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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6권
11.5. 빈녀연(貧女緣)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존자 가전연(迦旃緣)은 아반제국(阿槃提國)에 있었다.
그 때 그 나라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큰 부자로서 재물이 넉넉하였다.
그 집에는 한 여종이 있었는데 자그마한 허물이라도 있으면 장자는 매를 때리며 밤낮으로 부려먹었다. 그 여종의 옷은 몸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음식은 배를 채우지도 못했으며, 연로하도록 고생하였으므로 죽기를 생각했으나 그것도 이루지 못하였다.
한 번은 물병을 가지고 강에 나아가 물을 걷다가 큰 소리로 통곡하였다.
그 때 존자는 그 통곡 소리를 듣고 그 곳에 가서 그 인연을 물어 알고는 곧 그 노모(老母)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그렇게 가난하면 왜 그 가난을 팔지 않습니까?’
노모가 대답하였다.
‘누가 가난을 사겠습니까?’
가전연이 말하였다.
‘그 가난을 정말 팔 방법이 있습니다.’
노모가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가난을 팔 수 있다니 어떻게 해야 그 가난을 팔겠습니까?’
가전연이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팔려고 한다면 한결같이 내 말대로 하십시오.’
그리고는 우선 물병을 깨끗이 씻게 하였다. 다 씻고 나자 보시하라고 가르쳤다. 노모가 존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가난하고 궁핍하여 몸에 걸칠 옷도 없고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란 오직 이 병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우리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인데 장차 무엇으로 보시해야 하겠습니까?’
가전연은 곧 자기 발우를 그에게 주어 물을 떠달라고 했다.
물을 받고는 그를 위해 축원하고 다음에는 계를 주고 또 염불까지 가르쳤다.
그리고는 끝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여종이 곧 대답하였다.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방아 찧고 밥 지어 주고 맷돌질 하다가 그대로 그곳에서 잠들곤 합니다. 때로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잘 때도 있습니다.’
존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좋은 마음, 부지런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조심하여 그 집에서 일하다가 그 주인 집에서 모두 잠든 틈을 타서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집 안에 풀을 깔고 앉아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관하십시오.’
노모는 그가 시키는 대로 밤에 그 방안에 들어가서 앉았다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주인은 새벽이 되어 그 모습을 보고 성을내며 말하였다.
‘이 늙은 종은 항상 허락도 받지 않고 방을 드나들더니, 하필이면 갑자기 여기에서 죽었단 말인가?
곧 사람을 시켜 풀로 그의 자리를 매어 끌어다가 숲 속에 버리게 하였다.
이 노비는 천상에 태어나서 오백 명의 천자들을 권속으로 삼고 곧 천안(天眼)으로 옛날 몸이 천상에 태어나게 된 인연을 관찰하고, 조금 있다가 그 오백 명의 천자들을 데리고 향과 꽃을 싸가지고 싸늘한 숲 속으로 내려와서 향을 사르고 꽃을 뿌려 시체에 공양하고는 하늘 광명을 놓아 마을 숲을 비추었다.
대가(大家:주인)는 괴이한 현상을 보고 멀고 가까운 곳에 두루 알리고 그 숲으로 가서 천자들을 보고 말하였다.
‘이 늙은 여종은 이미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공양합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이 시체는 나의 옛 몸입니다.’
그리고 곧 천상에 태어나게 된 인연을 자세히 이야기한 뒤에 모두 가전연에게로 가서 예배하고 공양을 올렸다.
가전연의 인연 설법으로 오백 천자들은 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였다.
이미 그 과를 증득한 뒤에는 천상으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인연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또 『불설마하가섭도빈모경(佛說摩訶迦葉度貧母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그 때에 마하가섭은 혼자서 교화하러 다니다가 왕사성(王舍城)에 이르렀다. 항상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겨 중생에게 복을 주되 모든 권세 있는 부호들은 버려두고 가난한 집만 찾아 다니면서 걸식하였다.
그는 분위(分衛 :걸식)하려고 먼저 삼매(三昧)에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 내가 장차 복을 줄까?’
그리고는 곧 왕사대성(王舍大城)에 들어가 홀로 살고 있는 한 노파를 보았다.
그 노파는 매우 빈곤(貧困)하여 거리의 큰 쓰레기 더미 속 한쪽을 파서 암굴(巖窟)을 만들고 파리하니 병든 몸으로 늘 그 속에 누워 있었다. 고단하고 쓸쓸한 데다가 옷도 없고 밥도 없이 암굴에서 조그만 울타리의 나무 조각으로 그 몸뚱이를 가리고 있었다.
가섭은 삼매 속에서 이 사람이 전생에 복을 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을을 알고 또 그 노모가 죽을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제도하지 않으면 영원히 복당(福堂)을 잃겠구나.’
그 때 그 노모는 몹시 주리고 지쳐 있었다.
어떤 장자의 하인[靑衣]이 쌀뜨물을 내다 버렸는데,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말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노모가 그를 따라가면서 구걸하자, 그 하인은 깨진 기와 조각에 물을 담아 그 곁에 놓아주었다.
그 때 가섭이 그곳에 가서 축원하고 그녀에게 구걸하였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나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노모는 곧 게송을 설하였다.
온몸이 질병에 걸려 있고
외롭고 곤궁함 어찌 말로 다하랴.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가에
옷도 밥도 이 몸 하나 지탱할 게 없다네.
세상에 자비롭지 못한 사람도
오히려 불쌍하고 가엾게 보는데
어찌하여 자애(慈哀)롭다 하면서
이렇게 죽어가도 알지 못할까?
넓은 세상에 혹독한 괴로움이
나보다 더한 사람 어디 있을까?
바라건대 부디 나를 가엾게 여기소서.
실로 당신에게 아끼는 것 아니라네.
마하가섭이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삼계에 높으신 어른
우리도 모두 그 안에 있다네.
당신의 주리고 가난함 털어주기 위하여
그 때문에 가난한 그대에게 구걸한다네.
만약 당신의 입고 먹을 것 털어
조금이나마 나에게 보시한다면
길고 긴 어둠 속에서 해탈을 얻고
다음 생엔 권세 있고 부귀하리라.
그 때 노모는 그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전일(前日)에 갖다 놓은 냄새 나는 쌀뜨물이 있지만 저 사람에게 보시한다해도 마실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넌지시 가섭에게 물었다.
‘저를 불쌍하게 여겨 이것을 받아주시겠습니까?’
가섭이 대답하였다.
‘아주 좋습니다.’
노모는 곧 그 뜨물을 가지고 굴 속에서 기어나오려고 하다가 형체가 알몸이었으므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구부리고 울타리 위로 그릇을 내밀어 주었다.
가섭은 그것을 받아 존귀한 입으로 축원하여 그녀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고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이것을 싸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서 마시면 저 노모는 믿지 않고 내가 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곧 노모 앞에서 다 들이마시고 빈 발우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노모는 확실하게 믿었다.
가섭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신족(神足)을 나타내어 저 노모로 하여금 반드시 큰 안락을 획득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는 곧 공중에 올라가서 신통변화를 나타내었다.
그 때 노모는 이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일심으로 꿇어앉아 가섭을 바라보았다.
가섭이 말하였다.
‘노모께서 지금 마음 속으로 소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모는 곧 가섭에게 말하였다.
제 소원은 조그만 복을 지었지만 천상에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에 가섭은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노모는 며칠 뒤에 목숨을 마치고 곧 도리천상에 태어나니, 그 위덕(威德)이 당당하여 천지를 진동시켰고 광명의 치솟음은 비유하면 마치 일곱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솟아오른 것처럼 천궁을 환하게 비추었다.
제석이 놀라 말하였다.
‘어떤 사람의 복덕이기에 그 감동이 나보다 뛰어난가?’
그리고 곧 천안(天眼)으로 이 천녀(天女)를 관하여 그의 복덕이 그렇게 만들었을을 알았고 곧 천녀의 전생에 있었던 일까지 다 알게 되었다.
그 때 천녀는 스스로 생각에 잠겼다.
‘이 복덕의 과보는 내가 전생에 가섭에게 공양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가령 이 천상의 온갖 보배를 갖가지로 가져다가 백천 번 가섭에게 보시한다 해도 오히려 그 순간의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곧 시녀(侍女)들을 데리고 하늘향과 꽃을 가지고 홀연히 가서 허공에서 가섭에게 뿌리고 난 뒤에 가섭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온몸을 땅에 던져 예를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나 머문 채로 합장하고 찬탄하였다.
대천(大千)세계에서
부처님께서 특별히 존귀하시고
다음에는 가섭이 있어
죄의 문을 잘 닫으셨네.
그 옛날 염부제(閻浮提)의
쓰레기 더미 굴 앞에서
가난한 노모를 위하여
진리의 말씀[眞言]을 설하셨네.
그때 노모는기뻐하면서
쌀뜨물을 보시하였는데
겨자만한 보시로써
산만한 과보를 얻었네.
스스로 천녀(天女)가 되어
저절로 봉함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이곳에 내려와서
복 밭에 귀명(歸命)한다네.
천녀는 그 게송을 설하고 나서 모두 천상으로 돌아갔다.
제석이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저 여자는 쌀뜨물을 보시하여 마침내 이런 복을 이룩했다.
가섭의 큰 자비는 다만 복이 하열한 집만을 골라 걸식하고 큰 성바지의 집엔 가지 않는다. 나는 좋은 꾀를 써야겠다.〉
그리고는 곧 천후(天后)와 함께 온갖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가 조그만 병에 담아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길가에 작고 허름한 집을 짓고 흡사 노인처럼 변신하여 신체는 수척하고 허리까지 굽은 모습으로 걸었다.
그때 이 늙은 부부 두 사람은 함께 자리를 짰는데 가난하고 궁핍한 모습으로 저축한 음식도 없었다. 가섭이 훗날 분위(分衛)를 행하다가 이 가난한 사람을 보고 거기에 가서 밥을 빌었다.
노인이 말하였다.
‘너무도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가섭은 축원하면서 잠시 머문 채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말하였다.
‘우리 부부는 매우 늙어서 겨우 자리나 짜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시주할 경황이 없습니다. 다만 밥이 조금 있는데 마침 먹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어지신 분께서는 자비한 덕으로써 오직 가난한 집만 다니면서 걸식하시어 그 때문에 복을 받게 하신다 하니 지금은 비록 곤궁하지만 이것을 나누어 현자에게 보시할까 합니다. 진실로 소문대로라면 우리들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러나 이 하늘의 음식 향기는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서
만약 미리 병뚜껑을 열면 향기가 진동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섭이 그 사실을 알고 전혀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곧 이렇게 말하였다.
‘도인이시여, 보살것없는 음식이 그나마 많지도 않으니 발우를 가지고 와서 받아가십시오.’
가섭은 곧 발우로 그 음식을 받은 뒤에 시주한 집을 위하여 축원하였다.
그런데 그 향기가 왕사대성과 그 국경에까지 널리 퍼지자 가섭은 곧 그 향기를 의심하였다.
노인부부는 제석의 몸인지라 빠르게 공중으로 날아 올라 손가락을 퉁기며 기뻐하였다.
가섭이 생각하다가 제석이 노인으로 변화하여 복을 지으려 했음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이제 이미 받은 것이라서 돌려 줄 수도 없다.’
그리고는 가섭이 찬탄하였다.
‘제석은 온갖 복에 만족하지 않고 이렇게 누추한 일을 참아내면서까지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 복을 심었으니, 틀림없이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제석과 그 왕후는 곱절이나 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때 천상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제석을 맞이하였고 제석은 궁에 이르러 갑절이나 더 기뻐하였다.”
게송을 말한다.
뜬구름 같은 인생 남북(南北) 어디에도 끝내 돌아갈 곳 없으니
아들 손님 동서(東西) 중 어느 곳에 의지할꼬.
원헌(原憲:공자 제자)의 보살것없는 음식[糟糠]은 그래도 바랄 수 았으나
전씨(田氏)의 가름진 음식[膏腴]이야 어찌 감히 바랄 수 있으리.
초목 무성한 거칠어진 뜰에 거마(車馬)조차 끊어지고
적적(寂寂)한 쑥대 대문 굳게도 닫혀 있다.
과거 세상에 빛을 훔치고 남은 빛 아꼈더니
오늘날 길을 잃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