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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9월 공연총평
9월에는 베세토 연극제와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 초청된 국내외 작품, 그리고 터키연극 초연과 핀란드희곡이 소개되고, 각 지역극단의 서울공연이 이루어져 한가위와 더불어 볼거리가 풍성한 달이었다. 필자가 9월에 관람한 공연은 2012 대학로 소극장축제 도쿄극단 토무의 곤도 히로미츠 작/연출의 <달은 오늘도 날 내려다본다>(키작은 소나무극장), 극단 성좌의 몰리에르 작 안영선 번역/각색 권은아 연출의 <허풍>(이랑시어터), 게릴라극장 젊은 연출가전 8 이채경 작/연출 폴 캐슬즈 작곡의 창작 뮤지컬 <샘>(게릴라극장), 극단 숲의 미카 밀랴호 작, 강양은 역, 임경식 연출의 <카오스>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단 수의 이강백 작, 구태환 연출의 <북어대가리>(설치극장 정미소), 극단 노을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권소희 작곡/음악감독, 오세곤 번안/연출의 <술로먼 재판>(금천구청 금나래 아트홀), 중국 대련연극단(大連演劇團)의 차오 위(曹禺) 작, 가오 지에(高杰)연출의 <뇌우(雷雨)>(명동예술극장),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의 백가흠 원작, 장용철 각색, 박장렬 연출의 <귀뚜라미가 온다>(예술공간 서울),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 번째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의 <꿈>(백성희장민호극장), 극단 이루의 리 홀(Lee Hall 1966~)작, 김용준 역, 손기호 연출의 <넙쭉이 (Spoon face Steinberg)> (선돌극장). 연희단거리패의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작, 이채경 역,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눈빛극장),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3,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의 번안희극 <병자삼인>(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산울림의 윤대성 작, 임영웅 연출의 <동행> (산울림 소극장), 터키 트라브존 국립극장의 귄괴르 딜멘 칼요운주 작, 유젤 에르텐 연출의 <델리 둠룰(Deli Dumrul)>(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수원시민극단 공동창작, 정유진 작곡, 이영재 편곡, 김성열 연출의 뮤지컬 <마을 만들기> (행궁동 수원시민소극장), 명동예술극장의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 원작, 오세곤 번역,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Our Town)>(명동예술극장), 서울문화재단&아트 브리지의 김남채 원작, 서후석/박수환 작곡, 박수환/이예진 편곡, 방은미 대본/연출의 고궁뮤지컬 <천상시계> (경희궁(慶熙宮) 숭정전(崇政殿)), (주)플래너코리아&극단 단홍의 박완서 작, 유승희 연출의 손 숙의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홀), 경기전문예술 신작 쇼 케이스 중 부천극단 열무의 김문광 작 김예기 연출의 <하우하우>와 수원극단 성(城)의 김성열 작, 이보람 작곡, 차지성 연출의 음악극 <천년왕조> (경기도 박물관 야외무대), 경기도립극단 61회 공연 고선웅 작/연출의 <늙어가는 기술>(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창작집단 거기 가면의 공동창작, 백남영 연출의 마스크 연극<소라별 이야기>(중앙대학교 공연예술원),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 번째, 홍원기 작, 박정희 연출의 <꽃이다> (백성희장민호 극장),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김재남/김애양 역, 남육현 연출의 <헨리6세 제3부 장미전쟁> (설치극장 정미소) 등이다. 이들 공연작 중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과 외국극단의 내한공연작품 중 우수작은 별도로 평하겠다.
1, 극단 숲의 미카 밀랴호(Mika Myllyaho) 작, 강양은 역, 임경식 연출의 <카오스(Chaos)>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카오스>는 핀란드 판 <세 자매>의 이야기다. 북 유럽 꼭대기에 있는 국가지만 <세 자매>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낯설지가 않다. 부부애, 자식 기르기, 사회생활, 직장에서의 일상, 악에 대한 증오, 쌓인 스트레스의 해소, 이성과의 사랑문제 등이 거의 동등하기에, 작가가 제목으로 정한 <Chaos> 즉 <혼란>이나, <혼돈>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생활전선에서는 의당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핀란드 여성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공연을 통해 보며, 우리의 일상, 특히 정치풍토에서 비전제시보다는 남의 단점을 캐거나, 상대방의 꼬투리만 잡고 늘어지는 모습만 매일 매시간 지겹게 접하는 현실에 비추어, 핀란드에서는 여전히 온건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 감싸고,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으로 부럽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게 생각되는 공연이기도 했다.
핀란드의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미카 밀랴호 (Mika Myllyaho 1966~)의 <카오스>(2008년)는 러시아출신 리투아니의 국립극단 연출가 야나 로스(Yana Ross)로스에 의해 2012년 7월에 소개되기도 했고, 2005년에 집필한 희곡<패닉(Panic)>은 헝가리 국립극단에서 파노 드라마 프로덕션(Pano Drama production)의 로란 라바(Roland Rába) 연출로 역시 소개되었다. 미카 밀랴호는 2009년에 <Harmony>를 발표했다.
무대는 3면벽을 통풍구처럼 보이는 판막으로 장식하고, 문, 정면의 복도가 보이는 창과 그 좌우의 등퇴장 로를 제외하고는 온통 짙은 회색의 아크릴 판으로 벽면을 장식했다. 오른쪽 모서리에 술병을 올려놓는 원형의 받침공간이 있고, 중앙에는 탁자와 의자 세 개를 비치했고, 오른쪽에도 책상과 의자가 있다.
무대는 거실 겸 정신과 치료실, 학교의 강단, 교무실, 그리고 카페로 사용된다.
교사인 언니와 의사인 동생 그리고 막내인 기자가 등장하고, 향후 3인이 6인의 역을 분담해 연기하고, 남자 1인 역시 여러 인물로 변모해 등장한다.
자매들이 극 중 상황변화에 따른 해설자 역할을 전담하고, 가발과 안경, 또는 의상을 갈아입고 전혀 새로운 인물로 변신을 할 때에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연기의 기량이 뛰어나고, 성격창출이 탁월한 것에서 연습량의 깊이를 진단할 수 있다.
<카오스>에서 변덕이 죽 끓는 듯싶은 핀란드 남성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유부남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치는 핀란드 여성의 모습을 보며, 그런 면에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핀란드가 우리나라 국토의 4배 넓이지만 인구는 530여만 명에 불과하고, 남성보다 여성인구가 많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유부남의 꼬임에 쉽게 넘어 갈만도 하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홍윤희가 학교선생님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출연해, 다소곳하고 나긋나긋한 연기로 일관하다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메가톤 급 핵폭탄을 터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둘 째 역의 이은서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역할을 100% 살리는가 하면 분홍색 가발을 착용하고 카페의 여급 또한 탁월한 기량으로 반짝 빛내는 등 연기력을 과시한다. 막내역의 성미리... 이런 배우가 있었다니... 성미리는 기자 역할, 또 교장 역할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무대 위에 구현해 냄으로써 그녀의 연기자로써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측케 했다.
김현진은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성격이나 색깔 다른 인물을 창조해 내고, 관객을 시종일관 폭소로 이끌어간 장본인이다. 그의 작품분석과 인물창조는 향후 김현진 스타일의 개창자로 지칭되리라는 기대를 한다.
예술감독 서충식, 무대디자인 김만식, 조명디자인 김명남, 의상디자인 이지선, 제작감독 차현석, 분장 이은미, 김그네, 기획 정아름, 기획 이슬기, 조연출 장윤호, 이진호, 조명디자인보 이은옥, 무대디자인보 김혜정, 음향오퍼 전영주, 그래픽디자인 백미선 등 극단 숲의 제작진 전체의 열정과 기량이 미카 밀랴호 작, 강양은 역, 임경식 연출의 <카오스>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핀라드 연극을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연출한 임경식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마 작가 미카 밀랴호도 동방의 한국이란 나라에서 공연되는 자신의 작품을 관람하고, 감탄과 함께 감동을 받으리라는 생각이다.
2, 극단 수의 이강백 작, 구태환 연출의 <북어대가리>(설치극장 정미소)
무대는 창고의 내부다. 삼면 벽과 통로를 제외한 공간전체가 온통 직사각의 나무상자로 꽉 들어차고, 정면과 오른쪽에 간이침대가 놓여있다. 정면의 침대 뒤쪽에도 사람 키보다 높게 상자를 쌓아놓았다.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에 책상과 의자가 있다. 왼쪽 벽 움푹 들어간 곳에는 조리대가 있고, 다리미, 철제국자, 주전자, 물 컵이 보인다. 정면의 침대 뒤로는 낮은 장식장이 있고, 장에는 옷가지를 비롯해 가방 등이 놓여있다. 오른쪽 간이침대 옆은 상자를 잘 정돈해 쌓아놓았다. 배경 막 왼쪽으로 창고의 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등퇴장 로로 이용된다.
창고 안에는 40세가 다 된 노총각 창고지기가 두 사람이다. 20년을 한 결 같이 물건을 받아서 저장하고, 또 출하를 하면서 두 사람이 창고 일을 도맡아 했다. 한 사람은 진실한 성격과 성실한 마음으로 창고물건을 꼼꼼히 챙겨 기록하고, 상자마다 종류별, 순번과 순서를 기록해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비치를 하고, 창고에서의 두 사람의 살림까지를 지성껏 챙긴다. 아마 천분으로 여기고 창고 일에 종사하는 듯싶다. 또 한사람은 더펄거리는 성격으로 그러는 상대를 의붓어머니라 부르며, 엉뚱한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창고 일도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일 끝나는 시각이 되기가 무섭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집여자와 노닥거리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더펄거리는 남성의 이야기로는 부근 일대가 창고 촌이며, 창고지기나 창고 종사자를 상대로 하는 룸살롱 같은 술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실 남은 물론 한 번도 그런 장소에 출입한 적이 없다.
일을 마친 어느 날 더펄 남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떠벌이니, 진실 남은 바지까지 다려주면서, 술집이 아닌 고급음식점으로 데리고 가 식사를 하라며, 어미처럼 용돈까지 챙겨서 손에 쥐어주며 내 보낸다.
늦은 밤 더펄 남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어리고 예쁜 술집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창고로 돌아온다. 진실 남은 더펄 남을 침대에 눕히고, 바지도 벗기고 이불을 덮어준다. 술집 여인은 그러는 진실 남을 보며, 더펄 남이 의붓어머니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며, 친근감을 느끼듯 진실 남에게 다가간다. 향후 술집 녀는 진실 남에게 물 한 컵을 달라고 하며, 얻어 마신 뒤에 진실 남에게 기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면서 응석을 부리듯 매달리는 정경이 펼쳐진다. 물론 진실 남은 당황해 하고, 여인과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노총각만 있는 창고에 젊고 어려 뵈고, 예쁘고, 목소리까지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 같은 여인이 등장하니, 창고가 갑자기 꽃동산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여인은 철제 주걱에 눈독을 들인다.
다음날 화물차의 클랙슨(klaxon) 소리에 진실남이 일어나 더펄 남을 깨운다. 진실 남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술을 자제할 것을 어미가 자식에게 말하듯 충고를 시작한다. 계속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자마자 중년의 기사가 들이닥친다. 기사는 가마솥에 자갈을 굴리는 듯한 음성으로 진실남에게 물건을 내리고 실으라며, 늙은 사위라는 호칭으로 더펄 남을 깨운다. 그 늙은 사위 소리에 화닥닥 일어나 앉은 더펄 남에게 기사는 화토를 보이며, 한판 붙자고 얘기한다. 더펄 남은 비상금 통을 들고 와 기사와 투전판을 벌인다. 기사는 노름꾼이라 더펄 남의 비상금을 몽땅 털어간다.
술집 녀가 등장한다. 자신의 아비는 창고지기마다 사위라고 부르고 화토하자고 꼬드겨 돈을 털어가는 노름꾼이라며, 자신은 임신 중이며 중절수술을 하려해도 시기가 지나 포기했다며,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더펄 남에게 시집을 갈 뜻임을 진실 남에게 고백하듯 떠벌인다. 그러면서 상자 곽 속의 물건보기를 원한다. 철제 주걱으로 못을 빼고 상자 속에서 물건을 꺼낸다, 물건은 철제 부속품으로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기계제품의 부속임이 들어난다.
하역을 하고 다시 차에 쌓는 일이 되풀이 되면서 더펄 남은 일부러 다른 상자로 바꿔 차에 싣는다. 그리고 후에 그 사실을 진실 남에게 이야기 한다. 진실 남은 벌컥 화를 내고, 큰일이라며 상자 주인에게 물건이 바뀌었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물론 상자 주인이 누구인지를 두 사람은 모르고 화물차 기사도 역시 모른다. 진실남이 중요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을 동료나 관계자나 일반인들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서 진실남은 고민에 쌓이고 갈등을 일으킨다.
화물차 기사가 오는 날 진실 남은 자신이 쓴 편지를 내보이며, 상자의 주인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기사는 무의미한 일임을 설명하고 편지를 찢어버린다. 진실 남은 고성을 지르며 분노를 터뜨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진실 남을 비정상적인 인물로 바라본다.
더펄 남이 숙취를 호소하면 진실 남은 먹다 남은 <북어대가리>를 끓여 더펄 남에게 먹인다. 북어 대가리는 상자 안에 가득 담겨있다.
대단원에서 화물차 기사와 딸이 더펄 남을 데리러 온다. 기사는 더펄 남에게 딸과 결혼하면, 화물차 조수가 되고, 종당에는 화물차의 주인이 될 거라며, 창고를 떠나자고 부추긴다. 더펄 남은 그 말에 동의하고 화물차에 자신의 짐을 싣는다. 딸은 철제주걱을 챙겨든다. 진실 남은 자신의 물건까지 챙겨서 실어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어대가리>를 모아둔 상자도 실어 보낸다.
모두가 떠난 창고에서 바닥에 흘린 <북어대가리> 한 개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며, 진실 남은 창고가 자신의 세계이고, 창고 속의 생활이 자신의 인생임을 토로하고, 자신이 이 창고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다른 창고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며 현재의 창고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지내자고 다짐 비슷한 이야기를 <북어대가리>에게 속삭이는 데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화물차 기사로 김종구가 출연해 토종 뚝배기 같은 맛깔스런 연기와 체취를 풍기며 중후한 연기력을 과시하고. 더펄 남으로 김은석이 출연해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의지박약하고 나약한데다가 일상처럼 술에 찌들고, 여자를 좋아하고, 남의 말에 솔깃한 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남성 모두를 무대 위에 데려다 놓은 듯싶은 형국으로 호연을 펼친다. 진실 남으로 박완규가 출연해 세계와 인생과 철학의 올바른 실천자이면서도 자신을 내세움이 없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상대와 관객을 일깨우며, 가슴에 파고드는 명연기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술집 녀로 박수현이 출연해, 어둑컴컴한 창고에 따사로운 햇살을 비추듯, 봄 동산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 같은 예쁜 모습과 재잘거리는 새처럼 맑고 밝고 상쾌한 음성으로 남성관객의 정겨운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제작감독 표원섭, 드라마트루크 박영순, 무대 이은규, 조명 남진혁, 의상 임예진, 조연출 김윤주 노현열, 사진 이동녕, 그래픽 윤용석, 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극단 수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이강백 작, 구태환 연출의 <북어대가리>를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3, 극단 노을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권소희 작곡/음악감독, 오세곤 번안연출의 <술로먼 재판>(금천구청 금나래 아트홀)
금천구청 금나래 아트홀에서 극단 노을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1956) 원작, 권소희 작곡/음악감독, 오세곤 번안/연출의 <술로먼의 재판>을 관람했다.
<술로먼의 재판>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을 번안/각색한 음악극이다.
내용은 계곡에서 양을 치고 살다가 독일군의 침입으로 피란한 갈린스크 농장 주민들과, 그들이 떠난 사이에 이 땅을 차지한 로자 룩셈부르크 농장 주민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계곡의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데서 연극이 시작된다.
하녀와 몰락한 지성인 재판관의 이야기가 해설자 겸 가수에 의해 전개된다,
내란 발발로 총독이 반군들에게 참수를 당하니, 총독부인은 금품과 옷가지만 챙기고, 아들은 버리고 도망한다.
하녀는 버려진 총독의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해 향후 험난한 피난 생활을 하게 된다. 하녀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에 겨워 농가에 두고 가려고도 했으나 군인들이 쫓아오니, 다시 데리고 달아난다. 하녀는 아이를 자신의 양자로 맞이하고, 죽을병에 걸린 환자와 형식적인 결혼을 하고 호적에 올린다. 그런데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죽을병에 걸린 환자가 언제 병 앓기를 했느냐는 듯 거짓말처럼 멀쩡해지니, 하녀는 본의 아닌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참전했던 약혼자가 하녀를 찾아왔다가, 결혼을 해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실의에 빠져 돌아간다.
그때 병사들이 법원의 영장을 가져와서 총독 부인이 요구라며 아이를 강제로 데려간다.
다시 반란의 시점으로 돌아가, 몰락한 지성인이 노상 술에 찌들어 지내다가 운 좋게 재판관으로 선임이 되고, 재판을 하면서 부자에게 뇌물을 받아 챙기지만 재판은 민중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린다.
주정뱅이 재판관은 서로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총독부인과 하녀 사이에 백묵으로 원을 그려놓고, 재판을 벌인다. 하녀의 첫사랑 남성도 재판정에 도착해 이 광경을 지켜본다.
재판관은 아이를 원 안에 세워두고, 두 여인에게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도록 명한다. 하녀는 아이의 고통을 생각하여 손을 놓는다. 반면 총독부인은 끝까지 아이를 힘껏 당겨 빼앗고, 자신이 이겼다고 만세를 부른다.
그러나 재판관은 하녀를 진정한 어머니로 판결을 내리고 하녀에게 아이를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라고 하고 분부한다.
하녀는 아들과 약혼자와 함께 도시를 떠나고 해설자 겸 가수가 나와서 연극을 마무리한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1948년에 미국에서 초연되었고, 독일에서는1954년에 브레히트 연출로 베를린앙상블이 공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11월에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이상우, 류중렬, 채윤일, 정진수, 채승훈 등 5인의 연출가들이 제각기 다른 양식으로 공연함으로써 한국적 수용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술로먼의 재판>에서는 통일된 한반도의 DMZ에 거대한 빌딩 수백 개를 건설하겠다는 선거공약과 동서로 운하를 연결시키겠다는 공약을 건 두 대선주자의 열띤 선거연설에서 시작된다. 그러자 DMZ의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과,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 유지시키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선거연설은 무산된다.
해설자 겸 가수가 등장해 열창을 하면 킹 솔로몬이 아닌 재판관 술로먼의 이야기가 마당놀이처럼 펼쳐진다. 향후 이야기는 <코카사스의 백묵원>처럼 전개되지만, 주인공의 이름이나 인물의 성격은 다르고, 마치 만화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대단원에서 백묵으로 원을 그려놓고, 벌이는 재판과정은 흥미와 감동 두 가지를 만끽할 수 있는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우진, 장희재, 박일우, 오윤석, 김용태, 서나영, 임재명, 이일균, 임한나, 박새롬, 원태리, 조장미, 이혜윤, 박근수, 최상호, 고근섭, 문병주, 김남수, 한찬중, 서경원, 강다운, 김은지, 박소현, 오경진, 윤정진, 한지수 등 출연자의 열연과 열정이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키고, 대단원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음악감독 권소희, 작곡 권소희, 편곡 이동현, 안무 안병순, 안무지도 민들레 김미주 한국화, 무대디자인 정숙희, 조명디자인 박상준, 조명디자인보 한종엽, 의상디자인 정현정, 기획 김승호 이아라, 무대감독 심윤보, 조연출 최이슬, 디자인 이한경 등 스텝진의 기량이 일치가 되어, 극단 노을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권소희 작곡/편곡, 오세곤 번안/연출의 <술로먼의 재판>을 흥미만점과 감동만점의 음악극으로 만들어 냈다.
4, 프로젝트 그룹의 백가흠 원작, 장용철 각색, 박장렬 연출의 <귀뚜라미가 온다>(예술공간 서울)
무대는 바닷가 어촌(漁村)이다. 찌그러져 가는 비좁은 집에 벽을 사이에 두 고, 한 쪽에는 회집을 하는 여인과 나이 어린서방이 살고, 또 한쪽에는 허리가 꼬부랑 할머니가 된 노모와 한쪽다리를 저는 아들이 살고 있다. 워낙 얇은 벽이라, 옆방의 미세한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으로 연극에서는 설정이 되어있다.
집 앞, 마당 양쪽에는 생선을 담는 스티로폼 빈 박스가 사람 키 높이로 쌓여있고, 플라스틱 함지박, 대야, 냄비, 긴 나무의자, 어구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 흰자갈이 담긴 사각의 빈 어항이 있다.
천정에서 늘어뜨린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냄비는 태풍이 불어 닥칠 때면 바닥으로 떨어져 하나의 기상관측기구 역할을 해, 옛사람들의 지혜로움을 알 수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등장인물 전원이 등장해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스톱 모션 상태에서 시작된다. 왼쪽 벽을 향하고 있는 어린서방, 돗자리를 깔고 마당에 팔을 괴고 누워있는 횟집 여인, 플라스틱 함지박 안쪽으로 다리를 넣고,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노모, 골목 양철 벽을 향하고 있는 아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이들을 향해 귀뚜라미라는 이름의 태풍이 의인화(擬人化)되어 웃통을 벗은 채 무용을 하듯 다가오면서 관객은 초반부터 극에 몰입하게 된다.
향후 이들의 일상이 전개된다. 횟집여인은 다가올 전어 철에 대비해, 어린 서방과 간판을 정비하고, 노모는 가업인 떡볶이 준비를 한다. 아들의 어묵을 꽂는 장면도 소개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얇은 벽 때문에 횟집여인과 어린서방의 교성이 옆방으로 전달되면 노모와 아들은 그 소리를 그대로 받아넘기지를 못한다. 옆방아들은 교성에 자극을 받아 괴로워하고, 성적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손에 닥치는 물건을 잡아 내팽개치고, 벽을 두드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러는 모습을 보고, 노모는 장가 못간 아들이 불상하고 안쓰럽지만 도리 없이 그저 자식의 행동을 말리기민 할 뿐이다. 아들은 어미를 밀치고 뛰어나가 술병을 찾아 들고는 냅다 들이킨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 밤 되풀이 되는 정경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다.
전어 철이 되고 어린서방은 펄펄뛰는 전어를 횟감으로 팔기위해 구입해 들여다가 흰자갈이 깔린 어항에 넣는다.
횟 간판에 적힌 틀린 글자를 옆방 아들이 지적하자, 어린서방은 옆방아들과 티격태격하다가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횟집여인과 노모가 말리면, 옆방아들은 술을 사러 뛰어나간다. 향후 이러한 나날이 되풀이 되면서 태풍 귀뚜라미가 서서히 들이닥친다. 회를 먹으려는 손님도 발 길이 끊이니, 떡볶이나 어묵손님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대단원에서 줄에 매달린 냄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태풍과 해일이 어촌마을을 뒤덮는다. 천지가 뒤집힐 정도의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면서 강풍과 함께 스티로폼 박스가 산지사방(山地四方)으로 흩어지고, 어구(漁具)와 가재도구가 풍비박산(風痱博山)이 나 나뒹굴면서 어린서방과 옆방아들은.......
태풍이 휩쓸고 간 뒷자락을 귀뚜라미가 연극의 도입처럼 웃통을 벗은 채 춤을 추듯 헤매다가 사라지면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장용철, 정종훈, 권기대, 오용택, 이선희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은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시종일관(始終一貫)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특히 횟집여인의 적나라한 정사장면과 옆방아들이 교성을 참지 못해 벌이는 본능적인 행동과 노모를 닦달하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무대디자인 엄진선, 조명디자인 김철희, 의상디자인 양재영, 작곡 박진규, 사진 김명집, 그래픽디자인 김 솔, 조연출 이현경, 진행 송현섭 전진아 등의 노력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 제작, 바나나문 프로젝트 홍보마케팅, 백가흠 원작, 장용철 각색, 박장렬 연출의 <귀뚜라미가 온다>를 여름의 무더위와 더위를 떨쳐버릴 걸작공연으로 창출시켰다.
5,삼국유사 프로젝트 첫 번째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의 <꿈>(백성희장민호극장)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 번째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의 <꿈>을 관람했다.
<꿈>은 무대에 관세음보살을 등장시켰다, 이 관세음보살의 정토, 즉 상주처는 인도 남부의 말나야(Malaya)산 동쪽 구릉인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이다.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동해안 낙산사는 바로 여기서 절 이름을 따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절강성 주산열도(舟山列島)의 보타산(普陀山) 진제사(晋濟寺)를 관음보살의 거처로 믿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낙산사의 홍련암(紅蓮庵)을 무대에 만들어 조선관세음의 거처로 정하고 연극을 펼쳐나간다.
꿈속 이야기로는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조(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의 <조신설화>를 들 수 있다. 조신의 꿈은 현실에서 염원하던 김 흔 공의 딸과 혼사가 이루어져 세파에 시달리면서 자손을 낳아 기르는 인생 역정의 50년이 내용이다. 조신은 아이를 굶어죽게 하는 등 고통스런 삶의 꿈을 깬 뒤, 세상을 등지고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여 백업(百業)을 닦았다.
이 연극에서 의상(義湘)과 원효(元曉) 두 승려가 한 사찰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낙산사 관세음보살기에 기록되어있다 . 670년경,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이 동해 바닷가 굴 안에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지금 의상대 옆 홍련암 아래에 있는 굴이다. 7일간의 기도 끝에 의상은 관세음보살이 보낸 용을 만나 선물을 받는다. 그러나 의상은 7일을 더 기도한다. 그의 목표는 용이 아니었다. 처음 목표한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의상의 뜻이다. 결국 관음보살은 의상을 굴 안으로 불러 들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산 위에 절을 지으라 한다. 바로 지금의 낙산사이다. 그 소문을 듣고 원효가 찾아온다. 들판에서 곡물타작을 하는 여자와 빨래터에서 개짐을 빠는 여자에게 수작을 건다. 마치 유람 나온 한량처럼 낙산사 찾아가다 원효가 만난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다. 원효는 보살의 시험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만 것이다. 치밀한 준비 후 목적을 달성한 의상에 비한다면, 원효는 대중적이다.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는 파계를 저지를 정도로 그의 행적은 친 대중적이다. 그러한 원효이기에 민중의 마음 깊숙이 다가가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고 그의 대승기신론서(大乘起信論序)에 기록했다.
<꿈>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소설이다. 춘원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으로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書記)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했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明治]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早稻田]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 1919년 도쿄[東京]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許英肅)과 결혼,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고,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작품에 <윤광호(尹光浩)> 등의 단편과 <이차돈(異次頓)의 사(死)> <사랑> <원효대사> <유정> 등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고, 그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로 제작되거나, TV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 연극에 춘원의 동료로 등장하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가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지 <동명(東明)>을 발행하면서 국사연구에 전념했다. 1924년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곧 사임, 이듬해 <동아일보(東亞日報)>의 객원이 되어 사설을 썼다. 1927년 총독부의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위원이 되고,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만몽일보(滿蒙日報)》 고문으로 있다가 1939년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가 되었고, 귀국 후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 로 건너갔다. 광복 후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어 1949년 수감되었으나 병 보석되었다. 6·25전쟁 때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촉탁이 되었다가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이원(利原)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를 발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 시조집 <시조유취(時調類聚)>, 역사서 <단군론(檀君論)> <조선역사> <삼국유사해제> <조선독립운동사(朝鮮獨立運動史)> 등 다수가 있다. 그후 국사관계 저술을 하다가 뇌일혈로 작고했다.
무대는 배경막 가까이 홍련암을 상징하는 법당식 창문이 원형의 벽면에 역 조명으로 들어나고, 그 오른쪽에 수월관음보살상이 탱화로 그려져 있다.
배경막 앞쪽으로 X자 형의 다리가 놓여있고, 그 사이사이 바닷가 바위가 불쑥 솟아있고, 파도소리가 시원스레 들리는 것이 바로 낙산사 홍련암에 앉아있다는 생각이 날 정도다.
연극의 도입에 등장한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우리나라 역대 관세음보살의 조상(彫像)이나 탱화(幀畫) 못지않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도발적인 모습이고, 작고한 무용가 최승희의 관음보살 춤이나, 2005년에 발표한 중국 장애인협회의 천수관음무(千手觀音舞)를 연상시킨다. 이어 펼치는 의상과 원효의 동작이나, 노파로 등장한 관세음보살의 불쑥 내미는 주먹밥 등의 동작은 희화되어 개그코미디를 능가할 정도이고, 삼국유사의 조신의 꿈 역시 스님의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무대에 펼쳐 보이는 등 친 대중적으로 공연을 흥미롭게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과연 국립극단이 표현 면에서도 앞장서는구나 하는 놀라움으로 관극을 했다.
근자에 친 대중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된 어느 진보이념의 소설가가 미당 서정주 선생의 문학보다는 친일행적을 운운하며 자신의 스승을 폄훼(貶毁)했듯이, 이 연극에서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문학이나, 춘원의 출중하고 탁월한 작품보다는, 이광수의 친일행적을 집요하게 부각시킨 진보적인 공연이라는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어쨌건 이 작품은 구성과 내용전개가 탁월하고 도입과 대단원에 천수관음의 무용으로 극을 마무리하는 등 진수(眞髓)를 보였으나 친 대중 일변도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속되다는 평은 면하기 어렵다.
강신일, 남명렬, 정세라, 장재호, 강학수, 최지훈, 서광일, 김수진, 안경희, 신동훈, 이봉련, 김영록, 안창환, 나규진, 홍정연, 오정미, 박시영 등이 출연해 각자 독특한 성격창출과 기량이 독보이는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예술감독 손진책, 음악감독 이형주, 무대디자인 하성옥, 조명디자인 나한수, 조명어시스트 박유진, 의상디자인 강기정, 의상디자인보 홍문기, 분장디자인 백지영, 분장팀장 조옥희, 소품디자인 서정인, 소품 어시스트 박수진, 안무 김정열, 무대감독 변오영, 무대조감독 신지혜, 미술감독 최기봉, 조연출 김수희 임지민, 제작감독 신용수 외 스텝진 모두가 합심해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의 <꿈>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6, 연희단거리패의 테네시 윌리암스 (Tennessee Williams,)작, 이채경 역,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눈빛극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는 미국 남부의 몰락한 지주의 딸 출신으로 결혼에 실패한 후,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동네에서 쫓겨나 뉴올리언스의 동생 스텔라를 찾아온다.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와 <묘지>라는 선으로 갈아탄 후 <낙원>역에서 내려 동생의 집에 도착한다. 동생 집에서 자신은 교직에 있다가 휴가차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귀부인 행세를 한다. 한편 동생 스텔라는 난폭한 남편 스탠리에게 혹사당하지만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해 참아가고 있다. 저녁마다 이 집 식탁에서는 노동자들의 포커 판이 벌어지고, 술 마시고 떠드는 소리로 늘 왁자지껄하다. 블랑쉬는 밝은 빛 아래 얼굴을 들어내기를 꺼려하고, 늘 조명이 어둡거나 붉은 갓을 씌운 불빛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모습으로 스탠리의 포커친구 노총각 미치를 유혹해, 결혼하려 하지만 스탠리가 그녀의 행실 나쁜 과거를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약속은 깨지고 만다. 블랑쉬는 음주로 차츰 신경이 쇠약해져가고, 스텔라가 출산하러 병원에 입원한 날 스탠리는 술에 취한 블랑쉬를 강제로 범한다. 향후 블랑쉬는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지고, 사람들이 지켜보는데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면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1947년 초연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와 제시카 탠디(Jessica Tandy), 킴 헌터(Kim Hunter)가 출연하여 1949년까지 855회의 공연을 이어갔고, 1948년에는 퓰리쳐 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후 1951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말론 브랜도와 함께 비비안 리(Vivien Leigh)가 출연해 아카데미 어워즈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비비안 리와 킴 헌터가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칼 말든(Karl Malden)의 미치 역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향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상징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1983년 텔레비젼 리메이크판에서는 안 마가렛 (Ann-Margret) 월터 매튜, 진 해크만, 글렌다 잭슨이 출연했고, 1984년 제작된 영화에서는 안 마그렛 트리트 윌리암스(Treat Williams), 비버리 단젤로(Beverly D'Angelo), 랜디 퀘이드(Randy Quaid) 등이 출연했으나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었다.
1995년 글렌 조단(Glenn Jordan)이 감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알렉 볼드윈(Alec Baldwin)과 제시카 랭(Jessica Lange), 존 굿맨(John Goodman), 다이안 레인( Diane Lane), 패트리시아 허드(Patricia Herd)가 출연했으나 역시 평은 전작을 추월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더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로 2005년 아카데미 어워즈 수상경력의 여배우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뒤부아(Blanche DuBois) 역으로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무대에서 열연해 비비안 리(Vivien Leigh) 이후 새로운 블랑쉬로 절찬을 받는다. 레이첼 와이즈는 2002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더 쉐이프 오브 씽스, The Shape of Things>에서 에블린 역할을 맡아 시어터 월드 어워드(Theatre World Award)를 수상했다.
무대는 거실과 침실이 커튼 하나로 가려지고, 무대오른쪽에 마련된 거실은 조리대와 그 앞에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있고, 조리대 옆으로 소파 하나만 달랑 놓인 비좁은 방이 있다. 한단 높이의 무대왼쪽의 침실 쪽은 침대와 화장대가 있고,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문은 전체가 거울이다. 거실에는 천정에서 선풍기가 내려와 돌고, 침실 쪽에는 백열등이 천정에서 내려와 달려있다. 이 집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거실 오른쪽에 보이고, 그 옆은 골목길로 등퇴장 로가 된다. 골목길은 집 뒤, 배경 막 바로 앞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아 무대 정면으로 나오기도 한다. 무대 맨 오른쪽에는 남녀악사들이 피아노와 테너 섹소폰 연주를 한다.
연극은 도입에서부터 장면변화마다, 그리고 극의 중간에 남녀 악사의 5, 60년대 재즈음악연주가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또한 열기를 고조시키며 극을 열정적인 색깔로 칠을 해 나간다.
블랑쉬 역의 김소희는 걸음걸이, 대사, 눈빛, 흐느적거리는 동작과 춤에서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중인물을 완벽하고 생생하게 살려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체취까지 객석으로 전달시키는 등 김소희의 새로운 블랑쉬로 탄생시켰다.
스탠리 역의 이승헌은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 같은 잘 다져진 몸매, 빈정거리는 듯싶은 눈빛, 건들거리는 동작, 차분하다가도 발악하듯 퍼붓는 대사, 계산되고 절제된 변신과 폭발은 분명 21세기 스탠리의 전형 그 자체였다.
김하영과 강호석...이토록 출중한 연기자가 있었다니...! 스텔라 역의 김하영과 미치 역의 강호석은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중인물성격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기량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주연의 연기력을 100% 돋보이도록 만든 디딤돌 역할까지 해주었다.
김아라나, 황지하의 연기와 연주, 박근홍, 이건희, 이혜민의 호연은 객석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연출가 채윤일은 무대전체를 평면, 입체, 모서리까지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는 동선운용과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뉴 올리안즈 뒷골목 서민가정의 삶의 모습을 눈빛극장 무대에 재현시켜 한 폭의 생생하고 색채 창연(蒼然)한 풍경화가 되었고, 상기 열거한 영화나 공연작들을 능가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창출시켰다.
무대디자인 김경수, 조명디자인 조인곤, 음악 미쓰비 시이치,조명 유영우, 홍보디자인 손청강 등 모두의 기량이 작품 속에 다져져, 연희단거리패의 26주년 기념공연 테네시 윌리암스 원작, 이청강 역,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21세기 가장 걸출한 <A streetcar named desire>로 탄생시켰다.
7, 손톤 와일더 원작, 오세곤 역,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에서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 원작, 오세곤 번역,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Our Town)>을 관람했다.
손톤 와일더의 희곡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 번역한 사람은 오화섭(吳華燮) 교수다. 손톤 와일더의 희곡전집을 번역해 책자로 냈다.
인천에서 태어난 영문학자 오화섭(吳華燮·1916~79) 선생은 미국 현대극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해 알린 선구자다.
그가 번역한 희곡은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1953)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비롯해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읍내> <위기일발> <중매인>,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1914~1983)의 <유리동물원>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아서밀러(Arthur Miller 1915~2005)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많은 희곡을 번역했다. 당시 연극인들과 영문학자들은 오화섭 선생의 번역을 창작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했다. 오화섭 선생을 여석기 교수는 “번역의 1인자”라고 표현했고, 고 한상철 한림대학교 교수는 1989년 열린 '오화섭교수 10주기 추모 연세극예술연구회 공연'에 앞서 발표한 <오화섭 교수의 문학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우리나라 서민의 일상적인 언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이다. 무대에서 배우가 그 대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번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문장의 길이, 적절한 어휘구사, 다양하고 자연스런 어미의 활용, 우리말의 리듬과 억양을 그대로 살려가는 게 오화섭 교수 번역희곡의 특징이요 장점이다."
오화섭 선생은 해방 이후부터 극단에서 직·간접으로 활동을 하며 번역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일본 유학시절 만나 결혼한, 첫 번째 부인 박노경(朴魯慶) 여사는 극단 '여인소극장'을 창단(1948년)한 한국 최초의 여류 연출가다. 당시 오화섭 선생은 번역한 희곡을 여인소극장에 제공하고, 제작비를 구해오는 등 열정을 다했다. 박노경 여사는 1950년 9·28수복 당시 서울 북아현동 집 부근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후 극단 '떼아뜨르 리브르'(1953년), '연희극예술연구회'(1953년), 극단 '산하(山河)' (1963년) 등에서는 창단 작업을 함께 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1963~65년), 한국셰익스피어협회 이사(1963~79년) 등을 지내며 학술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58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오화섭 선생은 제자 김형순 여사와 재혼한다.
여식으로 극작가 오혜령 씨와 지난 해 연극 <반도체 소녀>에 출연한 아드님 오세철 교수가 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순천향 대학교 오세곤 교수도 오화섭 선생과 인척이 아닌가 싶다.
오화섭 선생은 지병으로 고생하다 1979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아워 타운(Our Town)>은 우리나라 국공립극단은 물론 군소극단과 대학교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1938년 초연된 손톤 와일더의 3막 희곡 <아워 타운(Our Town)>은 화려한 무대장치나 극적인 반전 따위는 전혀 없이 그저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 극의 내용이다.
1막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1901년 5월 7일, 하루의 일상이다. 동이 트면 열한 살 된 조가 집집마다 신문을 배달하고, 주 2회 발행되는 지역신문의 편집국장 웹 씨네 집에서는 엄마가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웹 씨의 큰딸인 에밀리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숙제하고, 이웃집에 사는 의사 선생님 깁스 씨의 아들 조지는 야구를 한다. 밤이면 교회에서 성가대 연습이 한창이다. 이 연극에서는 내레이터 겸 무대감독이 연극을 이끌어 간다.
2막은 3년이 흘러 1904년 7월 7일, 에밀리와 조지가 결혼하는 날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웹 부부의 서운해 하는 마음, 축하해주는 이웃들, 요즘 궁궐같이 호화스러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풍경과는 전혀 다르고, 소박한데다가 정겹고 진실성이 넘친 결혼식 장명이다.
3막은 다시 9년이 흘러 1913년 여름. 무대는 마을의 공동묘지다. 성가대 지휘자를 비롯, 죽은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묘 앞 의자에 착석해 있다. 에밀리는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어 얼마 전 이곳에 묻혔다. 하지만 두고 온 세상이 그리워 무대감독에게 하루 동안만 자신이 살아있던 날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렇게 해서 열두 번째 생일날로 돌아가지만, 엄마는 음식 잘 씹어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며 계속해서 음식만 만들고, 에밀리의 선물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서로 눈을 마주칠 시간도 없다. 에밀리는 자신을 쳐다보라고 눈물을 흘리며 독백하듯 외친다. 그리고 무덤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이숙이 해설자 겸 무대감독으로 등장해 접는 사다리 위에서, 또는 무대 좌우나 중앙에서, 맑고 투명한 음성, 절제되고 명확한 언어, 지성미가 넘치는 미모로 극을 리드하는 앵커 역할을 100% 해낸다. 깁스의사 역의 박용수는 고 김승호 선생의 청년시절을 빼어 옮긴 것 같은 외모와 호연으로 극을 푸근하게 서민적으로 이끌어 간다. 깁스부인 역의 김정영은 연극 <철로> <지하생활자들>에서의 호연에 이은 원숙한 기량을 <아워 타운>에서 드러낸다.
웹부인 역의 김용선과 웹 편집장 역의 김세동은 이 서민극을 대변하는 서민적인 연기로 좌중의 시선을 자신들에게 집중시킨다. 윌라드 교수 역의 손진환과 쏘움즈 부인 역의 지영란은 이 연극의 지주와 대들보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호연으로 그들의 원숙한 기량을 무대 위에 나타낸다. 조오지 역의 박윤희와 에밀리 역의 정운선은 신선하고 발랄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마치<안네프랑크의 일기>의 안네와 페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향후 이 두 사람이 <안네프랑크의 일기>를 공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덕호, 이화룡, 이기돈, 이지혜는 독특한 성격창출과 개성 넘치는 호연으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는다.
무대는 의자 끝에 불쑥 솟아오른 가지를 부착시키거나 나뭇가지를 매달아 무대전체가 철제조형물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한 것에서, 한태숙 연출가의 <서안화차> <오이디푸스 왕>에서 설치조형물을 선보인 것처럼, 고도의 조형예술무대를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에게 제공했고, 원작의 에밀리와 조오지의 이층 공부방 장면을 접는 사다리를 이용해 대부분의 공연에서 사용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해설자 겸 무대감독만 접는 사다리를 사용했을 뿐, 어린이의 공부방 장면은 배경막 방향으로 경사도를 약간 높인 무대에서,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으로 장면처리를 했다. 또 대부분의 연출가들이 달, 별 같은 대사가 연기자의 대사로 나오면, 배경 막에 달이나, 명멸하는 별빛을 조명효과로 보였는데, 이 연극에서는 달도 한 장면만 둥근달을 잠시 보였을 뿐, 별빛은 관객의 상상에 맡김으로써 그녀의 연출력과 자신감을 은연 중 공연을 통해 과시했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무대디자인 이태섭, 오브제 디자인 김상희,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우성, 음악감독 강은구, 소품디자인 강민숙, 영상디자인 김장연, 분장디자인 백지영, 음향디자인 최환석, 노래지도 한영애, 조연출 김 정, 조연출보 명지선 그밖에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인, 명동예술극장 (사장 구자흥) 제작,손톤 와일더 작, 오세곤 역,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은 한 편의 고도의 예술작품의 탄생이었다.
8, 경희궁 숭정전에서 김남채 원작, 서후석 박수환 작곡, 방은미 대본/연출의 고궁뮤지컬 <천상시계> (경희궁 숭정전)
고궁 뮤지컬 <천상시계>는 장영실(蔣英實)의 각종 천문기구(天文器具)와 기상기기(氣象器機) 제작과 관련된 내용으로, 당시 부강한 자주 국가를 꿈꾸던 세종(世宗)과 박연(朴堧), 이천(李蕆), 황희(黃喜) 등 역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외세에 의존하지 않은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상의 연인 예성이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복선으로 엮은 음악극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 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 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기녀(妓女)였다.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였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太宗)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고,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으로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면천(免賤)되어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관노(官奴)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행사직(行司直)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李蕆)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세종 15) 정4품 호군(護軍)에 오르고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銅活字)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 ·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採訪)별감이 되어 구리[銅] ·철(鐵)의 채광 ·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上護軍)에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세종이 신병치료차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수레가 부서져 그 책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였다. 세종은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로 감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무대는 경희궁의 숭정전 대청과 월대(月臺)를 사용하고, 월대 좌우에 설치한 철제 빔에서 조명을 비추도록 만들었다. 숭정전 계단 위에 국악관현악단 연주석을 마련하고, 월대 아래 마당까지 동선을 넓힌다. 숭정전의 여닫이 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가리개를 사용해, 거기에 명멸하는 별빛과 천문도등의 영상을 투사해 시각효과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숭정전 오른쪽객석 가까이 커다란 망루(望樓)를 세워 중국의 천문대(天文臺)라 명명하고, 장영실의 고향집은 절개한 초가그림에 비춘 부분조명으로 장면전환에 대신한다. 연기자들은 무선마이크를 사용하고,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객석의자에는 모포를 1장씩 비치했다.
연극은 도입에 출연자 전원이 등장해 관객맞이 열창을 한다. 이어 장영실의 고향 장면에서 그의 첫사랑인 미모의 예성이 등장해 사랑을 엮어간다. 장영실이 상경해 평복차림의 세종과의 첫 상면이 이루어지고, 재상과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영실을 적극 천거하는 이천의 성품이 부각되는가 하면, 출신성분이나 가문의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려는 세종의 혜안(慧眼)이 객석에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명나라로 유학을 떠난 장영실과 천문대에서 만난 천자가문(天子家門)의 주하와 상면에서, 두 사람의 우의(友誼)를 높이는 계기가 마련된다. 향후 장영실은 천재적인 천문기기와 기상기기 발명가가 되고, 고향의 예성 아가씨는 기녀(妓女)로 변신 상경해 장영실과 해후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잘 익은 석류 알처럼 부풀어 간다. 장영실의 면천(免賤)과 관직의 등급이 날로 높아지니, 대신들의 반대소리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시 천문관측은 중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천문기기 제작은 중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 하였는데, 장영실의 발명 소식에 노한 명나라에서는 대신을 조선으로 급파한다. 명나라 대신, 그는 바로 천문대지기 주하라는 인물이다. 주하는 장영실과 해후하고, 장영실의 발명을 이해하지만 천자의 명을 어긴 행위라 곤혹스러워 한다. 주하가 주저하는 사이에 명나라 암살대가 잠입한다. 암살대가 칼을 휘두르자 예성이 온몸으로 막아 장영실 대신 죽는다.
명나라 사신 일행은 돌아간다. 주하와 함께 별을 노래하던 장영실은 죽은 그녀를 생각하며 천문도(天文圖)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천상시계(天上時計)를 창출해 낸다. 대단원에서 장영실이 만든 어가(御駕)가 행차 중 파손되는 일이 발생하고 그 문책으로 그는.....
장영실로 전재홍이 출연해 열창과 열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예성아씨로 최수진이 등장해 미모와 가창력과 호연으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김재한...이토록 뛰어난 뛰어난 뮤지컬 연기자가 있었다니....김재한의 세종 역은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가시켜, 뮤지컬 연기자로서 그의 발전적 앞날을 예측케 했다. 주하 역의 현순철, 덕진 역의 김숙영, 박연 김태유, 황희 변진완, 이천 정태준 등이 출연해 성격창출과 가창력에서 탁월함을 보여 뮤지컬의 동량(棟樑) 구실을 했고, 정순원, 이상원, 정우일, 김형석, 이형준, 조승명, 오정훈, 진성민, 김선혜, 정유하, 김유진, 최유미, 황은진, 조민정, 기밈영, 박가은, 박정은, 이가영, 안솔지 등 출연자 전원의 열창과 호연 그리고 무용은 관객을 도입부터 뮤지컬에 몰입을 시켜 쌀쌀한 가을밤의 냉기를 열기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최종원과 여균동이 세종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되었고, 김신용이 주하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되었다.
무대디자인 김인준, 어시스턴트 김태규 김희원 안솔비, 조명 디자인 우수정, 음향디자인 김성민, 영상디자인 신성환, 의상디자인 박근여, 분장디자인 김진숙, 소품디자인 김용로 임규양, 기술감독 이태용, 무대감독 김지후, 무대크루 안경호 김현수, 일러스트 잠산, 그래픽디자인 지우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관객을 환상과 감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국악관현악단 지휘/음악감독 신경미, 음악조감독 황유경, 보컬코치 김숙영, 악장 성유진, 가야금 성유진 박미현, 거문고 이민영 장윤혜, 대금 김경림 박명규, 피리 박진형 이광호, 해금 김희수 이예연, 아쟁 김인규, 장구 박경진, 모듬북 한덕규, 타악기 유태상 아상경, 대외협력 이승철, 김유나 등의 기량과 연주가 극적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조선희)과 아트브리지(대표이사 신현길)가 공동제작하고, 발명가이자 작가인 김남채 원작, 서후석 박수환 작곡, 박수환 이예진 편곡, 미모의 비범한 연출가 방은미 대본/연출의 뮤지컬 <천상시계>를 창의력이 높고 한국적 특색이 분명한 감동만점의 걸작 고궁뮤지컬로 탄생시켰다.
8, 경기도립극단 고선웅 작/연출의 <늙어가는 기술>(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경기도립극단 61회 공연 고선웅 작/연출의 <늙어가는 기술>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풍요(豊饒)나 부유(富裕)보다는 빈곤(貧困) 쪽에 가까운 11명의 인물들이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6개월 째 월세(月貰)를 지불하지 못하는가 하면, 130만원을 못 내 격투기 도장 운영을 포기하기도 한다. 18년간 때밀이 노릇을 하다가 목욕탕 주인이 된 남자의 한(限)이 단골손님의 때밀이 거부로 표출(表出)되기도 하고, 알코올에 젖은 여인의 방황행각(彷徨行脚)이 펼쳐지기도 한다. 조금 여유가 있는 인물은 부인을 외면하고, 다른 여인에게 한눈을 팔다가 부인의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평생 주먹을 휘두르며 건달로 지낸 사나이는 후배이자 제비족인 남성을 한 아녀자 앞에 영웅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폭력게임을 벌이지만 무위(無爲)로 끝이 난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남녀의 옛정이 백발의 연정으로 발전하고, 연상의 여인에게 마음을 쏟는 젊은이의 정경(情景)이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듯펼쳐지기도 한다. 원래 악사(樂士)였던 인물들이 격투기에 종사하다가 결국 패하고 본업(本業)으로 돌아가는 등, 11명의 등장인물이 직접간접으로 연관이 되어 서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가 개인별로 전개되다가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으로 펼쳐지면서 관객을 폭소(爆笑)와 연민(憐憫), 그리고 감동의 세계로 몰아간다.
무대전면 객석 가까이에 화단(花壇)이 있고, 그 뒤로 정사각의 단을 무대 좌우와 중앙에 마련해, 왼쪽은 가로등과 의자가 보이는 공원의 일각, 중앙은 욕탕과 함께 그 앞으로 길게 누울 수 있는 나무로 된 접는 의자, 그 오른편 약간 뒤쪽으로 때밀이 침대가 가로 놓이고, 무대 오른쪽에는 펀치백이 달린 도장의 일부분이다. 뒷부분 중앙에는 거실의 일부로 설정되고, 배경 막 가까이에는 왼쪽으로 오르는 높다란 계단이 있다. 계단 꼭대기에는 어린이용 플라스틱 목마가 놓여있다. 이 목마는 대단원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명장면으로 관객의 기억에 새겨진다.
연극은 도입에 등장인물 전원이 등장해 무대를 누빈다. 대부분이 40대에서 60대의 연기자라, 실버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차츰 연극이 전개되면서 각자의 연기가 아닌, 실제 인생이 펼쳐지는 듯, 그들의 모습과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생생한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경기도립극단 배우들의 경륜과 체험과 발군의 기량이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인물, 예를 들자면, 폴스타프나, 샤일록에 비견되는 찬봉 역의 이찬우를 탄생시켰고, 1956년 제작된 데이빗 니븐과 칸틴 플라스가 주연한 명화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칸틴 플란스를 연상시키는 때밀이 순옥 역의 강성해, 그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건달 승갑 역의 이승철의 기량이 돋보이는가 하면, 나이든 제비 춘기 역의 양진춘의 연기설정은 이 연극의 수훈갑으로 남는다. 격투기 코치와 선수 철동 역의 류동철과 창수 역의 서창호는 그 본업에 종사하는 스포츠맨도 그처럼 실감나지는 않으리라. 무칠 역의 김종칠은 무대에서 보인 백발에서부터 깡마른 모습 그 자체가 인생의 반영인 듯싶고, 옥녀 역의 김미옥과 길섭 역의 김길찬은 요즘 젊은이의 열정에 몸과 마음을 살포시 기울이는 나이든 여성들의 모습과 젊은이들의 여성취향을 단적으로 그려낸 적절한 연기였다면 이는 필자만의 생각일까? 술에 절어 지내는 태분 역의 이태실 역시 근자에 자주 부각되는 여성들의 끽연증가와 음주벽을 온몸으로 표현한 듯싶고, 현순 역의 박현숙.... 이런 연기자가 있었다니? 박현숙은 20세기 최고 성격배우 마리아 셸을 대하는 느낌이다. 그녀의 발전적 앞날이 예측된다.
무대디자인 심재욱, 어시스트 고현숙, 의상디자인 정경희, 어시스트 정혜영 이원경, 소품 김수진, 작곡/음악 남상미, 분장 장경숙 임영희, 조명디자인 김신수, 음향감독 구종회, 무대감독 김영기, 조연출 한수경 사진 정희승 김찬복
캘리그래피 이상현, 그래픽디자인 노 운 등 스텝진의 기량과 경기도립극단 기획실장 김순국, 부실장 김경아, 마케팅 김성수, 홍보 이수민 등 제작진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비범한 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 작/연출의 <늙어가는 기술>을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0,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 번째, 홍원기 작, 박정희 연출의 <꽃이다>(백성희장민호극장)
연극 <꽃이다>는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이야기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의 순정 공(純貞公)의 부인으로 절세미인이다. 향가(鄕歌)인 <해가(海歌)>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할 때 수로부인과 동행하던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근에 바위 봉우리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탐스럽게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꽃을 보고 "누가 이 몸을 위하여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하며 좌중을 둘러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 바로 그때 암소 한 마리를 몰고 그 곳을 지나던 웬 노인이 암벽을 기어올라 그 꽃을 꺾어다가 <헌화가>와 함께 수로부인에게 주었다. 또 이틀이 지나 임해정(臨海亭)을 지나는데 문득 바다의 용이 수로부인을 납치해 바다 속으로 데려가 버렸다.
이번에도 순정공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이때 또 한 노인이 나타나, "옛말에 뭇사람의 말은 쇠를 녹인다 했으니, 바다 속의 용(龍)인들 어찌 두려움이 없으리오? 경내(境内)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라 이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찾을 수 있으리다"라고 알려주었다. 모두 노인의 말대로 구지가를 불렀다.
구호구호출수로(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
약인부녀죄하극(掠人婦女罪何極) 남의 아내를 앗은 죄 얼마나 크냐.
여약패역불출헌(汝若悖逆不出憲) 네 만약 어기어 내 놓지 않으면
입망포략번지끽(入網捕掠燔之喫) 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으리라.
이 소리에 용이 놀라 수로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돌려주었다. 수로부인의 용모는 세상에 견줄 이가 없으므로. 향후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면 번번이 신물(神物)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이 이야기는 후세 평자들이 수로부인의 미색이 귀신이나 용의 음심을 부축일 정도로 절세가인이라는 내용만 강조했지, 노인의 능력과 지혜는 한 마디도 평가하지 않아, 근자에 정치가들이나 평론가들의 안목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95년에는 수로부인의 설화를 내용으로 한 연극, 최인석 작/연출의 <사상 최대의 패션쇼>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연극은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삼국유사에 전해 오는 수로부인의 이야기에서 권력과 인간 사이의 갈등관계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신화에 가까운 수로부인의 설화를 용으로 절대시되는 권력과 무력하고 비천한 인간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권력의 본질 문제를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극중극이라는 형식도 삽입했다. 이승철, 이인철, 김종철, 조용태, 한수비 등이 출연해 열연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2006년에는 소설가 정건영 선생의 장편소설 <수로부인>이 발간되었다. 소설 <수로부인>은 삼국유사 2권 수로부인에 나오는 시편 ‘헌화가’, ‘해가’와 그에 연관된 배경설화를 재구성한 장편소설이다.
이 설화에는 신라 제일의 미녀인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견우노인, 용왕에게 납치된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해 온 백성이 바닷물을 치며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는, 당시 신라의 미녀에 대한 절대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의 연계 설화들을 샅샅이 뒤지고 유추해 장편소설로 재창작했다. 수로부인을 미끼로 신분상승과 권련 야욕을 드러내, 소아마비인 순정 공에게 시집보내는 아버지, 수로부인을 사랑하나 어쩔 수 없는 성불구자 순정 공, 꽃을 꺾어 바친 견우노인의 인생편력, 화랑 죽지 랑과 득오, 왕을 둘러싼 12관부 대신들의 암투, 신라의 삼국통일 뒤에 오는 고구려 유민과의 갈등, 용왕의 실제 정체, 유민으로서 고구려 부흥을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산적 두목으로 살아가는 마방은 수로부인의 초상화에 넋을 잃고 그녀를 납치해 그때까지 순결을 지니고 있던 수로와의 야합으로 비로소 수로부인은 여인이 된다. 수로부인은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마방을 따라나서는 것에서 소설은 끝이 난다.
국립극단의 수로부인은 노인과 헌화가를 부각시켜, 진일보한 재창작이 되었다. 무대에 U자(字)형의 못을 만들고 네 군데에 다리를 만들어 놓은 점도 수로부인(水路夫人) 제목에 어울리는 장치다. 물속을 첨벙이며 다니는 연기자들의 동작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극중 신선 같은 노인의 흰색의상과 수로부인의 수천 개의 꽃잎 같은 두루마기 가운은 이 극의 백미(白眉)로 기억된다. 배경 막 가까이 성문 같은 느낌의 등퇴장 로 역시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끔 하는 역사적인 문으로 느껴지고, 무대좌우의 높은 단에서 타악기를 두드리다가 뛰어내려 무예를 펼치는 화랑들의 모습 또한 절묘하다. 음악 또한 연극을 환상과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고, 조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속 물 밖 할 것 없이 무대 전체를 평면은 물론 입체적 동선으로 처리한 연출력 또한 수훈갑이다. 연기자.... 이토록 적절한 캐스팅이 또 있었는가 싶도록 어울리는 배역이었고,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 부각시킨 무대가 되었다.
다만 도입과 대단원에 등장하는 노인과 수로부인의 관계를 딸과 아버지라는 설정보다, 노인을 사랑하게 되는 절세미녀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필자 같은 연배들의 덧없는 꿈일까?
정재진, 이용이, 서영화, 이승훈, 김정호, 유병훈, 호 산, 이서림, 임성미, 강동수, 김준원, 최재형, 한상민, 김경회, 박미영, 신문영, 황정화 등 출연자 전원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은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무대디자인 여신동, 조명디자인 조성한, 의상디자인 김지연, 음악감독 장영규, 안무 심새인, 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음악조감독 김 선, 음향디자인 김지선, 조연출 이지영, 무대감독 변오영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노력이 돋보인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인 홍원기 작, 김옥란 드라마터그, 박정희 연출의 <꽃이다>를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상기 10개 작품 외에도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3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의 번안희극 <병자삼인>, 극단 산울림의 윤대성 작, 임영웅 연출의 <동행>, 그리고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김재남/김애양 역, 남육현 연출의 <헨리6세 제3부 장미전쟁>도 우수한 공연이라 평하겠다.
필자가 9월에 관람한 지방극단의 공연물을 보며 서울소재극단이나 지방극단이나, 공연의 수준이 비등(比等)함을 알 수 있었고, 지방극단의 열정과 노력을 공연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대형 공연장이 지방마다 건립이 된 것도 지방극단에 영향을 준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10월9일 한글날에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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