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장엄경론 제8권
17. 도섭품 ②[3]
[6바라밀의 서로 나타냄]
이미 육바라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육바라밀의 서로 나타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서로 섭수함과 차별과
법을 의지함과 또한 인이 되어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서로서로 이루어져서
일체의 종(種)을 분별한다.
[釋] 육바라밀이 서로 이루는 데 스스로 네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서로 섭수함이요, 둘째는 차별이요, 셋째는 법을 의지함이요, 넷째는 인이 되는 것이다.
‘서로 섭수한다’고 함은 두려움이 없는 보시에 섭수함이니
계를 가짐과 인욕을 하는 두 가지의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려움 없음을 주기 때문이다.
법의 보시는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법을 주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음과 법의 두 가지 보시는 정진의 한 바라밀을 섭수한다. 이 한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 가지의 보시를 행하기 때문이다.
[문] 계율을 가짐은 몇 가지의 바라밀을 섭수합니까?
[답] 섭선법(攝善法)의 계는 일체의 보시들을 다 섭수한다.
이와 같아서 인욕 바라밀 등이 서로 섭수하는 것의 그 응하는 대로 짓는 것과 같다.
차별이란 보시 등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곧 여섯 가지의 보시가 되니, 이른바 보시의 보시와 계율의 보시로부터 지혜의 보시에 이르기까지이다. 다른 이에게 계속하여 보시 등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법을 의지한다고 함은, 여러 경이 보시 등에 여러 뜻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며, 보시 등의 여러 뜻은 있는바 여러 경에서 나타내 보이면서 곳곳에서 서로 섭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인이 된다고 함은, 이른바 보시가 계율을 가지는 등의 인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산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능히 계율 등을 행하기 때문이요,
계율을 가짐이 또한 보시 등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비구가 계율을 받아 지닌다면 그는 능히 모든 존재하는 것을 받지 않고 버리기 때문이요,
계에 머무는 자는 능히 인욕 등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또는 섭선법의 계를 받는 것은 보시들을 위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아서 인욕 등이 서로 인이 되어서 그의 응함을 따라 짓는다.
[네 가지의 섭행]
이와 같이 육바라밀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네 가지의 섭행(攝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보시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리(同利)이다.
보시가 평등함과 그의 말과
건립(建立)과 또한 자행(自行)이다.
[釋] ‘네 가지의 섭행’이라 함은
첫째는 보시의 섭행이요, 둘째는 애어의 섭행이요, 셋째는 이행의 섭행이요, 넷째는 동리의 섭행이다.
‘보시가 평등하다’고 함은 곧 보시의 섭행이다.
‘그의 말’이라 함은 이른바 애어의 섭행이니 바라밀의 뜻을 설하기 때문이다.
‘건립’이라 함은 곧 이행의 섭행이니 중생들을 바라밀의 가운데 건립하기 때문이다.
‘자행(自行)’이라 함은 이른바 동리의 섭행이니 남을 건립하고서는 자기도 또한 이와 같이 행하기 때문이다.
[문] 무엇 때문에 이 네 가지의 섭행의 체를 말합니까?
[답] 여기서는 남을 섭수하는 여러 방편을 말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남을 섭수하는 네 가지의 방편은
이것이 곧 네 가지 섭행의 성품이다.
섭수함을 따라 또한 섭취(攝取)하니
바로 전(轉)함과 따라 전함이다.
[釋] ‘보시의 섭행’이라고 함은 따라 섭하는 방편이니, 재물의 보시로 말미암아 남의 몸을 따라 섭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섭취하는 방편이니,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의혹하던 자가 뜻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이행(利行)의 섭행’이라 함은 바로 전(轉)하는 방편이니, 이 행으로 말미암아 여러 착한 데로 전하기 때문이다.
‘동리(同利)의 섭행’이라 함은 따라 전하는 방편이니, 보살이 자기가 말한 것과 같이 행하여서 중생이 알고서는 먼저 착함을 행하지 않던 이가 또한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문] 네 가지 섭수행의 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그릇을 이루게 하고 믿게 하고
행하게 하고 또한 알게 한다.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일을 짓는 것은
순서대로 네 가지 섭행의 업이다.
[釋] 보시의 섭행은 능히 법에 있어서 그릇을 이루게 하니, 재물에서 수순하면 법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믿음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의 뜻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행의 섭행이라고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행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과 같이 의지하여 행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동리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자신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니, 그것은 행이 청정해짐으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요익을 얻게 된다. 이를 네 가지 섭수하는 업이라고 이른다.
[문] 세존께서 또한 두 가지의 섭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것을 이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네 가지의 체를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재물로 섭수하고 법으로 섭수함이다.
재물로 섭수함은 한 가지이고 법으로 섭수함은 세 가지이니
순서대로 네 가지 섭에 섭수한다.
[釋] 이 네 가지의 섭의 체를 세존께서 다른 곳에서는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재물로 섭수함과 법으로 섭수함이다.
이 두 가지의 섭으로써 네 가지의 섭을 섭수하였으니, 재물의 섭행은 처음의 한 가지 섭을 섭수하였고, 법의 섭행은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다.
[문] 무엇을 일러 뒤의 세 가지를 섭하였다고 합니까?
[답]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하는 것의 법이요,
둘째는 행하는 것의 법이요,
셋째는 청정한 것의 법이다.
그의 순서대로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하(下)와 중(中)과 상(上)의 차별은
이와 같이 네 가지 섭수하는 종류이다.
배로 이익이 없음과 배로 이익이 있음과
또한 순수한 것을 합쳐서 세 가지 이익이라 한다.
[釋] 네 가지 섭행의 종류의 차별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하와 중과 상이다. 여러 보살이 3승 사람들의 차별을 섭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아 순서대로 다시 세 가지의 이익이 있으니,
첫째는 배로 이익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배로 이익이 있는 것이요,
셋째는 순수하게 이익이 있는 것이다.
‘배로 이익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10해(解)와 10행(行)의 지위에 있는 보살을 섭한다.
배로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큰 지(地)에 들어간 보살을 섭수한다. 순수하게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8지(地) 이상의 보살을 섭수한다.
결정적으로 능히 중생들을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이 중생들을 섭수하고자 하면
이 네 가지의 방편을 의지해야 한다.
크게 이롭고 쉽게 이루며
찬양을 얻는 세 가지의 이익 때문이다.
[釋] 만일 모든 보살이 대중을 섭수하고자 하면 일체를 다 이 네 가지의 섭행을 의지해서 방편을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큰 이익이 성취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이 즐겁고 쉬운 방편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칭양(稱揚)하심을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네 가지의 섭이 삼세에 있어서
항상 중생들을 섭한다.
중생들을 성취하는 길은
다름이 아니고 오직 네 가지의 섭이다.
[釋] 이 네 가지의 섭은 삼세에 있어서 이미 섭수하였고 마땅히 섭수할 것이며 현재에 일체의 중생들을 섭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네 가지의 섭은 이것이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길이어서 다른 여러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 게송으로써 앞의 뜻을 총결함]
육바라밀과 네 가지의 섭행을 따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한 게송으로써 앞의 뜻을 총결(摠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집착하지 아니함과 적정과
능히 참음과 뜻이 용맹함과
움직이지 아니함과 모양을 벗어남과
또한 섭함으로 중생들을 섭한다.
[釋] 이 게송에서 위의 세 구절은 육바라밀의 뜻을 맺었으며, 아래의 한 구절은 네 가지 섭의 뜻을 맺었다. 게송의 뜻은 앞의 해석과 같다.
보살이 이 여섯 가지의 행으로써 이 네 가지의 섭을 행함은, 육바라밀의 성취로 자기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가지 섭의 성취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 순서대로 먼저 육바라밀을 말하고, 뒤에 네 가지의 섭을 말한 것이다.
「도섭품」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