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백광현 뒷이야기 31 - 강지녕의 약계(藥契)
백광현이 떠나간 몇 달 후...
강지녕은 장인주와 합심하여 약계를 만들 결심을 한다.
약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결혼계, 약혼계, 여행계, 심지어 삼겹살계까지 들어봤어도
약계란 단어는 처음 들어봤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말 그대로 약계이니깐.
약재 수급을 위한 민간의 계를 약계라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후에 삼의사(전의감, 내의원, 혜민서)는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재정의 궁핍 문제로 인해 잠시 동안이지만 활인서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형태적으로 삼의사가 계속 유지되기는 하였으나
소속 인원을 감축시키는 등의 내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활인서를 운영하는 관리들은 부실한 태도를 보이며 퇴패의 풍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활인서를 설치한 것은 병든 환자를 구활하기 위해서인데,
전염병자가 모여 있어도 관리들은 나 몰라라 하고 돌아보지 않아
죽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또한 활인지의 창고지기가 뇌물을 요구하고,
관리들은 약값만 받고서는 약을 내어주지 않아
사람들은 활인서가 아니라 살인서라 부르며 가려고 하지 않았다.
대민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혜민서의 기능 역시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혜민서의 운영이 점점 어려움에 직면한 데에는 약재 가격의 상승이 큰 이유를 차지했다.
약재는 대부분이 진상되거나 혜민서로 공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약재 가격이 상승했다.
방납(防納)이라고 하여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중간이윤을 얻는 행위로 인해
약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혜민서의 약재 운영은 점점 어려움에 직면했다.
혜민서를 비롯한 공적 의료기구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적 의료기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약계(藥契)이다.
조선 후기 의료의 중심이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혜민서에서는 약을 구하기 어려웠고, 그나마도 약재의 가격이 상승하자
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자구책이 절실했던 것이다.
한양보다 의료 환경이 더 열악한 지방의 경우엔
약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의료공백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의 사족(士族, 문벌이 좋은 선비 집안)들은
약계를 조직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17세기 초반 상주지역에서는 성람, 조익, 정경세, 이준 등이
존애원(存愛院)이라는 사설 의료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했다.

존애원은 의료시설이 아주 적었던 당시 많은 약재와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던 사설의료기관이다.
경북 상주시 청리면 율리 353 소재
시도기념물 제 89호로 지정

존애원 현판
이상 사진 출처 : http://think-5w1h.tistory.com/378
관련 기사 : 최초 사설의료국 상주 '존애원'에서 의료시술 재현행사 열려
http://news1.kr/articles/936386
관련 기사 : 상주시, 국내 최초의 사설의료국 '존애원' 의료시술 재현행사 개최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427977
관련 기사 : 한국 최초 사설 의료국, ‘존애원’서 의료시설 재현
http://www.gminews.net/ArticleView.asp?ArticleId=15586
약계를 운영하는 방식은 사족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내어
당약(唐藥, 중국 수입 약재)을 구입하거나
혹은 향약(鄕藥, 국산 약재)을 직접 채취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홍우원이란 인물이 서문을 지어준 약계의 경우
그 구성원이 50명에 해당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약계의 활성화는 일부 지방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었다.
대표적으로 강릉 약계의 경우는 1603년에 결성되어 1842년까지 운영될 정도로
지속성이 강했다고 한다.
지역적인 유대 속에서 사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약계와는 달리,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사약계(私藥契)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효종 대에는 사약계를 금지하는 조치가 행해졌는데,
이는 사적으로 만들어진 사약계가 이익을 추구하면서
혜민서와 전의감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약계가 활성화될수록 약재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또 품질이 떨어지는 약재가 유통되면서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약계가 운영되는 형태는 2가지가 있었다.
장시를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운영되는 형태가 있었다.
그리고 상주의 존애원이나 강릉의 약계처럼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상주하면서 공동체적으로 운영되거나
혹은 점포를 열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약계 혹은 약방의 형태가 있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면 장시를 따라 운영되는 약계의 형태를 띠었을 것이고,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라면 상주하는 형태의 약계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 이상의 내용은 김성수 교수님의
<조선후기 사적 의료의 성장과 의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는 논문의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뒷이야기의 뒷이야기>
혜민서를 이익을 추구하는 곳으로 변절시킨 양아버지 이명환에 대항하여
약계 설립을 결심하는 강지녕은 정말 조선시대 신여성이 아닐 수 없다.
(32번째 이야기 곧 이어짐)

드라마 <마의> 주인공은 실존인물 백광현이다.
그의 행적을 찾고자 조선의 기록을 다 뒤졌다.
그의 감동 깊은 일생을 함께 나누고자 책을 썼다.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EBS 교육방송 책 읽어주는 라디오
<소설마당판>에서 백광현뎐 다시듣기 가능
http://home.ebs.co.kr/madang/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