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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참선하면 보통 좌선을 생각하는데 참선을 크게 나누면 좌선坐禪 와선臥禪 행선行禪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참선이란 행 주 좌 와 어 묵 동 정 (行 住 坐 臥 語 默 動 靜) 일체처一切處에 화두가 성성惺惺해야된다. 처음에는 좌선으로 시작해서 누워서 하는 와선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거나 돌아다니면서 하는 행선이 있다.
본인이 앉고 싶다고 해서 좌선하고 피곤하다고 와선하고 돌아다니고 싶다 고 해서 행선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고 무수한 행성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기도 하고 또는 한곳에 모여 있기도 하지만 우주의 법칙에 의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듯이 참선 역시 이치에 부합符合되는 정확한 순서가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면서 도道에 순서가 어디 있고 경계가 어디가 있냐고 말하지만 부처님같이 우주의 이치를 완전히 깨달아서 무상정등각을 이룬 자리라면 몰라도 처음 시작하는 참선 공부인 에게는 반드시 올바른 길이 있으니 바른길을 조금만 이탈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이다.
그래서 3조 승찬대사는 <신심명信心銘>에 이르기를
毫釐有差(호리유차)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天地懸隔(천지현격)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특히 처음 공부하는 이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 된다.
선박船泊에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이 있는데 나침판의 눈금을 한 눈금만 비켜나가 잘못 설정해도 그 배는 엉뚱한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앞으로 계속 전진 항해하면서 각도는 점점 크게 벌어지는 것과 같이 참선도 뚜렷한 방법 없이 대충 적당히 한다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 할 것이 자명하다.
처음 좌선할 때는 우선 처소를 잘 선택해야 된다.
외부와의 단절된 조용하고 한적한곳에서 정진하면 좋다.
진발심眞發心이 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참선에만 몰두하여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신념으로 정신이 무장됐다면 깊은 산중의 토굴이 좋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보면 본인이 스스로 체험하게 되는데 최소한도 하루에 12시간이상 몇 개월 동안을 좌복에 앉아서 간절하게 화두의심을 하게 되면 신체와 정신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참선하려면 천 번 만 번 변화하는 경계를 겪게 된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이니 대수롭게 생각지 말고 오로지 화두의심에만 심혈을 기울여야 된다.
특히 두뇌에 어떠한 강력한 힘이 들러붙기도 하고 머리에 벌레가 기어다는 듯 간지럽기도 하고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어떤 때는 머리가 불같이 뜨겁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차디찬 알코올을 부은 것처럼 차갑기도 하고 더욱이 귀에서 소리 나는 이명耳鳴등 수많은 변화가 있지만 개의치 말고 꾸준히 정진하여 온 몸과 정신이 하나의 화두의심 덩어리가 되어야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화두의생명은 의심이고 망상과 잡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젖 먹던 힘까지 온 힘을 다 쏟아서 처절하게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야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문득 화두가 밀려나가는 것을 본인이 스스로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두에 발동發動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두에 발동이 걸리는 것을 굳이 말로 표현 하자면 높은 산 정상에서 둥근 바위를 굴리게 되면 처음에는 서서히 구르다가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 엄청난 속도로 산 밑을 향해서 무섭게 날으듯 굴러가는 것처럼 화두가 밀려 나가는데 이러한 상태를 계속유지하면서 정진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일도一到된 정신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때는 목이 말라서 물을 먹으려고 해도 바로 앞에 물이 놓여있지만 그 순간이 아깝고 화두가 깨질 것 같아서 물을 못 먹을 정도가 되니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득력得力하게 되는 것이다.
화두가 밀려나가는 것이 마치 겨울철 호숫가에 얼음이 얼었는데 매끄러운 얼음위에다가 납작한 조그마한 돌을 힘차게 수평으로 던지게 되면 쏜살같이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듯이 나가는데 화두가 밀려나가는 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화두가 발동이 걸리려면 좌선을 하되 산문밖에 나가지 말고 도량 내에서도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성성하게 도거와 혼침을 극복하면서 계속 정진해야 된다.
요즘에는 과학이 발달해서 자동차를 시동 걸려면 운전석에서 키를 돌리거나 스마트키로 버튼하나만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시대가 됐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는 자동차가 귀했는데 자동차가 구식舊式이어서 그때 당시에는 시동을 걸려면 자동차 밖으로 나가서 트럭 앞 범퍼에 구멍이 있는데 구멍에다가 기다란 “ㄹ"字로된 쇠 막기를 넣고 한참 힘차게 돌리면 시동이 걸리는데 어떤 때는 힘이 달려서 중간에 쇠막기를 돌리는 것을 중단하게 되면 시동이 걸리려다가도 ”푸시시“하고 시동이 걸리지 않고 꺼져버렸다. 그러나 힘이 들어도 계속 힘차게 돌리면 ”부르릉“하고 시동이 걸렸다.
추운 겨울날 어쩌다 자동차 공업사 앞을 지나다 보면 트럭 밑에다가 장작불이나 타이어고무를 태우며 밤새 얼어붙은 엔진을 녹이고 젊은 장정들이 트럭 앞에다 쇠막대기를 넣고 시동을 걸기위해서 추운 겨울 아침에 애쓰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좌선도 이와 똑 같다.
득력하려면 화두에 발동이 걸려야 되는데 좌선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거나 또는 계속 정진을 하더라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적당히 하면 화두에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참선을 오래했다 하여도 참선을 제대로 안했거나 한철 정진하고 한철 돌아다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요즘 선방의 풍토가 그렇다 결제 한철 정진하고 해제 가 임박해오면 미리 승복을 풀해서 다려놓고 해제 날이 되면 다들 용수철처럼 튀어나간다.
십진구퇴十進九退이다. 열 걸음 나갔다가 아홉 걸음 퇴보하는 것이다.
한철동안 정진 잘해놓고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다 까먹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선 좀 했다는 사람도 득력얘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도 못한다.
처음 공부할때부터 제대로 안했고 본인이 경험을 않해 봤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오히려 나를 탓 한다.
“손가락 다섯 개 가진 사람이 손가락 여섯 개 가진 사람들의 마을에 가면 오히려 병신 소리 듣는” 격이다.
화두가 발동이 걸린 상태에서 좌선을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않아도 화두가 스스로 지어나가는 것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 멈추지 말고 정진을 계속해야 된다.
이렇게 어느 정도 하다보면 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이 없어지는데 이때에는 구태여 의심을 내지 말고 잡념과 망상 더 나아가서는 잠재의식까지 못 들어오도록 빈 정신 즉 잡념 없는 정신을 계속 쳐다봐야 된다. (관觀해야 된다) 물론 공부가 되지 않은 사람이 도중에 화두의심을 하지 않으면 공부 망한다.
어떤 사람은 본인이 화두가 밀려나가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더라도 화두의심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이 나지 않는다. 의심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은 의정疑情이 생겼기 때문이니 본인은 아무리 애를 쓰고 의심을 해도 생각으로만 의심을 할뿐 그것은 껍데기만 의심이지 간절한 의심이 나지 않는다. 이 공부 경계에서는 화두의심이 나지 않는 게 정상이고 한 단계 진취된 공부 이다.
못 믿겠으면 자신이 직접 해보면 안다.
정진하다말고 공양을 한다든가 해우소에 간다던가. 수각에 가서 씻는다던가. 等 좀 움직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정진하면서 의심을 하면 금방(잠깐)은 화두의심이 난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화두의심은 사라지게 되나니, 이러한 경계를 두고 어떤 사람은 화두의심이 없어졌다고 하여 견성 했느니 화두가 타파됐느니 하는데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고 이제부터 공부시작이란 점을 알아야 된다.
또 중요한 것은 승속을 막론하고 많은 참선 하는 사람이 이 경계에서 염불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자칭 염불선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참다운 조사선이 될 수가 없다.
원효대사가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한 것은 그 시대의 생활 여건상 좌선을 할 수 없는 수많은 민중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한 것임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렇게 잡념 망상 잠재의식이 없는 상태를 지속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두는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들려지게 되는데 그래도 어느 틈엔가 잡념이 들어오나니 이때에는 얼른 정신을 차리어 빈(잡념 없는)정신을 쳐다봐야 되는 데 잡념이 못 들어오도록 잡념이 들어 올 때마다 계속 쐐기를 쳐야 되는데 <수시로 정신 차리는 것> 이것이 이 공부경계의 화두인 것이다.
어쩌다 화두가 잘 들리지 않거나 혼침에 빠지게 되면 얼른 정신을 차리어 혼잣말로 중얼거리듯이 “어째서?!” 하면서 설舌(혀) 신경을 자극하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나게 되어 잡념이 없어지게 된다.
이 경계에서는 척추를 세우고 똑바로 앉아서 정진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무겁고 도도하여 그동안 잘나가던 화두의 힘이 멈칫 거리면서 브레이크 걸리듯이 머리에 들러붙으며 작용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당황하지 말고 척추의 힘을 빼고 머리의 화두의 힘이 순일 하게 밀려가도록 공을 들여야 된다.
이러한 힘을 진리의 기틀이라고 해서 이기理機라고 하는데 고봉선사는 두뇌의 기틀을 보고 이마위에 새가 앉아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하게 되면 흐트러진 정신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정신이 일도一到가 되는데 정신이 일도가 되면 몸도 역시 상응相應해서 변화가 오게 된다. 좌선은 머리로 의심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머리에 힘이 붙게 되는 것이다. 물론 좌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머리에 힘이 붙을 수 가 없다.
머리에 힘이 붙거나 이상한 기운이 생기는 것은 몸과 마음이 서로 둘이 아닌 고로 당연히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며 이것을 상기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상기병이 아니다.
이 힘을 잘 다스리면 약이 되고 잘못 다스리면 독이 되어 고생할 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에 올라온 이 힘을 없애기 위해서 정진하다말고 화두를 놓아버리고 돌아다니거나 기운을 밑으로 내리기 위해서 단전에 의지해서 좌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위에 있던 기운이 없어지거나 밑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실이나 이렇게 되면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이며 다 된밥에 재 뿌리는 격 이 된다.
공부가 중도에서 끝나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똑바로 척추를 세우고 아무리 맑은 정신으로 화두를 들어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음을 물론이고 정진에 진척이 없음을 좌선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알수가 있을 것이다.
이 경계에서는 선방에서는 절대로 정진할 수가 없게 된다.
선방에서는 척추를 바로세우고 정진을 해야 되는데 척추를 세우게 되면 힘이 들어가게 되고 힘이 들어가면 그동안 잘 밀려 나가던 화두가 멈추게 되고 심하면 두통이 오고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는데 참선을 전문으로 하는 수행자들도 이 경계에서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계에서는 혼자 정진할 수 있는 처소에서 자세에 구애받지 않으며 정진을 해야 된다.
아무리 시궁창에다가 코를 박고 정진을 해도 정진이 잘되는 것이 능사能事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몸에 힘을 줘도 화두의 힘이 들러붙고 너무 힘을 빼도 들러붙으니 이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은 오로지 본인만이 아는 고로 스스로 알아서 힘을 빼지도 말고 힘을 주지도 말고 편안한 자세에서 정진을 해야 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며 아무리 힘을 빼고 앉아있어도 정신은 도도하고 뻑뻑하여 불편한데 어쩌다 벽에 기대어 힘을 빼고 정진하면 정진이 잘나감을 본인이 알 것이다.
이렇게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일한 것을 위주로 해서 망상과 잡념 없는 상태를 지속하다보면 벽에 기댄 등어리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방바닥을 향해서 길게 늘어지니 정진하면 정진할수록 힘이 빠지고 이러다가 완전히 자리에누워서 정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와선臥禪의 시초이다.
와선을 하는 것은 편히 쉬기 위함이 아니다.
와선을 하지 않으면 공부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와선을 하게 되면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온몸이 자동적으로 이완弛緩되고 누운 상태에서 화두를 계속 든다는 것은 곧 수마睡魔와 싸움이며 이렇게 하다보면 몸은 서서히 탈진상태에 빠지게 되나니, 누워서 정진하다보면 시간개념이 없어져 밥때를 놓치기가 일쑤이고 그저 공부가 잘나가는 재미로 누워있는 것이지 공부의 진척이 없다면 하루도 생生으로 누워있기 힘들 것이다.
소승小僧의 경우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3년 동안을 꼬박 와선을 했는데 참으로 힘들었다.
특히 뜨거운 여름날 8월 삼복더위에 도솔암의 양철지붕에서 내려오는 태양열을 방안에서 온몸으로 받으며 젊은 사람이 꼼짝 않고 하루 종일 누워있기란 활동을 하지 않으니 온몸의피가 썩는 것 같았다.
와선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진이 여일하게 나가는데 힘은 점점 떨어지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하필이면 이럴 때에 식량이 떨어져 누운 채로 굶었는데 물로 연명하다가 갑자기 태풍이 왔는지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힘이 없어도 간신히 수각에 가보았으나 흙탕물속에 부러진 나뭇가지들만 수북이 쌓여있어 이제는 물도 먹지도 못하고 생으로 굶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거의 탈진상태에서 누워서 악을 쓰며 한편으로는 부처를 원망하면서도 화두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굶으면 굶을수록, 힘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정진은 잘되니 신기하기만 했다.
나중에는 온 몸의 힘이 완전히 탈진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치 뜨거운 물에 눈덩이를 넣으면 순간적으로 녹아버리듯이 정진이 무서울 정도로 잘나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도孤島와 같은 도솔암에서 굶어 쓰러져 죽지 않고 무사히 와선을 마치게 된 것은 부처님의 무한한 가피를 받음임을 확신한다.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게 되면 음푹패인 눈과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나는 이 모습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나옹화상 역시 와선을 했는데 좌선하는 본방本房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지대방에서 아프다고 핑계대고 항상 누워있었다. 다른 스님들은 이 사정을 알지 못하고 젊은 스님이 게으른 늙은이처럼 누어있다고 흉을 봤다고 한다.
나옹스님 자신이 후학後學들에게 와선의 당위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자신의 호號를 게으를(나懶)字에 늙은이(옹翁)字를 썼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선사이다.
대혜선선사의 서장을 보게 되면 종직각(宗直閣)에게 보낸 답장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어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日用四威儀中(일용사위의중) 涉差別境界(섭차별경계)
일용 행주좌와 가운데 차별한 경계에 이르러서
覺得省力時(각득생력시) 便是得力處也(변시득력처야)
(몸의)힘이 덜 들인 것 을 느낄 때가 몰록 힘을 얻은 곳이다.
得力處(득력처) 極省力(극생력)
힘을 얻은 곳에서는 극히 힘을 덜어서
若用一毫毛(약호일호모) 氣力支撑(기력지탱)
만약 털끝만치라도 기력으로 지탱하면
定是邪法(정시사법) 非佛法也(비불법야)
결정코 삿된 법이 되고 불법이 아니다.
정신이 해탈 하려면 몸도 상응相應해서 해탈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될것이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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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솔암 수행일기를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읍니다.
경험에서 온 소중힌 글 잘 앍었읍니다.
정신이 해탈하려면 몸도 상응해야 한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성불하십시요.....()()()
관심을 가져 주시어 감사 합니다.
와선을 일반적인 시각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덕스님 고맙습니다 , 지난번 뵈었을때 하신 말씀에 더하어 상세하게
다가옵니다 , 열심히 정진 하겠습니다 _()()()_
삼보에 귀의하옵고 스님안녕하세요_()_
스님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몸소 공부하시고 보여주시는 말씀이라 귀감과 존경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 저와 같은 재가 우바이는 앞으로 어떻게 화두 공부를 해야하나 라고 하는 우문이 들었습니다. 출가를 한 것도 아니고 한집안의 어미로서 아내로서 또직업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매일틈틈히 드는 화두나, 한달에 한두번 화두정진하는 것만으로는
택도 없다는 말씀같아서
이생에 출가도 안했으니 염불로 바꾸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님 이럴 때 재가 우바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또 하나 우문을 여쭈어 봅니다.
순간순간의 마음을 어느곳에 두어야 하는가요? 순간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리면 화두에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알아차렸구나라고 알고있어야하는지요
어리석은 불자의 우문에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_()_
세속에서 전업 주부로써 계시던 생업에 종사하시던 항상 정신을 차리어 하시는 일을 하시되 잡념 망상이 없어야됩니다.
물론 참선을 하시는 분이라면 화두의심을 움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들어야됩니다.
하시는 일이 단순한 것(설겆이, 또는 걷는운동 등)이면 화두의심이 가능하지만 여건상 복잡한 일(상대편과 대화를 한다던가, 숫자를 계산한다던가)을 하면서 의심을 지속시키는 힘듭니다.이럴때는 하시는 일에 집중하시면 그게 바로 화두이고 수행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수행법은 잡념 망상을 없해기 위함인 것 입니다.
순간순간의 마음은 어디에 두냐고 하셨는데, 가만히 혼자 정진할때는 화두에대한 간절한 의심을 하면 잡념 망상이 없어집니다.그리고 어떠한일을 하는중 이라면 화두의심을 들수있는 단순한 일이면 화두의심을 하고 복잡한 일이면 그 일을 하시되 망상 잡념없이 그 일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참선을 하시는 분이라면 의기소침하시지 말고 계속적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참선하면 좋겠지만 생활 여건상 어쩌하겠습니까? 집에서 직장에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어 정진을 하면 적소성대라고 때가되면 생활하는 그 자체가 참선 이라는 것을 알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왕에 참선을 시작하였으니 계속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스님의 정성스럽고 빠른 답변 지심으로 감사합니다.
스님말씀 명심하며 정진하고 또 우바이 생활도 잘 해나가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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