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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멋쟁이 마실의 글들과 사진들을 보면서 변변치 않치만 늙은이들이 썻던 여행기라도 옮깁니다.
가기전 부터 서로들 약속이 일주일간의 기간을 정해 각자 쓰기로 했던바, 내용이야 어떻튼 지난 이야기 쓴것이니
말이 돠든 말든 많은 이해 갖고 봐주시면 그것 그대로 고맙게 생각 하겠습니다.
6월 28일자 천중이 작성,,,
티벳 여행기
이번여행의 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가. 칭창열차로 서북경역에서 라사로 이동
나. 라사의 포탈라 궁 방문
다. 남쵸호수 방문
라. 겔룩파사원등 티벳 사원등 방문
마. 카일라이스 산(일명: 수미산) 순례길 방문; 1박 2일 코스로 하이라이트
라. 구게 왕국 방문
마.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방문
(여행기는 7일씩 끊어서 나, 상건, 학기가 쓰기로 했음.)
오래 전부터 죽기 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놓은 곳 중에 하나가 칭창열차를 타고 티벳을 가서 히말라야 산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티벳이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비자가 나오지 않아 올해도 가기 어렵다고 했었다. 다행이 한시적으로 개방을 해 비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고 이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21일이 너무 길어 짧을 일정을 제시하는 여행팀을 알아보다가 그래도 체계가 잡혀있고 과거 여러 번 여행을 진행한바 있는 곳을 택하였다.
여행에 앞서 한차례 설명회도 가졌고, 같이 동행할 팀원들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를 탐색할 기회도 갖었었다. 다들 나이도 들었고 몇몇은 많은 해외 오지 여행 경력을 갖은 듯 한 인상을 받았다. 이러저러한 걱정이 되어서 물어 보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실 가보지 않고는 현실을 짐작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상건이가 산악동우회를 접촉하여 비자며 관련 여행정보를 알려줬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그와중에 같이 가기로 한 강이가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되었고 대신하여 학기의 대학 동창이 참여하겠다고 하여 같이 일행이 되었다.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을 없었으나 이번에는 오지를 여행하게 되어 식사도 10여 차례는 직접 해결하여야 하고, 티벳에서는 귀국할 때 까지 이틀의 자유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 여행사를 따라가는 것과는 다름 점이다. 또한 잠자리가 불편하므로 침낭을 각자 준비해 오라고 하는 걸 보니 험난한 일정이 되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도 감지 되었다.
이러저러한 걱정을 하면서 단체가 만나기로 한 10시 보다 1시간 일찍 김포공항에서 도착했더니 벌써 상건, 학기, 병직등 모두 나왔으며 특히 강이가 우리를 환송하러 일부러 바쁜데도 나와 주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인근 김포 공항내 슈퍼마켓에서 김치, 커피, 간식거리등을 공동 구입하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출발준비를 하였다.
김포공항을 떠나 약 1시간 30분 만에 북경에 무사히 도착했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공항 주변 바람이 심하게 불어 비행기는 하강하기 마지막까지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으나 착륙에는 별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숙소는 공항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렸으나 여전히 대로는 차량으로 꽉차 가다 말다하며 숙소가 있는 북경서역에 도착하였으나 이곳은 숙소가 있는 북경서역의 반대편이라 큰 짐들은 몇 대의 삼발 자전거로 이동시키고 우리들은 걸어서 숙소에 갔다.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늦게 천안문과 근처 야시장으로 갔다. 역에서 긴 육교를 건너 작은 길로 한참 가다가 북경오리 집에서 석식을 했다. 오리요기는 잘하는 집이라 그런지 맛도 좋았고, 가져간 코냑을 곁 드렸더니 괜찮았다. 다른 일행들은 긴장이 돼서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술도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골목길을 나와 전쟁기념관역에서 지하철로 천안문에 도달했다. 어느 덧 주위는 어두워졌고, 러시아 대통령이 방문했기에 상당한 수의 경찰들이 삼엄하게 천안문 주위에 포진돼 있었다. 사진 몇장 찍고 근처의 야시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일인데도 거리는 화려한 조명을 한 백화점, 상점들이 즐비했고 사람들도 생각보다는 많았다.
우리는 천안문에서 몇 부록 떨어진 야시장에 도달했다. 오래 전에 본 야시장은 무질서 하고 근처가 지저분하였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잘 정비 돼 있었다. 손님을 평일이고 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이방인을 유인하기에는 괜찮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더운 날씨로 야자수를 몇 개사 나눠먹고 목을 축였다.
모든 대원이 다시 천안문근처의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 로칼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중간에 주름막을 한 긴 버스였으나 중간부분에서 심한 잡음이 났고, 많은 승객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다음날 열차는 늦은 저녁에 출발하므로 오전은 쉬고 다시 시내 유명 짝퉁시장(Silk Street & Peal Market)으로 안내되었다. 이곳은 오래전 미국 부시 대통령이 왔을 때 방문했다고 했다. 물건들이 많았고 없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샌들과 방풍모자, T 샤스등을 저렴하게 구입하였다. 품질도 그만하면 한 1-2 년은 잘 쓸 것 같았다. 한 예로 나는 미제 샌들을 샀는데 처음에는 한 컬레에 200위안(우리돈으로 4만원정도)를 불러 나갔더니, 잠시 후 반 값인 120위안만 내면 된다고 해 구입했고 다른 친구들도 참여했다. 원래 그런지, 불경기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가격이 없는 시장이었다.
지하철로 숙소로 돌아 왔고, 칭창열차 출발시간인 20시 08분 보다 2시간 일찍 서둘러 북경서역에 도착했다. 마치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이 여권검사를 철저히 하고 역사에 출입시켰다. 역사 내에서의 인상은 마치 큰 우주선안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이 곳 역은 중국대륙 서부로 가는 기점이라 많은 중국서부인들, 몽고인, 티벳인등으로 보였다. 우리와 조금 다른 듯했다. 모두 검게 그을린듯한 얼굴에 이마에는 깊은 골이 파인 것으로 봐 그곳의 생활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승객마다 큰 검정백 하나와 흰자루등 북경에서 산 자식들과 가족들에 줄 선물이 아닌가했다. 대합실은 몇 백m가 넘는 긴 Main 통로에 좌우로 큰 Waiting 룸이 있었다. 매 룸의 크기는 사방 50m는 되 보였다. 그 안마다 수백명의 승객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춘절이나 년말에는 말도 못하게 많은 승객이 아우성을 쳐왔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 팀은 일찍 온 덕으로 개찰구 맨 앞자리에 자리 잡았다. 짐을 모아두고 둘레를 에워싸고 시간을 죽였다. 들고 온 망고와 드래곤 후르트등도 먹고, 해바라기씨를 깨서 먹기도 하고, 아이스 크림을 사먹기도 하며 기차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안내방송이 있었고, 바로 개찰을 하였다. 그런데 개찰에서 기차 발차까지 시간을 보니 겨우 15분 정도의 여유를 두었다. 우리는 짐은 따로 보냈기에 짐을 찾아 기차에 싣기까지에는 너 나가 없이 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않되었다. 간신히 짐을 싣고 기차에 타니 바로 기차가 출발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탄 기차는 4호차로 앞에는 식당차와 1등석이 있었고 몇칸 뒤로는 일반 좌석의 3등칸로 구성돼 있었다. 2등실은 선반식 침대로 방 마다 문은 없었고 양쪽에 3단 침대, 가운데 좁은 통로로 돼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멀리 언덕에 대규모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군데 군데 원유채취기(일병 메뚜기)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중국서부는 별 볼일 없는 황량한 땅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자원의 보고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희토류 광석은 말 할 것도 없이..., 기차는 갈수록 험하고 높은 고원지대를 지나가고, 창밖의 산은 나무 한 그루 없었고, 때로는 만년설이 덮인 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숨이 가빠오면 기차가 심하게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부는 객실 안쪽 벽에 있는 산소공급기를 통해 산소를 흡입하며 고행의 기차열차 열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5,200여m 고원을 지났다. 아마도 무척이나 호흡이 곤란했을 것이었을 것이다.
열차에서 3일 째, 고원지대를 거쳐 오후 4시에 라사역에 도착했다. 역사는 지역사정에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었다. 내려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여기저기서 군인들이 저지하고 있었다. 어떤 군사지역에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역사를 빠져나가니 이곳에도 상당한 군인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지역주민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중국계 한국인은 자기 팀이 법을 어기면 나중에 관광안내원 자격을 박탈한다고 사정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병직 딸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몇일 전 라사에서 승려가 분신자살을 했다며 괜찮냐는 내용인 것 같았다. 조식을 한 후 시내에 있는 로블랑카 여름 궁전을 구경했다. 이곳은 10대 달라이 라마가 휴식을 취했다는 곳으로 정원에 나무도 많았고, 크고 작은 연못이 몇 개나 있어 안온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인지 우리 골프카 같은 차를 운행하여 편안한 구경을 하였다. 이 곳을 떠나 인근 티베트 박물관을 구경했다. 이곳은 1999년에 개관되었으며 약 16,000평 규모의 큰 건물이었다. 티벳 고유의 풍물과 중국역사가 어울려져 전시되고 있었고 생각보다는 청나라 때의 유물들이 상당 수 전시돼 있었고, 내 생각으로는 티벳과 중국을 조화시키려 고심한 흔적이 여러 군데 보였다.
다음날 오전을 쉬고 오후에 기다리던 그 유명한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포탈라궁은 잘 알다시피 14대 달라이라마가 거주했던 곳이며 라사의 상징물로 손색이 없이 잘 지여졌고, 잘 관리되고 있었으며,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었다. 서기 7세기부터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최초 통일 왕국을 세운 ‘송 첸감포’왕이 문성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은 17세기 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재건된 것으로 약 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망명하기 까지 약 1,300년 동안 9명의 티벳트 왕과 10명의 달라이 라마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티벳 전통 건축으로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으로 1994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 바 있다.
입구에서는 철저한 X-레이 검사, 물을 제외한 액체는 검사대에 맏기도록 했다. 긴 줄을 서고 높은 성을 올라가려니 여간 힘드는 게 아니었다. 계단도 가급적 각도를 줄이려 지그 재그로 걷고, 하고 싶을 말을 참으며 건물내 들어갔다, 큰 건물이 가장 높은 건물은 붉은 색, 살색, 하얀 색을 띄고 있었으며 선명한 하늘색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건물 내는 방 마다 큰 불상과 울긋불긋한 등불과 색상으로 잘 단장되어 있었고 야크 기름으로 만든 큰 그릇에 수십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고 향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어떤 불상은 몇 백그램의 순금으로 장식되었고, 이것을 자랑 하는 듯 했다. 안내인을 이 것을 보고 옛날 이 지역에서 많은 금이 채굴되었다고 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옛날 어떻게 다량의 석재와 큰 나무를 동원했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주변 수십km내의 산에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후 라사시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죠캉 사원을 구경했다. 7세기 중엽에 창건된 티베트 최초의 목조건물로 약 1,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죠캉 사원 앞은 길고 넓을 광장으로 되었으면 사원을 에워싼 지역은 티벳 현지인의 큰 시장이 있었다. 여기는 라사시 어느 곳보다 삼엄했다. 승려들이 자주 분신자살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 간다.
군인들이 그 더운데도 불구하고 완전군장하고 몇 명씩 순찰을 하고 소방차와 간이 소방기구들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사원 정문에 서니 여러 명의 티벳 현지인이 정문을 향해 전신으로 기도를 하는 ‘오체 투지’를 하고 있었으며 순례객 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드나들어 바닥의 돌이 반들반들 닳아있었다. 죠캉사원 내에는 약 1백 여개의 법륜 통이 있었고, 이 법륜 통 안에는 불경이 인쇄된 종이가 들어 있다고 했다. 이것을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고 믿는 현지인 들이 쉼없이 돌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죠킹사원을 빠져나와 너무나 목이 타 일행들은 아이스 커피집을 찾았다. 안내인이 우리를 죠캉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코르(팔각)길에 있는 한 작은 호텔 커피숍으로 인도했다. 이곳은 현지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인 듯 했으며 인터넷도 느렸지만 잠시 볼 수가 있었다. 이곳을 나와 바코르라는 작은 시장 길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우리는 그저 잡다한 시장이라고 생각했으나 죠캉사원을 방문한 티벳인들에게는 순례길 이라고 했다. 그것도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고 했다. 인근 노점상은 돌 목걸이 불교용품, 모자, 칼 등등을 팔고 있었고 이들 물건들은 인도와 네팔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했다.
6월 11일 화요일 아침 고원에 위치한 성호인 남쵸호수를 구경했다. 이곳은 나사에서 왕복 300여km나 되는 먼 곳에 있었다. 해발 4,718m에 위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이다. 동서로 70km이상, 남북으로 30km이나 되고 최대수심도 33m나 된 다고 했다. 물은 약간 소금기가 있다고 했고, 년말이 되면 많은 순래객들이 호수를 찾는다고 했다.
아침일찍 호텔을 떠나 남쵸호수로 향했다. 가는 길은 우리가 타고온 칭창 열차가 지나 온 길 옆을 한참 지나고 있었다. 자동차 길에서 칭창열차 철도시설을 보니 엄청난 인프라 시설에 중국 정부가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부어 최첨단의 각종 시설을 하며 수많은 작업인부들이 희생하였을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가 있었다. 만년 동토지역의 침하방지시설,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배려, 수많은 크고 작은 턴넬등등... 하여간 중국인들이 이 곳 티벳을 쉽게 내 놓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남쵸호수를 가려면 5,170m의 산악능선을 넘어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큰 산을 신음소리를 내며 오르던 버스가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잠시 쉬며 멀리 아래 보이는 남쵸호수를 감상했다. 처음으로 5천m고도에 서니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웠고, 몇 발짝 띠고나서 긴 호흡을 해야 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약간은 있으나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세 등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 곳 정상에서 몇십분 지나 우리가 탄 버스는 호수 앞에 정차를 했다. 호수에서는 고산증세를 시험하는 것으로 3km 정도의 짧은 호수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상건이, 학기는 우리와 함께 돌았고 일부는 다른 코스인 호수가 작은 언덕을 돌았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호수가에는 야크 등이 있어 이것을 타고 사진을 찍으면 돈을 받는 것이었다. 어린애들의 구걸행위에 가져온 사탕도 주면서 돌려보냈다. 한 바퀴 호수를 돌고 텐트에 들어가 야크유도 먹고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라사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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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기간 내내 서로 격려하며 배려해준 친구들께 감사드리고, 같이 참여치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후는 상건이, 학기가 나누어 쓰기로 했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중.
7월2일 상건 작성:...
북경에서 라사로 들어가는 칭창열차에서 걸린 감기가 티벳여행 내내 콧물과 기침으로 괴롭히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설사까지 겹쳐 6kg의 체중을 빼고만다. 그동안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 주말에 펜을 들었다. 내가 티벳트레킹 後記를 맡은 부분은 여행 2주차 ( 6/12-18일)로 라싸 일정을 마치고 시가체, 탱그리, 사가를 거친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수 있는 2박3일의 카일라스 트레킹을 마친 기간이다.
라싸에서 12일 우리일행은 스타랙스 차량을 타고 다르첸 까지 이동하였다. 聖山 '카일라스' 입구
인 다르첸 까지는 1,200km에 3박4일이 걸린다. 장즈를 지나 제2의 도시인 시가체를 향해 6대의
승합차량이 줄을 지으며 티벳고원을 가를때는 마치 TV 다큐를 찍는 기분이었다. 차창에 비친 고
원지대의 황량한 모습은 끝간데 없이 이어진다.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기괴한 산봉우리들, 삭막
하기 그지없는 벌판과 어디서나 볼수있는 오색의 타르쵸, 파란하늘과 거친바람, 그리고 들판에 방
목된 양과 야크떼의 한가한 모습, 등등의 수식어들이 하늘과 맞닿은 곳이라는 티벳의 풍광을 묘사
한다.
티벳 트레킹의 주요일정중 하나로 13일 예정되어 있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북부)’ 는 최근 티
벳의 소요사태가 확산되면서 외국인의 입산이 전면 금지됨에 따라 일정이 취소되어 크게 실망하였
다. 그래도 타쉬종에서 팅그리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멀리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보여
도 갈수 없음에 아쉬움을 더했고, 고원의 평원지대위에 솓구쳐 오른 시샤팡마 (8.027m)를 비롯한
히말라야 雪山들이 병풍을 쳐놓으며 파노라마 같이 차창을 스친다. 팅그리와 사가 마을에서 각각
밤을 지내고 西進은 계속되어 황량한 내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3일간의 여정 끝에 티
벳의 3대 聖湖라 하는 마나스로바에 15일 도착하니 멀리 눈덮힌 '카일라스' 의 하얀 봉우리가 시야
에 들어온다. 순간 험상궃은 우리 차 운전기사가 카일라스! 라며 敬拜를 올리는것을 보고 티벳인에
자리잡은 이 聖山의 존재감을 가늠할수 있었다. 저녁늦게 카일라스의 베이스 캠프격인 다르첸 마
을에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푸니 숙소에는 이미 수백의 인도 순례단이 진을 치고 있
었다.
카일라스! 몇해전 SBS에서 방영된 ‘신으로 가는길, 카일라스’ 다큐를 통해 황량한 고원에 우람한
봉우리가 솓구쳐 오른 모습에 압도되며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몇몇 카일라스 사진을 접하며 거
기서 뿜어나오는 범접할수 없는 기운에 매료되어 버렸다. 카일라스 (6,714m)는 히말라야 산맥 북
쪽 서북지방 황량한 고원지대에 우뚝 솟아 있고 불교, 흰두교, 쟈이니교 및 뵌교의 聖地로 '神이 常
住한다' 는 聖스러운 산이다. 산스크리스트語로 ‘신들의 산’ 이란 뜻으로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
이라 일컬으며 ‘수미산 (須彌山)’으로도 불리운다. 그 정상으로부터 갠지스江이 흘러나오면서 지류
가 갈라져 네 개의 강이 발원하며, 신비함과 위엄을 갖추고 있어 ‘티벳의 영혼’으로 추앙받고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신을 찾아 평생에 한번 카일라스 산주위를 돌며 기도를 한다. 불교에서
는 산을 도는 의식을 ‘코라 (kora)' 라 부르며 한 번의 코라는 이 생에서의 ’業 (Karma)‘ 을 소멸시
킬수 있고 108번의 코라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믿고있다.한다. 카일라스 코라의 길이는 53킬로
미터로 보통 3일 걸린다. 산소가 평지의 절반밖에 되지않아 맨몸으로도 걷기가 힘들어, 고산병으
로 짐을 야크에 부리고 말을 타고 넘기도 한다.
티벳인에게 우주의 중심, 어머니의 산으로 추앙받고 있는 카일라스 ( 6,714m , 수미산)
트레킹 첫날: 고행길의 시작
16일 이른 아침 다르첸에서 깨어보니 카일라스 설산 봉우리가 줌-인되어 눈안 가득히 들어온다.
티벳인에게는 ‘눈의 보석’ 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카일라스가 햇빛에 반사되어 거대한 보석덩어리로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짐을 챙겨 서쪽으로 차를 타고 한동안
들어가니 드넓은 계곡입구에 이른다. 산행지 초입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산들과 서부영화에 나옴직
한 황량한 협곡을 따라 오르니 만년설이 녹아내려 제법 커다란 물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괴이한
모습의 바위덩어리와 나무 한포기 없는 삭막한 계곡이 이어진다. 하늘과 맞닿은 지구의 지붕이라
는 곳이 이렇케 생긴것일까? 이런곳에 과연 신들이 살고 있을까?..
20여km의 산행길은 넓직하고 평탄하지만 4,500m 안밖의 고도때문인지 호흡이 가쁘고 어찔어찔
하다. 간간히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인도친구들도 보인다. 이렇케 오르길 6-7시간여 만에 카
일라스 북면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바로 앞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잠자리를 가졌다. 가져간 버너
로 김치찌개를 만들어 저녁을 먹으니 참으로 맛나고 티벳음식만 먹다보니 별미가 아닐수 없다. 해
발 5,050m의 잠자리이니 편할리 없고, 멈추지 않는 기침과 숨쉬고 움직이는 매순간의 동작이 고
통의 연속이다.
트레킹 둘쨋날: 해탈의 길 - 돌마라 고개
카일라스 트레킹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라면, 해발 5,630m의 ‘돌마라’ 고개를 넘는것이 카
일라스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다. 17일 오전 6시경, 아침햇살을 받는 카일라스는 황금빛으로 물들
어 있다. 가장 성스럽고 신비한 모습이다. 5,000m의 고도를 넘으니 이제부터는 발걸음 하나 움직
일때 마다 심호흡을 하고 서서히 걸으며 고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밤새 기침이 심하고 코가 막혀
입안이 마르며 산소까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하니 숨이 차기 마련이다. 산소통을 꺼내 몇 번 들이켜
보았지만 산소가 금방 떨어져 버렸다. 오늘 길은 어제와 달리 가파르고 길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으니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호흡은 말할수 없이 거칠다. 숨쉬기는 왜 이리 힘들고 기침은 왜 이다
지도 나를 괴롭히는지 원망스럽다. 내심 ‘저지른 업보가 많아서 일것이다’ 라고 생각도 든다. 돌마
라 고개가 저만치 보이는데 어느순간 머릿속이 하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 한 젊은 친
구가 내몸을 눞히고 가슴과 등을 문지러주며 진정시켜 주었다. 평생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이
었다.
이렇케 오르니 ‘해탈의 고개’ 라 하는 '돌마라' 고개 정상이다. 고개정상부는 색색의 타르쵸로 온통
덮혀있다. 바람이 거세고 영하의 고개마루 이지만 순례자들은 감격에 겨워 기도를 하고 향을 피우
며 경배를 올린다. 이곳은 해발 5,346m의 에베레스트 남부 베이스캠프 보다 300m 정도 더 높고
5,545m의 칼라파타르의 정상보다 높다하니 아마츄어가 오를수 있는 가장 높은곳이 아닌가 싶다.
당초에는 돌마라 고개에서 五體投地를 한번 해보려 했으나 체력이 고갈되었고 막상 오르고보니 그
럴 용기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바람과 영하의 돌마라 고개에는 오래 머므를수 없다. 이제부터는
기나긴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무척이나 지루한 산길이다. 가파른 내리막도 있으나 길은 대체로
평탄하다. 허지만 이미 다리가 풀린데다 오래 걷다보니 호흡이 힘들어 쉽지 않은 하산길이다. 이렇
케 20여km의 둘째날 트레킹은 10여시간이 소요되었고 몽골 텐트같은 천막에서 숙박을 하였지만
피로에 지친 나에게는 호텔과 다름이 없다.
트레킹 셋쨋날: 인코라
아침 6시경 식사도 거르고 짐을 챙겨 텐트를 빠져나왔다. 6-7시간의 잠을 자고나니 피로가 어느정
도 회복되었고 14km의 하산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루하기 그지 없는 하산
길을 3시간여 만에 내려오니 스타랙스 차량들이 보이고 운전기사들이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해대
며 完走를 축하해준다. 힘든 고행길이 었지만 기분은 날아갈것 같다.
식사를 하고 쉬다가 오후에 인코라 트레킹 길에 올랐다. 인코라(in-kora)는 산주위를 도는 아웃코
라를 마친 사람들이 산내부로 들어가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안클라 사원옆의 빙하길을 따라 거칠
고 험한 오프로드를 자동차로 오르며 카일라스 南面 봉우리에 가깝게 다가가 관측할수 있다. 빙하
지대를 지나 좀더 높이 오르니 바로 너머 남면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다가온다. 그암벽 가운데 움
푹파인 홈통이 있고 계단 같아 보이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 바로 ‘하늘로 오르는 33개의 계단’ 이
다.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순간 저높은 계단을 오르면 저너머에 신의 세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고, 내안에 신이 있다면 저곳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초월적인 신에로의
접근을 상상해보았다.
카일라스 남면봉우리 (인코라 코스): 왼쪽부터 천중, 학기, 병직, 상건
이로서 카일라스의 아웃코라 53km 코스를 밟았고 인코라 까지 하였으니 카일라스 트레킹을 모두
마친셈이다. 출발할때 티벳 여행허가서(퍼밋)도 어렵게 받았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중국정부
에서 앞으로 한국,영국 등 4개국의 퍼밋 발급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발표가 전해졌다. 참으로 가기
어려운 곳을 때맞춰 다녀온것 이지만, 왜 그리도 멀고 힘든곳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
만 이번 카일라스 코라는 무엇을 바라고 한것이 아니라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고, 그 해
보고자 하는 마음은 이룬것이다.
7월2일 3차로 내가 작성 한것,,,
6월 19일 화요일 벌써 서울 떠나온지 2주 지나 오늘부터 일주일 후면 이여행도 끝난다.
이제는 이여행의 주요일정 라싸에서의 포탈라궁이나 오체투지의 종착역 조캉사원 관광도 끝났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카일라스 트레킹도 지났으며 비록 취소되어 직접 중국쪽 EBC는 못가 봤지만 멀리서 정상을 보는 것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보았으니 마지막 남은 여행지 구게 왕국을 가는 것이 이번주 여행의 시작이다.
처음 이여행을 함께 하자고 상건이가 발기문을 올렸을때만 해도 “성찰과 사색의 여행길” 이라 하여, 혹여 한가롭고 허허로운 구름 낮게 뜬 언덕바지 고원의 여유 자적한 거닒을 잠시나마 떠 올렸던 것을 기억 하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돌이켜 보면 6월 5일 21일 작정으로 떠난 이여행은 서울에서 북경으로 다시 북경에서 중국 대륙 서역끝 티벳으로 다시 티벳 라싸에서 구게 왕국이 있는 서쪽끝 쨔다(札達)로 중국을 횡단하고 테벳을 횡단 하였다가 다시 돌아와 네팔로 넘어갔으니, 중국 동서남북이 각각의 거리 5000여km라하니 중국 대륙의 완전 횡단을 포함 8~9000km는 족히 돌아 다닌듯 하다.
칭창 열차만 해도 그렇다 저녁에 북경 서역을 떠나 한잠 자고 아침에 일어난 밖의 풍경은 돌아 오기 위해 카트만드로 드러가기 전까지 일관되게 나무 하나 없고 큰키의 풀도 보이지 않는 그런 삭막한 고원의 연속으로 눈발이 날렸다가 멀리 설산이 보이고 간혹 야크떼 나타났다 양떼 보이는 질리도록 널디 넓은 끝도 없는 평원의 땅이다.
이제 좀 지나와서 나아 질만도 하련만 카일라스 트레킹을 위해 묵었던 다르첸이라는 지역도 고도가 4600여m로 라싸 떠난지 며칠 후부터는 평균 고도 4700m로 높게는 5400m까지 5000m가 더되는 구릉 위를 수시로 드나드니 과자 봉지 부풀듯 누구는 얼굴과 손등이 통통히 부어 오르는등 모두들 고소문제로 고통 호소가 보통을 넘는다.
고통의 문제가 고도만의 문제는 아닌것이 5000여m 높이의 땅에 구름 한점 없이 직접 내려 쬐는 햇볕의 살인적 강도는 흑인 보다도 더 새까만 현지인들 얼굴을 보면 즉시 알 수 있고 그늘에 있을 때도 공기 습도율은 12%라하니(습도율 0%면 어떤일이 일어나나???) 숨쉬는 코의 저 깊은 곳까지 즉시 말라,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입으로 대신 쉬면 얼마 안가 입천장이 말라 버려 목젓 근방이 뻐근 하다.
그래도 자동차는 계속 흙길을 달려 자꾸 서역으로 서역으로 살인적인 했볕과 먼지길을 뚫고 황량한 평원을 내달리고 있다
가면서 차창을 내다보면 불에 탄듯한 삭막한 흙산과 황량한 평원에도 산것들은 그래도 제 생명 다하고자 열심히 있는 그대로 행동 하며 잘들 지내는 듯하다.
나무라고는 뼘만큼의 크기도 없는 것같은 곳에서 뜯어먹는지 핥아먹는지 보이지도 않는 풀을 먹고있는 야크나 양떼들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야생 영양이나 우리 나라의 왼만한 토끼만은 한 크기의 쥐들 하며, 어쩌다 보이는 마을 어꾸쯤에는 남녀를 불구 하고 아무데서나 아랫츰을 내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 보이며 응가를 하고있는 장면등등....
특히 라싸는 더했지만, 그동안 지나온 길이나 중간 중간 들러 잠자고 쉬었다온 마을을 봐도 그렇고 어쟇든 중국이 이곳 티벳에 인푸라등 투자는 우선으로 하는듯 하다.
몇시간을 가도 민가가 보이지 안는 벌판에도 최근에 아스팔트를 해놓았고 특히 사가라는 군사도시는 거리 마다 지원한 중국 다른현의 이름을 새겨 놓았을 정도로 선전까지 하고 있으면서 몇않되는 티베티안 지역에 한족의 중국인들 이주를 장려 하는듯 하다.
더군다나 공안의 검문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라싸도 그렇고 그근방에 있는 간덴 사원도 그렇고 사원에 기본적으로 승려가 없다. 공안 요원이나 군인들이 있을 뿐이지...
거리도 그렇고 마을도 그렇고 출입을 할려면 일단 검문을 밭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캉사원 근방에서의 경계태세는 소화기에서부터 체류탄 방어 방탄차까지 경찰 차에서 공안차까지 일반인보다 감시원이 더많은것은 아닌지 아마 북한 정도면 이정도나 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는 그정도다.
특히 가이드 말로는 이곳에서는 같은 티벳트족도 서로 못믿는다 하며 간자들은 한족도 티벳 옷을 입고 곳곳에서 티벳족 행세를하며 감시 하기 때문에 항상 말을 조심한다하고 애매한 질문은 정치적 이유라고만 말할뿐 코멘트를 대놓고 거부한다.
마을이나 중요 도시의 상가지역을 보면 뚜렷이 차가 난다.
될만하고 번듯한 그럴듯한 지역은 예외없이 커다란 한문 간판에 상점다운 한족 가게가있고
항상 어줍잖은 곳에는 티벳글자의 꾀제제한 티벳티언 가게가 있는 듯 보인다.
옛날 우리 나라 일제시대 그때의 그상황(?)처럼...
중간 흙먼지 구덩이 사가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에야 마지막 여행지 구게 왕국 지역인 이곳 이장쯤 되는듯한 공산당원의 집에 여장을 푼다.
토림(土林), 흙 숲이라니...
중국은 땅덩이크니 참 종류도 많고 가지가지 기이한곳도 참 많은듯 하다.
그동안 가본곳만 해도 석림이라해 석회석 지역으로 빗물에 깍여 뾰죽뾰죽한 돌 숲 지역을 가보았고 황산 장가계 원가계하여 산의 숲을 가보았고,계곡과 물의 나라 구체구를 가보았고 차마고도니 뭐니하여 호도엽을 가보았고 무슨 샹그릴라라 등등하여....이번엔 흙의 나라라 하니, 과연 우리 시골 말로 개흙의 나라다.
옛날 바다밑 곤죽 흙이 솥구쳐 올라와 땅이 된듯한데... 바람만 불면 먼지 땜에 정신을 못차린다. 헌데 바람은 쎄고 드물지만 한번 오면 왕창 쏟아지는 쏘나기형 지역인 모양이니 흙 깍인 땅의 모양이 기기묘묘하다. 그래 이름 하여 토림이라.
.마지막 관광구역 구게 왕국 흙산은 마치 터키의 카파토끼아 모냥 굴을 파고 사는 지역의 남은 역사도 희미한 초라한 옛날 왕국이다.
본진 티벳이 망한 지금에서야 오죽 하랴마는 그래도 7세기인가 9세기때 토번이라는 나라가 세력을 유지 할때 파키스탄 까지 호령하던 나라로 16대왕 까지 700여년을 유지 했던 나라라 하는데 그 유적이 참 볼품 없고 왕궁자리 또한 뚜렷치 못하고 사원 자리는 문화 혁명때 파손 됬다는데 목 부러진 부처님 머리통만 덩그러니 좌대에 얺혀 있다
.
이제 큰 여행은 모두 끝나고 서울로 떠는 일만 남았다.
너무 멀리와서 가는데도 5~6일은 걸리게 생겼는데, 이제 간다하니 하루라도 빨리 험지 이고도를 벗어나고자 하여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세 번 자야 하는 일정을 무리해서 달리기로 하고 두 번 자는 일정으로 줄이고 하루 일찍 국경도시 장무에 도착 하였다.
고생은 하였지만 돌아가는 차속에서 가만히 생각 하니 문환이 누웠었던 조캉사원에서의 조장터와 시신 짜르는 그무지 막지 해보이던 연장들,죠캉 사원이나 카일라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보았던 오체 투지를 하던 여인들 또 아무것도 없는 듯 했던 막막한 평원에서의 양모는 여인과 그아들, 야크를 돌보며 그높은산을 거닐다 뫃여 앉아 요기를 마련하던 그원주민들, 몇시간을 달리다 들른 휴식처에서 보았던 그가게의 순박해 보이는 처자, 돌에다 죽으면 타고 올라 가겠다고 그려 놓았다는 그 많은 사다리 등등 눈에 스치는 장면이 여럿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똑똑하든 그럿치 못하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잘살든 어렵게 살든 자기를 둘러 싼 그자기 있는 주위 환경의 지배를 못 벗어난다.
티벳은 어렴풋이 보아도 그렇고 직접 느껴보았지만 정말 높다.
평균 해발이 4900m라니 체험 해본 사람만 그곳이 얼마나 험한 곳인지 안다.
그옆 나라 부탄은 세계에서 자기느낌 행복순위 1위 국이라 하는데, 여기 비하면 전번 가서 고생 했던 네팔은 나무 많고 골자기 많아 물많고 새많으니 부탄 만큼이라 해야 할까?
국경이름이 중국에서는 장무(樟木)라하고 같은 장소를 네팔에서는 코다리라 부른다.
코다리에서 네팔 입국 비자를 받고는 다시 약 6시간의 찝차 이동으로 카트만두에 여장을 풀고는 오랜만에 네팔 짱이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삼겹살로 영양 보식을 하며 배를 채운다.
고도 2000m 지역에서 잠을 자니, 코마를 걱정 없이 이렇게 좋은것을!!!
중간쯤 깬다해도 큰 문제 없으니, 그냥 잠이 슬슬 온다!
끝
***그간 몇몇일을 더 쓸것도 있었으나 날도 좀 지나가고, 더 좋은 일이 생길것도 아닌듯 할뿐 아니라 ,무엇보다 본인이 꾀가 나서 그냥 그대로 줄이기로 맘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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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어렵고 힘든 여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티벳. 하지만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히 복받으신 분들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건강히 즐거운 회상의 시간 가지시길~~~~
세세힌 내용들 읽으니
저 만치 나도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복 받은 이들의 얘기..
내년엔,
가게 되겠지요.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이 쓰신 열정!
잘 지내시죠?? 3인 3색의 여행기 잘읽고 강린포체 사진도 퍼갑니다..ㅋㅋ
정말 고생하신 것이 줄줄이 느껴지내요. 근데 본인도 비염이 있는지라, 겨울이면 코가 마르고 헐어 고생인데, 티벳에 가면 정말 고생되겠내요. 그래도 어찌하오리까 ...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데 ... 한 살이라도 젊을때 가야 고생도 덜 할것 같군요. 여행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