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초등학교는 국민학교로 칭했다.
쪽바리(일본인 비속어) 의 잔재 명칭이라하여 김영삼정부 시절에 초등학교로 개명 한것이다.
영삼이 아저씨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마디 하고 넘어가자,
그분이 대통령선거 유세때 가장 기억나는 말,말,말중에 경주 유세에서 "여러분~이번에 나를
선택해 주신다면 이 경주를 세계적인 강간 (관광) 도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산에는 산삼이 있고, 바다에는 해삼이 있고, 대한민국에는 김영삼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
했던 재미있는 대사가 기억난다.
과연 산삼과 해삼과같은 존재였든가..? 의문을 달아본다.
이분의 업적중 가장 내맘에 드는 업적은 금융실명제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명한것이
마음에든다.
각설하고 동점초등학교엔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이 남자 한 반,여자 한 반 이었다.
전교생을 모두 합해야 500~600명 정도다.
주변 초등학교의 3000명 이상에 비하면 턱없는 인원이다.
그래도 운동장은 시끌벅쩍 북쩍거렸다.
그래서 더 가족적인것 같다.
그시절 학교 등교길과 하교길은 동네별로 집합하여 줄지어 등교하고 토요일만 줄지어
하교 한 적이 잠시 있었다.
또 동네별로 꽃동산을 만들게하여 경쟁을 유발한 기억도난다.
돌 울타리로 화단을 만들고 금숭화,채송화,맨드라미,카네이션,분홍꽃,나팔꽃, 할것없이
조막만한 손으로 심고 물을주고, 예쁜마음으로 화단과 꽃을 가꾸었던 기억이난다.
나와 그 일당들이 만든 화단은 돌산아래에 있었다.
그시절 동점초등학교로 등 하교하는 길은 4곳이었는데.
동점역, 구문소, 메물뚜리, 양조장마을과 학교앞 동네에서 들어오는 정문과,
돌꾸지, 철암, 나팔고개에서 들어가는 옆길과,
힌두리 방향에서 들어오는 뒷길,
방턱골 방향에서 들어오는 옆길, 이렇게 네곳이었다.
학교모습은 "ㄱ"자 모양에 외벽은 병아리색인 노란색 이었고, 유리창은 반달모양이 윗쪽에 있고,
아래쪽은 교실안이 들여다 보이지않게 우유빛 유리로 되어 있었다.
특히 여자 반 우유빛 유리안은 무척 궁금했었지... (어린시절 호기심이 많았었거든...)
교실과 마루바닥은 수입목인 나왕으로 되어있어 물걸레 청소후 마른걸레로 닦고 초칠을 하여
문질렀다. 한마디로 초친거지....
그래서 바닥은 항상 반들반들하며 미끄러웠다.
복도엔 멀리서 뛰어 주루룩 미끄럼타기도 하였고, 또 쪼그리고 앉아 한명이 앞에서 끌어 그 미끄러운
바닦을 미끄러지는 미끄럼타기를 하던 기억이난다.
책 걸상역시 나왕목으로 되어 있었고 망실 되었을때는 소사 아저씨가 맑끔히 고쳐주시곤 하셨다.
책상엔 두명씩 앉았었고 서로 마음이 틀어지면 물론 중앙에 선을 긋고 째려보기도 했었지....
선을 넘어오는 놈 한대 갈기기도했었고...
그 책상위에서 연필 따먹기 지우게 따먹기도 많이 했었는데...심지어는 필통 따먹기까지도 했었다.
교실에 들어설때는 신발을벗어 신발장에 두고 복도를거처 교실에 들어서게 되는데 신발장은
여러 학급이 함께 사용하였기 때문인가 신발을 자주 분실하여 대부분 아이들은 신발주머니를
들고다녔다.
교실 앞쪽으로 화단이 만들어져있어 학년과 반별로 담당 화단이 있었고 당번이되면 물을 떠오는
일과 흑판을 깨끗이 하는 일과 자기반 화단에 물을 주고 꽂과 화단을 가꾸곤 하였다.
또 각반에 배당된 토끼풀 주는 일도 당번의 몫이다.
화단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넓은 운동장에 축구골대가 있었고 배구 폴대가 교무실쪽으로 서
있었던것 같다.
운동장쪽에서 강쪽으로 아카시아 나무들이 울창하였고 그 앞으로 뜨문뜨문 프라타나스 나무들이
큰 잎을 펼치고 서 있었고,
그 나무앞으로 철봉대가 길게 놓여있었으며 학교정문옆으로 왼쪽엔(강쪽) 미끄럼틀이 오른쪽엔
시소며 그네가 있었던것같다.
정문에서 10m가량 전방에 오른쪽으로 철갑을 두른(소나무 껍질) 큰 소나무가 길가에 한그루 서
있었고, 그 옆으로는 넓은 밭이다.
그 앞엔 문방구인 소나무 전빵이 있었다. 해선이 말처럼 날씨 좋은 미술시간에는 소나무와
전빵을 구도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었다.
정문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앞쪽 계단을 오르면 예쁜 연못이 오른쪽에 만들어져 있고 그 중앙엔
작은 섬모양으로 되어 있어 그 가운데 축 늘어진 긴 가지의 능수버들이 언제나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며 의연한 자태로 서 있었다.
연못 물속엔 화려한 색으로 단장한 붕어들이 입을 뻐끔뻐끔거리면서 알수 없는 이야기를하며 노닐고
주변화단엔 큰 나무, 작은나무,큰 꽃 , 작은꽃 온갖나무와꽃들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 운동후 땀이날때 목이마를때나 학급에 주전자로 물을 떠가거나 했던수돗물이 둥근 모양이
었던가...? 물꼭지가 여러개 달려 있었고 체육시간이 끝나면 와~달려들어어머니젖꼭지 빨듯이 수도
꼭지를 빨던 기억이난다.
연못 바로 앞이 교무실이다.
교무실 오른쪽으로 돌아 학교 뒷편으로 가면 이분이가 방턱골 소풍간날 언니랑 왕창싸워 억울함을
통곡했던 숙직실이 있었고, 그 옆에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그 옆으로 여러 칸의 토끼장과 토끼들이 있어 학년별 반별로 모두 나뉘어 있었고 반표가 붙어있었다.
아마 한반에 한쌍(두마리)으로 기억된다.
그날 당번이 되면 토끼 먹이를 위해 아카시아 잎.크로바잎. 씀바귀. 칡넝쿨등 토끼풀을 띁어 토끼에게 주었고, 방학때도 돌아가며 등교하여 뜨거운 뙤약볕에도 마다 않고 땀을 뻘뻘흘리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토끼풀을 띁어 토끼에게 봉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눈이 빨갛고 입은 언챙이 입모양에 먹이를 주면 오물오물 귀엽게 받아 먹는 그놈들의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지나 나나 같은 어린 나이에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토끼장에서 꺼내 안아주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하기도 했었고...
그 옆으로 흰두리 방향으로 작두로 풀을 잘게 잘라 숙성되도록 쌓아 놓은 퇴비 무더기가 있는 퇴비장이 있었다.
그시절 방학숙제로 퇴비 해 오기와 싸리비 만들어 오기도 있었는데 방학이 끝나고 등교할때면 너나
할것없이 풀들을 한아름 묶어 둘어메고 등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번은 싸리비 만들기 숙제로 싸리나무를 베어 오기 위해 육구산(돌구지앞산. 제환.이분이,분이.행안이 집뒷산)에 올라 싸리꽃이 만발한 싸리나무를 베다가 말벌집을 건드려 걸음아 날 살려라 아무리 달려도 그놈은 하늘이고 나는 땅인데 게임이나 되겠나.... 그놈 말벌에게 쏘여 쏘인 머리통이 울퉁불퉁..
심한 요철모양이 되어, 그날 종일 끙끙앓은 어린 추억이있다.
요즘 말벌에게 쏘여 사망한 사건을 종종 접하면 살아 있슴에 감사하고, 아찔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또 흰두리 가는 길입구에 잔디가 예쁘게 자란 "묘지" 가 하나 있었고, 그 옆이 우리의 장순달선생님댁
이었다.
그때는 선생님이 무척무서웠는데 역시나 커서 사진을 보니 순한 모습은 아니시다(죄송합니다 선생님)
그 옆으로 학교가 꺽어지는 부근에 화산이 만들었는가? 풍화작용이 빚어 놓았는가?
기암괴석이 넓적하게 퍼져 누워있고, 울퉁불퉁하며 괴이하게 생긴 터널과 같은 구멍이며,
여러형태로 생긴 그 고상한 암반위에서 소꿉놀이 했던 기억이난다.
그옆으로 또 하나의 조금 큰 화장실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일과수업시간 중간에 송경제였다고 생각이 되는데 녀석이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반전원이 걱정어린 마음으로 이곳 저곳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도통 찾을길이 없었다.
혹시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투석되는 그 구멍으로 퐁당 빠지지나 않았을까 하여 쿤네 나는
화장실 저 깊은 바닥까지 악취를 참아가며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확인 또 확인 한적이
있었다.
결국은 몸이 아프다고 말없이 그냥 집으로 갔었던 사건 아닌 사건이 기억난다.
화장실 오른쪽으로 동상이 있는 산이였고 그 산쪽 언덕에 관사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철암에서 약국을 하셨기에 그곳 철암에서 출퇴근하셨고, 학교관사엔 교감선생님이
거주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관사 옆으로 배추밭이였고, 나중엔 아카시아 나무를 전교생을 동원하여
그 배추밭에다 심은 것으로 기억된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동화속의 학교같이 아름답고 너무나 예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휴식시간이면 공차기.고무줄놀이,공기놀이.땅따먹기.머리박기등등의 놀이로 북쩍거리며
쓸만한 공책도 북북 찢어 딱지접어 딱지 따먹기하며,
터지고 깨어지고 멍이 들어도 즐겁기만 했던 그 교정....
열중쉬어 자세로 하우링으로 삐삐거리는 스피커소리와 왕왕울리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으며 먼 산 뻐꾸기 소리가 반주가 되고, 화음이되던. 또 훈시가 길어지면 뜨거운 퇴약볕을
못이기던 한두명의 학생이 퍽퍽 쓰러지던 그교정 ...
6학년때 과외공부가 끝나면 학교정문쪽으로 나가는 친구와 그 옆길(돌구지.나팔고개.철암쪽)로
나가는 친구들이 두패로 나뉘어 까기(발로차기)를 한바탕 하고 난후 서로 정답게 헤어지던 그 교정....
가을운동회의 만국기가 사방 팔방으로 펼쳐져 가을바람에 펄럭이며, 청백의 기백이 넘치는 그 함성
소리가 우렁찼던 활기 넘쳤던 그 교정이 그립습니다.
-13회 정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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