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휩쓴 코로나19 탓으로 3년 만에 가족 상봉을 하게 되었다.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다 드디어 미국 시애틀에서 딸 가족이 오는 날이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하필 오늘부터 입국자들에게 당일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오후 3시 무렵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지만, 검사까지 마친 시각이 오후 6시다. 겨우 안아본 외손자는 부쩍 커서 왔다. 초교를 졸업하고, 9월부터는 중학교 과정인 6학년에 오를 거니까 그럴 만도 하다.
너무 기뻐서 시차 적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출을 했다. 이틀 동안 신나게 보냈다. 아뿔싸! 사흘 만에 코로나가 덮쳤다. 딸이 먼저 열이 난다면서 통증을 말했다. 나와 외손자, 남편까지 차례차례 아팠다. 병원에 들어서자 콜록거리는 환자로 가득했다. 확진자가 되어 집안은 병실로 바뀌어버렸다. 1주일이면 훅 꺼지는 간단한 병이 아니었다. 목이 많이 아프고 근육통이 심했다. 밤중에 기침으로 한두 번씩 잠이 깼다. 뒤척이는 밤이 여러 날 계속됐다. 딸과 남편은 회복이 좀 빠르고 나랑 외손자가 느렸다.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가. 기운이 없어 맥을 못 추었다. 먹거리는 배달 음식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친구네 두 집에서 보내준 음식이 그나마 입맛을 살렸다.
미리 계획하고 예약했던 여행 일정은 날아가 버린 꿈이었다. 2주가 훌렁 사라졌다. 딸은 빨리 시댁에 가겠단다. 그동안 이산가족이 돼버린 딸 가족이 만나는 날이다.
‘어젯밤의 일은 생전 처음 경험이었네. 올림픽 도로를 타고 여의도 쪽으로 가는데, 살다 살다 아이구, 물 폭탄을 맞았어! 밤길에 갑자기, 차가 흔들릴 정도였어. 얼마나 무섭던지! 115년 만에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재난방송! 별 경험을 다 했다네.’ 궁금해하는 동생과 친구에게 보낸 문자다.
어제까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붓던 비가 말짱하게 개었다. 푸르고 맑은 하늘이다. 사이사이 들려주는 외손자의 첼로 활 긋는 솜씨가 가슴을 문지른다.
4주째가 되어서 겨우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딸 가족과 아들네, 사돈까지 동행을 했다. 삼척에서 아침 일찍 ‘죽서루’에 갔다. 마침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이 누각의 특이한 것은 기둥이란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17개 기둥의 길이를 달리한 것이라는데, 자연히 길거나 짧은 차이가 보인다. 이렇게 초석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주초’라 불린단다. 기둥의 길이를 놓는 것에서도 조상의 지혜가 보였다.
강원도에서 여행 중 인제 만해 문학관에서 시인협회 행사가 예정돼 있어서 나만 그곳으로 이동을 했다. 주제는 ‘대립을 넘어 대긍정의 시적 사유로’이다. 교수 몇 분이 소논문을 발표하고 시인 7명의 자작시 낭독이 이어졌다. ‘안개와 여백의 강’이라는 내 시를 읊고 내려오자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 Y가 세상을 떴단다. 마음이 아팠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불편한 생활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세상은 분간 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흔들리는 삶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단단하게 세워야 하지 않을까?
딸 가족은 5주간의 한국 체류를 코로나와 폭우로 덤벙거리다 끝났다. 서울에서 시애틀까지의 간격을 재기도 전에 내 마음엔 한순간 출렁이는 것이 또 무엇일까.
“엄마! 서울에서 재난여행 잘 끝내고 돌아왔죠? 호호! 마스크도 벗고, 시애틀은 하늘이 너무 푸르네요.” 안부를 전해주는 딸의 목소리가 찰랑인다. 녹음된 외손자의 첼로 연주가 카톡에서 따뜻한 감촉으로 흐른다. 기도는 비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하지. ‘대긍정의 사유로!’ 없는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첫댓글 수필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