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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흑암 재앙 - 지하 암반수의 분출
제목 /
설교일 / 2007-04-02
본문 / 출 10:1-29
오늘 고난주간 첫 번째 날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6시부터 12시까지 흑암이 드리워지지 않습니까?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흑암 재앙과 그의 앞선 메뚜기 재앙에 관한 언급이 되어 있는 출애굽기 10장 제목을 우리 이렇게 정해봅니다.
'지하 암반수의 분출'. 도대체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 그것들이 지하 암반수의 분출이라고 하는 비유적 표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동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하 암반수 하며는 제 자신은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강원도 속초에 가며는 모 아주 유명한 그런 막국수 집이 있습니다. 그 막국수 집에 가면 지하 암반 100m 지하에 있는 그 암반의 지하수로부터 물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그 막국수 국물이 아주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 이렇게 광고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요즘은 된장 청국장, 웰빙 바람을 타고 아주 각광을 받는 음식인데 이 된장 청국장 같은 것도 지하 암반수 지하 130m 암반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려서 메주를 띠우고 청국장을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 우리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깊이 깊이 파이프를 묻어서 거기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채수작업을 하는 그런 지하 암반수의 분출 기억하면서 우리가 한번 봅니다.
여러분, 인간의 마음도 이렇게 지하 암반수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파이프를 박으면 그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분출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분출되어지는 것이 뭐냐?
지금 바로 왕의 애굽 땅에 임하고 있는 그런 재앙적 요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에 지금 이 바로 왕의 애굽 땅에 임한 재앙이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입니다. 그 바로 앞에서 우리가 6절까지 읽었습니다만 7절에 보면 바로 왕의 완고함을 보고 신하들이 이제는 나서서 바로 왕을 만류합니다.
애굽이 진짜 망한 것을 모르십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애굽이 망한 것을 지금 모르고 계십니까? 그런데 계속 고집을 피웁니까? 이제 메뚜기 재앙이 임하게 되고 또 흑암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나는 것 없어요?
메뚜기 떼가 임한다는 것은 순간에 온 들녘과 산천초목이 앙상한 뼈만 남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도 중국 땅에는 이 때때로 임하는 메뚜기 떼의 폐해 때문에 아주 농부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는데 그 메뚜기 떼가 한번 임했을 때 메뚜기 떼가 큰 것 같은 경우는 하늘이 새까맣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땅에 내려앉으면 1m2안에 보통 사이즈 메뚜기 떼 같으면 한 400-1,000마리 정도가 1m안에 들어온답니다. 1.000마리라도 굉장한 거지요? 근데 좀 아주 사이즈가 큰 메뚜기 떼 같은 경우는 1m2안에 6,000마리까지 들어간답니다. 그 사방 1m 거리의 그 공간 안에 6,000마리의 메뚜기 떼가 들어와요. 그러니까 오늘 재앙으로 애굽 땅에 임한 메뚜기 떼는 아마 이 정도는 안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온 지면에 덮여서 땅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러니까요. 빼꼿하게 6,000마리가 1m안에 바글바글하는데 잠간 앉았다가 후욱 날라간 뒷자리를 보면 완전히 초토화되어버린다는 것이에요. 아주 싹쓸이를 해버려요.
우박 재앙이 내려서 그 농산물들이 아주 망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메뚜기 떼가 임해서 농산물 나머지를 싹 긁어가버리고 농산물뿐만이 아니에요. 그 들녘과 나무 뭐 잡초까지 아주 녹색이라는 것은 싹 없어지고 또 추수 때 누런 곡식이 익어갈 때 메뚜기 떼가 임했다 싹 가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순간에 빈손이 되어버리는 공허함. 결실이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함.
그리고 뒤따라 흑암의 재앙이 왔어요.
그리고 앞에서 이 바로 왕의 신하들이 말한 것처럼 애굽이 망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계십니까?
무슨 뜻입니까?
혼돈 그리고 메뚜기 떼가 임한 공허 그리고 흑암.
창세기의 1장 2절 기억하시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공허!
열매가 없는 거예요. 결실이 없는 거예요. 노력을 했습니다. 농부가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인내하고 고통을 참았습니다. 많은 노력이 투자됐습니다. 근데 메뚜기 떼가 한번 딱 찾아오고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공허함.
그리고 이 더듬을 정도의 흑암!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고 하잖아요? 사람이 그냥 걸어갈 수가 없어요. 더듬더듬하면서 그러니까 장님하고 똑같이 되었다는 얘기에요. 더듬더듬하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런 흑암이 덮혔고, 그 앞에 이미 온 나라 안에 임한 일곱 재앙을 통해서 완전히 혼돈 뒤죽박죽이 된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뭔지 아십니까?
지하 암반수의 분출이라는 것이에요. 우린 밖에서 왔다고 자꾸 생각합니다. 재앙이 내 외부에서부터 왔다고 자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모세가 이제 바로 왕 앞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바로 왕이시여. 당신이 언제까지 하나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막을 것입니까?(3절) 라는 말을 직접 인용을 해서 말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여 나의 백성들이 나를 섬기는 것을 방해하겠느냐 라고 모세가 말합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여러분?
사람 속에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바깥의 세계, 하나님이 아닌 바깥의 세계의 특징이 뭐냐 하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입니다.]
혼돈, 일곱 가지 재앙으로 온 나라 안이 쑥대밭이 된 그런 상태.
공허, 메뚜기 떼가 와서 싹 긁어가버려 결실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더듬을 정도의 흑암.
이것이 바로 왕의 본전치기였다는 것이에요.
본래 바로 왕이 이런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대초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바깥세상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바깥 세상은 바로 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는 것인데 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부터 우리가 태어나서 우리 안에 우리 마음의 지하 속에는 뭐가 있느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내 앞에서 겸비하지 못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바깥에 있는 존재로서 지하 암반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담고 있는데 내가 하나님의 나 앞에서 계속 나를 고집합니다.
"이렇게 되면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 상황이 이게 뭡니까? 이렇게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아내가 이렇게 내 남편이 이렇게 내 자식들이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곧지 세우는 것이지요?
이 나가 뭡니까?
내 지하 암반의 파이프를 박는 겁니다.
파이프를 박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 지하 암반에 있는 나의 특징인 나의 본질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분출되어 나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 환경을 덮어버린다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내 마음의 지하 암반 속에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나를 내세움으로서 내 경험, 내 지식, 내 생각, 내 소원, 내 계획들을 관철하려고 내세우는 동안에 파이프를 박아버리고 그리고 지하 암반에 숨어있는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시켜서 그것이 내 환경 속에 나타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매장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궁금하지 않아요?
지하 암반 속에 숨어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매장량은 어느 정도인가?
여러분 분명히 아세요.
하나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심지어 죄송한 얘기지만 여러분이 화장실에 들어가도 하나님은 옆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계신 앞에서 나를 생각하고 나를 주장하고 나를 고집하는 동안에 우리 파이프를 박는다고 그랬어요? 그 파이프를 박을 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분출해서 내 환경에 나타나게 될 겁니다.
근데 그 매장량이 어느 정도일까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그 매장량은 한 사람 마음 속에 들어있는 지하 암반의 혼돈함과 공허함이 결심이 없음과 어두움은 애굽이라는 한 나라를 덮고도 남습니다. 모든 개인 속에 그 마음의 지하 암반에 숨어 있는 삶을 혼돈하게 만드는 그 혼돈, 그리고 삶을 아무 결실이 없게 만드는 공허, 그리고 삶의 길을 모르겠어요. 방향을 모르겠어요. 빛이 보이지 않는 그런 암흑.
이것의 매장량은 그 사람이 가장이라면 온 집을 덮고도 남는 양이 매장되어 있고, 그 사람이 만일에 군수라면 군을 덮고도 남을 매장량이 있고, 그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바로 왕이라면 한 나라를 덮고도 남을 매장량이 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세우고 있는 동안에 나 라는 파이프를 꼿꼿하게 지하 암반에 박고 있는 동안에 이 지하 암반에서 나오는 이 분출의 양, 어마어마한 것이 온 환경을 다 덮어버리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 가지 재앙은 결국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바로가 나라를 다스릴 때 곡식이 나오고 가축이 번성하고 이런 모든 것들을 자기의 통치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에요.
그러나 바로는 그 근본이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혼돈함과 공허함과 흑암을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고 하나님 바깥에 있는 모든 존재의 특징은 그 사람이 나를 고집하고 있는 한, 자기가 진짜 자기인 줄 알고 살고 있는 한 나타나는 결과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이라는 것이에요.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흑암, 그리고 빈 손 공허, 그리고 뒤죽박죽 혼돈. 이것 밖에는 남는 게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바로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에 의해서 뺏겨가면서 자기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재앙이라는 것은...
여러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말하자면 재앙의 집합체예요. 그 재앙의 집합체가 나의 본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게 뭡니까?
나의 본질이에요. 하나님 말고 바깥세상인 나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건 뭡니까?
하나님이 지금도 의도적으로 재앙의 힘을 누르고 있다고 있다는 것이에요.
지금 바로는 재앙을 받아서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것 같은데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원래가 바로는 이게 본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가...
아직도 하나 더 남았어요. 장자가 죽어야지 끝이 날 이 재앙의 상태가 열 가지 재앙이 와서 범벅이 된 상태 이 상태가 원래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그 동안은 하나님의 쌓아주시는 은혜로 살았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도 열 가지 재앙이 지금 환경적으로 나타니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본전 이상으로 받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것을 붙잡고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적 본질을 못 보고 있습니다.
그럴 때 결국 삶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내 스스로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분출시키는 나 라는 파이프 작업을 - 내가 할게,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기준에 의하면 - 이 나 라는 파이프를 박으면서 그 분출하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온 내 환경을 덮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예언할 수 있습니다.
나를 고집하지요? 그래서 내가 인생을 살지요? 아직도 자식들에 대해서 내 생각을 자꾸 주입하려고 하고 내 생각대로 아이를 끌고 가려고 그러고 내 생각대로 판단하려고 하고 있지요? 반드시 혼돈함이 오고, 공허함 아무 것도 손에 남는 것이 없는 상태가 오고, 갈 방향을 모르는 흑암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 속에서 분출하는 것이에요. 누가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바로는 본전치기로 가는 겁니다. 원래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왜?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네가 언제까지 겸비치 아니하여 내 백성이 나를 섬기는 것을 방해하겠느냐? 하는 말이에요.
내 백성이 나를 섬긴다는 얘기가 뭡니까?
섬긴다는 말이 뭐예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섬긴다 이렇게 말하면 자꾸 우리가 부담스러워해요.
섬기는 거, 종이 되어서 섬기는 거...
이건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죽이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죽이 맞는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의기투합한다는 얘기에요.
무슨 뜻이냐? 그럼 어떻게 해야 죽이 맞냐?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그래서 내가 나로서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그것은 뭡니까?
내 속에 파이프를 박아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분출되는 상태를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 마음의 지하 암반에는 이 혼돈함과 공허함과 흑암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과 죽이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속에는 혼돈이 있다. 도대체 감당할 수 없는 혼돈이 있고, 내 속에는 내 스스로는 노력해갖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 나는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그런 흑암이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섬기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어!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사업이 잘 되면 헌금을 많이 해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내 자식을 목사가 되게 바치겠습니다. 이게 섬기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속에 무엇을 매장하고 있는가 그 매장량의 무한함을 보고 조금이라도 틈새를 줘서 거기에 구멍을 뚫어서 내 속에 있는 것이 나오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명심하고 하나님 앞에서 늘 십자가를 붙잡고 파이프를 박으려는 마음 나를 딱딱 끊어버리고 싹을 잘라버리는 것, 나라고 하는 것이 자라는 것 - 나의 생각이 자라고, 나의 계획이 자라고, 나의 소원이 자라려고 하는 것 - 그 싹을 잘라버리는 것 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과 죽이 맞아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안에 있는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여러분이 나! 나! 나! 하는 동안에 끄집어 올라오면 이거는 온 나라 안을 덮고도 남습니다.
일본에서 그랬다고 그러지요? 어느 대학에서 개 한 마리를 아주 그냥 화를 내게 했대요. 그래가지고 그 호르몬 안에 생기는 독소를 뽑았대요. 그래서 그 독소를 뽑아가지고 여덟 마리의 개에게 주사를 놨더니 여덟 마리 개가 다 죽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서운 거예요. 개 안에서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개 안에서 독소가 생기는데 그 독소가 여덟 마리의 개의 혈관으로 들어가면 다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무서운 것이지요. 그렇죠?
자, 이러한 나를 이 무서운 나.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게 나예요. 내 안에 저어말 핵폭탄의 그 파괴력보다 더 무서운 이 바로 왕 한 사람의 마음 속의 지하 암반에 매장되어 있는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이 하나님 앞에서 나! 나! 나! 하고 있는 동안에 쾅! 쾅! 쾅! 시추작업을 해서 그것이 암반에 내려서 분출이 되자마자 온 나라 안이 다 망합니다. 아니 그 애굽 땅에 원자폭탄 하나 터트렸다고 그렇게 까지 망하겠습니까? 그렇게 망할 리가 없지요.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힘이 파괴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주아주 조심해서 오늘도 여러분 살아갈 때에 인간관계나 이런 것에서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꽁꽁 마음을 묶어두지 않으면 어느 틈엔가 빠져 나와서 내 속에 있는 나를 내세우고 있는 동안에 내 속에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튀어나와서 사람과 싸우게 되고 인간관계가 혼돈으로 빠지게 되고 흑암으로 빠지고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가 아주 말도 못하지요. 말도 못해요.
내 안에 숨어 있는 이 지하 암반에 숨어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 이걸 늘 보면서 나는 이런 놈이다. 내가 나를 주장했다간 이건 큰일 난다 생각하며 십자가 붙잡고 사시면서 고센 땅에 빛이 임했다는 것처럼 혼돈 대신에 질서를, 공허 대신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실을, 흑암 대신에 광명을 마음으로 살면서 경험하는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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