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근대로의 시간여행 |
여행에 서툰 이들에게 도시는 굉장히 친절하다. 사람이 많아서 지치고, 불편한 교통편에 다리가 아프고, 안내판 하나 없이 지도에만 의존해 길을 찾아가야 하는 일은 초보 여행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여행은 당연히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들 머릿속에 박혀있지만 사실 여행의 본질은 ‘낯선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매일같이 보는 광경일지라도 조금만 발을 틀어서 골목길로 가보면 일상에 갇혀 보지 못했던, 아니 보지 않았던 것들로 도시는 가득 차있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보면 알랭 드 보통이『여행의 기술』에서 말한 것처럼,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고 그렇게 흘러가는 생각들은 일상에 꽉 막힌 머릿속을 여름철 내리는 소나기처럼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반월당역과 진골목 사이에 약령시에서 시작되어 청라언덕을 넘어 서문시장까지 이어지는 대구의 도심골목길은 다양한 근대 건축물들을 한걸음에 둘러볼 수 있는, 다른 여행지와 차별되는 대구만의 장점이다. 350여년 전통의 약전골목 입구, 감초당한약방의 감초향기를 느끼는 순간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골목 가득히 내놓은 약재들을 옆 눈으로 보면서 지나가다가 진한 약재향속에 숨어있는 고즈넉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진골목을 찾아낸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긴 골목’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을 요즘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진골목으로 잠시 들어가서 지금은 폐쇄된 정소아과 의원건물의 낡은 담벼락을 보면서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길을 떠올려도 좋고, 골목 가득한 식당들에서 전통이라는 조미료로 양껏 맛을 낸 음식들을 맛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배를 채운 나를 맞이해주는 것은 이상화, 서상돈 고택이다. 어두운 일제의 통치하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암담해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간 두 분의 자취는 포만감으로 풀어진 긴장을 다잡게 만든다. 시대의 흐름에 꺾이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며 살아왔던 두 분의 정신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날카롭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부터 시작된 대구의 3.1운동으로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까만은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지켜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다만 오랜 지기인 현진건선생님과 한 날 한 시에 돌아가셨으니 높은 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같이 바라보며 서로의 시와 소설을 나눴으리라.
계산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꺅’ 하는 여자들의 비명이 들린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어서 빠르게 뛰어가 본다. 계산성당 앞에 가보니 여중생들로 가득하다. 내가 비명소리라고 착각했던 그 소리는 성당의 아름다움에 취한 학생들의 감탄사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02년에 완성된 계산성당은 대구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 건축물로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수 없는 양식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탐과 스테인드글라스에 고딕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성당 안을 들어가 보니 미사 중인 교인 분들이 조용히 기도를 하시는데 나 같은 속인이 오래 머무르다가는 벼락이 떨어질까 무서워 금방 밖으로 나왔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신성한 곳에 속세에 찌든 발을 내민 것을 하느님에게 사죄하고 청라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3.1운동당시 일본의 감시를 피해서 이용하였다고 해서 3.1운동계단이라 불리는 의미 있는 계단을 하나씩 걸어 올라가면서 위를 보니 푸르른 하늘 아래 새하얗게 서있는 대구제일교회의 모습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 걷지 않은 듯한데도 차오르는 숨을 잠시 내뱉으며 청라언덕에서 아래를 내다보니 집 3채가 보인다. 멋지게 꾸며진 정원과 세모난 모자를 쓴 지붕, 그리고 붉은 벽돌을 친구삼아 뻗어있는 담쟁이덩굴의 모습을 보니 유럽 어느 작은 도시의 골목길에 와 있는 듯 했다. 원래는 선교사들의 주택이었지만 현재 의료박물관과 선교박물관, 그리고 교육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제중원을 설립한 의료 선교사 존슨이 가져온 사과나무는 수명이 1백년도 넘었다고 하니 대구의 수많은 사과나무들의 조상이라 하겠다. 왼쪽에 위치한 선교사 스위즈의 집은 다른 주택들과 다르게 한옥식 기와와 지붕을 덮고 단단한 나무로 대들보 삼아 지어졌는데 그 모습이 근대적이면서도 한옥집의 모습을 같이 담고 있어 지역과 조화되고자 하는 선교사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했다.
이만하면 다 돌았다 싶지만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서 발걸음을 봉산문화거리로 옮겼다. 대구사람들이야 봉산문화거리가 무엇하는 거리인지는 알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모를 것이니, 비유를 하자면 대구의 인사동이라 할 수 있겠다. 거리에 자리 잡은 소규모 화랑과 갤러리들, 그리고 앉아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주는 찻집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서 거리 전체가 예술적인 정취로 가득하다. 매년 4월과 10월에는 봉산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때맞춰 간다면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걷기는 우리 머릿속을 짓누르는 모든 고민과 번뇌를 쫓아준다. 뚜벅뚜벅 길을 걷다보면 오장육부의 모든 신경이 집약되어있는 발바닥이 자극되면서 몸속의 활기를 되찾아주고 하루 종일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기느라 퇴화한 육체 속에 잠들어 있는 원시적인 본능을 일깨워준다. 대구 도심에 새롭게 길이 생겼다. 사실 길은 처음부터 있었겠지만 저 옛날 강태공처럼 고즈넉하게 도심에 숨어있던 길을 대구 중구청이 발견하고 재조명하여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현대적인 건축물들로 가득한 대구도심에 지쳤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근대골목길을 걸어보자. 일상에 상처받은 마음에 휴식을 주는 시간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