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도론 제12권
12. 분별제품 ②
[두려워하는 지혜를 일으키게 하는 것]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현재 소멸을 관하며, 소멸을 관함으로써 두려움을 이룬다.
음(陰)의 인(因) 역시 두려워하며, 음의 생(生)도 두려워하고,
3유(有)ㆍ5취(趣)ㆍ7식주(識住)ㆍ9중생거(衆生居)에서도 두려움을 이룬다.
그것은 악인이 칼을 쥐고 있어 가히 두려운 바와 같고, 독사와 같으며, 불더미와 같다.
이와 같이 소멸을 관함으로써 두려움을 이룬다.
음의 인도 두렵고, 음의 생도 두려우며,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도 무상(無常)으로써 현재 작의하여 상(想)을 두려워하게 하며,
안온으로써 무상(無想)을 일으키게 한다.
고(苦)로써 현재 작의하여 생(生)에 대한 두려움을 이루며,
안온으로써 무생(無生)을 일으키게 한다.
무아(無我)로써 현재 작의하여 상(相)과 생(生)에 대한 두려움을 이루며,
안온으로써 무상(無相)과 무생(無生)을 일으키게 한다.
과환(過患)을 관하며, 염리(厭離)를 관하며, 상사인(相似忍)을 부드럽게 따른다.
이것이 그 총어(總語)이다.
<두려워하는 지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마친다.>
[해탈을 즐기는 지혜]
그 좌선인이 두려움[怖]으로써 현재 수행하여 지혜를 일으키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樂解脫智]가 일어난다.
그 음의 상(相)을 두려워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나며,
음의 생(生)을 두려워해도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를 두려워해도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마치 불길에 포위된 새가 그로부터의 해탈을 즐기는 것과 같고,
도적에 포위된 사람이 그로부터의 해탈을 즐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좌선인이 음의 인(因), 음의 생(生),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를 두려워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무상(無常)으로써 현재에서 인에 대한 두려움을 작의하며,
고(苦)로써 현재에서 생에 대한 두려움 작의하며,
무아로써 현재에서 인과 생에 대한 두려움을 작의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범부인과 학인은 해탈을 즐기는 지혜에서 두 종류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혹 환희를 관하며, 여기에서 현재 관하며, 여기에서 현재 환희를 관하는데 통달하는 것을 이룬다.
마음이 우뇌(憂惱)를 이루며, 수행의 장애를 이루며, 난견사유(難見思惟)에 통달하는 것을 이루며, 행사(行捨) 중에 상사인(相似忍)을 따른다.
이것이 총어언(總語言)이다.
<해탈을 즐기는 지혜를 마친다.>
[해탈문상사지]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현재 해탈을 즐기는 지혜를 수행하여 일체 모든 행으로부터 해탈니원(解脫泥洹)의 모든 행을 즐긴다. 오직 일상(一相)을 지어 일으키고자 하면 해탈문상사지(解脫門相似智)가 일어난다.
3행으로 상사지(相似智)를 얻고, 3행으로 정취(正聚)를 초월한다. 5음을 무상으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영원한[常] 니원이다”고 이와 같이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5음을 고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즐거운[樂] 니원이다”고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5음을 무아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제일의(第一義)인 니원이다”고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문] 무엇이 지혜로 현재 정취를 초월하는 것인가?
무엇이 지혜로 이미 정취를 초월한 것인가?
[답] 성제지(性除智)로써 현재 정취를 초월하며, 도지(道智)로써 이미 정취를 초월했다.
[문] 상사지(相似智)란 무슨 뜻인가?
[답]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정도분은 그것과 서로 비슷함으로써 이것을 상사지의 총어언(總語言)이라 한다. 원한이 없고 이익을 보는 상사인(相似忍), 이것이 바로 상사지의 총어언이다.
<상사지를 마친다.>
[성제지]
상사지는 간단없이 차례대로 일체 모든 행의 상으로부터 일어나며, 니원사(泥洹事)를 지어 성제지(性除智)를 일으킨다.
[문] 무슨 뜻에서 성제(性除)라 하는가?
[답] 범부법(凡夫法)을 제외하는 것을 성제라 하고, 비범부법이 제외되는 것 또한 성제라 한다. 성(性)이란 곧 니원이다.
또 종자를 니원에 심는 것을 성제라 한다.
아비담에서 “생(生)을 없애는 것을 성제라 하며, 무생(無生)을 뛰어넘는 것도 성제라 한다.
또 생(生)과 인(因)을 없애는 것을 성제라 하고,
무생(無生)ㆍ무상(無相)을 뛰어넘는 것을 성제라 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니원에서 이것이 최초의 길잡이이며, 밖으로부터 전혜(轉慧)를 일으킨다. 이것이 성제의 총어언이다.
<성제지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