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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1절] 사케리의 선구자들 Les précurseurs de Saccheri 313,
[2절] 신부 삭케리 Le P. Saccheri. 315
[3절] 로바체프스키와 리만 Lobatchevski et Riemann 318
[4절] 메타기하학 Les métagéométries 321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5절]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siècle 325
[6절]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7절] 꼬쉬의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8절] 분석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5권 서론]341
제15장 수의 독단론 Le dogmatisme du nombre 344
[1절] “수의 법칙” La “loi de nombre” 345
[2절] 상징론의 이론 La theorie du symbolisme[상징주의] 348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 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1절] 분석론의 산술화 작업 L’arithmétisation de l’analyse 354 .
[2절] 유명론에로 이행 Le passage au nominalisme 359
[3절] 유명론의 진술 L’exposition nominaliste 365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서론] §216.
제17장 수학들의 수리[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1절] 대수 분석론 과 기하 분석론 Analyse algébrique et analyse géométrique 371
[2절] 층위[학급, 집합]들의 논리학 Logique des classes 373
[3절] 명제들의 논리학과 관계들의 논리학 Logique des proposition et logique des relations 377.
[4절] 수학들의 논리적 번역 La traduction logique des mathématiques 380.
[5절] 초한수 와 연속 Le transfini et le continu 383 §227 §228 §229 §230
[6절] 논리계산의 실재론 Le réalisme logistique 389 §231 §232 §233
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수학사에서 둘째 확실성 상실(붕괴), 첫째가 비유클리드 기하학]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의 “불확실성”이, 여기서는 붕괴와 난점들로 표현된 것이리라]
[1절] 분석적 해석의 난점들 Les difficultés de l’interprétation analytique 395
[2절] 계층들에 대한 실재론의 난점들 Les difficultés de réalisme des classes 403
제19장 절대적 연역의 관념 §247 §248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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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둘째 문지방에서, 논리계산은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함께 합체하려 한다. 쁘왕까레의 제시. ]
수학들과 논리학의 협업(l’incorporation, 합병)은 본질적인 두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수학적 물질로부터 논리적 물질에로 환원을 목표로 한다. 사람들이, 동일자에 귀착하는 것인 명제적 함수들이든지, 즉 계층들이든지 간에, 또는 그것들의 형상의 일반성에서 유일하게 고려된 관계들이든지 간에, 대상으로 삼은 계산을 구성했을 때,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수학의 근거[이유]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겹친다. 수학의 논리학에 논리학의 형이상학을 중첩한다. 논리학은 그 자체 안에 증명적 덕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논리학은 “형식의 힘에 의해서” 결론을 허락할 것이다. 그래서 수학을 논리학으로 이끌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분과학문[수학과 형이상학]들을 함께 토대를 놓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통일성으로 향한 결정적인 한발자국을 갈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은 분과학들에게는 결함을 만들었던 진리의 가치를 수학들에게 소통했을 것이다. (394)
이 주제들 중의 하나로부터 그리고 다른 하나로부터 무엇이 생산되는가? 두 가지 질문들에 응답하기 위하여, 비판적 검토를 한발자국씩 뒤따르는 것이 충분할 것이다. 비판적 검토의 논리 계산적 철학은 논리계산학자들 그 자체들의 편의 대상이었다. 틀림없이 논리 계산의 진보, 또는 보다 정확하게, 분해(la dissolution)는 철학자들의 또는 수학자들의, 특히 뿌왕까레의 저항에 의해 부분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진보[저항]는 특히 내부로부터(du dedans), 러셀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에 의해, 논리적 형식들의 발명에 찬양하는 태도에 의해, 조정의 도구들을 완전하게 하려고 항상 배려하는 정신의 보다 찬탄할 조심성에 의해, 불러일으켰으며, 우리는 종교재판(l’inquisition), 즉 논리계산(logistique)에 대해 거의 말해야만 한다. 그(쁘왕까레) 덕분에, 사건은 논리학과 수학의 특별한 해석과 같은 것을 넘어서는 범위를 취급하였다. 사건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연역법의 관념 위에, 사람들이 정의상 믿을 수 있는 판단을 운반하도록[나르도록] 허용한다. (394)
1절, 분석적 해석의 난점들 Les difficultés de l’interprétation analytique 395
§235, [논리계산학(논리주의)의 등장으로, 수의 선천(상징)적 대상에서 경험적 실재성으로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논리(개념)주의와 달리, 쁘왕까레의 직관(협약)주의가 등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논리계산의 해법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관념의 운동을 따라갈 것이다. 그 운동의 논리계산학의 구성작업은 도달점이 되기를 허용했지만 실재적으로는 출발점으로 발견되었다. 논리계산학의 도래의 첫째 귀결은 철학적 가치들을, 즉 이 첫째가, 그것[가치]들의 상호호환 명제들의 근본적 개입(une intervention, 간섭)과 함께, 동등한 반대론자[상대자]들과 다시 드잡이하게 하는 그만큼 더 많은 파라독사의 가치를 재분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처럼 19세기 말에, 토론이 개념론자들(les conceptualistes)과 직관주의자들(les intuitionistes)사이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완전수의 정의(定義), 즉 발산은 표시되었다. 어느 헬름홀쯔(1821-1894) 같은 이로서 산술학자는 순수하게 논리적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임의적으로 선택된 기호들(les signes)을 병치시켰다. 그는, 입법자가 새로은 법전의 근본적 원리들을 제시하는 것과 동일한 자유를 가지고, 그 기호들에게 동등성[=]과 덧셈[+]의 협약적 법칙들을 부과하였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이론의 형체(un corps de doctrine) 를 끌어내는 것 이외 다른 근심을 갖지 않았다. 그 이론의 형체는 초기 정의(定義)들로부터 엄격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전개되었다. (395)
이런 논리적 선천주의에 반대하여 꾸뛰라는 논리학(le logique)과 합리적인 것(le rationnel)의 고전적 구별을 다시 불러왔다. 논리적 인조물[인위물]들에 의해, 사람들은 모든 조각들로 서수의 이론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수[유리수], 그것은 기수(le numero cardinal)이다. 왜냐하면 단지 그것은 진실로 다수성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 수는 “단위들의 다수성의 단위이다.”단위라는 관념은 특히 합리적 관념이다. 그 관념은 모든 수적 종합들의 기초인 요소이기도 하고 동시에 각 수적 종합의 형식이다. “소위 말하여 완전수를 단지 구성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전체(un tout), 즉 “정신의 종합적 관점의 생산물 … 사유의 직관적 작동의 대상이다.”산술학적 직관은 기하학적 직관의 전형으로부터 온다. 그 직관은 자기 자체 안에, 그 전형이 사물들의 실재성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할 때, 그 전형이 옆으로 밀쳐내기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 진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마치 자연과학의 토대처럼 정신에게 부과된다. (395)
논리계산[논리주의]의 구성작업과 더불어, 갑작스런 변화가 생산된다. 수학들의 형체로부터 논리적 개념들의 체계로 환원은 마치 합리주의적 철학의 특징적 주제처럼 소환된다. 직업적인 수학자들은, 그 선두에 쁘왕까레를 인용하는 것이 편할 진데, 용어들 또는 조작들의 초기 규정작업 안에서 직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예전에도 정의들의 유명론적 특성에 관해 또한 근본적 법칙들의 인위적 특성에 관해 강조했기에 딱지 붙여진 것처럼, 경험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396)
§236. [명제들 사이의 상호 개입으로 선천적 통일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편함이다. 산술학, 기하학, 역학은 하나의 체계 속에 있지 않다. 그래서 미적분, 비유클리드 기하학, 삼각함수, 무한집합들도 달리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개입(une intervention, 간섭)이 매우 급속하고 매우 투박하게 나타날 수 있을 지라도, 개입은 실재상으로 필연적 진화의 합법적 귀결이다. 수학자는 과학의 대상에 의해, 산술학과 대수학에 의해, 기하학과 역학에 의해, 서로서로 분리되었던 여러 과학들을 앞에 있는 한, 논리적 형식주의의 발전은 다수의 체계들의 구성작업에 도달했다. 이 체계들의 다수성 자체는 인위적 특성을 드러냈다. 원리들은, 정신의 과학과 더불어 이든지 우주의 과학과 더불어 이든지 완전히 묶여진 것으로부터 탈피되어서, 빈 것(le vide, 허공) 속에 매달려 있었다. 따라서 수학의 내속적 가치를 토대지울 수단만이 있었다. 그것은 분석적 후퇴가 멈추기를 강요당했던 점들의 각각에서, 장애물이 자유롭게 주조된 요청의 임의적 특징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의 법칙과 동시에 경험적 조건인 원리의 종합적 형식 속에 있었다는 것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합리주의자로 남아있기 위하여 따라서 칸트주의가 되어야했다. 「선험적 감성론」의 틀들을 넓히기 위한 시도 전체는, 산술적 판단들에게 분석적 토대들을 부여하면서든지, 또는 유클리트 기하학의 경계를 뛰어넘으면서든지, 마치 경험주의를 위한 승리처럼 무매개적으로 고려되었다. (396)
그런데 칸트주의와 합리주의의 이런 동일화 작업은 임의적이다. 이 동일화는 칸트가 과학을 발견했던 곳에서 단편적인[조각난] 상태에 대응한다: 즉 [단편적 상태란] 퓌타고라스의 산술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뉴턴의 역학등이다. 이런 동일화 작업은, 이것들의 구성적 용어들의 점진적인 일반화에 의해, 분석학과 기하학은 서로 재결합하기에 이른 점에서, 일단 사라져야만 한다. 그리고 분석학과 기하학이 유한한 수들의 과학 보다 넓은 과학에 묶여 매인, 그리고 논리적 조합들의 – 계층들, 명제들, 관계들의 - 보편적 과학에 묶여 매인, 연역의 연결 계열들을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사라져야만 한다. 과학적 지식은 이법의 고유한 요성이라는 전체적 단위(l’unitétotale)의 요청에 만족한다. 뉴턴 과학에서 칸트 철학에서 퇴행적 형식을 보존했던 연역법은, 데카르트 과학과 라이프니츠 철학이 연역법에게 부여했던 직접적이고 점진적 형식을 취한다. 질서[순서]라는 단어는 칸트로 회귀(retour à Kant)이었고 라이프니츠로 회귀일 것이다. (396)
§237. [범논리주의 혼동: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성찰에서 라이프니츠의 경험과 칸트의 사유 경험의 형식 사이에 차이에서 온다. ]
이 두 이름의 접근은 여기서 단순히 역사적 추억이 아니다. 라이프니츠의 사유는, 마치 한 동시대인의 사유처럼, 직접적으로 효과적인 것으로 제시되었다. 칸트의 직관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초기 작업들을 행한 러셀과 꾸뛰라는 범논리주의(le panlogisme)를 덮어쓰고 있었던 것은, 동시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리고 심지어는 몇 가지 관점에서 라이프니츠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철학을 발견하면서였다. 다른 한편 라이프니츠 연구의 재탄생은, 수학들의 재해석에 의하여 일어난 모든 토론들이 라이프니츠와 칸트에 의해 사용된 형식들을 통해서 발전되었다는 귀결들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점을 강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질서의 주제들로서 회피할 수 없는 참조사항들에 의해, 이미 모호하게 된 논쟁들은 복잡화들과 혼동들(confusons)의 새로운 원인들에 기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덕 종교적 주제들은 추상적 사변작업들에 대한 부수명제들이고, 또는 심지어 감춰진 원리들이며, 역사의 변함없는 개입이고, 분석과 종합의 애매한 용어들의 사용과 남용이라는 것이다. (397)
역사적 추억들과 권위들의 덩어리가 이런 혼동들로 인도했던 것인데, 역사로부터 보다 무관심한 연구는 이 혼동들을 흩어버리게 한다. 사람들이 “부분들로 분할”과 “용어들로 해결(la résolution en notions)”을 구별했는지를 그가 질문했을 때, 라이프니츠 그 자신은 혼동들을 예견하지 못했던가? 사실상 우리가 보았던 대로, 칸트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분석은, 마치 조성된 몸체로부터 단순한 요소를 추출하듯이, 주어로부터 술어를 추출하는 부분들로 분할이다. [이에 비해] 라이프니츠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분석은 용어들로 해결이다. 이 해결은, 이런 명제의 진리가 의존하는, 조건들에 대한 탐구가 주어진 명제로부터 무한에까지 추적하는 것이다. 방법론적 관점으로부터 두 학설들은 대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실재상으로 공통의 척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다른 한편, 칸트주의가 라이프니츠주의와 효과적으로 충돌 상태로 들어가는 문제는 수학과 경험의 연관에 대한 문제이다. 라이프니츠는 감관의 자료들을 마치 지성적인 연관들의 혼돈된 상징들로서 간주한다. [이에 비해] 칸트는 수학의 필연성을 가능한 경험의 형식들에 근거를 두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논리계산 방법의 틀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의 문제 앞에 있게 된다. 게다가 만일 우리가 러셀이 상수의 방식으로 표출했던 방편에 의해 논리계산 사유의 방향정립에 대해 판단한다면, 이 논리계산은 칸트 자신이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멀리 있는 라이프니츠의 관점에 근거한다는 것을 주목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논리계산은 순수 수학들과 응용 수학들의 전통적 구별을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또한 논리계산은 구별을 마치 두 세계, 즉 지성계(κόσμος νοητός)와 감각계(κόσμοςαἰσθητός)의 분리에 상응하는 것처럼해석한다. “순수 수학은 현실적 사물들에게 완전히 무차별적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것의 자연(la nature)에 대해 독립적이다. 따라서 감각적 흐름의 자연이 어떤 것이든 간에 수학이 정확하게 될 수 있다.”
§238. [라이프니츠의 논리학에 수학과 결합에서 혼동의 배경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불충분함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수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분석학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개념작업에서 그것의 명석함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하여, 따라서 애매함들을 옆으로 재껴두는 것이 편할 것이다. 이 애매함들에 대한 무한의 개입과 신적 지혜의 고려가 우연적 명제들의 학설을 황당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필연적 명제들과 이유있는(en raison, 근거있는) 진리들의 영역에 우리를 제한하는 것도 재껴두는 것이 편할 것이다. 이유 있는 진리들은 동일성의 공리로부터 유래할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연역의 과정에 동일성 공리로부터 도출된 형식들만을 개입하게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치 동등가들의 대체의 원리들이 행한 것처럼. 그리고 다른 한편 다른 요소들로부터 단순한 본질들 만을 가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단순한 본질들에 대해, 그 본질들이 어떠한 모순도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들의 단순성의 사실 자체로부터 보게 할 수 있다. (398)
그러한 것이 수학과 논리 자체의 분석적 해석의 토대에 있는 두 가지 관념들[생각들]이다. 그런데 수학도 논리학도 논리계산의 시험(l’épreuve, 판단기준)에 저항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또는 아마도 보다 정확한 방식으로 기하학의 일반화는, 지금까지 엄격한 모델들로서 간주되었던 유클리드의 증명작업들의 논리적 불충분함을 고발하는 것을 허락했다.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일반화가, 「분석론」이래로 사람들이 만족해 왔던 방법론의 근본적 개념작업을 교정할 것을 허락했다. (398)
§239. [라이프니츠에서 러셀로. 원리들의 문제: 상징주의의 원리들 중에 직관으로 반역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제, 우선 원리들에 관한 한에서, 논리계산의 첫 발견물이 있다. 동일성의 원리이다. 사람들은 논리학을 이 동일성원리 위에 전적으로 완전하게 근거하게 하는 것에 일치하고 있었다. 그 동일성원리는 “논리학의 원리들 중의 하나일 뿐이고, 아마도 모든 원리들 중에서 가장 덜 유용한 원리이다.” (398)
이런 사실에서, 상징 논리의 초기 부분일 될 명제들의 계산을 위하여, 러셀은 그래도 열(10)가지 공리들보다 적지 않게 발언했다.꾸뛰라가 주목하기를 “만일 논리적 방법이 풍부할 수 있다면,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귀결들 각각보다 더 일반적인 귀결들을 원리로부터 끌어내는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원리들의 다수성의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거기에 종합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마치 칸트가 그것을 주장했던 것처럼 직관적 종합이 아니라 순수하게 지적인 종합이라고 한 이후로 문제될 것이 없다.” (399)
최소한, 사람들은 원리들이 동질적 물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그 원리들로부터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상징적 논리가 우리에게 그것[원리]에 대해 의심하게 이끈 것이다. 상징 논리는 이 모든 원리들의 상징적 번역을 부여하기에 이를 수 없었다. 상징 논리는 모든 원리들의 가장 중요한 원리앞에서 좌초했다. [그런데] 그 원리 자체는 필연적으로 진실한 전제들로부터 결과하는 명제의 진리를 주장하도록 허용하고, 다시 말하면 함축의 매듭(le noeud de l‘implication)을 풀면서, 추론 속에 잠재적으로 포함된 것을 실행하게 한다. 꾸뛰라는 그 원리는 연역의 원리(principe de déduction)라 부른다. 그리고 그 원리에게 다음의 형식을 부여한다. “만일 사람들이 (진실한) 함축문장 즉 p⊃q을 갖는다면, 그리고 만일 가설 p가 진리이라면, 주제 q는 또한 진리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따로 주장할 수 있다.”대체의 원리(le principe de substitution)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실한 일반적 정식이 주어져서(정식에게 모습을 부여하는 철자들이 가치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사람들은, 철자[문자]들 대신에 어떤 가치들(말하자면 개념들 또는 규정된 명제들)을 대체하면서, 진실한 일반정식으로부터 진실한 개별정식을 연역할 수 있다. 꾸뛰라가 덧붙이기를, 원리는 스스로 상징들로 번역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적 상징들에 의해서만 원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반적 상징들 대신에, 각각의 경우에 원리를 적용하기 위하여, 동일한 원리 덕분에 개별적인 가치들을 대체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원리는 상징적으로 정식화된 다른 원리들의 사용에서 필수불가결하다.” (399)
예기치 않았던 이런 저항 앞에서 러셀은 상징주의의 본질적 제한작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다. “그 제한작업은 형식주의의 어떤 불충분성을 증거할 것이다”꾸뛰라는, 이런 제한작업을 마치 모든 논리적 유명론에 대한 결정적 반박처럼 제네바 학술회의(Congrès de Genève, 1904)에서소개하는 시기까지, 이것으로부터 논증을 끌어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주목할 만하다. “모두 추론의 신경(nerf)이라 할” 논리적 원리를 번역하는 것의 불가능성은 “그러한 원리가 …모든 직관에 낯설기도 하고 상위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비슷한 논증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논리계산의 모든 해석을 의문시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논리계산학자들은 논리학의 법칙들 상징적 형식화 위에서, 직관의 모든 흔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또 개념들의 순수 영역에 이르기 위하여, 계산했다. 꾸뛰라의 언어에 따르면, 상징자체 속에서, 그 상징은 항상 직관의 어떤 잔여물로서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상징은 직관주의를 넘어서기 위하여 상징주의를 넘어서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모든 방식들로부터, 순수한 합리성의 이상(l’idéal)에 만족하는 것은 상징적 표현을 허용할 수 있는 원리들이다. 또는 반대로 번역의 모든 시도에 복종하지 않는 원리들이 있으며, 상징은 원리들의 논리계산 이론 안에서 빈칸을 항상 존속하게 한다. 왜냐하면 명제들의 계산이 도움을 청하는 잡다한 원리들은 동일한 범주들 속에 완전히 줄서[배열]될 수 있지 않게 때문이다. (400)
§240. [연역법 속에서 정의들은 이미 정의된 것을 풀어간다. 정의 될 수 없는 것은 연역에 속하지 않는다.]
정의들(les définitions)의 이론은 동일한 모호성에 이른다. 페아노(1858-1932)의 학파는 정의들의 잡다한 전형들을 구별하면서 아마도 양(+)의 순서의 진보를 완성했다. 어떤 정의들은 요청들(postulats)에 의해서든 또는 추상작업(abstraction)에 의해서든 간에, 그 용어 자체를 구성적 요소들로 해결함이 없이도 주어진 용어의 용법을 허용한다. 그 유명론적 정의(ladéfinition nominale)만이 진실한 정의이다. 왜냐하면 단지 그 정의는 정의하는요소들과 정의되는모든 것 사이에 동등가를 확립하기 때문이다.오직 이런 동등가의 해석은 하나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정의해야할 용어는 하나(une)이다. 정의하는 요소들은 여럿(plusieurs)이다.만일 요소들이 용어로부터 태어난다면, 모든 정의는 종합적 계산작업인데, 이 종합적 계산작업은 정의할 것과 정의 될 것의 언어적 동일성과는 다른 것을 가정하는 것이고, 그리고 정의된 것의 현존(l’existence)을 가정하는 것이다. “정의 전체는 현존의 정리(theoreme d’existence)가 (또는 현존의 요청이) 동반되어야만 하는데, 이 현존의 정리는 정의된 대상의 현존을 주장한다.” (400)
또는 만일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완전한 분석적 개념작업을 유지한다면, 담론을 요약하는 편리한 수단을 단지 정의에서만 보아야만 한다. 정의는 전체의 명제가 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통각작용의 종합적 단위(통일성)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러셀은 칸트의 영감작용을 충실하게 믿는 것보다 더 충실하게 남아있어서, 그는 모든 명제들의 성격을 만들었다.사물을 아주 엄격하게 취급하는 정의들은 인쇄상의 장식들(les agréments typographiques, 수학의 특수기호들)이며, 이런 장식들은 명제들의 연쇄에서 의 진지한 불편함이 없다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꾸뛰라는 “호기심 많은 어떤 귀결을” 주목하는데, “… 연역 이론의 모든 명제들은, 마치 정의상으로 이론의 정의할 수 없는 용어들에게만 근거하는 것처럼, 고려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들의 진술에서 사람들이 정의된 모든 항들을 그것들의 정의하는 항들에 의해 대체했다면, 거기에는 정의될 수 없는 항들만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01)
§241. [‘전체’라는 용어는 정의도 공리도 아니고 요청인 셈이다. 논리학의 성립에는 전체라는 가설연역적 체계이기 때문이다. 논리계산에서는 ‘전체’에서도 ‘절대’에서도 출발하지 않아도 체계의 정합성을 설명할 수 있다.]
공통감관들(상식)의 명증성으로부터 나온 이러한 고찰들을, 그러나 어떤 사상가도 지금까지 논리학과 수학의 방법론 속에서 그 고찰들을 정의상으로 도입하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고찰들에 의해 논리계산은, 원리들이 그 자체로 충분한 한에서 정의들을 제거하는데 실증적 도움을 주었다. (401)
그러나 논리계산은 순수하게 분석적 해석을 재통합하는 것을 단번에 완성했다. 논리계산은 그러한 해석에 형식적 연역을 부여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에우클리데스이래로 사람들은 순수 연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원리들의 세 가지 질서들, 즉 정의들(définitiones), 공리들(axiomes), 요청들(postulats)을 불어왔다. 이 세 가지 질서들로부터 그는 요청들만을 잔존시켰다. 상징 논리학의 이론 전체는 가설-연역적(hypothétique-déductive)이다.이 이론은 시작에서부터 정의할 수 없는 일련의 용어들과 증명할 수 없는 일련의 명제들을 요청한다. 또한 사람들은 정의할 수 없는(indéfinissable)과 증명할 수 없는(indémontrable)라는 형용사구(épithète)들에 묶어둘 수 있을지 모를 절대적 기호작용(의미화)에 반대하여 주의[경고]를 주는 것이 편하다. “어떤 정의들 체계와 그리고 어떤 증명들의 질서와 연관에 의해서만, 하나의 용어는 정의할 수 있고, 하나의 명제는 증명할 수 있다. 다른 체계에서 다른 질서에서 동일한 용어들이 정의될 수 있고, 동일한 명제들이 증명될 수 있다.” (402)
마찬가지로, 한 역학 설명의 성공은 다른 역학 설명들에 대한 무한성의 합법성을 증거하였다. “다른 역학 설명들은 경험에 의해 드러난 모든 개별성들을 동등하게 고려할 것이다.”마찬가지로, 논리계산 체계의 가능성은 다른 논리계산들에 대한 무한성의 합법성을 증거한다. 적어도 사람들은 방법론적 질서의 고찰에 만족하는 한에서, 사람들은 원리들의 선택에서 자의적임(임의성)을 피할 수 없다. (402)
이리하여 형식적 조작술[조성술]처럼 생각된 상징 논리학은 실증적이고 신중한 결론들을 넘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결론들을 페아노(1858-1932)의 이탈리아 학파에서 이미 만났었다. 상징 논리학은 확실하게 진리가 없지 않다. 라이프니츠는 그 발견물의 열정에서, 절대적 진리를 그 논리학에게 속성으로 부여하는데 까지 이른다. “비록 몇 명제들이, 항목들의 정의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의 취향에 따라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거기로부터 임의적 진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기된 정의들로부터 결론들이 흘러나는데, 또한 동일한 것으로 귀착하는 것이지만, 결론들 또는 정리들과 그리고 정의들 또는 임의적 가설들 사이의 연결은 절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언어 속에 아주 뒤죽박죽 만들 위험이 있는 절대(absolu)란 단어의 남용이 있다. 정합적 담론 속에 나타나는 진리는, 게다가 그것의 출발점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논리적 환타지들(fanaisies) 속에서 또는 체계적인 망상(un délire)의 전개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재발견하는 진리는, 과학적 지식의 조건이라는 범주적이고 내속적인 진리는 분명하게 아니다. (402)
2절 계층들에 대한 실재론의 난점들 Les difficultés de réalisme des classes 403
§242. [논리계산은 논리학(형이상학)과 다르다. 계층 또는 집합은 유한의 나열과 달리 영과 무한은 외연적 집합으로 표시될 수 없다. 그런데 내포에서만 유한한 복잡성을 드러낸다.]
사실상 만일 논리계산(la logistique)이 수학 철학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논리계산이 논리적 셈법/계산(le calcul logique)의 형식과 다른 형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논리계산은 이 셈법의 용어들에게, 특히 계층의 용어에게, 존재론적 위엄성[체면]을 부여한 것이다. 실재론적 요청만이 논리계산에게 논리적 가설에서 형이상학적 주제로 이행을 허락했다. (403)
우리는 학설의 요청을 검토하지 않아야만 하는데, 그 학설이란 물리학 또는 심리학과 모든 묶음을 단절했다고 자화자찬한 학설이다. 그 주장 자체에 의하여, 그 학설은 직접적 검증작업의 모든 시도를 회피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더 논리계산학자들에 의해 제안된 해결로부터 출발하여, 계층들의 실재론적 개념작업이 이끌어냈던 결과들을 따라갈 수 있다. 그 학설은 수학의 원리들을 밝히게 성공했던가? 또는 반대로 학설은, 분석학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나타났던 새로운 난점들을 도입하지 않았던가? 새로이, 논리계산학자들이 그들 스스로 해결했다는 문제들에 곧 응답할 이는 그 논리계산학자들이다. (403)
계층의 용어는 논리학의 대수학에 토대로서 쓰인다. 화이트헤드(1861-1947)는 적절하게 판단하여 이 대수학을 마치 비(非)수적인 대수학(algèbre non numérique)처럼 지칭했다. 만일 노르망디인들의 계층이 프랑스인들읙 계층에 포함된다고 내가 말한다면, 나는 노르망디인의 수도 프랑스인의 수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규정된 척도에 이르지 않고서, 비동등성을 조합하는데, 소위 말하여 셈하기에 만족한다. 논리적 계층의 용어가 수적 셈/계산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정의 하는데 쓰일 수 있기 위하여, 이 용어가 점점 더 미묘하고 점점더 복잡한 공작작업(une élaboration)과 재주조(une refonte, 재제작)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 즈음[찰나]에 사람들은, 게다가 변증법의 절망적인 노력들이 논리계산 철학을 치명적인 모순으로부터 구출해야하지 않고서도, 유한한 기수에 관한 요소의 문제로부터, 수 1(un) 수 0(zero), 수 유한(fini) 등의 잡다한 개별적 경우들로 이행할 수 있다. (403)
무엇보다 먼저, 논리적 계층과 수학적 계층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스콜라철학자들은 개념들에 대한 분배적 의미(le sensdistributif)와 집단적의미(le sens collectif) 사이에서 만들었다. 예수의 12사도들은 계층을 형성한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등은 이 계층(la classe[소속])의 일부를 이루는데, 그들의 각각은 스승의 인격에 묶여있음을 드러냈다는[한 몸이었다는] 한에서 그리고 그의 학설에 열정을 - 사도를 특징짓는 것은 그 열정이다 - 쏟았다는 한에서, 계층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들 각자는 그런 계층을 구성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는 개별적 성격들에 의해서 이 계층의 구성원이다. 만일 이제 사람들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사도들의 계층들이 아니라, 마치 열두계층의 구성원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논리적 계층의 토대인 종적 동일성(l’identité spécifique) 대신에 산술학 집단[수집](la collection arithmétique)의 토대인 수적 잡다성(la diversité numérique)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때에 사람들은 그들을 그들의 계층에 연관되었던 개별자들인 한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는 각자의 셈법으로서 고려한다.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 논리적 계층의 형성작업에 아주 낯선 연결을, 즉 그리고(et) 라는 요소에 의해 재현되는 연결을 도입한다. 이런 요소가 무엇일 것인가? 하나의 논리적 상수(une constante logique)일 것인가? 또는 하나의 수학적 원리(un principe mathématique)일 것인가? 또는 러셀이 말하고자 하듯이 하나의 “조합의 독창적이고 유일한 형식”일 것인가? 그래서 논리적 계층의 동일화작업과 수적 계층의 동일화작업은 언어의 애매성일 뿐이라는 것이기에 그것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404)
프레게의 예를 따라서, 논리계산학자들은 수를 계층들 중의 한 계층(une classe de classes)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애매성을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예수의 사도들 중의 계층, 나폴레옹의 원수들(les maréchaux) 중에 계층, 별자리의 기호들중의 계층 등은 12라는 수를 구성하는 계층의 요소들이다. 틀림없이 애매성은 사라졌다. 그러나 개념작업의 합리적 단위[통일성]을 깨뜨린 것은 환원할 수 없는 대립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왜 사도들 또는 원수들이 열둘을 형성하는가? 왜냐하면 동일한 계층의 잡다한 구성원들 사이에 덧셈의, 즉 그리고(et)의 연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12 사도들과 12 원수들이 12라는 수를 구성하는 동일한 계층에 속한다면, 이것들[12] 사이에 더하기 연결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조작작업의 메카니즘은 아주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의 수적인 개별성만을 고려하기 위하여, 사도(l’apôtre) 또는 원수(le maréchal)의 종(種)적인 잡다성으로 추상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수적으로 규정된 사도와 수적으로 규정된 원수 사이에, 이어서 사도들 전체 집단[모집]과 원수들 전체의 집단[모집] 사이에, 일방적이고 상보적인 상호의 연관을 확립할 수 있다. 상호 연관은 수학적 동등성의 뿌리이다. 그리고 논리계산은 이 연관을 마치 12같은 수의 동일성에 대한 구성적이라고 한 것 같은 이유로 분간해 냈다. 그러나 이렇게 행하면서, 논리계산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토대에 속하는술어와 주어 관계를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마치 하나의 축 주위를 도는 것처럼 계층의 용어 주위를 돌면서, 논리계산은 심리학적 과정의 서술에 만족하기 위하여, 존재론적 실재론으로부터 멀어졌다. (405)
이러한 결론은 논리계산이 수 1로 이루어진 개념작업에 의하여 우리에게 확정되었던 같다. “만일 x와y는 0이 아닌(non nulle) 계층의 구성원이라면, 그리고 만일 x=y이라면, 계층은 단수(singulière, 특이자)이다.”이러한 것이 수 1의 논리적 정의이다. 이런 정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악순환(cercle vicieux)에 갇혀있지 않다. 사람들이 자기 앞에 x와 y같은 것들, 즉 구별된 두 본징(deux entités)[x와 y]들을 갖기 위하여, 두 본징들은 계산되었다는 것이 필연적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존재론적 관점을 포기한다는 조건에서 관찰이 합법적일 뿐이다. 결국 이 관점에서 x와 y는, 만일 이 둘이 구별된 본징들을 구성한다면, 구별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이 구별된 본징들로 구성될 수 없다면, 왜냐하면 이 둘은 유일하고 동일한 실재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신의 이런 용어를 도입하기를 포기한다면, 모순은 사라진다. 러셀은 거의 독단 없지만 무모하게, 이런 용어를 완전히 무관하다(en. totally irrelevant, 전혀 상관없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한다.필연적으로 변질하지 않는 본징들 대신에, 단수 단위의 긍정주장[명제]이 정확하게 동일시하는 함수로서 갖게 될 재현작업[표상]의 계속적인 국면에서만 우리가 관여할 것이다. x와 y의 수적인 동일성은, 두 개의 구별된 재현작업[표상]에 유일하고 동일한 사물이 상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하나의 해가 있고 하나의 달이 있다는 이런 결론에 이르기 위하여 정신이, 천문학적 주기들의 과정과 잡다한 기상학적 환경들을 통하여 해와 달이 그것들 자체로서 부여하는 다수 이미지들에게 내속하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완수하는 작업이 있다. 프레게가 탁월하게 그것을 말했던 것처럼, “매일 아침에 뜨는 것은 동일한 해이지 새로운 해가 아니라는 발견은 바로 천문학이 이루었던 가장 풍부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논리계산은 그것의 상징들 속에 비슷한 발견의 결과를 베끼면서 지적인 활동성의 과정을 등록하게 한다. (405)
우리는 또한 가장 단순한 경우들만을 고려해왔다. 이제 영(zéro)이 남고, 또 무한(l’infii)이 남는다. (406)
영(zéro)에게서는, 우회로를 행해야 한다. 사람들은 개체에서 계층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층 0[영]은 구성원을 포함하지 않는 계층일 것이다. “Nothing(아무것도 없음)은 지시하는 개념(a denoting concept)이다. 이것[개념]은 아무것도 없음을 지칭한다.”따라서 계층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계층의 현존과는 독립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영은 내포의 관점에서만 생각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영은 현존의 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406)
무한수들(nombres infinis)의 학설에서, 진폭들(les oscillation)은 스스로 곱하기로 나갈 것이다. 음수의(le moins) 인간 인식의 한계들 안에서, 즉 내포 안에서 무한이 될 것이라는 전체를 위한 자리 없다. 왜냐하면 구성하는 것들이라는 무한성을 갖을 것인 단위[통일성]는 유한 없는 퇴행을 함축할 것이기 때문이다.주어진 무한은 필연적으로 외연적인 무한이다. 유한의 영역에서 외연적으로 주어진 계층은 그것의 개체적 구성원들의 열거에 의하여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실천적으로” 이 절차는 무한에 적용할 수 없다.따라서 내포의 관점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외연적으로 무하한 계층은 유한한 복잡성을 내포의 관점으로부터만 제시할 수 있다. 셀 수 있는 집합들의 이론은 개념작업의 합법성을 증거한다. (406)
§243. [수의 단위와 계층의 단위는 양립불가능하다. 수의 단위가 집합의 요소인 것과 계층의 단위가 집합의 항목이 되는 경우가 다르다. - 메가라학파가 플라톤을 공격한 것이 이데아의 단위 설정이 아니었던가?]
− 멀리서, 수의 용어는 계층의 용어에 속할 수 있는 것 같다. 가까이에서 논리계산이 도움을 청해야했던 우회로들과 인위물들은 자연으로부터 양립불가능성을 폭로한다. 여정의 과정에서 실재론의 해석은 포기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러셀은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A와 B의 보태기에서 “A와 B는 현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는 사물 전체처럼, 이 둘은 존재(un être, the Being)의 방식을 갖는다. 존재의 방식과 현존(l‘existence)의 방식의 구별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 구별은 계산의 절차에 의해 잘 밝혀진다. 셀 수 있었던 것 모두는 어떤 사물이어야 하고[현존], 그리고 비록 현존의 특권 이외에 소유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존재해야(doit être)만 한다.” (407)
그런데 이런 양보들의 댓가를 치르더라도, 계층들의 수학적 논리학은 마지막 난파를 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체계의 균형을 상실하게 하는 모순에 부딪히지 않고서는 계층들의 체계의 구성을 완성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모순의 가장 단순한 형식을 다루기 위하여, “그것의 고유한 외연의 항이 아닌 계층 개념은 마치 계층의 개념처럼 나타난다. 그런데 만일 개념이 그것의 고유한 외연의 항이라면, 그것의 고유한 외연의 항이 아닌 계층의 개념이 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 겉보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고유한 외연의 항이 아닌 계층의 개념은 계층의 개념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비슷한 논평이 논리적 계층들의 총체성을 형성해야만 하는 체계에게 자연적으로 적용된다. 이 총체성은 계층 형성한다. 이 계층은 그것이 계층들의 총체성의 계층인 한에서 현존할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현존하지 않을 때에는 왜냐하면 그것이 계층들의 총체성 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407)
§244. [논리계산은 무한소를 0으로 삼아 계산한다. 그러나 논리학의 수론에서는 불합리하다. 수학에서 요청들의 무모순은 황당하고 착각이다.]
− [러셀의] 수학들의 원리들(1903)의 제1권의 출반 다음날에, 논리계산의 철학적 작품 전체를 개정해야 했다. 어떤 토대로? 반치수들(les demi-mesures)을 탐구하고 난 뒤에, 원리들의 동질성을 거부하면서,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이론의 범위에 대한 단순성 또는 너비를 제한하면서,러셀은 계층의 용어를, 적어도 독립적인 본징의 자격으로, 희생해야할 필연성을 인정했다. “아마도 유비(une analogie)는, 이 변화가 결국에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제기할 것이다. 무한소 계산은 무한히 작은 것을 가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이 무한소 계산에서 한 페이지의 국면을 많이 변화시켰는가? 거의 그렇지 않다. 몇몇 증명들은 수정되었다. 18세기를 혼란하게 했던 몇몇 파라독사들도 해결되었다. 그 나머지를 위하여, 계산의 정식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한소 계산의 근대 이론이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작품을 재통합하지 못했듯이, 내가 제안한 원리들은 페아노의 작품을 재통합하려고 목표를 삼지 않았다.” (407)
이 비교는 확실히 기발하다(ingénieuse). 아마도 러셀은 비교가 허용해야 했던 교육을 완전히 끌어내기 위하여 충분히 멀리 밀고 나가지 않았다. 결국 두 문제가 무한소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하나는 분석적 계산작업들에 관계하고, 다른 하나는 이 계산작업들의 철학적 해석에 관계있다. 무한소의 제거는 과학적 해결들에게 아마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반면에 그 제거는 그 자체와 더불어 일련의 학설들을, 문제들을, 형이상학적 질서들을 허용한다. (408)
계층의 용어에서도 정확하게 마찬가지가 아닌가? 여기서 두 가지 숙명들(deux destinées)이 시합[역할, 경쟁]을 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증적 과학에서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자치적 제작술로서, 구성하는데 성공했던 상징 논리의 숙명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보편적 철학의 토대를 알아차렸다고 믿었던 존재론적 실재론의 숙명이다. 두 숙명들은 이미 중세에 만났었다. 한 찰나에 사람들은 두 가지가 새로이 재통합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모든 수학들이 상징적 논리학에 속한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발견들 중의 하나이다. 일단 이런 사실이 확립되면, 수학들의 원리들의 연구는 상징 논리학 자체의 분석 안에 있을 뿐이다.” (408)
경험의 시험에 따라, 두 문제의 인위적 연결은 사라진다. 상징적 논리학이 자시의 계산을 위하여 스스로 발전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논리학이 소위 말하는 수학적 방법들에게 그것의 방법들을 좀 더 가까이 부합하게 할 만큼 더 많은 성공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교환작업에서 그 논리학은 수학들의 원리들을 언젠가 밝힐 것이라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포기 해야만 했던 착각(une illusion)이다. 착각은 수세기 전통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형식 논리학의 입장에 연합되었던 실재론적 요청위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 요청은 수학들의 철학이 결코 알지 못했던 것들과 같은 황당함들과 모순들의 민낯(une mine)을 드러냈다. (408)
§245.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칭긍정명제의 원리로 삼는 것이 착각(une illusion)이다. 모든(tous)이 기수로서 무한을 정하는 한 파라독사에 빠진다.]
비슷한 결론이 거칠지만 요약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 결론이 러셀 자신에 의해 확정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식화하는데 주저할 것이다. (408)
논쟁의 과정에서 쁘왕가레는 암시했었다. 논리계산 철학의 좌초가, 아마도 이 철학이 모든 유한한 규정작업의 저너머 계층의 용어에로 넓혀지기를 원했다는 점에 기인했다. 모순을 생성하는 것은 “현실적 무한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다. “단어 모두(tous)[전체]는, 유한한 수의 대상들에 관계할 때, 아주 깔끔한 의미를 갖는다. 대상들이 무한한 수로 있을 때라도, 그것이 이들 중에 하나만을 갖기 위해서, 거기에는 현실적 무한이 있다고 해야 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모두(tous)인 대상들은 그것들의 정의보다 앞서서 제기된 것으로서 생각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만일 N 용어의 정의는 모든(tous) 대상들 A에 의존한다면, 만일 대상들 A가운데 그것들의 어떤 것이, 즉 사람들이 N자체의 용어를 개입하게 함이 없이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면, 이 정의는 악순환에 매이게 될 것이다.” (409)
사실상 1897년 이래로, 말하자면 러셀이 칸토어의 작업들에서 인류 사유의 중대한 사건들 중의 하나를 알리기에 앞서 몇 년 전에,이탈리아 논리계산학자인 부랄리-포르티(Cesare Burali-Forti, 1861-1931)는 초한서수들의 총체성의 고려가 이끌었던 안티노미(이율배반)를 폭로했다. “칸토어는 기수들이… 선형의 계열로 줄 세워질 수 있다고,말하자면 두 기수들로부터 다른 하나보다 더 작은 것이 그들 중의 하나가 있다고증명했다. 부랄리-포르티는 반대를 증명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실체에 있어서 만일 사람들이 기수들 모두(tous)를 선형의 계열로 줄 세울 수 있다면, 이 계열은 다른 수들 모두 보다 더 크게 될 기수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사람들은 거기에 1을 보탤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은 한 번 더(encore) 크게 될 기수를 한 번 더(encore)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모순이다.”
이것에 관하여 러셀은 생생하게 항의하였다. “고대인들에 의해 고려되었던 「해결할 수 없는 것들(insolubilia)에 관하여」[러셀의 1906년 논문]에서 어떤 이도 무한을 도입하지 않았다. 쁘왕까레는 에피메니데스를 마치 초한수 이론 안에서 … 소개되었던 이론가들과 유비로서 인용한 것이 특이하다. 이런 파라독사의 단순화는 ‘나는 거짓말한다’고 말하는 그 인간에 의해 구성되었다. 즉 만일 그가 거짓말 한다면 그는 진리를 말한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말한다면서 그는 거짓말 하는 것이 된다. 이 인간은 현실적 무한이 없다는 것을 있었는가?”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이 된다: 모순의 근원은, 무한한 개별적 문제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재론의 일반적 입장 속에서 찾는데 있다. (409)
§246. [파라독사의 해결의 한가지로 심성 또는 상식의 믿음으로부터, 그러나 일반과학의 방법론처럼 한정된 범위에서 계산과 추론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에는 만일 사람들이 왜 ‘나는 거짓말한다’는 이런 단순한 단언이 실재론의 철학을 당황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지를 자문한다면, 사람들은 리드(Thomas Reid, 1710–1796)의 상식의 원리에 관한 인간심성의 탐구(1764)에서 응답을 발견할 것이다. 매력적인 순박함을 지닌 리드는 실재론의 두 가지 요청들을 명백히 한다. 즉 진솔성의 원리(principe de véracité)와 신뢰성의 원리(principe de crédulité)이다. “이 원리들의 첫째 원리는 진리를 말하는 데로, 그리고 우리 감정들 중의 가장 충실한 것을 해석하는 기호들의 언어 속에서 우리에게 봉사하는데로 향하는 자연적 경사[경향]이다. … 둘째 원리는 최고 온존재가 우리의 자연[본연]속에 맡겨두었던 원초적 원리이다. 그리고 원리는 다른 이들의 진솔성에게 우리가 믿음을 부여하는, 또 그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을 믿는, 성향이다.” (410)
한 인물의 사유가 언어 속에서 무매개적으로 또 적합하게 번역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 사유가 항상 동일한 확실성과 동일한 충실성을 지니고, 그 때에 그리고 이런 조건들에서만, 다른 인물에게서도 통한다고 가정해보자. 러셀은 근거를 가질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인용했던 단어에 따라서, 담론 그자체로만 고려하기 위하여, 심성[오성]과는 완전히 무관한 용어(en. totally irrelevant notion if mind)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담론의 세계에서 거짓말(mensonge)이라는 항목의 자리는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 (410)
그런데 실재론의 심리학은 솔직성의 과도함에 의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틀림없이 관례(la courtoisie, 예의, 체면치례)의 과도함에 의해벌을 받는다. 그것은 인간 거짓말한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에 진솔성의 본능이 역할하기를 그만 두었을 때 만일 신뢰성의 본능이 실행된다면, 만일 사람들이 거짓말의 선언으로 초월적 실재성을 실행하고자 고집한다면, 모순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사유의 내적 실재성과 사유의 외적 표현 사이에서 명제들의 관계들을 연관들의 분석에 종속시키는 비판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일 것이고, 그리고 명백하게 위조화폐로서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계산하는 화폐로서 취급하면서 사람들이 존재론적 진리의 평면 속에 남아있다는 것도 모순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실재론은 심리학의 경제[절약]를 행하고자 원했다. 그 밑바탕에서 실재론은 사유 대상의 초월 속에서 상식의 신뢰를 수용하게 했다. 실재론은, 그것의 작업의 끝에 이것[난점]들 설명할 수 없게 하는 형식 하에서, 심리학에게 거의 미묘하지도 않고 또 심리학이 처음부터 실재론을 쓸어 내버리고자 했던 난점들을 재발견해야만 했다.
(410)
또한 논리계산 철학의 진화는, 그것들의 설비를 완전하게 하면서, 그것들에 알맞는 전함들을 꿰뚫을 수 있는 대포들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야금 공장들의 관념을 불러오게 한다. 상징적 논리학의 진보에 의해 논리 계산학은 자기의 초기 야망들을 그 자체로 재통합하기에 이르렀다. 계층들의 실재론에 내속하는 모순들로부터 러셀은 이런 결론을 끌어낸다. 즉 “논리계산학(la Logistique)의 주장들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이 근거하는 명증한 자연[본연]에 관하여 오해가 있었고 … 논리계산의 방법은 본질적으로 다른 모든 과학과 동일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동일한 오류가능성을, 동일한 불확실성을, 귀납법과 연역법의 동일한 혼합을, 원리들을 확정하기 위하여 관찰과 계산 결과들의 일반적 일치에게 호소하는 동일한 필연성을, 포함한다.” (411)
아마도 러셀은 논리계산의 반대자들이 경멸(멸시le mépris)을 나누어가졌다고 고발하였는데, [그런데] 만일 그가 그들에게 제공했던 항목들 안에서 그들이 논쟁을 받아들였다면 이 반대자들은 비난받을 만하지 않다. 그러나 경이로운 많은 고려 사항들에서 정신의 침투를 증거 하게했던 논리계산의 찬성자들이(이탈리아학파는 따로 떼어놓고서), 그들 자신의 고백에서 보듯이, 비슷한 착각에게 양보했다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관념들의 역사적 분석의 관점으로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질적이다. 해결은 수학 철학을 위하여 생명적 관심으로부터(d‘un intérêt vital)일 것이다. 만일 해결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연역법의 “거짓 이상(faux idéal)”로부터 수학철학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다. (411)
(18:23, 59R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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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경 에피메니데스(Epiménide, Ἐπιμενίδης, 556경활동), 고대 그리스 시인, 철학자. 샤만(iatromante (chamane)[ἰατρόμαντις, « médecin-devin »),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360? 에우클리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활동),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원론(Éléments, Στοιχεία)(전300년경, 13권). - p.37 주1) Elém., IX, 36, éd. Heiberg, t. II, Leipzig, 1884, p. 408.
04 예수(Jesus, 전04-후30?), 유대 종교개혁가, 민중운동가. 그의 제자들로 베드로(lat. Petrus, fr. Pierre, en. Peter, deu. Peter), 요한(lat. Ioannes, fr. Jean, en. John, deu. Johann, 06-100), 야고보(lat. Iacobus, fr. Jaques, en. James, deu. Jakob)등 12명이 있다.
O
1596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분석 기하학의 창시자.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10 리드(Thomas Reid, 1710–1796), 스코틀랜드 철학자. 지각이론으로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상식학파 창설자. 상식의 원리에 관한 인간심성의 탐구(An Inquiry into the Human Mind on the Principles of Common Sense, 1764)(fr. Recherche sur l'entendement humain d'après les principes du sens commun, 1764)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96 주프르와(Simon Joseph Théodore Jouffroy, 1796-1842), 프랑스 철학자. 꾸쟁의 절충학파.
1809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 작가, 시인, 편집자, 문학평론가. 미국 낭만주의의 거두, 미스터리 및 마카브레(macabre 섬뜩한) 작품들로 가장 유명하며, 미국 단편 소설의 선구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들어냈다.
1821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 프러시아 생리학자, 물리학자. 유체 동역학, 소리와 열의 지각이론과 열역학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는 물리학과 생리학에 기반한 심리학인데 반해, 브렌타노는 의식활동의 철학에 기반한 심리학을 주장. 독일의 심리학계 양대 산맥이었다. 전자들은 페이너-분트 계보, 후자들은 인데,
1846 칸토어(Georg Ferdinand Ludwig Philipp Cantor, 1845-1918), 러시아 태생 독일의 수학자. 무한 집합에 대한 연구로 현대 수학의 기반이 되는 기초적 집합론을 창시.
1848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Les Fondements de l'arithmétique (Die Grundlagen der Arithmetik, 1884)
1854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 소르본대학 천문학 교수, 1908년 아카데미 회원. 협약주의(컨벤셔널리즘, 규약주의, 규약설 또는 편의주의), ‘고전 역학의 경우 뉴턴의 운동법칙을 기반으로 하든지 라그랑주 역학으로 하든지 둘 다 옳으며 어느 쪽이 맞는지 진위성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 / Théorie du potentiel newtonien, leçons professées pendant le premier semestre 1894-1895. G. Carré et C. Naud (Paris), 1899. 쁘와송(Poisson, 1781-1840)에 의해 포텐셜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쁘와까레는 1894년 학기에 강의 했으며, 그것을 르화(Le Roy, 1870-1954)와 뱅상(Vincent, 1872–1955)이 정리하여 1899년 출판하였다. 이로서 수 또는 수학의 개념들에 대한 직관주의 등장의 길을 열었다. 수학계에서 벩송이 주목받게 되고 르화는 1912년 새로운 철학을 쓰게 될 것이고 네델란드에서 수학의 직관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1858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 수학자, 언어학자.
1860 삐에리(Mario Pieri, 1860–1913), 이탈리아 수학자. 투영기하학 연구.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전후에 미국에서 활동.
1861 부랄리-포르티(Cesare Burali-Forti, 1861-1931), 이탈리아 수학자. 서수의 가장 큰 수 파라독사(le paradoxe du plus grand ordinal en théorie des ensembles).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
1873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1958), 영국 철학자, 관점에서 러셀, 비트겐슈타인 초기 프레게에 가깝다.
1874 레이몬트(Arnold Reymond, 1874-1958), 스위스 철학자. 논리학자. 로잔대학 총장, 원제: Logique et mathématiques: essai historique et critique sur le nombre infini, Saint-Blaise : Foyer Solidariste, 1908.
1880? 뒤퓌미에(Henri Dufumier (18..[1880]-1917), 1905 철학교수자격 통과 \ 러셀의 객관주의 논리에 대해 논리적 실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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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정수론과 대수학 분야 전문가. '유한주의'의 선구자
[1838 브렌타노(Franz Clemens Brentano, 1838-1917), 독일 철학자, 심리학자. 카톨릭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해석, 심리학을 실증적이고 경험적 과학으로 정초하였다.
[1848 프레게(Friedrich Ludwig Gottlob Frege, 1848-1925), 독일의 수리논리학자(논리계산학자),
[1858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 수학자, 철학자. 집합론에 기여.
[1881 라위천 에흐베르튀스 얀 브라우어르(Luitzen Egbertus Jan Brouwer, 1881-1966), 네덜란드 수학자, 철학자. 위상수학, 집합론, 측도론, 복소해석학 분야 전문가, 수리철학의 하나인 직관주의(intuitionism)의 창시자.
*-* 참조:
# 러셀의 10가지 공리들,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
1) 타우톨로지(동어반복) 법칙: pv(or) p→p.설명: 어떤 명제가 참이거나 참이면, 그 명제는 참입니다.
2) 합(OR)의 분배 법칙: q→pv q. 설명: q가 참이면, p이거나 q인 명제도 참입니다.
3) 교환 법칙: p v q →q v p. 설명: p 또는 q는 q 또는 p와 의미가 같습니다.
4) 결합 법칙: p v (q v r) →q v (p v r). 설명: 명제들의 순서를 바꿔 묶어도 전체 명제의 참/거짓은 변하지 않습니다.
5) 삼단 논법(함의)의 확장: (q →r) →(p v q → p v r). 설명: 'q이면 r이다'가 참일 때, 'p 또는 q'이면 'p 또는 r'이다도 참이 됩니다.
수량화(Quantification) 논리의 공리
6) 범주화 공리: 모든 대상에 대해 어떤 조건이 성립한다면, 특정 개별 대상에 대해서도 그 조건은 성립합니다.
7). 존재 일반화 공리: 개별 대상 x에 대해 명제 φ x가 성립한다면, 이를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명제도 성립합니다.
형식 체계의 구조적 공리
8). 유형 이론(Theory of Types): 모순(예: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집합 등)을 피하기 위해 대상, 집합, 집합의 집합 등을 계층으로 나누는 규칙입니다.
9). 선택 공리(Axiom of Choice): 무수히 많은 각각의 집합에서 원소를 하나씩 뽑아 새로운 집합을 만들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10). 무한 공리(Axiom of Infinity): 유한한 개수의 대상뿐만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개수의 대상(예: 자연수의 집합)이 존재함을 가정하는 원리입니다. (59RLI)
* 요약
[1) 동어반복 법칙: pv p→p.2) 분배 법칙: q→pv q. 3) 교환 법칙: p v q →q v p. 4) 결합 법칙: p v (q v r) →q v (p v r). 5) 삼단 논법(함의)의 확장: (q →r) →(p v q → p v r). 더불어, 6) 범주화 공리. 7). 존재 일반화 공리 8) 유형[전형] 이론(Theory of Types). 9). 선택 공리(Axiom of Choice). 10). 무한 공리(Axiom of Infinity).]
* 다섯 가지로 설명할 때
1) 동어반복의 법칙: p v p ⊃p (p 또는 p는 p를 함의, 함축한다)
2) 합의 법칙: q ⊃p v q (q는 p 또는 q를 함의한다)
3) 선택 법칙: p v q ⊃q v p (p 또는 q는 q 또는 p를 함의한다)
4) 연합 법칙: p v (q v r) ⊃q v (p v r) (괄호의 위치를 변경)
5) 함의의 원리: q ⊃r ⊃(p v q ⊃p v r) (p 또는 q가 p 또는 r을 함의한다) (59RLI)
(21:16, 59RMF) (18:22, 59SK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