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강헌모 수필가
제게는 E라는 친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고, 성격도 원만합니다.
제게 차를 태워주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곤 하면 도움말을 줍니다. 때로는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같이 술도 먹었지만 이제 저는 술을 먹지 않기에 만나도 그 친구만 술을 할 때가 있습니다.
10여년전에 그에게 성령쎄미나를 한 번 받아보라고 권면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쎄미나동안 그를 도와 함께 했었습니다. 그때는 저는 성령봉사자로 활동하기 얼마 안된 상태였지만 쎄미나에 응해 준 그가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와 함께 같은 성당과 단체에서 활동해서 생활에 서로에게 보탬을 줄 수가 있어서도 좋기도 합니다. 지금은 인근 성당으로 분가해서 나갔지만.
요즈음 그와 만날 때면 푸근합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10여년을 함께 생활하며서 한 때는 의견차이로 티각태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연락도 안하고 지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어느날, 용기를 내서 먼저 문자로 안부 전하고 만나곤 하다가 친구와 저는 한국장학재단이라는 곳의 장학금에 관한 야기를 하면서 친해졌습니다.
어느날 친구와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는 한국장학재단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냈습니다.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저는 타봐야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후 다음에 만났을 때에도 장학재단의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 재단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읽어보고, 전화문의를 했습니다. 1차 장학신청은 끝났지만 빨리 신청해야 한다는 통화하는 분의 말을 듣고 신경써서 신청했는데, 기간이 아니어서 2차때 다시 신청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부모 동의서를 위한 은행용 인증서를 발급받아 신청했습니다. 신청하고 나서 심사에 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셋째 자녀이상의 유형으로 될 것 같은 느낌은 들었으나 막상 뚜겅을 열어봐야 알 일이었기에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제 딴에는 3백만원정도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아예 한푼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덜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장학금 신청을 한 후 한참을 기다리던 끝에 소득분위 결과를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한것 보다 많은 금액이 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떠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많게 책정된 금액이 없어져서 당황이 되어 문의를 해보니 그 금액은 수령액이 아닌 소득금액이었기 때문에 생각했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나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셋째이상 자녀유형으로 어느정도의 돈을 탈 수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감사하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주로 주는 것이어서 한국장학재단에 기부한 사람들과 국가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의 조언으로 저는 큰 딸의 국가 장학금 신청을 할 수가 있었고,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도움말이 없었더라면 장학금을 놓칠뻔 했습니다. 친구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제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하니 그 사람들도 장학금을 신청해서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아직도 세 명의 자녀들이 대학에서 공부해야하니 예전에 없었던 국가 장학금이라는 것이 생겨서 혜택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습니다. 그만큼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친구는 저와 만날 때면 그의 차로 함께 이동해서 식사를 하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와 친절함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장롱면허 소지자인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합니다. 우리집은 뒤늦게 승용차를 소유했지만. 저는 버스 타는데 익숙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불편할지 모르지만 이미 버스와 친해져 있어서 괜찮습니다. 아내는 제게 출근할 때나 성령기도회관에 갈 때 차를 태워주려고 하는데, 저는 아내를 생각해서 버스타고 간다고 합니다. 두 군데 다 시골이어서 그냥 버스타고 가곤 합니다.
어느날에는 상당산성에 친구 차를 타고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맛있는 파전과 생두부와 청국장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밑반찬도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후, 운치있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메리카노와 고구마 라떼를 주문해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생각을 교환했습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저는 몇 번의 고구마라떼를 먹었습니다. 평일이어서 사람이 없으니 한적하고 좋았습니다. 그런 조용한 곳에서 글이나 시를 쓰기에 좋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에 상당산성에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친구가 추천해준 음식점에 가고 싶습니다. 그곳은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어려울때마다 제게 힘이 되어준 친구이기에 요즘에는 그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하게 생활해도 사회생활에서 2등만 하는 제가 인사발령 났을 때에도 부르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곤 한 사람입니다. 오래전에 저보다 연배인 공채 동기가 있었는데, 그는 개신교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가 저에게 천주교 골수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신앙과 사회생활에서 분별력있게 잘 생활해야 하는데, 신앙인이어서인지 고통이 따르곤 합니다. 천주교신자치고는 성경을 많이 읽었다 하는 교만함이 있을때가 있어서 부끄러울때가 있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술을 끊어서 일을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산적으로 생활하면 분명 저는 편하고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이니 그들을 차별없이 도와주고, 사랑해야 하며 홀로서기를 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힘든 생활하면서
25년이상 살아준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친구는 제게 고통이 있을때도 같이 걱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고 여러차례 제 입장을 헤아려 주는 일은 결코 십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신앙인으로서 의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도 이해하고 말을 들어주며 돕고 삽니다. 그런 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해서 용기와 힘을 내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야 하리라 봅니다.
청주 1인1책에서 머리말에도 조언을 해준 친구이기도 해서 그의 말을 참고로 삽입했기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이라 성당, 집, 도서관에 가는 것을 다람쥐 체바퀴 돌듯 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여행을 갈때가 있지만 말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런 생활은 부드러움이 없어서 팍팍할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리고 재미도 없고.
제 할 일만 하니.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해야 둥글둥글한 인생을 살 것인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의견차이로 다투기가 쉽기도 하고요.
그나마 지금 만나는 친구가 있어서 안도의 숨을 쉴수는 있어서 작은 위안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자끼리나 남녀의 사랑은 언제 어느 시각에 변하게 될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할때는 엔돌핀이 돌고,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카페에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잘 대해주지 않는 사람은 나쁜사람이라고. 인간은 나약해서 하루에도 마음이 많이 변하고 자기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가르침 받기를 싫어합니다.
친구와 족히 10여년을 그런대로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의 말을 잘 들어 주고 받으니 좋습니다.
나이가 같은 친구와 성당에서 만나서 성령을 체험해보라는 뜻에서 성령쎄미나를 받은 계기로 친구가 되었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고 생활해서 마음 뿌듯합니다.
2015. 5. 27.
첫댓글 친구에 대한 명언을 찾아보면 많은 친구를 가져야 하느니라..라는 명언은 보기 힘들더군요. 하나면 족하고 많아야 두엇?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전 제가 모시고 다니고 밥 사고 차 사고. 매너 좋은 남친처럼 굽니다. ㅋ 잘 읽었습니다.
기브앤 태이크 조언 감사합니다
@강헌모 에구..감히 조언 절대 아니구요, 단순하게 제 경험입니다.(제가 뭔 조언을 했다꼬..;;;) 어떤 의도를 뒤에 숨기고 얘기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충고, 조언은 딸에게만 어쩌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