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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乘 起 信 論
강 의 내 용
☞ 기신론이가해 (참고서)
☞ 기신론대역본
☞ 기신론대역본 보충
☞ 학인스님들
☞ 인용문
(2) 報身을 밝히다
조금 뛰어난 분들은 뭘 봅니까?
완전히 신심을 얻어서 발심을 해서, 그죠?
수행을 열심히 해서 보살구경지까지 가서
마음으로 보는 바의 것을 의지하니
이것을 보신이라고 말하니
身有無量色하고 色有無量相하며 相有無量好하고
몸에는 한량없는 색(色)이 있고,
색에는 한량없는 상(相)이 있고,
또 상에는 한량없는 호(好)가 있고,
相好 이것 잘 아세요?
자~ 여기 보십시오.
상은 이겁니다.
32상은 이렇게,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고,
80종호는 여기에 미미하게,
相이라고 하는 거는 육안으로 간파할 수도 있고 그냥 대충 간파할 수 있지만,
好는 어때요?
세밀하게 이~렇게 들여다 보는 것, 카메라가 있구나...
이렇게 무슨 보석을 그냥 이렇게 보는 거는 相만 봅니다.
보석을 이~렇게 보면, 어때요?ㅎㅎㅎ
이렇게 보면 好, 그렇게 보면 커~다란 문양도 있고, 뭐도 있고 하잖습니까?
그러면 몸은 더 거칠고, 몸은 저 산 덩어리와 같고,
相은 산의 바위와 나무를 구분하는 정도고, 그죠?
好는 그 바위의 재질과 나무의 그런 꽃과 이런 향기,
세~밀하게 그걸 갖다가 성질을 다 파악하는 게 뭡니까? 好.
이해가세요?
사람이라면, 이 사람 덩어리가 하나 보이면,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람이라면, 이게 몸이고,
상 이러면 남자 여자 좀 나눠놓고,
好 이러면, 혈액형이 뭐냐, 전라도가 고향이냐, 경상도가 고향이냐,
성이 뭐냐, 이러면 好쯤 되는 거죠.
몸에는 한량없는 색(色)이 있고,
색에는 한량없는 상(相)이 있으며,
상에는 한량없는 호(好)가 있고,
所住依果도 亦有無量種種莊嚴하야 隨所示現호미
卽無有邊하야 不可窮盡하며
머무르는 바와 의지하는 과보도
또 한량없는 갖가지 장엄이 있어서
시현하는 바에 따름이
곧 끝이 없어서
다할 수 없으며
지금 돌아보세요.
눈을 들어서 돌아보면 다~ 알 수 없어요.
이 유위의 세계가 다 알 수 없는 것은
우리 무위의 세계가 그렇게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離分齊相이요 隨其所應하야 常能住持하야 不毁不失이라
如是功德은 皆因諸波羅密等의無漏行熏과 及不思義熏之所成就라
具足無量樂相일새 故說爲報身이니라
분제의 모양을 여의었고
그 응하는 바를 따라서
항상 능히 잘 주지하여
헐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공덕은
모든 바라밀들의
무루행의 훈습과
부사의한 훈습의 성취하는 바이다.
한량없는 즐거운 상을 구족하니
그러므로 보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잡념만 떨어지고 나면 보신을 볼 수 있어요.
보신은 과보의 받는 몸인데, 여기 있으나 저기 있으나 항상 같은 것이고,
응신은 쪼그라들어서 못난 사람에게는 못난 대로
잘난 사람에게는 잘난 대로 이렇게 나타나죠.
범부는 이렇게 조금 이러니까 거친 응신을 본다.
다시 이제 응신, 보신에 대해서 두 번째 재차 정리하는 겁니다.
2) 應身과 報身을 再次 밝히다(三)
(1) 不覺으로 應身을 보다
又爲凡夫의 所見者는
是其麤色이라
또 범부의 보는 바는
그것은 거친 형색이다.
왜 거친 형색입니까?
생각이 거치니까 보는 것도 거칠다.
지금 요즘 이렇게 호랑발톱 가시나무꽃이 늦가을 되면 피기 시작해서
저렇게 향기롭고, 향기가 난초향이 뻗어가듯이 달~콤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지나가다 보면 우리 강사 스님하고 어제도 포행하다 보면
꽃도 다 지고 없고 잎도 지고 없는데 저 나무는 단풍나무다,
그리고 저 나무는 당단풍이다, 저것은 청단풍이다, 저것은 청매실이다,
저 꽃에는 홍도화다, 꽃도 없는데 꽃을 다 봅니다.
저것은 노란 꽃이 피는 은행이다.
멀리서 이 한겨울에 낙목한천 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고도
개나리가 있는 자리는 노~란 물줄기가 흐르고,
호박꽃은 호박이 노란 꽃이 피니까 열매도 노랄 것이고,
박꽃은 흰 꽃이 피니까 박 속도 흴 것이요,
배꽃은 흰 꽃이 피니까 배 속도 흴 것이다.
복숭아꽃은 핑크빛이니까 익으면 열매도 그럴 것이요.
대부분이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돼 있고.
두꺼운 꽃이 피면 열매 껍질도 두껍고, 얇은 것은 열매도 얇고,
매실은 꽃이 이만하니까 이만큼 밖에 못 열리고,
호박꽃은 크니까 열매도 크고,ㅎㅎㅎ
송화도 이렇게 피는 것 보면 솔방울이 그렇게 송화 모양으로 같이 열리고,
그리고 소나무 줄기도 송화와 똑같고, 솔방울과 똑같고,
소나무 뿌리도 똑같고, 솔 이파리도 그렇게 생겨먹었고,
모~든 것이 뿌리서부터 잎사귀 끝까지, 뼈 속까지.
사람도 그 사람 이렇게 쳐다보면 저 사람이 한 번 말 딱 뱉을 때 들어보면
한 번만 딱 들으면 압니다. 보고 듣고.
이 사람이 속에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해서 움직였다 하면 간파돼버려요. 그냥.
마치 대의 삼장하고 南陽 慧忠國師혜충국사 하고 얘기할 때
이렇게 쳐다만 봐버리면 내한테 생각이 있는지 훤히 알아버리잖아.
그것이 이제 낮에 햇빛을 모아서 피는 꽃도 있고,
달빛을 모아서 피는 꽃도 있고, 약초 같은 꽃은 저 별빛을 모아서 피니까
산삼꽃이 그렇게 피죠.
이 중들은 전부~ 별빛이 저 아스라한 별빛이
그냥 따스한 기운도 없는 별빛을 모아서
이런 책 기신론 같은 것, 화엄경 같은 것, 먼 전설 같은 빛을 모아서
자기의 마음의 꽃을 피어야 돼요.
제가 시인처럼 안 느껴져요? ㅎㅎㅎ
잘 몰라서 그렇지....ㅎㅎ
여기서 거친 사람은 거칠게 보고, 보드라운 사람은 보드랍게 본다.
왜 그러느냐?
비유로 말씀드리자면 이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
물과 같아서 둥근 잔에서는 둥글게 물 모양이 형성되고,
모난 그릇에는 모나게 형성돼서 이제까지 많~이 보고 듣고 했죠?
그러나 결국은 그릇이 파괴돼서 깨져버리면
그 잔에는 달이 결코 떠오를 수 없다.
왜 지혜의 달이 안 떠오르느냐?
이 선정삼매라고 하는 것은 그저~ 강철같이 굳센 그런 느낌이 아닙니다.
선정 삼매는 여러분도 깊~이 하면 얼마나 재밌습니까?
선정 삼매는, 제가 느끼는 선정 삼매는 바람 같은 것도 아니요,
딱딱한 고체 같은 것도 아니요, 물과 같은 것이라. 유연~한 거야.
인생이 유약하게 사는 것 하고 유연하게 사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르거든.
그러니 유연~한 선정의 물결이 담겨지면
거기에 지혜의 달이 뜨지 않을 까닭이 없어.
그런데 계율이 엉망진창이라서 그릇이 질질 새든지 팍삭 깨져버리면
선정이 담길 수가 없으니까 지혜의 달이 떠오를 리가 없는 것이라.
거짓말하는 놈이 선정 맛본다는 거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남 해코지하면서 선정, 그거는 잡념이나 있을 뿐이지, 욕심이라 욕심.
겉으로는 이렇게 하지... 거룩한 척... 겉으로야 얼마든지 하지.
'아~또...범부의 보는 바는 그것은 거친 형색이다.' (느끼한 목소리로)
전형적으로 사기꾼들의 목소리가 그렇습니다. 느끼~ 하죠.
그런 사람들 이래 보면 신발을 질~질 끌고 돈 빌려주면 절대 안 갚습니다.
그런 걸 기신론이라든지, 불교의 이치를 보다 보면,
생멸의 이치가 눈에 환~하게 들어옵니다.
흰 꽃에는 무슨 꽃? 흰 열매.
붉은 꽃에는? 붉은 열매.
그래서 석류꽃도 붉고 석류 알갱이도 붉고, 처음 알았어요?
자주 꽃에는 자주 감자, 흰 꽃에는 흰 감자, 그 시 있죠?
그런 걸 한 번 보고 듣고도 그렇게 귀가 안 뚫혀요? ㅎㅎ
그러면 다른 것 응용해서 싹~ 보면 되는 거라.
그러면 산천초목이 두두물물이 풀은~ 풀 대로 이쁘고,
법화경 약초유품에 나오는 것 있잖아요?
큰~ 나무는 대보살들에 비유하고
작은 잡초들은 도를 안 닦는 일반 민생들에 비유하고,
약초 같은 경우는 성문들에 이제 비유해서
약초라고 제목을 지어서, 하늘에서 비가,
일심법에서 지금 여기 얘기하는 청정법신에 무한한 법비가 쏟아지면
자기 그릇만큼 쫀쫀~하게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이라.
그래서 풀은 풀대로 물 빨아먹고, 나무는 나무대로 물 빨아먹고
독초는 독초대로 물 빨아먹고, 약초는 약초대로 물 빨아먹는데,
우리 중들은 다~ 별빛 모아서 피는 약초 같은 사람들이라.
蛇飮水사음수하면 成毒성독하고 牛飮水우음수하면 (成乳하니) 약초된다.
또 범부의 보는 바는
그것은 거친 형색이다.
隨於六道하야 各見不同하고 種種異類라
육도를 따라서
각기 보는 것이 같지 아니하고
육도윤회를 따라서 축생이 어떻게 사람하고 똑같이 보겠어요. 그죠?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금강경에 육조스님 이렇게 나오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꾸짖지 않는다. 탓하지 않는다.
아니 축생 같은 놈을 보고 인간같이 봐달라고 하는 그 사람이 틀렸나~
못 따라오는 놈이 틀렸나~ 누가 틀렸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쳐다보고 난 뒤에
저게 대충 아직 업이 덜 녹아서 축생같이 산다 싶으면
간섭하지 말고 지 갈길 데로 가도록 놔두는 게 좋아요.
그걸 由他라 그래요. 由他.
由他! 자유!
나에게 자유를 얻고 싶으면, 나를 말미암은 자유를 얻고 싶으면 由他,
그 사람으로 말미암은,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주는 게 좋고,
不要利他불요이타라, 바로 잡으려고 하지는 말아라.
自利가 利他라. 내가 이로우려면 남을 이롭게 하듯이
내가 자유로우려면 남에게도 由他해야 되는데
나는 자유롭고 싶고 남은 꽁꽁 묶고 싶은 사람들은
그거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요.
非受樂相일새 故說爲應身이니라
즐거움을 받는 모양이 아니기에
그러므로 응신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2) 相似覺으로 報身을 보다
초발의 보살이 보신을 보다
復次初發意菩薩等의 所見者는
또한 초발의 보살들의
보는 바는
초발의 보살 이하 진정으로 신상응지에서 발심해서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들이죠? 그죠?
以深信眞如法故로
깊이 진여법을 믿는 까닭으로,
저 같은 사람이요.
깊~이 진여법을 확신을 가지고 믿는 사람인 까닭으로
少分而見하야 知彼色相莊嚴等事가
無來無去하며 離於分齊하야
조금이나마 보아서
그 색상과 장엄 등의 일이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온~갖 분제를 여의어서,
한계를 여의었다, 이 말이죠.
분제를 여의어서,
惟依心現하고 不離眞如니라
오직 마음을 의지하여 나타나며
진여를 여의지 아니한 줄 안다.
어떻게 진여를 여읠 수가 있나요?
진여를 여의지 아니한다.
그러나 우리는 근기가 좀 부족하기 때문에
然此菩薩은
猶自分別하나니
以未入法身位故라
오히려 스스로 분별심을 내어서
아직 법신의 지위에는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법신의 지위에 들어가면 드디어 상속상이 끊어져서
초지 환희지 견도지로 들어가죠?
그래서 만약 청정한 마음을 얻으면, 뭡니까?
정심지, 아까 뭐라 했습니까? 환희지 내지 정심지.
그 다음에 보는 바가 미미해진다.
잡념만 없으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나 싶어서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 나온 날같이,
들판에 가면 온~갖 꽃이 왜 저래 많으냐 모른다.
하!~ 들판에 가서 물어 봤죠. 산에 다니면서.
내가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제가 이 세상에 왔다는 이유로
꽃이 더 많아졌다는 거야. ㅎㅎ
그런데 지 욕심 많고 먹고 살 놈이 많은 거는
옆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 있고 누가 있더라도 뭐가 보입니까?
안 보이는 거라.
예를 들자면 자기 애들이 학교 가 있고 이런 사람들은,
부모들이 그렇겠죠.
학교 운동장에 가면 누구만 보여요?
자기 애만 보이는 거라.
한 번 법계를 갖다가 눈을 열고 이렇게 해서 滿目靑山이요,
눈을 뜨고 청산이 내 눈에 가~득~히 들어오면
그때부터 어느 것이 법 아니고 어느 것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냐,
이 말씀이죠.
신기하잖아요?
저~기 공양간 옆에 천궁인가...잘라놨는데...보면
대궁이가 안에 구멍이 뚱! 뚫혀 있잖아요.
갈대도 속이 텅 비어 있잖아요.
대나무도 속이 텅 비어 있잖아요.
그것이 속이 꽉 차 있으면 바람 불면 꺾어져버려~
안에서 진공을 유지하고 있고, 하!~ 신기하다! 신기하고 신기하다!
대나무가 이렇게 눈이 올 때 한 번 쓰러졌잖아요.
그 작은 가는 줄기가 턱~ 버티고 있으니까 안에 비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
마디마디 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사니까 답답~하니...
설해목이 돼서 대나무가 꺾어지는 것도 이렇게 보면
눈이 오는 날 대나무가 턱~ 쓰러지면 다 눕지요.
누우면 뚝! 뚝! 뚝! 소리가 나.
부러진 것들을 보면 빼딱~한 것들,
이렇~게 이렇~게 된 것들이 꺾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해.
곧은 대나무들은 갔다가 털고 일어서.
소나무도 마찬가지.
가지가 좀 많든지 욕심이 많은 것들은 그저 다 찢어져버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데는 가지를 뻗지 않고
그냥 몸통 속에서 솔 이파리를 내버려. 정상 같은 데,
산 정상에 가면 소나무가 키가 다 어떨 것 같아요?
작아. 지도 살아야 되고 나도 살아야 돼.
그런데 그게 이치요. 너무 자연스러워.
사람 마음 씀씀이도 그와 같아야지.
낯설고 험한 데 가서는 이렇게 쪼그라들어서...
지하철 타면 우리도 이래야 돼.ㅎㅎㅎ
거기 가서 쫙~ 이래가지고 위압감 느끼면 안 되고
완전 반푼수 비슷~하게 그렇게 다니는 겁니다.
재밌지 않아요?
자!~ 중 삭발했는 머리에다가 면류관 쓰고
지 훈장 몇 개 달아서 뭐 할 거에요?
중의 훈장은 삼매요.
그러니 이 기신론을 통해서 분명히 그런 길로 가야 되고!
여러분들이 참 남으셔서 공부하시는데
제가 여러분들 덕분에 요즘 공부를 참~ 많이 하고
대학원 스님들이야 원래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니까
면면으로 보더라도 그렇지만, 화엄반이 더 고맙고 그렇습니다.
(3) 業識을 여의고 법신을 보다
若得淨心하면 所見이 微妙하야 其用은 轉勝하며
乃至菩薩地盡하야 見之究竟이라
만약 청정한 마음을 보면 미묘해집니다.
그 작용은 더욱 수승하여
보살지가 다함에 이르러서,
십지보살이 다 끝난다, 이 말이죠.
완전한 성인중의 성인이 돼 가면 보는 것이 더욱 더 완전하다.
사람 눈동자가 가만히 보이지 않잖아요?
하!~ 소리도 그렇고, 종소리 하고 이게 다~ 달리 들려요. 새소리도 그렇고.
이때부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고 소리가 당겨옵니다. 당겨 와.
왜 입맛 당긴다 하잖아요?
입맛 당기듯이, 사람이 당겨오기 때문에
사람에게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라.
웬지 저 사람한테 뭐 좀 당긴다 하잖아요?
아니 그런 소리 안 써요?
부처님은 온~ 만 중생한테 당기는 거라.
그런데 우리는 당기는 게 아니고 엉기는 거라.ㅎㅎㅎ
엉겨 붙어서... 엉기면 안되지. 당겨야 돼.
당기면 베풀어주지 않을 사람이 없어요.
웬~지 정이 간다 하잖아요? 웬지~
자기의 마음을 열면 열수록,
그래서 무한하게 기쁘고 좋은 일이 있으면
괜~히 아무 일도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다가
'아이고! 우리 잔치집인데 들어와서 뭐 먹고 가라.'고
이렇게 기분 좋은 날 그렇게 하다가
기분 팩~ 틀어져놓으면 산해진미를 진수성찬 갖춰놓고도 누가 먹으면
'놔둬라! 아직 어른도 안 먹는데...' 하고 탁 치고 그러잖아.~
그게 다~ 지금 어떻게 그렇게 잘 써놨노....
若離業識하면 則無見相이니
만약 업식을 여의면
곧 보는 모양이 없으니
무상이 되면 무상이 바로 무주요, 무주가 바로 무위요,
무위가 바로 무념이요, 무념이 바로 무심이요, 이것이 바로 부처다!
以諸佛法身은 無有彼此의 色相으로迭相見故라
제불의 법신은
피차의 색상으로
서로 번갈아 보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佛佛而不相見이다
부처님께서는 서로 본다? 못본다?
볼 필요도 없다. 눈 감고도 부처니까.
오죽하면 캄캄한 밤에 만져 봐도 중이라 하잖아요?
3. 色心不二를 설하다
問曰 若諸佛法身이 離於色相者인댄 云何能現色相이니잇가
答曰 卽此法身은 是色體故로 能現於色이니라
묻는다.
만약 제불의 법신이
색상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색상을 나타낼 수 있는가?
답한다.
이 법신은
색의 본체인 까닭으로
능히 색을 나타낼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말이죠.
여기서부터는 성인의 뜻을 쭉~ 나타내고 있는 것인데
所謂從本已來로 色心不二니 以色性이 卽智故로
이른 바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로 비롯됐다는 거죠.
색과 마음이 둘이 아니니, 色心不二라고 해놨죠?색의 성품이 곧 지혜인 까닭으로
이것도 좀 시간만 되면 싹~풀이해주면 참 재밌겠는데...
色體無形호믈
說名智身이요
以智性이 卽色故로
說名法身이
徧一切處니라
所現之色이
無有分齊하니
隨心하야
能示十方世界의
無量菩薩과
無量報身과
無量莊嚴이
各各差別호대
皆無分齊하야
而不相妨하니
此는 非心識分別의 能知니
以眞如自在用義故니라
색의 본체가 형상이 없음을
지혜의 몸이라고 말하고,
이 지혜의 성품이
곧 색인 까닭으로
법신이라 말하는 것이
모든 곳에 두루하다.
나타낸 바 색이
분제가 없으니
마음을 따라서
능히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보살과
한량없는 보신과
한량없는 장엄이
각각 차별하여 시현하되
모두 분제가 없어서
서로 방해롭지 아니 하니
이것은 심식의 분별로는 능히 알 게 아니니
진여의 자재한 작용의 뜻인 까닭이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식적인 것은 정말 무가치합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형식적인 예불, 형식적인 법문,
저는 오늘 와서 참~ 이렇게 3일 동안 기쁘고 즐거운 게
근자에 들어서 이렇게 형식을 벗어나서
진심으로 제가 참 꿇어 앉아서 강의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느끼는 것은 모처럼만인 것 같아요.
그냥 마지 못해서 의무적으로 들어야 되고, 해야 되고, 이런 것 많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때 연말이라든지
어디 종단에 학교같은 데 가서 법문 좀 해달라고 하면
명색이 학장직을 맡고 있으니까 누가 이렇게 요청해서 하기는 하는데
한 번씩 스쳐가는 지나는 건단지는 행사, 그죠?
그 이상 그 이하의 것도 아니고,
법문은 홍수처럼 쏟아지고, 강의는 봇물처럼 터져 흐르는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정말 자신에 대해서 신심을 일으키지 못하느냐?
부처님한테 몰라도 억울하지 않고, 부모형제를 몰라도 억울하지 않는데,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광대무변한 정신세계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외면하고 사니까,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지 않으세요?
안타깝잖아요. 안타깝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이렇게 살아가면서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산이 절~대 고달프지 않습니다.
히말라야 가든지, 남들이 볼 때는 고달파 보이지만,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지 않아요.
어떤 힘든 일을 하더라도 힘들지 않는 것은
그 일을 갖다가 우리 법화경 같은 데서는
오늘은 또 법화경이 나오노... 어제는 서장이 나오더니...
안락행이라 합니다. 안락행.
안락행품에 보면, 사홍서원도 이제 그쪽 부분에서 나오죠.
안락행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힘든 일을 하더라도
힘든 것을, 고난을 못 느껴요.
힘든 일은 이제 더욱더 없어지죠.
안락행이 안 되는 분들은 부산에 가면 안락동이라고 있어요.
거기라도 가서 사셔야 돼요.ㅎㅎㅎ
충렬사 옆에... 있죠? 충렬사 이러니까, 절 아닙니다.
동래고등학교 옆에 안락동.
그 옆에는 또 명장들이 많이 나서 명장동도 있고 그래요.
자~ 조금 더 봅시다.
여기까지는 지금 뭡니까?
아니...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가는 건 두 번째 치고,
거기까지가 저~기 삼대, 그죠?
의장문 삼대가 비로소 끝나고, 또 다른 대단락, 어딥니까?
Ⅱ. 生滅門에서 眞如門으로 들어가다
生滅門에서 眞如門으로 들어가다,
이것 말고 1단락이 있었어요?
그거는 뭐였을까요?
법과 의를 자세히 해석하다
기억나시나요?
네
몇 페이지?
18 P 입니다. 보이세요?
네
법과 의를 자세히 해석하다
그래서 입의분에서 세운 법을 해석하고,
거기서 또 의장문을 해석하고,
그 다음 단락에 뭐가 나왔어요?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가다
단락 구분 확실히 갔죠?
네
이것은 조금 전 앞에 나오는 단락하고 전혀 다른 것이라.
그러니까 지금 기둥이냐, 서까래냐, 대들보냐, 구분을 잘 하셔야 돼요.
지금은 한~ 대들보쯤 되는 단락입니다. 그죠?
네
앞에 것은 서까래에요. 그죠?
자! 보세요.~
잘 이해가 안 가시는가 보네... 이것은 별로 중요한 건 아닌데...
나무 줄기가 이렇게 쪽~ 돼 있으면 이 가지도 있고, 이 가지도 있고,
지금 이렇게 가지 타고 올라가잖아요?
작은 가지도 있고, 여기도 가지도 있고, 여기도 가지도 있고,
이렇게 이런 게 많아요.~
그렇게 쭉~ 큰 가지 타고 오다가, 이 가지에서 이리로 빠져서 무슨 문?
법장문.
이리로 빠져서, 의장문 하고, 다시 이 가지 줄기로 돌아온 거에요.
원줄기로. 네?
네
이것도 다 끝나고, 이거는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가다,
하는 대목이 여기 이 밑에는 뭐가 있었죠?
법과 의를 자세히 해석하다, 여기 두 갈래로 쫙~ 쳤다가
얘들 끝내고 다시 일 마치고 들어왔다, 이 말입니다.
네~
그런데 저런 것은 뭐 알아봤자 소용은 없어요. ㅎㅎ
소용은 없지만 갈래는 칠 줄 알아야 글이 빨리빨리 들어오거든.
이런 것을 안 해놓으니까 뭐~ 암까마귀인지 수까마귀인지 몰라요.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가다
復次顯示從生滅門하야 卽入眞如門하니라
所謂推求五陰인댄 色之與心이라
또한 생멸문으로부터
진여문에 들어감을 현시한다.
이른 바 오음(五陰)을 추구하건데
물질과 마음이다.
오음은 색수상행식은 뭐죠?
색은 물질이요, 수상행식은 마음이다.
이것이 총괄적으로 설명을 하고 난 뒤에 먼저 색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六塵境界가 畢竟無念이라
육진경계가
필경에 무념이다.
육진경계가 필경에 무념이다.
그 다음에 이제以心無形相일새 十方求之하되 終不可得이니라
마음이 형상이 없기 때문에
시방에 구하여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거는 한문으로 좀 읽겠습니다.
以心無形相일새
十方求之하되
終不可得이니라
如人迷故로
謂東爲西나
方實不轉하니라
衆生도 亦爾하야
無明迷故로
謂心爲念이나
心實不動하니
若能觀察하야
知心이 無念인댄
卽得隨順하야
入眞如門故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미혹한 까닭으로
동쪽을 일러 서쪽이라 하지만
방향은 실제로 바뀌지 아니한다.
중생도 또한 그러하여
무명에 미혹한 까닭으로
마음을 일러 생각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실제로 움직이지 아니한다.
만약 능히 관찰하여
마음이 생각이 없는 줄 알면
곧 수순함을 얻어서
진여문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능엄경에서 이렇게 여러분들 했었죠?
이것도 어제 했나요?
三際求尋삼제구심에 心不有요,
과거 현재 미래, 여기는 시방을 구하여도 하지만,
시방이나 삼세나 똑같죠? 시방삼세 아무리 구하여도
心, 마음은 不有, 있다? 없다? 있지 아니하다.
心不有, 마음이 있지 아니한 고로
妄原無라, 망상이 원래 있다? 없다? 무, 없다.
妄心無處, 망상심이 없는 그 자리가 卽菩提다. 깨달음이다.
그러고 나니까 어! 妄本淨이요, 心本淨이요, 妄本空이라,
망상은 본래 공하고 진심은 본래 청정해서 없구나.
그러고 나니까 생사가 무슨 의미가 있고, 열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피곤하면 잠자고, 또 자고 ㅎㅎㅎ
자꾸 자고, 많이 자가지고 조실스님 되고.
巖頭암두 全割전할선사가 꼬~박 꼬~박 졸고 게시니까
이때 雪峰설봉 義存의존 선사가 한 말씀 하십니다.
“사형님 그리 주무시면 됩니까?
내가 여기저기 다니다가 스님 믿고 여기 와서
선방에서 공부 좀 하려고 왔더니
내가 용학이 같은 놈 만나서 힘들게 고생하다가
이제 스님 만나 공부하려니까
왜 그렇게 화두는 안 들고 주무시느냐?" 고
암두 전할 선사가 성격이 우리하고 비슷하죠.
“뭐라고? 누워서 잠이나 자라~”
“네?”
“니나 잘해라.~”
“네?”
“앉아서 괜히 망상 피우지 말고 잠이나 자라! 차라리~”
“안 주무셨습니까?”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봐라.”
안 물으면 넘어가겠습니다.ㅎㅎㅎ
남은 볼 때는 꼬박 꼬박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망상 피울 바에는 뭐하는 게 낫다?
잠자라 잠자라 자라 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ㅎㅎㅎㅎㅎ
더자라 덜자라 하는 게 전부 다 차라리 망상 피우지 말고 자라!
잘자라 잘자라
여러분들도 이제 기신론 한다고 지금 생~ 용을 쓰고 있잖습니까?
이것 어째 끝날지 모르겠다.
한 시간 지났는데... 좀 더 어떻게 해야 되겠죠? ㅎㅎㅎㅎ
그 다음에 對治邪執대치사집
둘째, 삿된 집착을 대치하다(三)
여기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자~ 삿된 집착을 대치하다
두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는 뭐죠? 인아견
하나는 법아견
나중에 자세한 건 어디에서 본다? 참고서에서 본다.
Ⅰ. 對治邪執의 대의를 총표하다
對治邪執者는
一切邪執이
皆依我見하니
若離於我하면
則無邪執이니라
삿된 집착을 대치한다는 것은
일체 삿된 집착이
모두 아견을 의지하니
어디에? 아견.
아견을 의지했다 하면, 아견 아만 아애 아치, 그죠?
만약 이 아견만 빠져버리고 나면, 이 종기만 도려내고 나면,
곧 삿된 집착이 없을 것이다.
Ⅱ. 對治邪執을 자세히 해석하다(二)
삿된 집착을 별도로 이제 자세히 해석합니다.~
是我見에 有二種하니
云何爲二오
一者는 人我見이며
二者는 法我見이라
이 아견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인아견이며
하나는 법아견이다.
ⅰ) 人我見을 대치하다(五)
人我見者는
依諸凡夫하야
說有五種하니
云何爲五오
인아견이라는 것은
모든 범부를 의지하여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인아견이라는 것은 자기 주재자가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1] 虛空이 如來性이라 집착하다
一者는 聞修多羅에 說하사대
如來法身이 畢竟寂寞호미
猶如虛空이라하고
以不知爲破著故로
卽謂虛空是如來性이라하니
云何對治오
明虛空相은
是其妄法이라
體無하야 不實이언마는
以對色故로
有是可見相하야
令心生滅하나니
以一切色法이
本來是心이요
實無外色이니
若無外色者인댄
則無虛空之相이라
첫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여래법신이 필경에 적막함이
마치 허공과 같다함을 듣고는
집착을 깨뜨리기 위한 말인 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곧 말하기를 허공이 여래의 성품과
그것이 바로 여래의 성품이라고 하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느냐?
말하자면 허공상은
그 허망한 법이다.
본체가 없어서 실답지 못하건만
색을 상대한 까닭으로
이를 가히 볼 모양이 있어서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하게 하나니
일체의 색법이
본래 이 마음이요
실제로 바깥의 색이 없으니
만약 바깥의 색이 없다면
곧 허공의 모양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원각경에는 어떻습니까?
無邊虛空무변허공이 覺所顯發각소현발이라,
그런데 그것 해석 잘못해서 큰일 났다 했죠?
또 능엄경에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空生大覺中공생대각중하니 如海一漚發여해일구발이라.
저 넓은 허공도 실제적으로 어디에서 생겼어요?
우리 마음에 비하면 거품과 같은 것인데
그 허공상 하고 여래성 하고 같이 비교해서야
돌대가리 아닌 다음에야 다이아몬드하고
어디 감자하고 바꿔 먹어버리는 것 하고 똑같죠?
부피가 비슷하다 해서 질이 비슷한 건 아니죠.
所謂一切境界가
惟心妄起故로 有하니
若心離於妄動하면
則一切境界가 滅하고
惟一眞心이 無所不徧하니라
此謂如來廣大性智의
究竟之義요
非如虛空相故니라
이른 바 일체 경계가
오직 허망하게 일어난 까닭으로 있을 뿐
만약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임을 여읜다면
곧 일체의 경계가 없어지고
오직 하나의 진심이
두루하지 아니한 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말하기를 여래의 광대한 성품인 지혜의
완전한 뜻이라 하고
허공의 모양과 같지 아니한 까닭이다.
[2] 世․出世法이 없다고 집착하다
二者는 聞修多羅에 說하사대
世間諸法이
畢竟體空하며
乃至涅槃眞如之法도
亦畢竟空할새
從本已來로 自空하야
離一切相이라하고
以不知爲破著故로
卽謂眞如涅槃之性이
唯是其空이라하니
云何對治오
둘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세간의 모든 법이
필경에 자체가 공하며
내지는 열반 진여의 법도
또한 필경에 공하다.
아까 열반 진여의 법이 상속한다고 했죠?
본래로부터 스스로 공하여
일체의 상을 여의었다함을 듣고는
집착을 깨뜨리기 위한 말인 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곧 말하기를 진여 열반의 성품이
오직 그렇게 공하다고 하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는가?
이것은 우리 90퍼센트 다 이런 생각 가지고 삽니다.
明眞如法身은
自體不空하야
具足無量性功德故니라
설명하자면 진여 법신은
자체가 공하지 아니하여
한량없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까닭이다.
조금 전에 체대 상대에서 어디에서?
의에서 해석했죠? 앞에도 해석했고.
[3] 染淨差別이 있다고 집착하다
三者는 聞修多羅에 說하사대
如來之藏은 無有增減하야
體備一切功德之法이라하고
以不解故로
卽謂如來之藏은
有色心法自相差別이라하나니
云何對治오
以惟依眞如義說故요
因生滅染義하야
示現說差別故니라
셋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여래장은 더하거나 줄어듦이 없어서
체가 일체공덕의 법을 갖추었다함을 듣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곧 말하기를 여래장은
색심법의 자상차별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는가?
오직 진여의 뜻을 의지하여 설한 까닭이며
생멸에 오염되는 뜻을 인하여
시현함에 차별을 설한 까닭이다.
지금 보니까 의라든지 법이라든지 이런 데서 다 얘기했던 거죠.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나오는 인아견 법아견이라고 하는 건
외도의 소견이 아니라 불교내의 설명했는 소견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집착심을 가지는 것을 파하기 위한 것입니다.
[4] 生死染法이 있다고 집착하다
四者는 聞修多羅에 說하사대
一切世間의 生死染法이
皆依如來藏而有일새
一切諸法이 不離眞如라하고
以不解故로
謂如來藏自體에
具有一切世間의
生死等法이라하나니
云何對治오
넷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일체 세간의, 원효스님도 그렇게 해석을 해놓으셨어요.~
넷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일체 세간의 생사염법이
모두 여래장에 의지하여 있기에
일체 제법이 진여를 여의지 아니했다, 이러한 말을 듣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말하기를 여래장 자체에
일체 세간의
생사의 법이 갖춰져 있다고 여기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느냐?
참 보다보다 별 게 다 있죠?
저~기 뭐죠? 운문사 뜨락에 지금 보니까 후박나무가 있던데
후박나무에 후박꽃이 있다 해서 쪼개버리면 어떻게 되죠?
있나요? 후박꽃이...후박이 없어요? 그러면 어떡해요?
하!~ 시절인연이 되면 다 피리라.
시절인연에 있는 것이지 나무에 있는 것은 아니다.
以如來藏은
從本已來로
惟有過恒沙等諸淨功德이
不離不斷하야
不異眞如義故며
以過恒沙等煩惱染法이
惟是妄有요
性이 自本無하니
從無始世來로
未曾與如來藏으로相應故니라
若如來藏體가
有妄法인댄而使證會하야
永息妄者가
無有是處故니라
여래장은 본래로부터
오직 항하사보다 많은
모든 청정한 공덕이
여의지도 끊어지지도 않아서
변이하지 않는 진여의 뜻만 있는 까닭이며
항하사보다 많은 번뇌염법이
오직 허망하게 있고
성품이 스스로 본래 없으니
무시이래로
일찍이 여래장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는 까닭이다.
만약 여래장의 자체가 허망한 법이 있다면
하여금 증득하여 알아서
영원히 허망을 쉬게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지금 이렇게 도로로로록 읽는 것이 이게 법신입니다. 법신! 법신!
그게 우스운 것이 아니라 신기하잖아요?
어떻게 조르르르륵 가는가!
[5] 染淨始終이 있다고 집착하다
五者는 聞修多羅에 說하사대
依如來藏故로 有生死하며
依如來藏故로
得涅槃이라하고
以不解故로
謂衆生이 有始라하야
以見始故로
復謂如來의 所得涅槃도
有其終盡하야
還作衆生이라하나니
云何對治오
以如來藏이 無前際故로
無明之相도 亦無有始하니
若說三界外에
更有衆生이 始起者인댄
卽是外道經說이니라
又如來藏이 無有後際하니
諸佛所得涅槃도
與之相應하야
則無後際故니라
다섯째는 수다라에 설하기를
여래장에 의지한 까닭으로 생사가 있으며
여래장에 의지한 까닭으로
열반을 얻는다함을 듣고는
이해하지 못한 까닭으로
말하기를 중생은 시작이 있다하고
시작을 보는 까닭으로
또 말하기를 여래의 얻으신 바 열반도
그것이 끝나고 다함이 있어서
도리어 중생을 짓는다고 하나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는가?
여래장은 전제(前際)가 없는 까닭으로
무명의 모양도 또한 시작이 없다.
만약 설하기를 삼계 밖에
다시 중생이 처음 일어나는 것이 있다면
곧 외도경전의 설이다.
또 여래장은 후제(後際)도 없으니
모든 부처님께서 얻어신 바 열반도
그것과 더불어 상응하여
곧 후제가 없는 까닭이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인아견이나 법아견이라고 하는 것은
웃고 쉽게 넘겨서 될 얘기들은 아니고, 혼자 꼼꼼이 보셔야 됩니다.~
그러나 진도는 나가니까 한 글자도 안 빠뜨리고 싶어서,
너무 소중한 책이라서 읽는 것일 뿐입니다.
ⅱ) 法我見의 대치를 밝히다
法我見者는
依二乘鈍根故로
如來가 但爲說人無我하시니
以說不究竟일새
見有五陰生滅之法하야
怖畏生死하고
妄取涅槃하나니
云何對治오
以五陰法은
自性不生이요
則無有滅하야
本來涅槃故니라
법아견이라는 것은
이승의 둔한 근기를 의지한 까닭으로
여래가 다만 인무아(人無我)만을 설하시니
설함이 완전할 수 없기에
오음에 생멸의 법이 있음을 보아서
생사를 두려워하고
망령되이 열반을 취하나니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는가?
오음법은
자성이 생기지 아니 하여
곧 없앨 것도 없어서
본래 열반인 까닭이다.
색수상행식이 실제 있는 줄 착각하고 두려운 마음을 내서
속히 열반을 취하려고 막 달려들죠.
몽유병 환자처럼 잠꼬대를 하고
Ⅲ. 離言道理와 假說言敎를 설하다
復次究竟에 離妄執者는
자~ 구경에 망집을 여읜다,
마지막에 모든 제법의, 법의 離言道理와 또 뭐죠?
언설한 것, 피치 못해서 말을 떠난 그 도리를,
말을 빌려서 설명해서, 구경에 뭘 없앱니까?
망령된 집착을 없애게 한다.
이것은 인아견 법아견, 이것도 이제 대치사집의 큰 단락이죠? 보입니까?
네
이것도 진도는 나가지만 한 번 앞으로 훑어보세요.~
자~ 90 P 보면
대치사집의 대의를 총표하다,
그 다음에 대치사집을 별도로 해석하다.
마지막에 뭐죠?
離言道理와 假說言敎를 설하다
됐죠?
또한 구경의 허망한 집착을 여읜다는 것은
當知染法淨法이
마땅히 알지니 오염법과,
오염법이 있다면 대방은 누구죠? 무명.
청정법, 이러면 대방은 누구죠? 진여.
皆悉相待하야
無有自相可說이니라
是故로 一切法이
從本已來로
非色非心이며
非智非識이며
非有非無하야
모두 다 상대가 되어서
자상(自相)을 가히 세울 것이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일체법이
본래로부터
색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고 알음알이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거는 읽겠습니다.
우리 화두에도 여기 있기 때문에
是故로 一切法이
從本已來로
非色非心이며
非智非識이며
非有非無하야
畢竟에 不可說相이로다
거기까지 떨어져야 되는데...
필경에 모양을 가히 설할 수는 없지만
而有言說者는 當知如來가 善巧方便으로
假以言說하야 引導衆生이시니라
그러나 언설이 있는 것은
마땅히 알지니 여래께서
선교방편으로
언설을 빌려서 뭘 하는 것이다?
중생을 인도하는 것이다.
견인차라고 누누이 말씀 드렸죠.
그 뜻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올챙이를 제도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올챙이는 물에 나오면 죽어버리잖아요?
다리가 없어서 쫓아다니지도 못하고, 그죠?
올챙이 제도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돼요?
올챙이 사는 데로 들어가야지.
올챙이 다 크고 나면, 개구리 돼버리면 저절로 놔두는 거라.
보살이 돼서 스스로 안목 뜨면 놔두는 거죠.
새도 금방 깨어나가지고 이제 먹이를 먹을 수 없으니까
먹이를 입에다가 물어주는 것처럼
할 수 없이 말로 할 때는 아~주 수준이 낮은 거에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부처님 염화미소처럼 이렇게 볼펜 들면,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돼야 되는데...
자~ 기신론 끝났습니다~ 이래야 되는데...
몇날 몇일 동안 이렇게...ㅎㅎㅎ
입에다가 발동기를 하나 달아서 도르르르르 이래서 되겠냐,
이 말씀이에요.
其旨趣者는 皆爲離念하야 歸於眞如니
그 뜻이라는 것은 모두 생각을 여의고
진여에 돌아가는 것이니,
여기 있잖아요. 그죠?
말을 하는 것은 뭡니까?
생각을 여의고, 생각을 여읠 뿐만 아니라, 뭐부터 여의어야 되겠어요.
言語道斷언어도단이요, 心行處滅심행처멸이요,
心如墻壁심려장벽이라, 可以入道가이입도라.
落草낙초돼가지고 갈등 생기고 이러면 안 되겠죠.
以念一切法하면 令心生滅케하야 不入實智故니라
일체법을 생각하게 되면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하게 해서
진실한 지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이렇게 얘기하잖습니까?
진흙탕에다 도장을 찍는 사람들,
또 흘러가는 물에다 도장을 찍는 사람들,
허공에다 도장을 찍는 사람들,
우리는 허공에다 도장을 찍는 것을 기약해야 될텐데
왜 흔적이 남는 진흙탕에 찍느냐.
踏雪답설에 無痕무흔이라.
눈자국을 아주 깨끗한 눈길을 밟아도 무흔적이라. 흔적이 없다.
陵空虛步능공허보로다.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 자유인을 꿈꾸면서!
셋째 드디어 이제 허공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나옵니다.
셋째, 도에 발취하는 相을 분별하다(二)
Ⅰ. 分別發取道相 대의를 총표하다
도에 발취하는 모양을 분별하다
分別發取道相
이제는 이만큼 들었으면 정말 저 간경 소리, 법당의 경쇠 소리,
기신론 강의 소리, 이제는 들려야 됩니다.
제발 들려야 됩니다.
이 소리가 들려야 됩니다.
이제 이런 소리가 들리면, 사람이 아~주 보증수표나 명품 인생이 되는 거죠.
도에 발취하는 정도, 분별한다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고
발취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신심이 발심이 된 거죠. 어디에?
도에 나아가는 모양.
첫 구절만 읽겠습니다.ㅎㅎㅎ
分別發趣道相者는
謂一切諸佛의
所證之道에
一切菩薩이
發心修行하야
趣向義故니라
도에 발취하는 모양을 분별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일체 제불의
증득하신 바의 도에
일체 보살이
발심수행하여
나아가는 뜻인 까닭이다.
여기까지 이제 열어놓고~ 이제 다음 시간에 좀 하겠습니다.
보 충
* 第二는 開示從筌入旨之門이라 於中에 有三하니 總標요 別釋이요 第三은 總結이리니 / 總標中에 推求五陰의 色之與心者는 色陰을 名色이요 餘四를 名心也니라 / 別釋之中에 先釋色觀이니 摧折諸色하야 乃至極微하야 永不可得이라 離心之外에 無可念相일새 故로 言六塵이 畢竟無念이요 非直心外에 無別色塵이라 於心求色하야도 亦不可得일새 故로 言心無形相하야 十方求之하야도 終不可得也라하시니라 / 如人以下는 次觀心法이니 先喩요 後合이니라 / 合中에 言心實不動者는 推求動念에 已滅未生이요 中無所住요 無所住故로 卽無有起니 故知心性이 實不動也니라 / 若能以下는 第三總結이니 卽得隨順者는 是方便觀이요 入眞如門者는 是正觀也니라
* 이 대목은 해석분의 중요 세 대목의 중의 하나이다. p.18 顯示正義 ․ p.90 分別發趣道相 참조
* 木版本 賢首疏에는 ‘本來自空’으로 되어 있음.
* 不離不斷不異 p.80 참조
* ‘故’ 木版本 賢首疏에는 없음.
* 染法과 淨法의 自相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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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대하다, 힘세다. 강하다. 크다. 넓다...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표현이 탕탕하게 흐르고 있는 듯...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한없는 자비입니다. 지선화 님, 고맙습니다_()()()_
잡념만 떨어지고 나면 보신을 볼 수 있다.
유연~한 선정의 물결이 담겨지면 거기에 지혜의 달이 뜨지 않을 까닭이 없다...지선화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감사합니다. 강의를 듣고 또 글을 읽으니 또 새롭게 느껴집니다. _()()()_
ㅎㅎㅎ 깔깔깔 ㅎㅎㅎ 깔깔깔~~~ 녹취록 읽으며 계속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쩨 이래 가려운 곳 꼭꼭 긁어 주실까? 에구, 꼬시다( 깨소금 볶는 내음 나듯 향기로운 맛이 사람 당기네!!!) 가까운 지인 중에 치매 노모 모시느라 고전하는 분에게 일부만 전하려다가 통째로 옮겨 드러야겠습니다.
스님 강의를 공부하다보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미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좀 불쌍한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게 힘이 부족한지 그 불쌍한 사람을 바르게 이끌지는 못합니다.
_()()()_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산이 절대 고달프지 않습니다.
여래장은 본래로부터 오직 항하사보다 많은 모든 청정한 공덕이 여의지도 끊어지지도 않아서 변이하지 않는 진여의 뜻만 있는 까닭이며 ...
무어라 표현할 수없는 고마움...그저 고맙습니다._()()()_
저는 컴앞에서 시간이 되면 동영상을 보고 또 시간이 되어 걷기운동할 때는 동화사 강의를 들으며 가는데 이제야 아주 조금씩 어휘들이 기억에 남겨지는 듯 합니다. 일단 어휘가 정리되면 다음에 듣고 또 들을 때는 아마 가슴에 남는 기신론 강의가 되어 스님 말씀처럼 아름다운 싯구절은 없을지라도 감동이 되어 돌아오겠지요. 저는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선화님 감사합니다. _()()()_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산이 절대 고달프지 않습니다.....감사합니다._()()()_
참 고맙습니다. 지선화 보살님^^...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다시 봐야겠습니다
미묘한 차이들이 있는데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것 같아요
지선화님은 어떻게 녹취를 해내었는 지?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