 물었다.
살생에 몇 가지 죄가 있으며
중한 말에 몇 가지가 있습니까?
욕설한 것에 몇 가지 있으며
중매를 하는 것에 몇 가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살생에 세 가지 죄가 있으며
중한 말에 세 가지 죄가 있습니다.
욕설한 것에도 세 가지 있으며
중매를 하는 것에 세 가지 죄가 있습니다.
열한 번째 물었다.
몇 사람이 구족계를 받으며
취작(聚作)에는 몇 가지 죄가 있습니까?
멸빈(滅擯)에는 또 몇이 있으며
한 말[一語]에 또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세 사람은 받지 못하며
취작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멸빈 또한 세 가지 있으며
한 말에도 셋이 있습니다.
열두 번째 물었다.
도둑의 계율에 몇 가지 죄가 있으며
음행의 계율 또한 몇 가지가 있습니까?
바로 끊는 것에 다시 몇이 있으며
버리고 던지는 것에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도둑의 계율에 세 가지 죄가 있고
음행의 계율에 네 가지 죄가 있습니다.
바로 끊는 것에도 세 가지가 있으며
버리고 던지는 것에 세 가지 있습니다.
열세 번째 물었다.
비구니를 가르치는 계율에
바야제와 돌길라가 몇 입니까?
그 안에 몇 개의 새 것이 있으며
옷은 몇 가지의 옷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비구니를 가르치는 계품 중의
바야제와 돌길라입니다.
부처님 말씀으로서 믿을 만한 것 네 가지가 있으며
옷을 주는 데에는 두 가지 죄입니다.
열네 번째 물었다.
부처님은 비구니에게 몇 가지
바라제제사니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생곡식을 먹는 데에 바야제와
돌길라가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비구니에게 바라제제사니가
여덟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야제와 돌길라는
생곡식을 빌어먹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번째 물었다.
다닐 때에 몇 가지 죄가 있으며
설 때에 몇 가지 죄가 있습니까?
앉을 때에 몇 가지 죄가 있으며
잠 잘 때에 몇 가지 죄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다닐 때에는 네 가지 죄가 있고
설 때에도 네 가지 죄가 있습니다.
앉을 때에는 네 가지 죄가 있고
잠잘 때에도 네 가지 죄가 있습니다.
열여섯 번째 물었다.
바야제에 몇이 있으며
일체가 한 종류가 아닙니까?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동일한 때에 얻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바야제에 다섯이 있고
그 유(類)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한 때에 함께 죄를 얻습니다.
열일곱 번째 물었다.
몇 가지 바야제가 있으며
일체가 한 종류가 아닙니까?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동일한 때에 얻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한 때에 함께 죄를 얻습니다.
열여덟 번째 물었다.
몇 가지의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까?
몸과 입으로 참회할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입의 업으로 참회함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아홉 번째 물었다.
몇 가지의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까?
몇이나 입의 업으로 참회함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한 번 입의 업으로 참회하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스무 번째 물었다.
몇 가지의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까?
입으로 말하여 참회하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 바야제가 있고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름자를 꺼내서 참회함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스물한 번째 물었다.
몇 가지가 바야제가 있으며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까?
성분[性]을 들어서 참회하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고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성분을 들어서 참회하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스물두 번째 물었다.
셋째에 죄는 몇 가지 있으며
음식으로 인하여 다시 몇이 있습니까?
먹을 때에 몇 가지 죄를 얻으며
먹음으로 인하여 몇 가지가 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셋째에는 세 가지 죄를 얻으며
음식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죄가 있습니다.
먹을 때에는 세 가지 죄를 얻으며
다섯 가지를 먹음으로 인하여 죄를 얻습니다.
스물세 번째 물었다.
일체 제3의 허물이
이르는 곳에 다시 몇이 있으며
또 죄를 묻는 데에 몇이 있으며
다투는 일에도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제3의 허물에
죄가 되는 데에 다섯 곳이 있습니다.
잘 죄를 대답하는 데에 다섯이 있고
다투는 일에도 다섯이 있습니다.
스물네 번째 물었다.
논하는 일에 다시 몇이 있으며
몇 가지로 법을 써서 없앱니까?
죄 되지 않는 것에 몇이 있으며
몇 곳이 있어서 선을 이룩합니까?
대답하였다.
논하는 일에도 다섯이 있으며
다섯 가지로 법을 써서 없앱니다.
청정한 것에 다섯 가지 있으며
세 처소 가운데서 선을 이룩합니다.
스물다섯 번째 물었다.
몸의 업으로는 밤에 몇 가지 죄며
몸의 업으로는 낮에 몇 가지 죄입니까?
볼 때에 몇 가지 죄를 얻으며
걸식에는 몇 가지 죄를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몸의 업으로는 밤에 두 가지 죄요
몸의 업으로는 낮에도 두 가지 죄입니다.
볼 때에는 한 가지 죄를 얻으며
걸식에도 한 가지 죄를 얻습니다.
스물여섯 번째 물었다.
은혜를 보는 데에 몇 가지 있으며
사람을 의지하여 참회를 합니까?
내쫓을 것에 또 몇이 있으며
선한 행에도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은혜를 보는 데에 여덟 가지 있으며
사람을 의지하여 참회를 이룹니다.
내쫓을 것은 세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고
선한 행은 마흔 세 가지입니다.
스물일곱 번째 물었다.
거짓말에 몇 가지 있으며
7일에는 다시 몇이 있습니까?
바라제제사니는 몇이며
참회하는 것에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거짓말에 다섯 가지 있으며
7일법에는 두 가지 있습니다.
열둘의 바라제제사니요
참회에도 넷이 있습니다.
스물여덟 번째 물었다.
거짓말에 몇 가지 관(觀)이 있으며
포살에 몇 가지 관이 있습니까?
심부름꾼에 몇 가지 관이 있으며
외도에 몇 가지 법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거짓말에 여덟 가지 관이 있으며
포살에도 여덟 가지 있습니다.
심부름꾼에도 여덟이 있으며
외도에도 여덟 가지 법이 있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물었다.
계를 받음에 몇 가지 말이 있으며
다시 공경을 일으킨 계율에 몇이 있습니까?
몇 사람이 자리에 참여해야 하며
비구니를 가르치고 경계한 것에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여덟 가지 말로써 구족계를 받으며
공경을 일으킨 계율에 여덟 가지 있습니다.
자리에 참여하는 것도 여덟이 있으며
여덟 법으로 비구니를 가르치고 훈계하였습니다.
서른 번째 물었다.
몇 사람에게 예배하지 말아야 하며
합장하지 않아야 합니까?
몇 가지의 돌길라가 있으며
옷을 사용함에도 몇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열 사람에게 예배하지 말아야 하고
합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열 가지 돌길라가 있고
옷을 사용함에도 열이 있습니다.
서른한 번째 물었다.
몇 가지의 불선(不善)을 짓는 것이 있으며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까?
첨파율(瞻婆律) 가운데에는
일체가 불선한 행입니까?
대답하였다.
열두 가지 불선을 짓는 것을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첨파율 가운데에는
일체가 불선한 행입니다.
서른두 번째 물었다.
대덕의 묻는 바를 따라서
나도 뜻대로 대답하였습니다.
물음마다 바로 대답하셨으니
하나의 의심도 없습니다.
첫째 몸으로 얻으며, 둘째 입으로 얻으며, 셋째 몸과 입으로 얻으며, 넷째 몸과 마음으로 얻으며, 다섯째 마음과 입으로 얻으며, 여섯째 몸과 입과 마음으로 얻습니다.
‘몸의 업으로 여섯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음란과 성내는 것이 처음이 됩니다.
‘입의 업으로 여섯 가지의 죄를 얻는다’ 함은 헛되이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이 처음이 됩니다.
‘덮고 감추면 세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첫째 비구니가 중한 죄를 덮고 감추어 바라이를 얻고,
둘째 비구가 남의 중한 죄를 덮고 감추어 바야제를 얻고,
셋째 비구가 스스로 중한 죄를 덮고 감추어 돌길라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덮고 감추면 세 가지의 죄를 얻는다고 합니다.
‘서로가 대면 다섯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첫째 비구니가 만지고 대면 바라이며,
둘째 비구가 만지고 대면 승잔이며,
셋째 비구가 몸으로 여인의 옷을 대면 투란차가 되며,
넷째 비구가 옷으로 여인의 옷을 대면 돌길라가 되며,
다섯째 비구가 다른 비구를 손가락으로 때리면 바야제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죄라고 합니다.
‘동트는 데에 세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한 밤ㆍ여섯 밤ㆍ일곱 밤ㆍ열 밤과 한 달을 지나서 동이 트면 니살기 바야제이며,
비구니가 혼자 자다가 동이 트면 승진이며,
비구가 자신의 죄를 덮고 동이트면 돌길라이니,
이것을 동트는 데에 세 가지 죄를 얻는다고 합니다.
세 번 말하는 데에 두 가지는 첫째 비구요, 둘째 비구니이니, 계를 말할 적에 세 번 말하는 데도 죄가 있으면서 드러내지 않으면 돌길라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세 번 말하는 데에 두 가지 죄라고 합니다.
‘율에 여덟 가지 일을 갖추면 죄가 성립된다’ 함은 비구니의 바라이입니다.
‘일체의 취(聚)에 하나가 있다’ 함은 계서(戒序)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드러내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드러낸다 함은 5편계(篇戒)이기 때문에 취에 하나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래는 분별하여 말씀하셨다’ 함은 계율의 형상이며 가볍고 무거움을 분별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니에 두 가지 형상이 있다’ 함은 몸과 입이 그것입니다.
‘비니에 중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함은 바라이와 승잔이 그것입니다.
‘추악을 덮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함은 하나는 바라이요, 하나는 승잔입니다.
‘마을 사이에 네 가지가 있다’ 함은,
한 비구가 비구니와 같이 갈 것을 기약하면 비구는 처음 떠나갈 때에 돌길라요,
마을의 지경에 이르면 비구는 바야제 죄를 얻습니다.
한 다리가 안에 있고 한 다리가 밖에 있으면 비구니는 투란차가 되며,
두 다리가 다 들어가면 승잔이니,
이것을 마을 사이에서 네 가지 죄라고 합니다.
‘강을 건너는 데에 네 가지 죄가 있다’ 함은,
비구가 비구니와 함께 배로 갈 것을 기약하면 처음 떠나갈 때에 비구는 돌길라를 얻고,
배에 오르면 비구는 바야제를 얻습니다.
비구니는 한 다리가 언덕에 오르면 투란차를 얻고,
두 다리 모두 오르면 승잔을 얻으니,
이것을 강을 건너는 데에 네 가지 죄라고 합니다.
‘한 가지의 고기가 투란차’라 함은 곧 이것은 사람의 고기요, ‘아홉 가지 고기가 돌길라’라 함은 코끼리ㆍ말ㆍ개 등의 고기입니다.
‘밤의 말에 두 가지의 죄가 있다’ 함은,
어떤 비구니가 남자와 함께 어두운 방이거나 으슥한 곳에 들어가 귀엣 말을 하면 바야제가 되며,
어떤 비구니가 남자와 함께 한 곳에서 두 주(肘) 밖 거리면 돌길라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밤의 말에 두 가지 죄가 있다고 합니다.
‘대낮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함은 비구니가 남자와 함께 으슥한 곳에서 만약 두 주(肘) 반 안이면 바야제를 얻고 두 주 반 밖이면 돌길라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대낮의 두 가지 죄라고 합니다.
‘보시에 세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가 죽일 마음을 가지고 독약을 보시하여 사람을 죽이면 바라이죄를 얻으며,
사람 아닌 것[非人]을 죽이면 투란차 죄를 얻으며,
축생을 죽이면 바야제 죄를 얻습니다.
이것을 보시에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보시를 받는 데서 네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여인이 손으로 주는 것을 비구가 잡으면 승잔이요,
여인이 음탕한 욕심으로 비구에게 주면 바라이를 얻으며,
친척 아닌 비구니가 옷을 보시하면 니살기바야제를 얻으며,
만약 비구니가 더러운 마음으로 음심 있는 남자인 줄 알면서 음식을 받으면 투란차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보시를 받는 데서 네 가지 죄를 얻는다고 합니다.
‘다섯 가지 죄는 참회해야한다’ 함은 투란차ㆍ바야제ㆍ바라제제사니ㆍ돌길라ㆍ악설(惡說)입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죄는 참회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섯째에는 갈마가 필요하다’ 함은 승가바시사입니다.
‘한 가지 죄(罪)는 참회할 수 없다’ 함은 바라이입니다.
‘비니에 두 가지 중한 것이 있다’ 함은 첫째는 바라이요, 둘째는 승잔입니다.
‘몸과 입도 그와 같다’ 함은 제정하신 계율을 몸과 입에서 지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 아닐 적의 곡식에 한 가지 맛’이라 함은 소비염(蘇毘鹽)은 곡식으로 만들어서 때 아닐 적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을 곡식에 한 가지 맛이라고 합니다.
‘한 번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라 함은 보내서 비구니를 가르치고 경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바라이에 둘이 있다’ 함은 첫째는 비구요, 둘째는 비구니가 그것입니다.
‘화합하는 자리에 둘이 있다’ 함은 첫째는 몸의 화합이요, 둘째는 법의 화합입니다.
‘밤을 상실하는 것에도 둘이 있다’ 함은 첫째는 파리바사를 행함이요, 둘째는 마나타를 행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두 손가락을 맺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함은 첫째는 비구니로써 씻어서 깨끗이 하는 것[洗淨]과 둘째는 머리카락의 길이니, 두 손가락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몸을 때리는 것에 두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니가 몸을 때리면 돌길라를 얻으며, 울면 바야제를 얻는 것이 그것입니다.
‘둘로 말미암아 대중 스님들을 깨뜨린다’ 함은 첫째는 갈마요, 둘째는 사라를 잡는 것이 그것입니다.
‘처음 짓는 것에 두 가지 죄가 있다’ 함은 첫째는 비구가 처음에 죄를 짓는 것이요, 둘째는 비구니가 처음에 죄를 짓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룀을 짓는 것에도 둘이 있다’ 함은 첫째는 아뢰고 갈마함이요, 둘째는 단백(單伯)입니다.
‘살생에 세 가지의 죄가 있다’ 함은 사람이면 바라이를 얻으며, 사람 아닌 것이면 투란차요, 축생이면 바야제입니다.
‘말의 중한 것에 세 가지 죄가 있다’ 함은 도둑질하게 하고 죽게 하고 거룩하고 이익된 법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말에 세 가지의 중함이 있는 것이라 합니다.
‘욕설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함은 만약 음욕스런 마음으로 여인의 근과 항문을 욕하면 두 가지 승잔이요, 나머지 몸의 부분을 욕하면 돌길라를 얻으니, 이것을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중매를 행하는 데에 세 가지 죄가 있다’ 함은 말을 받을 때에 돌길라가 되며, 가서 말하면 투란차며, 돌아와서 알리면 승잔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세 사람은 받지 못한다’ 함은,
첫째 멀어서 듣지 못하거나,
둘째 몸의 부분이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셋째 근이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하는 것입니다.
옷과 바리가 갖추어 있지 않는 것은 몸의 부분에 포함되며,
열세 가지 어려움이 있는 사람[十三難人]은 근이 갖추어져 있지 않는 것에 포함됩니다.
‘취작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함은 첫째 따로 모임[別衆], 둘째 아룀이 성취하지 않는 것, 셋째 갈마가 성취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세 가지라 합니다.
‘멸빈 또한 세 가지가 있다’ 함은,
첫째 비구니가 몸으로 사람을 비방하는 것이니, 마치 자지(慈地) 비구니와 같습니다.
둘째 사미가 사미를 무너뜨리는 것이니 남의 항문에 나아가서 음행하는 것이며,
셋째 음욕을 행하는 법은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멸빈하는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한 말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함은 한 번의 갈마에 세 사람이 일시에 계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세 가지라 합니다.
‘도둑의 계율에 세 가지 죄가 있다’ 함은 5전이면 바라이요, 4전이면 투란차요, 3전에서 1전까지면 돌길라이니, 이것을 도둑의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음행의 계율에 네 가지 죄가 있다’ 함은,
첫째 여인의 근이면 바라이이며,
죽은 여인의 것이 반쯤 무너졌으면 투란차며,
네 갓에 대지 아니하면 돌길라며,
비구니가 물건으로 근을 만들어 자기의 근 속에 넣으면 바야제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죄라고 합니다.
‘바로 끊는 것에도 셋이 있다’ 함은,
첫째 사람 목숨을 끊으면 바라이요,
둘째 초목을 끊으면 바야제요,
셋째 스스로가 남근을 끊으면 투란차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인(因)이라 합니다.
‘버리고 던지는 것에 셋이 있다’ 함은,
죽일 마음을 가지고 독약을 버리고 던져서 만약 사람이 죽게 되면 바라이요,
사람 아닌 것이 죽으면 투란차요,
축생이 죽으면 바야제를 얻습니다.
이것을 세 가지 버리고 던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셋이 있습니다.
비구가 정액을 버리고 던지면 승잔이요,
대소변을 생풀 위에 버리고 던지면 바야제를 얻으며,
물속의 깨끗한 땅이면 돌길라를 얻으며,
코풀고 침뱉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던지는 세 가지라 합니다.
‘바야제와 돌길라’라 함은 비구니를 가르치고 훈계하다가 해가 저물면 바야제를 얻으며, 먼저 설법하고 뒤에 8경(敬)을 말하면 돌길라를 얻습니다.
‘부처님 말씀으로서 믿을 만한 것 네 가지가 있다’ 함은 첫째 방사요, 둘째 계율이요, 셋째 법다운 지음이요, 넷째 법답지 아니한 지음입니다. 이것을 넷이라 합니다.
‘옷을 주는 데에 두 가지 죄’라 함은,
친척 아닌 구족계 받은 비구니에게 옷을 주면 바야제를 얻으며,
구족계 받지 않은 비구니에게 옷을 주면 돌길라를 얻습니다.
구족계를 받지 않았다 함은 비구니의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를 따르고 아직 큰 상가의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를 따르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옷을 주는 데에 두 가지라고 합니다.
‘바라제제사니가 여덟 가지가 있다’ 함은 비구니의 바라제제사니가 그것입니다.
‘바야제와 돌길라’라 함은 비구니가 생 곡식을 빌면 바야제를 얻으며 먹을 때에는 돌길라입니다.
‘다닐 때에 네 가지 죄가 있다’ 함은,
비구가 여인과 함께 기약하여 처음 떠나가는 때는 돌길라를 얻으며, 마을에 이르면 바야제를 얻습니다.
비구니가 혼자 다니면 떠나갈 때는 투란차를 얻으며, 마을에 닿으면 승잔을 얻습니다.
‘설 때에 네 가지 죄가 있다’ 함은,
비구니가 남자와 같이 으슥한 곳에 서 있으면 바야제를 얻으며, 편 손의 밖이면 돌길라를 얻습니다.
만약 비구니가 해가 뜨려고 할 때 벗을 따라 떠나가지 않고 머물러서 떨어져 있기가 편 손의 안이면 투란차며, 편 손의 밖이면 승잔을 얻습니다.
앉았거나 잠잘 때도 그와 같습니다.
‘바야제에 다섯이 있다’ 함은 소(酥)ㆍ꿀ㆍ사탕ㆍ기름ㆍ비계를 다섯 가지 그릇에 각각 받았다가 7일을 넘기고 먹으면 다섯 가지 바야제죄를 얻습니다.
‘그 유가 한 가지가 아니다’ 함은 소(酥)와 꿀 등입니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다’ 함은 무더기로 한 곳에 놓았다가 한 번에 똑같이 먹으면 함께 죄를 얻습니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다’ 함은 아홉 가지의 맛있는 음식을 비는 것이니,
첫째는 우유, 둘째는 타락, 셋째는 생소, 넷째는 익힌 소, 다섯째는 기름, 여섯째는 꿀, 일곱째는 사탕, 여덟째는 고기, 아홉째는 생선입니다.
이것을 아홉 가지라 합니다.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니며 각각 다릅니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다’ 함은 먹는 때로 인하여 모두 죄가 되니, 한 번에 먹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바야제가 있다’ 함은 그 다섯 가지의 바야제입니다.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니며 입의 업으로 참회 하니, 일시에 참회하면 소멸함을 얻습니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다’ 함은 아홉 가지의 맛있는 음식을 빌면 아홉 가지의 바야제 죄를 얻습니다.
‘그 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함은 소와 기름과 생선과 고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번 입의 업으로 참회한다’ 함은 아홉 가지 바야제 죄를 한 말로 참회하면 곧 없어지게 됩니다.
‘다섯 가지 바야제가 있다’ 함은 이름자를 꺼내서 참회하는 이가 죄의 이름을 늘어 놓으면서 참회합니다.
‘아홉 가지 바야제가 있다’ 함은 성분을 들어서 참회(懺悔)를 하는 이가 죄의 이름을 늘어놓으면서 참회합니다.
‘셋째에는 세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죄를 따라서 들출[隨擧] 적에 비구니는 세 번 간하여서 버리지 않으면 바라이이며, 비구로써 상가에게 세 번 간함을 당하고도 버리지 않으면 승잔이요, 비구와 비구니의 나쁜 견해를 세 번 간하여도 버리지 않으면 바야제입니다.
‘음식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어떻게 여섯 가지 죄를 얻는가?
첫째 음식 때문에 스스로 ‘남보다 뛰어난 법을 얻었다’ 하고,
둘째 음식 때문에 중매를 행하고,
셋째 음식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이 절에서 머무르면 도의 과위를 얻는다’고 하니,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투란차를 얻습니다.
넷째 음식 때문에 병이 없는데 음식을 빌고,
다섯째 음식 때문에 비구니가 병이 없는데 걸식하면 바라제제사니를 범하고,
여섯째 음식 때문에 비구가 병이 없는데 걸식하면 돌길라 죄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죄를 얻는다고 합니다.
‘먹을 때에 세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가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 투란차며,
코끼리ㆍ말ㆍ용ㆍ개 등의 고기는 돌길라 죄입니다.
비구니가 마늘을 먹으면 바야제 죄를 얻으니,
이것을 먹을 때의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다섯 가지를 먹음으로 인하여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니가 남자의 음심을 알면서도 따라가 걸식하여 사람고기를 얻고 마늘을 얻고 맛있는 음식을 얻고 코끼리와 말의 고기를 얻는 것이니,
음심 있는 남자의 음식을 받으면 승잔이요,
사람고기를 먹으면 투란차요,
마늘을 먹으면 바야제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바라제제사니요,
코끼리와 말 등의 고기는 돌길라입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를 먹음으로 인하여 죄를 얻는다고 합니다.
‘일체 제3의 허물’이라 함은,
비구니의 죄를 따라 들추면서 처음 간하여 버리지 않으면 돌길라요,
한 차례의 갈마에 버리지 않으면 투란차요,
두 차례의 갈마에 버리지 않으면 바라이이니,
이것을 세 번 간하는 세 가지 죄라고 합니다.
‘죄가 되는 데에 다섯 가지 것이 있다’ 함은,
비구가 죄를 따라 들추면서 아룀을 하여 버리지 않으면 돌길라요,
한 차례 갈마를 하여 버리지 않으면 투란차요,
두 차례 갈마를 하여 버리지 않으면 바라이요,
만약 상가를 깨뜨리려 하여 세 번 간하여도 버리지 않으면 승잔이요,
나쁜 견해를 세 번 간하여도 버리지 않으면 바야제입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죄라고 합니다.
‘잘 죄를 대답하는 데에 다섯이 있다’ 함은, 비구ㆍ비구니ㆍ식사마나ㆍ사미ㆍ사미니의 다섯 대중이 갖추어 있으면서 세 번 간하여도 버리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다투는 일에도 다섯이 있다’ 함은 다섯 대중의 모두에게 네 가지의 다툼이 있습니다.
‘논하는 일에도 다섯이 있다’ 함은 다섯 대중의 다투는 일을 논하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로 법을 써서 없앤다’ 함은 다섯 대중들이 다섯 대중들의 다투는 일을 없애는 것입니다.
‘청정한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함은 다섯 대중이 죄를 범하고 참회하면 청정을 얻습니다.
‘세 처소 가운데서 선을 이룩한다’ 함은 상가의 처소ㆍ대중의 처소ㆍ속인의 세 처소에 다툼이 없으면 이것을 선이라 합니다.
‘몸의 업으로 밤에는 두 가지 죄’라 함은 비구니가 남자와 함께 밤에 집에 들어 올 적에 편 손의 안이면 바야제요, 편 손의 밖이면 돌길라입니다.
‘몸의 업으로 낮에는 두 가지 죄’라 함은 비구니가 대낮에 남자와 으슥한 곳에서 함께 있을 적에 편 손의 안이면 바야제요, 편 손의 밖이면 돌길라입니다.
‘볼 때에 한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가 일부러 여근을 보면 돌길라 죄를 얻습니다.
‘걸식에 한 가지 죄를 얻는다’ 함은 비구가 병이 없으면 자신을 위하여 걸식할 수 없으므로 돌길라를 얻습니다.
‘은혜를 보는 데에 여덟 가지가 있다’ 함은 구섬미 건도에서 이미 말하였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여 참회를 이룩한다’ 함은 다섯 대중이 죄를 참회(懺悔)할 적에 요는 사람으로 인하여 참회할 수 있습니다.
‘내쫓을 것은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함은 첫째는 덮고 감추는 것이요, 둘째는 아직 참회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나쁜 견해입니다.
‘선한 행의 마흔 세 가지’라 함은 사람들에게 배척되면 마흔 세 가지 법을 행하여 대중에 들어올 수 있으니, 이 법을 행하지 않으면 대중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거짓말에 다섯 가지가 있다’ 함은 바라이ㆍ승잔ㆍ투란차ㆍ바야제ㆍ돌길라입니다.
‘7일 법에 두 가지가 있다’ 함은 7일 약(藥)은 7일 법을 받아 지경 밖을 나가야 하니, 이것을 두 가지라 합니다.
‘열둘의 바라제제사니’라 함은 비구니의 여덟 가지의 바라제제사니와 비구의 네 가지 바라제제사니이니, 합하면 열둘입니다.
‘참회에도 네 가지가 있다’ 함은,
제바달다(提婆達多)가 사람을 보내서 부처님을 해친 것과 아니루타와 우바이 리차자(離車子)에게 공양한 것과,
대중 스님들이 그들 때문에 복발(覆鉢)갈마를 지은 것과,
사바가(沙婆伽) 비구이니, 이 네 가지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참회한 것입니다.
‘거짓말에 여덟 가지 관이 있다’ 함은 ‘마음을 일으켜 거짓말을 하려 한다. 입에서 꺼낸다. 거짓말이 이루어진다. 거짓말하기를 마친다. 이것이 거짓말인 줄 안다. 알고 있는 것을 숨기고 감춘다. 망령되이 딴 일을 말한다. 앞 사람의 삿된 마음을 알았다’는 이것을 관이라 합니다.
‘포살에도 여덟 가지가 있다’ 함은 여덟 가지 계율(戒律)입니다.
‘심부름꾼에도 여덟이 있다’ 함은 조달(調達)은 그릇된 법으로 상가를 깨뜨리려 하므로 상가는 여덟 가지 덕이 갖추어진 사람을 보내어 말하게 하였습니다. 조달의 한 일은 부처님, 법, 상가의 일이 아니었으니, 이것이 조달의 한 일입니다.
‘외도에 여덟 가지 법이 있다’ 함은 의도가 출가하기를 바라면 파리바사를 행하는 데, 여덟 가지 법이라 함은 다섯 가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지 않고, 부처님과 법과 상가를 찬탄함을 듣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말로 구족계를 받는다’ 함은 비구니의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와 비구의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입니다.
‘공경을 일으킨 것에도 여덟이 있다’ 함은 비구니의 8경법(敬法)입니다.
‘자리에 참여하는 것도 여덟이 있다’ 함은 대중이 모일 때는 상좌와 여덟 사람이 차례로 앉고, 나머지 분들은 따라 앉습니다.
‘여덟 가지 법으로 비구니를 가르치고 훈계한다’ 함은 비구는 여덟 가지의 덕이 있어야 비구니를 가르치고 훈계할 만합니다.
‘열 사람에게 예배하지 말아야 한다’ 함은 비구니ㆍ식사마나니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ㆍ계율을 범한 사람ㆍ잠자는 사람ㆍ음식 먹는 사람ㆍ대소변을 하거나 이쑤시개로 쑤시는 사람이니, 열 사람에게는 예배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앞과 같으며, 열 가지의 사람에게는 합장을 할 수도 없습니다.
‘열 가지 돌길라가 있다’ 함은 만약 위의 열 가지 종류의 사람에게 예배나 합장을 하면 돌길라가 됩니다.
‘옷을 사용함에도 열이 있다’ 함은 열 가지 옷은 입을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열두 가지 불선(不善)을 짓는다’ 함은,
아룀[白]이 착하지 않은 것인데, 법답지 않게 따로 모인 무리[非法別衆]와 법답지 않은 화합된 무리[非法和合衆]와 법답게 따로 모인 무리[法別衆]에게서 아뢰고 갈마하는 가운데에 네 가지의 그릇된 법이 있고,
아뢰고 한 차례의 갈마하는 가운데에 네 가지의 그릇된 법이 있고,
아뢰고 세 차례의 갈마하는 가운데에 네 가지의 그릇된 법이 있으니,
3ㆍ4 합하여 열두 가지의 그릇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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