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5:1-18, 싯딤의 함정-발락과 발람의 무서운 계략,
19.2.27, 박홍섭 목사
민수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0장까지는 광야 진군을 위한 준비과정, 11-24장까지는 구름과 함께 진군을 시작하면서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의 갱신을 다룹니다. 마지막 25-36장까지는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일어나는 광야에서의 마지막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25장은 싯딤의 음행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22-24장을 읽으면서 모압 왕 발락이 거짓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버린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싯딤에 도착해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싯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진을 쳤던 요단강에서 11KM정도 떨어져 있는 모압의 한 지명입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비교적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스라엘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고 제사하였던 가장 추하고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에게 가담되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가담하다는 말은 ‘차마드’라는 단어인데 붙들어 매어 완전히 밀착되고 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전에 개역성경은 단순히 가담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속했다는 의미로 부속되었다고 번역했죠. 부속되었다는 말은 그 밑에 들어가 그를 섬기고 그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은 구속하여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 중에 싯딤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브올에게 속한 사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속해야 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바알브올에게 속하게 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다고요? 이스라엘은 모르고 있지만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고 오히려 축복하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렇게 애쓰고 일하고 계시는데 정작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면서 모압의 신들에게 절하고 그들에게 가담하여 그들의 종이 되고 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죠. 하나님은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고 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전하면서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자들을 다 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염병으로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나타나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고 수령들이 태양을 향하여 목매달려 죽어야 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들에게 온지라.” 하나님의 진노로 염병이 돌아서 가족도 죽어나가고 친척도 죽어나가고 이웃도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회막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온 회중의 목전에서 한 사람이 미디인의 한 여인을 데리고 진중에 들어옵니다. 나가서 음행한 것도 모자라 아예 대놓고 뻔뻔스럽게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이 남자의 이름이 나오는데 시므온 가문의 한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입니다. 그가 데리고 온 미디안 여자는 미디안 족속의 수령 중의 하나인 수르의 딸, 고스비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에 한 명인 시므리가 미디안의 지도자의 딸 한명과 음행에 빠져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는 우상숭배의 행위를 벌인 것도 모자라 아예 대놓고 그 여자를 이스라엘의 진영에 데리고 와 자신의 장막에 들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손에 창을 들고 그의 막사에 들어가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여 버립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으로 백성들 가운데 이만 사천 명을 죽게 만든 염병이 그치고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집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인 평화의 언약을 주시고 미디안 인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고 하시면서 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지휘관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속임수로 유혹하여 너희를 대적했다고 합니다.
31:16절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꾀가 무엇일까요? 계2:14절에서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걸려 넘어 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고 발람은 여인들을 통해 음행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해서 바알브올에게 부속되게 하는 유혹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4절에 하나님께서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목매달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싯딤의 이 무서운 배도 사건의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도자들이 음행에 앞장섰을 수도 있습니다. 비느하스에 의해 죽었던 시므리도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 중의 한 명이었으니까요. 이 일이 어디서 왜 일어났습니까? 싯딤입니다. 싯딤은 말씀 드린 것처럼 요단 동편에 있는 가나안과 가까운 접경지역입니다. 오늘날은 요단강이 작아져서 시냇물처럼 되어 있지만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요단강은 지금 한강보다 더 넓은 큰 강이었습니다. 메마른 광야를 거의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큰 강 주변의 비옥한 땅에서 머물러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았겠습니까? 숲도 있고 물도 있고 쉴 그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주위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은 했지만 이런 음행의 유혹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단 동편의 땅을 정복하고 이들의 이름이 나고 싯딤이라는 편안한 환경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발람은 이런 이스라엘의 아킬레스건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발락에게 이스라엘이 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싯딤의 유혹은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기 위해 발람과 발락이 치밀한 계획 아래 의도적으로 모압의 여인과 미디안의 여인들을 동원해서 벌인 무서운 성적유혹이었습니다.
이 유혹에 지도자들과 많은 이스라엘이 넘어가 모압의 여인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여 그들에게 가담되었습니다. 제사장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와 열심으로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들의 음행과 우상숭배는 더 번져갔을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도 더 커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싯딤 음행사건은 교회의 거룩함이 음행으로 훼손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음행과 타락이 여기에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수령들을 목매어달게 하심으로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방종한 백성 뒤에는 방종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동시에 비느하스의 질투와 열심을 통해 이 무서운 교회의 음행을 바로 잡는 것도 지도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열심과 지혜를 동원해서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있는 와중에 무서운 음행의 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견디지 못하셨고 질투하셨습니다. 비느하스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열정으로 일어났습니다. 시므리와 고스비 두 사람을 죽인 비느하스의 열정으로 온 백성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진노가 물러갔습니다. 시편 106:28-30절은 비느하스의 행동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중재한 것이라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두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향한 육체의 열정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입니다. 죄의 열정이 우리 자신과 회중들을 지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열정으로 일어나 회중들에게 “죄를 버리라고” “죄에서 나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싯딤보다 더 큰 성적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비느하스의 열정을 가지고 회중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른 손이 범죄 하거든 오른 손을 잘라버리고 눈이 범죄 하면 눈을 뽑아버리고 죄의 자리에서 나와 하나님을 향하여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조금만 하나님을 의식하고 주의하면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죄를 향하여 열정을 가지고 갈 데까지 가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싯딤에서 편안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광야의 훈련을 마치고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싯딤의 음행과 우상숭배는 훗날 솔로몬 시대까지 이어지고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반복되는 죄의 패턴이 됩니다. 이 패턴을 끊고 거룩한 주의 백성 만들기 위해 예수님이 비느하스의 열정을 가지고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셔서 두 사람을 죽인 정도가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붙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죄를 이기는 거룩한 공동체로 자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