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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너스의 기적을 체험하라(2038.2020.7.26)
마14:15-21
할렐루야!!
주의이름으로 사랑합니다---옆사람과—보너스의 기적을 체험 해 보시렵니까----
장마철이라서 비가 많이 옵니다. 매일 비가와서 침수가 되고 사람이 죽고 걱정인데 이제 무더위가 시작이 되고 이번 주간부터는 많은 직장들이 무더운 여름철을 낮이하여 휴가라고 하는 것을 주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름휴가철이라고 합니다. 휴가철을 만나면 직장인들이 휴가비라는 보너스를 받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가고 싶은데로 여행을 하고 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휴가철에 코로나도 있고 하니 조심조심해서 다녀 오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름 휴가비를 보너스로 받으셨습니까? 재미있고 즐거운 휴가의 시간을 갖고 후반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중에 좋은 예화가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핀란드에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와 덕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는 커다란 근심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대를 이을 왕자가 없고 공주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대를 이을 사윗감을 구한다는 공고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드디어 장차 왕이 될 사위를 뽑는 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말타기와 활쏘기였습니다. 그 시험에서 가장 탁월한 20명의 젊은이가 선택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지혜의 시험이었습니다. 왕은 수수께끼 한가지를 20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높은 하늘과 땅을 잇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라. 기간은 100일을 주겠다’ 왕이 낸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20명의 젊은이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면 우선 키가 커야 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려면 나뭇가지 또한 길어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며 제각기 길을 떠났습니다.
그 젊은이들 중에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페로 역시 다른 청년들과 같이 가장 커다란 나무를 구하려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수녀원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현명한 왕이 되어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일하게 해달라고 오랜 시간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나무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해 주는 나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페로는 그 길로 그 십자가를 가지고 가서 왕의 후계자가 되었고 선왕의 대를 이어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분열되어 구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바로 지금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룩한 십자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인들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그런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룩한 십자가가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당시의 시대의 양심이었고 하나님의 소리를 전했던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목베임을 당한 다음의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슬픔을 억제하면서 퇴수의 시간을 가지려던 참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만난 사람들은 가난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그 어디에도 마음 붙일 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다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 열 두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보통 기억하기로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마른 고기 두 마리 가지고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역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니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명령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지시사항이요 명령이신 말씀을 지금까지 우리들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5천명을 먹이셨다는 이 숫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예수의 명령을 그만 소홀히 해 버렸습니다. 그냥 무심히 지나쳐 버렸습니다. 마치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이 가는 길 좌우의 아름다운 경치에 그만 눈을 팔다가 가장 중요한 이정 표지를 못보고 지나쳐서 다른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말씀 속에 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을 생각해 보면서 5병2어의 기적의 역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오병이어,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먹였는데 예수님께서 보너스로 남은 조각 열두 광주리를 가득히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너스를 받으려면 주업과 부업이 뒤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세상 직업이 주업인 줄 아는데 주업이 아니고 부업입니다. 주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주업인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잘하도록 부업을 주신 것입니다. 주업을 잘해야 부업을 주셔요. 하나님을 잘 공경해야 보너스를 주십니다.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휴일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월급날일 것입니다. 월급을 받을 때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받으면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저도 목회하기 전에는 직장생활을 10년동안 했는데 월급날 되면 기대감을 갖지요. 거기다가 보너스를 받게 되면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보너스를 받아야 밀린 것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보너스(bonus)가 뭡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관청이나 회사 따위에서 직원에게 월급 외에 그 업적이나 공헌도에 따라 금전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했습니다. 상여금을 흔히 보너스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도 보너스를 주십니다. 건강을 보너스로 주기도 하시고, 물질을 명예를 형통을 꿈을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보너스로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때 보너스를 주실까요? 마6:33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그의 나라는 천국입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 들어와 살 때 보너스를 주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는 물론 육신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넘어오기만 하면 큰 보너스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우리가 바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경외하고 바로 살면 하나님께서 어찌 버려두시겠습니까? 육신의 모든 것도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 회개하며 참 신앙 안에 들어오세요. 회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형통하게 보너스를 주십니다.
단짝인 세 선녀가 깊은 산속 연못에 목욕을 하러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목욕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보니, 한 선녀의 옷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셋이서 열심히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멋있는 남자가 선녀의 옷을 들고 나타나더니 ‘선녀님! 저와 결혼을 해 주시기 전에는 옷을 드릴 수 없습니다’ 라고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녀는 못이기는 척,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나머지 둘이 다시 내려와 목욕을 마치고 가려는데, 또 한 선녀의 옷이 없어졌습니다. 옷을 찾고 있는 데, 이번에도 잘생긴 청년이 옷을 들고 나타나 청혼을 하였습니다. 물론 선녀는 OK!입니다.
다음날 혼자 남은 선녀는 기대에 부풀어, 다시 목욕을 하러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선녀의 옷은 가져가질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니 내가 둘보다 인물이 빠져, 몸매가 안 되’실망 낙망 절망 하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이 선녀의 옷도 없어진 게 아닌가? ‘기다린 보람이있구나!! 그래..어떤 왕자님일까’주위를 둘러보니 저쪽에서 선녀의 옷을 들고 가는 사오정이 보였습니다. 선녀는 폭탄성 외모에 실망이 컷지만 ‘내 짝인가보다’생각하고 사오정을 뒤쫓아 갔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이 선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선녀의 옷을 팔에 걸친 채 이렇게 외칩니다. ‘세탁---세~~탁’하며 그냥 지나갑니다. 아마도 이 세 번째 선녀는 참 복도 없는 선녀인가 봅니다.
사람들은 참 ‘복’을 좋아합니다. 신랑복, 자식복, 돈복...뭐든지 복을 갖다 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만큼 복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엄청난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게 먹고 남았다고 합니다.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엄청난 복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엄청난 복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결만 안다면, 우리도 그대로 따라하면 되쟎아요? 그러면 우리 삶에도 그런 엄청난 복이 임할 것 아닙니까? 오늘 복의 비결을 잘 배워서, 그대로 실천하시는 상주감리교회 여러분의 삶에도 오병이어의 엄청난 복을 보너스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여러분이 가진 재물 가운데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재물을 성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재물은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이 가진 재물 가운데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재물을 성별시켜야 합니다. 구약 시대 유대인들은 절기 때마다 또는 무슨 죄를 지었을 때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물을 드리는 절차가 아주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그 규례를 살펴보면, 정결한 것으로 드렸습니다.
창8: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렸습니다.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출12: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렇게 하여 선별하여 가지고 온 제물은 제사장이 검사를 하여서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또 그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킬 때에 반드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출23:15‘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를 따라서 여러분의 재물을 구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도시락도 구별시키니 보너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물질 가지고 저울질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최소한의 기준은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정성을 다 바쳐야 합니다. 내 생활을 위해서 꼭 써야 할 것은 빚을 내서라도 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인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빚 져본 적이 있습니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게 매월 몇 십만 원씩 아니 몇 백만 원이라도 드려서 과외공부를 시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써 본적이 있습니까? 잔치 집에 갈 때에는 빈손 들고 못 간다고 부조 돈 가지고 가면서 하나님 앞에 올 때에는 주일헌금도 안 합니다. 옛날 예수 믿기 전에는 햅쌀 방아 찧으면 뒤집어 이고 지고 절간으로 무당 집으로 찾아다녔는데 지금 여러분들은 성미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햅쌀로 밥해먹으면서도 첫 열매도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삼상2: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항상 지난해 보다 결단코 적게 하면 안 됩니다. 마7:2‘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고후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하나님은 저울에 달아보셔서 부족한 것은 도로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단5:25-26‘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하나님은 정결한 것을 성별 하여 쓰십니다. 창8:20절에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그 제단 위에 정결 된 짐승 중에서 그리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성별 하여 쓰십니다.
말1:13-14‘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 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흠이 없는 것을 성별 하여 쓰십니다. 신15:21‘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십니다. 고후9: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했습니다.
성경에는 자기의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서 영광 돌리고 보너스의 축복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가 엘리야를 공궤 하였습니다. 왕상 17:8절 이하의 말씀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아합왕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전국적으로 기근이 극심할 때에 사르밧에 사는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 하여 3년 반 동안의 기근이 지나기까지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눅 21:3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이 하루는 성전 문 앞에서 연보궤에 연보 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을 가만히 넣는 것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를 주님께 드려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일행이 디베랴 건너편으로 가셔서 산에 오르시니 수많은 사람이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지만 제자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때 한 소년이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릴 때에 주님이 축사하시고 떼어 주니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은 밭을 팔아서 헌금을 하므로 초대교회가 구제 사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행4:36-37‘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고넬료는 구제 사업을 많이 하여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행10:2-3‘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물질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롬16:3-4‘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물도 잘 성별시키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아멘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알아보고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자리에 앉게 한 후에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 즉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2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빵 부스러기와 물고기 남은 것을 주워 모으니 12광주리에 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 어른만 5천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합니까? 기적은 현재 있는 것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0의 역사가 더해지는 역사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적은 것일지라도 현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부터 일어 났읍니다. 우리가 흔히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과거나 미래에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한아이로부터 5병2어를 안드레가 가지고 온 것은 보잘것 없는 것이지만 오천명 이상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 났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을 사다주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에게 떡이 몇개나 있나 가서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물으십니다. 현재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나 장차 벌어서 내 소원이 만족할 만큼 이루어졌을 때 가지고 나아가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내일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장차 성공해서 가지고 오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꾸밀것도 없고 잘 된 다음에 잘된 것을 보일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면 됩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양치는 지팡이 뿐입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라’ 하셨습니다. 정말 모세는 그것을 사용하여 바로왕의 교만을 꺽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에 인도할수 있었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는 기적을 행할수가 있었습니다. 양떼를 모는 지팡이가 온통 기적을 이루는 기적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읍니다.
시돈땅 사르밧 과부에게 일어난 기적은 엘리야가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떡도 없고 다만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입니다’ 말하였읍니다.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달라’할 때 순종하여 그 어려운 시대에 밀가루통과 기름통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체험 했읍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입니다. 왜 어감이 딱딱한 ‘명령’ 이라고 할까요? 본문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명령사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께 건의하기를 이곳은 빈들이기 때문에 음식을 사먹을 만한 식당도 없고 빵 한 조각 살 수 있는 가게도 없으니 이들을 모두 시내로 돌려보내서 사먹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냉담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제자들은 정말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고 난감한 표정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지금 우리들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끼리만 먹기에도 부족한데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까?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형편을 모르신 것도 아닐 텐데 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령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은 의무를 회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저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여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신의 양식까지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제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의 화려한 도덕률을 말하는 것보다 지금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 한 덩이 주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약2:17절‘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에게는 가난한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 중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제자들이 가진 것이 없는데도 제자들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형편과 믿음과 저들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때 안드레는 재빨리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갔다 드렸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볼 때 보리떡 다섯 개는 언제까지나 다섯 개 이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는 5개가 5천개, 5만개도 될 수가 있다는 믿음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예수의 제자들과 같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그 의무를 잊어버리고 남이 어떻게 해 줄 때를 바랄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의무는 하지 않고 하나님이 큰 복을 내려 주시기만을 바라고 나의 이성과 합리성만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며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가 5만개로 보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예물을 내게로 가져오게 하라’,‘내게로 가까이 오라’,‘십일조를 드려라’,‘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명령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명령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가져오면 내가 책임져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주님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보증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의 모든 문제를 가져오라 내가 책임져 주리라’,‘너희의 모든 질병까지도 가져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낫게 하리라’,‘너희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권고하심이니라’고장 난 가전제품은 그 제품을 만든 회사로 가야 잘 고칩니다. 그 회사의 수리 센터로 가야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고칠 수가 있습니다.
‘주일성수를 거룩히 하라 내가 이날을 복 주어서 복되게 하리니 너희가 하늘의 축복을 받으리라’,말3;10절‘십일조를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황충을 금하며 너희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으로 채워주리라’, 잠3:9-10절‘첫 열매를 드려 보라 그러면 네 창고가 가득히 치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한재 중에 나무를 줍는 가난한 과부에게 가서 ‘나에게 물을 가져다가 마시게 하라’고 하고 또‘나에게 떡을 가져다가 먹게 하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속성이 거의가 실현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순종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의 충성과 헌신과 봉사를 드려라 그리하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내려 주리라’, 신28:1-6절‘너희가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지켜보라 그리하면 너희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이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은 축사하셔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손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까? 바로 믿음을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기적을 베풀어 그 들판에 널려있는 돌들로도 떡을 만들어 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게 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을 안드레에게 가져갔고 안드레는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극히 평범한 일 갔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자기의 허기진 배를 먼저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어린아이는 그것을 먼저 주님께 바쳤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희생과 감사가 포함된 예물을 기뻐 받으시고 그 예물에 축사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눈물어린 감사가 있을 때, 희생적인 봉헌이 있을 때,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희생적인 봉헌이 있는 곳에는 벳새다 초원에서의 기적이 재현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서도 세 가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것 보잘것 없는것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수만 명의 군중들 사이에서 밟혀버릴 수밖에 없었던 부스러기 조각들도 모으니까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먹고 남은 것을 모았을 때 12바구니가 되었으니 그곳의 수많은 인파가 얼마나 배불리 먹었는가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3. 재물 때문에 시험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별시킨 재물을 ‘믿음으로,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한 아이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 이것가지고 누구 입에 풀칠이나 하겠어?’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입니다. 이미 자기들 머릿속에서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비록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예수님께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엄청난 기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전부를 예수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들 머릿속에는 이미 자기 나름의 계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에게 뭐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하시면, 이것은 왜 안 되고, 이것은 왜 안 되고... 쭉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어떻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사르밧 과부에게는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전 재산이었습니다. 하도 사는 게 힘들어서, 이제 조금 남은 이것으로 아들과 함께 마지막 떡을 해 먹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순히 내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나 먹을 것도 없는 데, 이상한 소리 한다’며 무시하겠습니까?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그것으로 정성껏 떡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 받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같은 것이라도, 하나님 쓰시기 원하신다면 내어드리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없는 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잔디위에 앉게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를 할 때면, 더욱 많은 복이 임하게 됩니다. 오병이어, 즉 5개의 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5천명을 먹이시려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혼자 드시기 위해, 아니면 몇 명의 제자와 나누시기 위해 그렇게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면 모르지만 5천명 그것도 남자 어른만 5천명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따지면 5천명이 훨씬 넘을텐데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작은 것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음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생활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으며 온갖 흑암과 공허와 혼돈이 나를 둘러싸고 답답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그것도 하늘을 향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내게 달려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고 내가 불평만 하면 계속 불평할 일만 생기고 원망스럽고 괴로워도 감사하기 시작하면 감사의 조건이 얼마든지 생기게 마련입니다. 감사하든 불평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은 ‘나눔’입니다.(19) 예수님께서 축복기도를 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그것을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자마자, 음식이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나눠줌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나누어주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나누어주는 자로서 사셨습니다.
자연의 원리도 나누어 놓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갑니다. 그러나 나누지 않으면 있는 것도 쇠퇴하여 버리고 맙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나누어주면 줄수록 늘어가지만 혼자 가지고 있으면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라고 다 내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이웃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면 할수록 넘치도록 채워질 것입니다.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말씀합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나누어주는 데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떡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손에서 떡을 떼어 받아서 제자들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주시는 대로 계속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5천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세상 사람은 무엇이든지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썩고 물질도 썩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지혜를 나눌 때 우리의 지혜가 더 증가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도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물질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나누지 않고 감추어 두면 썩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 나누어주어도 풍성히 남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절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이 말은 곧 예수님이 주신 떡 조각을 제자들이 떼어서 나누어 줄 때, 음식이 줄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떡 조각을 주셨을 때, 제자들이 ‘아이, 이것 가지고는 나먹을 것도 없겠다’라고 혼자 먹어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무지 혼나고,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조각을 떼어 나누어줄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보너스를 받게 된 것입니다.
내게도 조금 밖에 없는데, 그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욕심부리다가 저주 받은 인생들이 성경에는 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욕심을 부리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재물을 훔쳐서 감추었다가 발각이 되어서 그의 가족 모두가 돌에 맞아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습니다. 행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꾀하여 성령을 속여 밭을 판값을 절반만 드렸다가 저주를 받아서 죽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있습니다. 왕하 5장에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엘리사를 찾아와서 그의 문둥병을 고침 받고 감사하여 예물을 드리려고 할 때 엘리사가 그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니까 게하시가 뒤쫓아 가서 그 예물을 받아다가 감추었습니다. 그 죗값으로 게하시는 평생 동안 문둥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자기 당대에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받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청년 한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의 진리를 물었으나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눅18:18-30절 말씀에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너의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으나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면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시기 바랍니다. 돈, 돈, 돈, 하다가 그 돈 때문에 지옥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잘 경외하고 겸손하고 충성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과 땅의 온갖 아름다운 보너스로 가득하게 받으실 것을 기대하면서 여러분 가진 재물을 잘 성별시키시고, 그렇다고 재물 때문에 시험 당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재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에,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으며, 영원한 영생의 기업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보너스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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