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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외래어 이야기
외래어란, 본디부터 우리 겨레가 써 오던 토박이말이 아니라 바깥나라에서 들어와 국어가 된 말입니다. 우리말의 반 이상이 외래어이고, 외래어 가운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말입니다. 외래어에서 한자말을 빼면 일본말(또는 일본말의 영향을 입은 말)과 서양어권 말이 그 다음으로 많습니다. 물론,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전파된 외래어도 있지만, 생활 외래어 가운데는 그 수가 많지 않아 이 글에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가운데, 일본말이나 일본말 찌꺼기는 같은 외래어라 할지라도 역사적으로나 민족 감정상으로 반드시 몰아내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국어로서의 외래어'의 지위를 줄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앞선 문명의 유입과 함께 필연적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서양어권 외래어에 대하여, 현행 표준 표기법을 보임으로써 통일된 언어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물론, 서양어권에서 유입된 말이라고 모두 '국어로서의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래어란, '그와 대체해서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없는 말이면서 오랫 동안 우리 겨레가 널리 써 이미 굳어진 말'을 뜻합니다.
(1) 긴소리 적기 문제―서비스:서어비스 1986년에 고시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긴홀소리[장모음]의 긴소리[장음]는 따로 표기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1958~1985년)의 표기법에서는 '루우트, 서어비스, 티임' 등으로 적었던 것을 현행 규정에서 긴홀소리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기로 개정한 데에는 물론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실제 글자 생활에서 긴홀소리의 표기로 말미암아 음절 수가 늘어나서, 특히 지면의 제약을 받는 신문 등에서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토박이말이나 한자말의 긴소리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유독 외래어 표기에서 긴소리를 표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만일 장음을 표기한다면 별도의 장음 부호를 사용하여야 하는데, 별도의 장음 부호를 사용한다면 외래어 표기법 규정 가운데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로만 표기하고 그 밖의 글자나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제1장 제1항에 어긋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홀소리를 겹쳐서 적어야 하는데, 이 또한 별도의 음절을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긴소리 표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긴홀소리의 홀소리를 따로 표기하지 않게 됨에 따라, 땅이름에 있어서도 전에는 '뉴우요오크'로 적던 것을'뉴욕'으로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 '큐우슈우, 토오쿄오, 오오사카' 들도 모두 '규슈, 도쿄, 오사카'로 표기합니다. 생활 용어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우트, 서어비스'는 이제 '루트, 서비스'로 표기하여야 합니다.
(2) 홀소리 단순화 문제―주스:쥬스 '텔레비전'은 영어 'television'에서 온 말인데 영어의 발음은〔telivin??n〕입니다. 이것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는 모음 앞에서 각각 'ᄌ', 'ᄌ', 'ᄎ'으로 적어야" 하고〔?〕는 'ㅓ'로 적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juice'도 영어 발음이〔?u:s〕이므로 '쥬스'가 아니라 '주스'로 적어야 하며, 'charming'도 영어 발음이〔?a:miŋ〕이므로 '챠밍'이 아니라 '차밍'으로 적어야 합니다. 〔?〕,〔?〕,〔?〕들이 모음 앞에서 각각 '지', '지', '치'가 아니라 'ᄌ', 'ᄌ', 'ᄎ'으로 적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쟈, 졔, 쟤, 져, 죠, 쥬'나'챠, 쳬, 상, 쳐, 쵸, 츄'와 같은 표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는 모음 앞에서 '시'로 적되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샤, 셰, 섀, 셔, 쇼, 슈'로 적어야" 합니다. 따라서 'shadow', 'shake', 'shock,' 'shoe' 들은 각각 '섀도', '셰이크', '쇼크', '슈' 들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3) '어'와 '아'의 대응 문제―센터:센타 외래어 표기법은 관용으로 굳어져 있는 말 이외에는 원지음을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한글로 옮기도록 되어 있는데, 국제 음성 기호로〔?〕는 '어'에 대응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원어의 발음이〔sent?〕,〔t?:min?l〕,〔rout?ri〕인 'center', 'terminal', 'rotary'에서 온 외래어는 '센터, 터미널, 로터리'로 표기되는 것이 옳습니다. '센타, 터미날, 로타리'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사람이 많으나〔?〕가 '어'에 대응되어 있는 이상 이는 모두 잘못입니다.
물론〔?〕를 '아'에 대응시키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특히, 일본인들에게는) 발음하기가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령'service〔s?:vis〕, second〔sek?nd〕' 등과 같이 어중에 나타나는〔?〕를 '아'에 대응시켜 '사비스, 세칸드'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일 '센터, 터미널, 로터리' 대신에 '센타, 터미날, 로타리'를 표준어로 삼는다면〔?〕는 단어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어'로도 표기되고'아'로도 표기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2항 "외래어의 1 음운은 원칙적으로 1 기호로 적는다."는 규정에 어긋나게 됩니다.
*셈틀에서 지원되지 않은 영어 발음기호는 (?)로 표시하였습니다.
(4) 관용 표기의 인정 문제―시스템:시스팀 영어 'system'의 발음은〔sistim〕이기 때문에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표기하면 '시스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어 생활에서 이 말은 오래 전부터 '시스템'으로 굳어져서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시스템'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곧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규정에 구애받지 않고 굳어진 대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camera, radio'는 원어의 발음이〔kæm?r?〕,〔reidiou〕이기 때문에 규정을 적용하면 '캐머러, 레이디오'가 되지만, 누구도 이를 '캐머러, 레이디오'라고 말하지 않으므로 이미 굳어진 대로 '카메라, 라디오'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
'시스템'의 경우도 원어의 발음은 '시스팀'이지만 관용 표기를 인정하여 '시스템'을 표준말로 정하였습니다. 사실, 정확히 따진다면'system'의 발음이 꼭 '시스팀'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영어의 '강세'가 한글 표기에 반영되지 못하는 한 낱낱의 소리값을 원어와 꼭 같게 한글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외래어는 이미 외국어가 아니고 국어의 일부이며,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외국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 사람끼리 말할 때 필요해서입니다. 따라서 본디말의 발음이 어떤지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써 왔는지,그리고 과연 우리말의 특성에 맞는지를 고려하여 외래어 표기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6: 외래어의 된소리 이야기
글쓴이는 앞에서 '생활 외래어 바로 적기'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들온말[외래어]들을 몇 자지 들고, 잘못 쓰기 쉬운 점을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곧, *'서어비스, 서비스'는 '서비스'로, *'쥬스, 챠밍'은 '주수, 차밍'으로, *'센타, 로타리'는 '센터, 로터리' 등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요즘 세계화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는 데다가, 무역 장벽을 거의 없애 외국산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추세이어서, 들온말 표기의 빈도가 무척 잦아졌습니다. 게다가 신문마다 외국 지명의 표기가 조금씩 달라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지어의 본디 발음과 우리말소리와의 차이, 그에서 비롯된 한글 맞춤법과의 갈등으로 좀체 통일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들온말의 된소리 적기는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에 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빠리'는 '파리'이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4항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국제 음성 기호'에서 모음 앞의 [p], [t], [k]는 한글로 옮겨 적을 때 'ᄑ', 'ᄐ', 'ᄏ'으로 대응됩니다. 그뿐 아니라, 에스파냐어․이탈리아어․일본어․ 중국어 등에 한글을 대응시킬 때에도 각 언어의 파열음 표기에 'ᄈ', 'ᄄ', 'ᄁ'등의 된소리 글자는 쓰지 않고 있습니다. 영어나 독일어의 경우, 파열음은 유성․무성의 대립을 보이는데 유성음은 우리말의 예사소리, 무성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와 같은 언어의 무성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보다는 된소리에 가깝게 발음되므로 한글로 적을 때에 된소리 글자로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언어의 무성음을 한글로 옮겨 적을 때 된소리 글자로 적는 데에는 여러 가지 불편이 따릅니다. 지구상에는 190여 개의 나라가 있고, 4,000여 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의 경우는 그 무성음이 우리말의 된소리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밖의 나라의 수많은 언어에 있어서는 과연 거센 소리에 가까운지 된소리에 가까운지 확인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언어에 따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무성 파열음을 거센소리 글자와 된소리글자로 갈라서 대응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설령 언어에 따라 거센소리와 된소리의 어느 쪽에 가까운지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어에 따라 구별하여 적는 것은 엄청난 기억의 부담을 가져오고, 따라서 표기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현지 원어의 무성 파열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나 된소리 가운데 어느 하나로 표기하는 것이 좋은데, 거센소리가 된소리보다 훨씬 부담량이 높기 때문에 거센소리 글자에 대응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paris'는 *'빠리'가 '파리'보다 실제 원음에 가깝지만 '파리'로 적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conte'도 *'꽁뜨'와 비슷하지만 '콩트'가 표준말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들온말 가운데 잘못 쓰기 쉬운 말들의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잘못 쓴 예) (표준말) (잘 못 쓴 예) (표준말) *아뜰리에 → 아틀리에 *오사까 → 오사카 *까페 → 카페 *후꾸오까 → 후쿠오카 *꼬냑 → 코냑 *도꾜 → 도쿄 *삐에로 → 피에로 *모스끄바 → 모스크바
그런데 들온말의 파열음 표기에서 된소리를 쓰는 예외가 몇 개 있습니다. '삐라(bill)', '껌(gum)', '빨치산(partizan)'들이 그것입니다. 이들도 원칙을 따르자면 *'비라, 검, 팔치산'이 되겠지만, 예사소리나 거센소리 글자로 표기한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된소리로 굳어졌기 때문에 된소리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들 예외를 제외한 말에서는 된소리를 써서는 안 됩니다. '버스', '가스', 가운', '댐'과 같은 말도 발음은 각각 [뻐스], [까스], [까운], [땜]들과 같이 된소리로 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된소리로 표기하지 않아도 잘 알아볼 수 있는 말들이므로 예사소리글자로 적는 것입니다.
(2) *'짜장면'은 '자장면'이다 앞의 예들과는 달리, '자장면'은 중국에서 들어온 낱말입니다. 중국어에서 우리말에 새로운 낱말이 차용될 때에는 간접 차용이라 하여 우리 한자음으로 읽히면서 들어온 것과, 직접 차용이라 하여 중국 한자음 그대로 읽히면서 들어온 경우가 있습니다. '자장면'은 국어 사전에 '酉+乍醬麵"(한글학회), 또는 '炸醬麵"(금성출판사)에서 온 낱말로 되어 있으며, 백과 사전에는 '짜장면(-醬麵)'과 '차오장멘(火+少醬麵)'이 각각 올라 있습니다(동아출판사). '酉+乍', '炸', '火+少'의 음을 한자자전에서 찾아 보면 각각 '작(초)', '작', '초' 들로서 어느 것도 '자'를 음으로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장면'은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용된 들온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낱말은 먼저 '자장'(중국 된장)과 '면'으로 분석됩니다. 들온말과 한자말이 합쳐져 새로운 낱말로 우리말에 녹아든 경우지요. 이 낱말에서 '자장'이냐 아니면 '짜장'이냐 하는 문제는 먼저 중국에서 어떻게 발음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장'이라 하는 것에 해당하는 낱말로 중국어에는 '炸醬'이 있습니다. 이 낱말의 중국음은 [zhajiang]이므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자장'이 됩니다.따라서 이 낱말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대부분 [짜장면]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그 표기는 '자장면'이라고 해야 하니 유의할 일입니다.
*'작(酉+乍)', '초(火+少)' 한자는 셈틀에서 지원되지 않아 '+'로 나누어 표시하였습니다.
27 : 로마자 표기법 이야기
지난 5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문화체육부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주최한 이 공청회에서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 날 주제 발표자로 나온 3사람(이현복 서울대 교수, 남기심 연세대 교수, 강범모 고려대 교수) 모두가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립국어연구원 측이 마련한 개정 시안(일부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이 올해 안으로 확정, 공포될 전망입니다. 글쓴이는 이 공청회에 참석하여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과 주최측이 내놓은 '개정 시안'에 대한 의견들을 청취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개정 시안'을 간략히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란, 우리말을 로마자(영어의 알파벳)로 옮겨 적는 일정한 규칙을 말합니다. 로마자 표기는 지금까지는 보통의 일반 국민이 직접 표기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앞으로는 자기 이름이나 주소 들을 로마자로 적어야 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므로 누구나 쉽게 배워 익혀야 할 것입니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1984년에 공포되어 지금까지 시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표기법은 이른바 '머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기본 안으로 삼아 제정한 것으로서, 한글 맞춤법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 우리말의 발음에 따른 표기 체계입니다.
앞엣것을 전자법(轉字法)이라 한다면, 뒤엣것은 표음주의를 지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이 표음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외국인들이 읽기에는 편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한글을 로마자로 옮겨 적기는 매우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반달표(˘), 어깻점(') 따위 특수 기호를 써야 하므로 컴퓨터상의 구현이 매우 불편합니다.
(2) 같은 'ᄀ,ᄃ,ᄇ'을 무성음이냐, 유성음이냐에 따라 k, t, p와 g, d, b로 써야 하므로 유․무성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 한번 로마자로 옮겨진 우리말을 다시 한글로 되옮기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 시안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자법'을 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전자법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주안점을 외국인보다는 우리 국민에 둔 것이라, 한글 맞춤법이 그대로 실현되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부득이 한글을 쓸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잠시 로마자를 빌려 쓰더라도 한글 맞춤법대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국어를 표기할 수 있는 표기법을 만든 것입니다.
이 개정 시안은 또한, 지난 1940년에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제정, 공포한 <조선어음 라마자 표기법(朝鮮語音羅馬字表記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교부 고시)이 발표된 1984년, 새로 나온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글 학회에서 따로이 마련하여 발표한 <우리말 로마자 적기>와 거의 같은 원칙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의 문제점에 대한 새 '개정 시안'의 대책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모음 표기에서 특수 기호를 없앴다 현행 표기법에서 '어' 모음은 'o'로 적어 왔으나, 개정 시안에서는 특수 기호를 없애는 대신 '어'를 표기하기 위한 두 가지 안을 내놓았습니다. 제1안은 '어'를 'e'로, '에'를 'ei'로 쓰자는 것이고, 제2안은 '어'를 'eo'로, '에'를 'e'로 쓰자는 것입니다. '여'와 '워'는 제1안에 따르면 'ye', 'we'가 되고, 제2안에 따르면 'yeo', 'weo'가 됩니다.
또한, '으' 모음은 현행 표기법에서 'U'로 적어 왔으나, 개정 시안에서는 'U'에서 반달표를 없앤 'u'를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종래에'u'로 적히던 '우' 모음은 '으'에 원순성이 가미된 원리에 맞추어 w를 u 앞에 넣어 'wu'로 표기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으'가 u이므로'의'는 'ui'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2) 'ᄀ, ᄃ, ᄇ, ᄌ'의 유․무성의 구별을 없앴다 자음 'ᄀ, ᄃ, ᄇ, ᄌ'을 어떻게 표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번 개정 시안 가운데 자음 표기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이었습니다. 현행 표기법에서는 'ᄀ, ᄃ, ᄇ, ᄌ'을 말 첫머리에서는 k, t, p, ch로, 유성음 사이에서는 g, d, b, j로, 말 끝받침에서는 k, t, p, t로 적고 있습니다.곧 무성음이냐, 유성음이냐에 따라 k, t, p와 g, d, b로 적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て무성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표기법이므로, 개정 시안에서는 현행 'k, t, p, ch'를 'g, d, b, j'로 바꾼 것입니다. 곧 'ᄀ, ᄃ, ᄇ, ᄌ'은 그 자리가 어디이든 간에 모두 'g, d, b, j'로 표기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ᄏ, ᄐ ᄈ, ᄍ'를 'k', t', p', ch''로 표기하는 현행 표기법을 고쳐서, 모두 어깻점을 뺀 'k, t, p, ch'로 표기하는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모음에서의 반달표와 함께 자음의 어깻점도 없애어 로마자 표기법에서 특수 부호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는 원칙에 맞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ᄀ, ᄃ, ᄇ, ᄌ'가 'k, t, p, ch'에서 'g, d, b, j'로 바뀜에 따라, 된소리 'ᄁ, ᄄ, ᄈ, ᄍ'도 현행 'kk, tt, pp, tch'에서 'gg, dd, bb, jj'로 바꾸었습니다.
(3) 한글과 로마자 사이의 자동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표음주의를 따르고 있으므로, 한번 로마자로 옮겨진 우리말을 다시 한글로 옮겨 적는 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예를 들어, '속리산'을 현행 표기법대로 적으면 'Songnisan'이 되는데, 이를 다시 한글로 옮기면 *'송니산'이 됩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 시안은 전자법을 취했기 때문에 '속리산→Soglisan→속리산'처럼 한글과 로마자가 서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국어와 외국어는 서로 음운 체계가 판연히 다르므로, 어떠한 표기법을 만든다 해도 국어의 로마자 표기만 보고 외국인으로 하여금 완벽한 우리말 발음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이 외국인의 발음을 중시하여 표음주의를 택하고는 있지만, 국어 발음을 잘 나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어의 철자를 복원할 수 있도록 표기법을 만들어 우리 국민들이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번 개정 시안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개정 시안은 한글을 로마자로 옮겨 적는다는 정신으로 일관한 것입니다. 문화체육부에서는 이 개정 시안을 좀더 다듬고 보완하여 올해 안으로 최종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제정, 공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