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법인 스님, 삶의 기본을 잡아야 관계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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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남원 실상사 법인 스님
기자 조현
수정 2022-06-26 21:19
등록 2022-01-19 20:44
지난해부터 남원 실상사와 지리산에 머물며 천일기도를 하고 있는 법인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기본 축이 없이 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한세월 보내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자기 삶을 제어할 기본 축은 나무 둥치와 같다.”
전북 남원 실상사의 한주인 법인 스님이 기본을 잡기 위해 나섰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사회의 기본을 세우는 데 기여했던 그는 흐트러진 삶을 추슬려야겠다며 지난해부터 실상사와 지리산에 머물며 천일기도를 시작했고, 최근 <기본을 다시 잡아야겠다>(디플롯 펴냄)를 냈다.
지난 13일 실상사 경내의 처소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의 방에는 한쪽 벽면을 채운 인문학 책들과 컴퓨터와 소박한 다구가 전부였다.
출가 이후 ‘열쇠로 방을 잠그지 않는다’, ‘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그의 방에서 훔쳐갈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물건을 살 때는 반드시 다음 세 가지를 먼저 점검한다니 그럴 만하다.
‘반드시 필요한가. 굳이 필요는 없는데 편리해서 사려는 것인가. 필요하지는 않는데 새롭고 좋아서 사려는 것인가.’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이사장
고등부 인문학 담당 철학 선생님도
‘중은 낮잠 자더라도 산중에 있어야’
법정 스님 말씀 따라 ‘3년 기도’ 시작
수필집 ‘기본을 다시 잡아야겠다’ 내
“반려견도 소유물 아닌 동행자 삼아”
디플롯 제공
법인 스님은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고등부 과정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철학 선생님이자 학교 이사장이다. 과거엔 조계종단의 승려 교육을 담당했으니 주로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3 때 출가해 47년이란 법랍이 부끄러울 만큼 (나 자신이) 부족하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부산하게 살았다.
‘중은 낮잠을 자더라도 산중에서 3년은 푹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지리산을 벗어나지 말고 진중하게 철 좀 들자는 생각으로 3년 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실상사작은학교 철학 과목 교재로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란 부제가 붙은 <강의>를 택했다.
어느날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이 책의 어느 문장이 가장 사로잡더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자신의 생각과 같았다.
‘사랑하지 않고 안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랑하고서야 알게 된다’는 문장이었다.
머리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가슴에 사랑이 없다면 그 지식은 상대를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으니, 기본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이심전심이었다.
그래서 실상사작은학교에서는 ‘자치살림’이란 과목을 두어 논밭에서 직접 노동을 해 땀을 흘리며 몸과 가슴을 깨우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도록 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일주일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일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게 하는 것도 가슴을 깨우는 방법이다.
“한 학생이 소감 발표 시간에
‘저 일에 중독된 것 같아요. 논밭에서 일하는 게 힘은 드는데 묘한 쾌감이 생겨요’라고 말했다.
저 나이에 벌써? 놀랍고 반가웠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설악산 백담사에서 3개월간 스스로 방에 갇혀 지내며 ‘무문관 수행’을 한 적이 있는 법인 스님은 학생들게도 5박6일 수행을 제안했다. 실상사 자매사찰로 더 깊은 산골에 있는 귀정사로 가서 스마트폰 없이 지내보자는 것이었다.
“요즘은 ‘부모님이 낳으시고, 스마트폰이 길러준다’고 할 만큼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산다는 시대다.
그런데 의외로 학생들이 스마트폰 없이, 되도록 말하지 않고 그저 걷고 사색하고, 절을 하고, 울력하고 지낸 뒤, ‘온전히 나와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학생들도 금단증상 없이 ‘스마트폰 제로’ 시간을 잘 보내자, 실상사 대중들도 이어 실행했고, 올해는 학부모들도 그런 수행을 하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소비에 휘둘리는 습관을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인 스님은 “그래서 철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자신의 말이라고 해서 그냥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너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해서 이치에 타당할 때만 믿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힘센 사람이나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무비판적으로 동조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새롭게 보는 눈이고, 새롭게 보는 힘이다.”
스님은 남이 장에 간다고 ‘얼싸덜싸’ 따라나서지 않는 것에서 기본은 시작된다, 또 그것이 소인배에서 벗어나 군자가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신영복 선생님은 ‘소인배는 어느 한쪽만을 옳다고 주장하며, 무조건 자기를 따르라고 하고,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지만,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해 지배하지 않고 어울린다’고 했다.
철학으로 기본을 다진 현대적 군자는 주체적이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한다.”
이런 철학은 실상사작은학교 학생들에게만 권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사가 있는 산내면은 전국에서 귀촌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손꼽힌다. 그는 귀촌자들에게 아무리 옳다해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경계한다.
“진보도, 페미니즘도, 친환경 유기농법도 좋지만, 시골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가방끈 자랑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쓰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 일년 동안은 이웃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협조하며 살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이념과 도덕과 진리와 사랑과 공정도 남에게 강요하면 집착이 된다.
밧줄로 묶여야만 구속이 아니다. 보기 좋은 황금줄로 묶여도 구속이다.”
스님은 항상 무난하고 묵묵하고 여여하게 살아가는 한 지인의 ‘인간관계에 실패하지 않는 세 가지 신조’를 들려줬다.
‘첫째,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평생 자기 스스로 기쁨과 의미를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실행하는 것,
둘째 누구에게도 줄을 서지 않는 것,
셋째 나의 생각과 방식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는 것.’
“나의 다동이가 아니다. 나와 다동이다.”
스님은 5년째 동행하고 있는 골든리트리버 반려견 다동이와 논둑길로 향했다. 반려견도, 자녀도, 배우자도, 동료도, 부하직원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각자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기본을 갖춘 두 동행자의 산책이 시작됐다.
조현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