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를 대표하는 계절요리 갯장어샤브샤브
△ 갯장어
일본에서는 하모도 한평생 새우도 한평생(はももいちごえびもいちご)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신분이나 처지는 달라도 인간의 삶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하모 즉 갯장어의 생명력이다. 쉽게 죽는 새우의 반대편에 갯장어를 두고 있을 정도라면, 그 생명력이 어떠한지는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항생제에 의지하는 일반양식 생선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어종이다. 그만큼 믿고 먹어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갯장어의 미덕은 거기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
여름 한철 갯장어가 우리의 미각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불과 수년에 불과하다. 그동안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었기에 국내에서 맛보기란 쉽지 않은 소재였다. 일본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지방에서는 일찍부터 갯장어요리를 발달시켜왔다. 그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갯장어의 일본명인 하모(はも)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있어 갯장어요리의 대명사격인 갯장어 샤브샤브 역시, 일본 요리의 하나인 유비끼(湯引き)라는 명칭과 함께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연한 의미에서 하모샤브샤브를 유비끼라고 부르는 건 타당해보이진 않는다. 샤브샤브는 즉석에서 끊는 물에 담갔다가 먹는 온요리지만, 유비끼는 끊는 물에 살짝 데친 갯장어육을 곧바로 얼음물에 담가 식힌 다음 매실육이나 초된장을 곁들여 먹는 냉요리이다. 이처럼 요리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헌데 일반인은 물론이고 현지 식당에서조차 유비끼라는 명칭을 메뉴판에까지 적어놓고 있다.
여수시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는 도시이다. 대회기간동안 약 800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여수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갯장어샤브샤브를 맛볼 것으로 짐작된다. 헌데 여수를 대표하는 요리가 일본명으로 불리게 된다면 이는 주체성의 문제 아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요리명이 정착될 수 있도록 행정지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자 입맛 떨어지는 소리는 이쯤에서 접고 갯장어요리의 진수를 느껴보도록 하자.
여름의 미각 갯장어, 여수 경도에서 먹어봤니?
△ 이 배를 타고서 경도에 들어가 갯장어샤브샤브를 즐긴다. 편도요금 500원(어른 기준)
때는 2009년 8월 23일,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여수 경도 가는 배를 탔다. 경도는 국동항 코앞에 있으며 뱃길로 5분여가 소요된다. 외지인이 여름철에 이곳을 찾는다면 필시 갯장어를 맛보기 위함이다. 그만큼 갯장어요리가 정착한 여수에서도 경도의 갯장어를 알아준다는 얘기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갯장어 그게 뭐라고 배타고 섬까지 들어가서 맛봐야 하는 거야? 라고. 그대, 가보지 않고서는 말을 말지어다. 풍경 좋은 위치에 앉아 바다와 어우러진 여수 시내를 감상하면서 맛보는 갯장어의 맛이란... 이 어찌 각별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경도 선착장에 배를 대고 있다
경도 가는 배는 수시로 운행된다. 운임도 싸 어른기준으로 500원밖에 하지 않는다. 경도 선착장 주변에는 여름 한철만 장사하는 업소가 여러 곳 있다. 가장 이름난 업소는 경도횟집으로 규모도 가장 크다. 하지만 후에 현지인에게 들은 평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유명세 때문인지 몰라도 최근 들어 친절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들렀던 업소는 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풍경횟집이었다. 차로 간다고 해서 따로 요금을 내는 건 아니다. 풍경횟집에서 운행되는 차량이 수시로 오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도착 전에 미리 전화를 넣어 차량을 콜 해도 된다.
△ 풍경횟집 식탁에 앉아 바라본 여수 시내, 저 멀리 돌산대교가 보인다
△ 기본 상차림,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냉동새우같은 걸 굳이 차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여수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풍경이 어우러진 별미라 먹기도 전부터 미각은 한창 달아오르는 중이다. 기본으로 차려지는 요리에 우리가 가지고 간 약주부터 한잔 마시고 있자니 메인이 등장한다. 역시 산지의 맛이다. 기본 5만원이라는 가격대는 부담이지만, 결코 실망스럽지 않은 양과 품질로 만회시켜주니 말이다. 제대로 된 미각을 위하여 따로 나오지 않은 와사비와 얼음물을 청했다. 주종도 약주(약초동동주)에서 맥주로 전환했다. 자 이제 상미(賞味)하는 일만 남았다.
아름답게 피워난 백화(白花), 모란꽃이 따로 없네
간사이지방의 여름 축제에 갯장어는 빠뜨릴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쿄토 기온 축제의 맛있는 음식은 갯장어가 주역이다. 쿄토는 오사카만에서 40km도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때문에 옛날에는 생의 해산어를 상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건어물을 능숙하게 되돌리는 요리의 발달이 경(도쿄)요리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갯장어만은 예외였다. 통에 물을 받아 거기에 갯장어를 넣고 배로 교토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너무나 귀중한 활어였기에 특별히 ‘물하모’」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갯장어의 고기는 희고 담박한 맛이다. 가장 맛있는 시기는 장마철 이후로, 일반적으로 갯장어는 장마의 빗물을 마시지 않으면 맛있지 않다 라고 까지 한다.
갯장어에는 길고 딱딱한 잔뼈가 매우 많은 게 특징이다. 먹으려면 호네기리(骨切り)라고 하는 칼집 내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배를 갈라 열린 갯장어의 몸에, 껍질이 잘리지 않도록 육질만 세세하게 잘라 잔뼈를 절단 하는 기법으로 숙련이 필요하다. 한토막(약 3 cm)에 26회나 칼집을 넣기도 한다. 고등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이 칼집 내기가 요리사의 역량이다. 대체로 갯장어 요리 가격이 비싼 이유도 까다로운 기술을 요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 갯장어의 상태는 명성 그대로 굉장히 준수했다. 껍질에서는 광택이 났고, 육질은 순백색을 띄었다.
갯장어의 살은 하얄수록 온전한 상태이다
△ 전혀 피멍이 들지 않아 햐안 육질에서는 맛이 보인다
△ 육수가 끓자 갯장어를 시식하기 시작한다
△ 살짝 데친 갯장어를 다시 얼음물에 담갔다
△ 백화가 된 갯장어
끊는 육수에 갯장어를 잠시 담그자 꽃처럼 터지더니 백화가 되었다. 산 갯장어를 잡지 않으면 끓는 물에 살짝 데칠 때 예쁘게 피지 않는다. 갯장어백화의 모스은 흡사 모란꽃을 닮았다 하여 일본에서는 모란갯장어라 부른다. 이 백화를 미리 준비해둔 얼음물에 다시 담갔다. 소스는 쌈장과 간장 두 종류지만 간장에 쌈장과 와사비를 더해 특별 제조했다. 나는 이처럼 백화를 소스에 찍어 먹는 걸 선호하지만 여수식은 약간 다르다. 양파와 함께 먹거나 데친 채소를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도 그리 먹지는 않았다. 난 내 식으로 즐길 뿐이다.
얼음물에 담근 갯장어는 육수에 담가먹는 것과 차이가 난다. 일단 입속에 들어갔을 느껴지는 온도다. 더위도 잠시 잊게 되는 시원한 맛은 왜 갯장어가 여름의 미각인지 깨닫게 해준다. 얼음물에 담그면 껍질이 단단해지는데 보드란 육질과 쫄깃한 껍질의 조화가 아주 그만이다. 입에서 씹을 것도 없이 부셔지는 샤브샤브와는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 갯장어 껍질에는 피부노화방지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자료사진)
갯장어의 껍질에는 ‘콘드로이친’이라고 하는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콘드로이친은 피부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지금이야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옛부터 알고서 갯장어 요리시 살을 잘라도 껍질은 버리지 않고 남겨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껍질까지 섭취하는 요리법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대구 미인을 사과가 만들었다면 앞으로 여수 미인의 근거는 갯장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 육수에 라면을 넣었다. 죽과 라면 중에서 선택은 자유다.
△ 이것이 바로 진국라면이라오
요리에 몰입하면서도 순간순간 풍경을 감상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이 요리의 맛을 돋궈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디 하였다.
“별미 앞에서 행복해지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다. 별미를 앞에 놓는 순간은 삶의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글과 사진= 맛객)
갯장어란?
외형은 뱀장어형으로 원통형이다. 전체 길이 1 m 정도의 물건이 많지만, 최대 2.2 m에 이른다. 체색은 다갈색으로 복부는 희고, 체표에 비늘이 없다. 입은 눈의 뒤까지 찢어져있어 턱이 길다. 턱에는 송곳니와 같이 날카로운 치아가 줄서, 한층 더 안쪽에도 세세한 치아가 줄섰다. 입은 완전하게 닫혀 지지 않은 상태로 성질이 난폭하다. 한번 물리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어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하모라는 이름도 ‘날카로운 치아로 물어뜯는다는 뜻의 하무(は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태평양과 인도양의 열대・온대역에 넓게 분포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수 고흥일대의 남해안이 주 서식지이며, 일본에서는 혼슈 중부 이남에서 볼 수 있다. 수심 100 m까지의 연안 지역에 서식하면서 낮은 모래나 바위의 틈새에 기어들어 쉬다가 밤이 되면 해저 근처를 헤엄쳐 돌면서 사냥감을 찾는다. 식성은 육식성으로 작은 물고기, 갑각류, 두족류등을 포식 한다. 산란기는 여름으로 부유알을 산란 하지만, 뱀장어와 같은 대규모 유람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