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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길에서 만난 할머니
이호철
“아빠, 오늘은 외씨버선길 걷는다고 했지요?”
“으응. 외씨버선길 7구간.”
“그런데 왜 ‘외씨버선길’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오잖니.”
보니 ‘외씨버선’은 볼이 좁아 모양이 갸름한 버선을 말한다네요. 또 ‘외씨버선길’은 경북의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의 영월, 이렇게 네 개의 군이 모여 만든 240km, 열다섯 구간의 길을 이으면 그 모양이 외씨버선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아름이라고 해 놓았습니다.
“아빠, 7구간 거리는 얼마나 돼요?”
“그것도 찾아보면 다 나오잖니. 8.3km라던가? 이게 외씨버선길에서 가장 짧은 구간일걸? 참 아름답다고 소문난 길이야.”
“아빠, 그 정도 거리는 저도 걸을 수 있겠어요. 아빠 따라 등산하고 걷기 한 날이 얼만데요.”
“하긴⋯⋯. 그래도 만만찮을 거다. 그 어떤 길도 걷기 아주 힘든 굽이는 있게 마련이거든.”
동규는 아빠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배낭에 물과 간식을 챙겨 넣고 바람막이 점퍼도 넣었습니다.
“호호호⋯⋯, 부자간에 다정하기도 하셔라.”
동규 어머니가 부러운 듯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했습니다.
시외버스 정류소에는 떠나려는 버스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히말라야 등산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옷차림을 한 등산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습니다. 자기 몸집보다 큰 배낭을 짊어진 젊은 사람도 보이고요. 정류장 한쪽에는 어떤 단체에서 함께 등산을 가는지 둘러서서 시끌벅적 이야기 나누는 등산객도 있습니다.
도시를 빠져나온 버스는 어느새 한적한 시골길을 달립니다. 동규는 차창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서늘하면서도 시원한 공기가 밀고 들어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아아 벌려 맑은 공기를 스으읍 들여 마셨다 후우우 내 뿜었습니다.
“어때? 공기가 완전 다르지?”
“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버스는 읍 소재지 버스 정류소에 다다랐습니다. 오전 10시 반쯤 되었을까? 정류소 들머리에는 벌써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보따리에서 푸성귀를 꺼내어 모닥모닥 놓고 있습니다. 걷기 시작하는 곳까지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으응?’
갈아타야 할 버스가 정류소 들머리로 슬슬 빠져나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저기요! 기다려요! 동규야, 빨리 오너라!”
동규 아버지는 소리치며 따라가다 안 되어 버스 옆을 탕탕 두드렸습니다. 그때서야 ‘끼이익’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나더니 버스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동규야, 빨리!”
동규도 버스쪽으로 뛰었습니다.
“어억!”
뛰어가던 동규가 그만 퍽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메었던 배낭까지 나뒹굴었고요.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좌판 벌여놓은 것을 피하려다 다리가 꼬인 것이지요. 아프다 어떻다 할 감정 말이 튀어나올 사이도 없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이구 야야, 개안나?”
“안 다칬나?”
할머니들이 걱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 참!”
동규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헐레벌떡 버스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빠 곁에 앉으면서 투덜투덜했습니다.
“동규야, 너 왜 그래?”
“넘어졌어요.”
“으잉?”
“할머니들이 펼쳐놓은 나물 좌판을 피해서 급히 오다가요.”
“괜찮아?”
“괜찮긴 한데⋯⋯.”
“괜찮긴 한데?”
“아이 참! 할머니들은 왜 사람 다니는 길까지 점령해서 장사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잖아요.”
“⋯⋯. 이 버스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해. 그래도 탈 수 있어 다행이지 뭐.”
“⋯⋯.”
동규는 속이 상해 아무 대꾸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지나서야 마음이 풀렸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골 풍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 저기 산기슭에 진달래꽃 폈어요!”
“그래, 벌써 폈네. 참 곱기도 하구나.”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몇 사람씩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동규는 화장실에 갔다 와 등산화 끈을 다잡아 매고 배낭끈도 더 조였습니다. 상큼한 공기가 동규의 기분을 돋우어 줍니다. 양지쪽에는 풀이 파릇파릇 돋아 있습니다.
한 시간쯤 야산 오솔길을 걸어 언덕 같은 나지막한 산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우와아, 들 풍경이 참 멋지구나!”
고만고만한 논밭이 모자이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한쪽에 자그마한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 곳곳에 나무가 서 있는 언덕을 보면 산수화 수를 놓은 것 같습니다.
“아빠, 풍경을 자꾸 보니까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그냥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렇지? 이런 맛에 걷기도 하고 등산도 하는 거지.”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반쯤 되었을까? 한 마을을 지나다 보니 마을 지킴이 나무인 늙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에는 할머니 세 분이 앉아 따뜻한 햇볕에 해바라기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요.
“동규야, 정자에 앉아 좀 쉬었다 갈까?”
동규도 다리가 뻐근한 게 좀 쉬었으면 싶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저희 좀 쉬었다 갈게요.”
동규 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들은 선뜻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라이소.”
“아들하고 같이 왔는 갑네. 우리 막내이 손지하고 비슷하구마.”
“이쁘게도 생깄다.”
동규와 동규 아버지는 가지고 온 떡과 사과를 할머니들 앞에 조금 내어놓았습니다.
“우리 묵을 끼 어데 있노. 우리 생각 말고 잡수소. 시장할낀데⋯⋯.”
그러고는 다시 할머니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아래 덕암띠기 할마시 아들은 지 마누라하고 사니 못사니 카디 우예 됐노?”
“결국에 헤어졌뿌맀지 뭐.”
“에이구, 그러마 두 손자 손녀는 우짜노?”
“아들이 늙은 지 어마이한테 떠 맽기고 돈 벌로 간다꼬 갔뿌리고는 소식도 없다 아이가. 할마시 지 몸도 아픈데 어린 손자 둘 키운다꼬 꼴땅에 안 빠짔나.”
“그래가 마실도 잘 몬 나오는구만.”
“쯧쯧쯧⋯⋯.”
“명산띠기 니는 다리 좀 어떻노?”
“맹 그렇제 뭐. 절뚝절뚝 절미 댕기야제. 병원에 가봐도 늙어가 그렇다 안 카나.”
“허이고오, 나이 무마 고장 안 나는 데가 어데 있나 뭐.”
“우곡띠가. 니는 아들딸 자주 오나?”
“모올라. 즈거들 산다꼬 바쁜데 자주 올 수나 있나. 손자들은 공부하니라꼬 바쁠끼고⋯⋯.”
동규와 아버지는 다시 걸었습니다.
“아빠, 멀리서 마을을 보면 참 정겨워 보이는데 들어와서 보니까 왠지 쓸쓸한 느낌이 나네요. 할머니들 이야기 들어보니 좀 씁쓸하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큰 소나무 우거진 산기슭을 헉헉대며 올라가기도 하고 맑은 물이 찰찰 흐르는 산골과 산 언저리를 굽이굽이 돌기도 했습니다.
산 중턱 돌너덜을 지날 때였습니다.
“앗!”
뒤따라가던 동규가 폭 주저앉았습니다.
“왜 그래?”
“아후! 발, 발목이요.”
“발목이 왜?”
“접질렀어요.”
“괜찮아?”
“아후, 아파!”
동규는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아빠가 오늘 걷는 이 길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일어나 걸어보니 발목이 새콤새콤했습니다.
“걸을 수 있겠니?”
“조금 쉬었다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쉬었다 일어서니 더 아픈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만 지름길로 내려가야겠다.”
“아빠, 저 때문에 끝까지 못 가서 어떡해요?”
“아니다. 걸을 만큼 걸었다. 무리할 필요 없다. 내가 부축해줄까?”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걷기 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한참 내려오다 마을 가까운 밭 언저리 언덕에 앉아 쉬었습니다. 언덕에는 큰 소나무 두 그루가 보초병처럼 서 있습니다.
“동규야, 좀 어떠니?”
“이젠 거의 풀린 것 같아요.”
“그래도 밤에는 삔 곳이 더 욱신거리고 부어오를지 몰라.”
언덕에서 마을을 보니 고요합니다. 가끔 개 짖는 소리 들리고요. 멀리 한 논에는 거름을 내는지 무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앉아 쉬고 있는 우리 바로 앞 밭둑에서 두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캐고 있습니다. 행주치마를 반쯤 접어 허리에 매고요. 호미로 캐는 걸 보니 냉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나물도 캐겠지요. 한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썼고 한 할머니는 낡은 챙모자를 썼습니다. 캔 나물은 작은 포대기 반쯤 될까 말까 합니다.
“아이고 다리야. 이놈에 다리는 천날만날 이래 아프노.”
수건 쓴 할머니가 한 다리를 뻗치며 다리를 툭툭 쳤습니다.
“니 모가치까지 내가 다 캐 주꾸마 좀 쉬라. 만날 이 짓을 해노이 다리가 안 아프고 배기겠나.”
챙모자 쓴 할머니는 다리 아픈 수건 쓴 할머니를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말없이 부지런히 냉이를 캐었습니다.
“아나. 니 쪼매 더 해라.”
챙모자 쓴 할머니가 행주치마에 캐 모은 나물을 수건 쓴 할머니 자루에 넣어주었습니다.
“허이고오, 니도 애 묵도록 캤는데 말라꼬 주노. 안 한다. 가지가라.”
다시 나물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니는 아들 오마 돈도 좀 주야 안 되나. 손자도 주야 될 끼고. 나는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으이 쪼매 캐가 묵고 살마 안 되나.”
“으대. 나는 아들 손자라도 있지만서도 니는 아무도 없다 아이가.”
“그러이 니가 더 많아야제.”
“아이다. 니가 더 마이 캐 팔아갖꼬 강새이나 한 마리 사라.”
‘강새이?’
동규는 무슨 말인지 궁금했습니다.
“아빠, ‘강새이’가 무슨 말이에요?”
“으응, 그건 ‘강아지’란 말이란다.”
챙모자 쓴 할머니가 다시 수건 쓴 할머니 자루에 나물을 더 넣어주었습니다. 서로 더 넣어주려는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동규야, 이제 내려가도 되겠지?”
발목이 조금 욱신거리긴 해도 걸을 만은 했습니다.
내려와 마을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40분 정도 기다렸을까? 나물 캐던 할머니 두 분도 왔습니다. 챙모자 쓴 할머니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수건 쓴 할머니는 비닐 끈 짐바를 해서 등에 지고요. 두 할머니는 정류소에 와서도 나물 자루 주둥이를 열어 서로 나물을 더 주려고 실랑이를 했습니다.
“아나. 니 쪼매 더 갖꼬 가그라.”
“어고오 참! 나는 많아바야 쓸데 없다카이.”
“으대. 니가 더 쓸데 많다 아이가. 돈벌어가 아들래미 찾아야제.”
마침 마을버스가 왔습니다. 버스에서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장 보따리를 들고 내렸습니다. 읍내 시장에 갔다 오는 가봅니다.
기사가 버스를 돌려세우자 동규와 동규 아버지는 얼른 올라탔습니다. 버스는 바로 슬금슬금 떠나려고 했습니다. 할머니 두 분은 그때야 나물 보따리를 끌어안고 헐레헐레 뛰어왔습니다.
“이보소! 기사양반, 세아주소!”
동규는 그 모습을 보고 운전기사에게 알렸습니다.
“아저씨, 차 세워주세요!”
“왜?”
“저기 할머니 두 분요.”
기사 아저씨는 버스를 세우며 짜증을 내었습니다.
“서있을 때는 안 타고 뭐했노, 쯧!”
챙모자 쓴 할머니가 먼저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 올라섰습니다. 이어 수건 쓴 할머니가 보따리를 두고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보따리를 들어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걸 본 아버지는 할머니를 도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성큼성큼 갔고요. 그때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놓았다 콱 밟았습니다.
“어이쿠!”
수건 쓴 할머니가 차에서 떨어져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동규 아버지는 기우뚱하다 의자 옆을 꽉 잡아 아주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동규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차에 먼저 탔던 챙모자 할머니가 버스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하이고 마, 개안나? 다친 데는 없나?”
떨어진 할머니는 잠시 넘어진 채 있더니 옷을 툴툴 털며 일어섰습니다.
“마 개안타. 걱정 말그라.”
‘아아, 다행이다.’
동규 아버지도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부축했습니다.
“괜찮습니까?”
“개안타 카이 마카 와 이래 호들갑 떠노.”
“큰일 날 번 했습니다.”
동규는 큰 숨을 휴우 내쉬었습니다.
차에 먼저 탄 챙모자 할머니가 차에서 떨어졌던 수건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놓고는 운전기사한테 따졌습니다.
“운전을 와 그래 하능교? 사람 잡을라 카나! 내 친구 할마시 다치마 우짤라 카능교?”
“친구가 다치는데 할매가 와 난리 직이쌌능교?”
“뭐라꼬? 자는 내하고 같이 살다시피 하는 친구다! 내 동생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챙모자 할머니가 막 뭐라하니까 떨어졌던 수건 할머니가 말렸습니다.
“고마 됐다. 어지가이 해라. 내 다친 데도 없다. 그라고 기사 양반이 그라고 싶어가 그랬겠나. 고마 됐데이.”
항의하는 할머니를 끌어다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래도 챙모자 할머니는 자꾸 뭐라뭐라 했습니다.
“기사 양반 운전 그래 하마 안 돼구마, 으이!”
떨어진 수건 할머니는 항의하는 챙모자 할머니의 입을 막으며 자리에 앉혔습니다. 기사 아저씨도 미안했던지 할머니의 나물 보따리를 들어 한쪽 옆으로 잘 놓아주었고요. 떨어진 수건 할머니가 차비를 내려고 하니까 챙모자 할머니가 낸다면서 돈을 막 꺼내었습니다.
“내가 낸다카이 이느무 할망구가 디기 말을 안 듣네.”
“내가 말 안 듣는 기 아이고 니가 말 안 듣는 기다. 고마 앉아 있어라.”
자꾸 두 할머니가 다투니까 기사 아저씨가 이랬습니다.
“하이고 마 그냥 둘이 다 차비 내지 마이소. 내가 미안하이끼네 그양 태아드리끼예. 걱정 마고 앉아 계시이소.”
버스는 다시 달렸습니다.
“기사 양반, 내가 소리 질러가 미안하요. 내가 안 그칼낀데 저 할망구는 자석도 없이 혼차 안 사나. 그러이 다치마 누가 보살피 줄 사람도 없으이 우짜겠노. 고마 이해하소. 늙은 할망구가 이래 나물 긑은 기나 팔아가 기우 밥 끼리 묵고 안 사나.”
“하모. 저 할망구는 자석 손자 있다 카기는 캐도 일년이 다 가도 한번 오까마까다. 그기 무신 아들 손자고. 이래저래 속이 천불나가 소리 칬을끼다.”
“할매요. 내가 미안하제요. 우짜든지 건강하이 사시이소.”
두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다시 싱갱이를 했습니다.
“바라, 니 때문에 이 사고가 안 났나.”
“우예 내 때문이고?”
“니가 나물 그거만 빨리 받았어도 개안았을 낀데 괘이 고집 부리갖꼬 이래 안 됐나.”
“안 받는다 카이 와 자꾸 주기는 주노.”
“마 됐다. 인자 와가 싸우마 뭐하노.”
버스는 읍내 버스 정류소에 들어섰습니다. 정류소 들머리에는 여전히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동규야, 오늘은 좀 일찍 돌아왔으니까 읍내 시장 한 번 둘러볼까?”
“좋아요.”
시골 시장은 도시 시장에 견주면 참 한가해 보입니다. 농사지은 것들을 손수 내다 팔고 사가는 모습이 무척 정겹습니다. 복숭아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밤나무 같은 묘목을 사고 파는 것도 이때의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고요.
다시 버스 정류소로 돌아왔습니다.
“아빠, 저기 할머니한테 냉이 좀 사가면 안 돼요?”
“안 그래도 시장에서 뭘 좀 사갈까 했는데 여기서 냉이 살 생각으로 그냥 정류소로 왔지.”
동규는 냉이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사르르 돌았습니다. 아침에 올때 제풀에 넘어져 놓고 나물 파는 할머니를 탓한 일이 떠오르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오는 버스는 달렸습니다. 동규는 사르르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걷기 길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이 자꾸 어른거려서요. 재작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도요. “아고오, 이쁜 우리 똥강아지 왔나!” 하며 꼭 안아주던 할머니요.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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