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님 화천과 신위 그리고 종통
강증산 상제께서는 도주 옥황상제님께 계시로 종통을 전하시고
도주님께서는 박우당 도전님께 유명으로 종통을 전하시고
도전님께서는 1995년 12월 4일(음력) 화천하시면서 도헌이란 문서를 통해 종무원장님께 종통을 전하셨다.
이처럼 종통은 계시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는 문서 등 실체를 보이면서 종통이 전해졌다.
도헌(道憲)과 직무대리(職務代理)
도헌은 문서이다.
그리고 문서는 공신력이 있는 것이다.
한 국가에 국법이 있듯이 도에는 도법 즉 도헌이 있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를 창건하시면서 도헌을 만드셨는데
이는 도전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아래는 도전님께서 유고시에 대한 법조항 부분이다.
이미 도전님께서는 유고하실 것을 알고 계셨고 그 후임을 문서로 정해 놓으셨다.
도헌(道憲)
도헌 4장 중앙본부의 체계
제22조 도전 유고시는 종무원장ㆍ중앙종의회의장 순으로 그 직무를 대리한다.
제23조 본회의 대외적 제반 업무는 도전의 지시에 의하여 종무원장의 명의로 시행 한다.
제24조 종무원장은 연원 공적과 교화 실적에 따라 도전이 임명한다.
제25조 종무원장의 임기는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도전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위의 도헌중에서 도전님의 유고시 종무원장과 의장의 순으로 그 직무를 대리하며 종무원장은 연원 공적과 교화 실적에 따라 도전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도전님께서는 도헌에 명기해 놓으셨다.
이 말씀은 그동안 도전님께서 해오시던 그 직무를 도헌에 명시된 종무원장께서 대신하여 일을 보시며, 그 어느 누구도 종무원장님에 대한 해임을 논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직무(職務)를 대리(代理)한다." 라는 것은 도전님의 유고시 종무원장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새롭게 종통을 받는다거나 새 도전으로 임명 또는 변경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무대리는 종통과 같다.
그렇다면 직무대리란 무엇을 하는 것인가?
도전님께서는 양위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공사에 실제로 모든 공사와 공부를 직접 행하신 분이시다.
중곡, 여주, 포천, 토성, 제주도에 도장을 세우시고 대학교 고등학교 병원 등을 건립하셨으며 시학, 시법공부에서 봉강식까지 모든 공부를 시행하시면서 도인들에게 운수를 열어 주시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신 것이다.
그리고 도전님께서는 도헌이라는 문서를 통해 도전 유고시 종무원장님께 직무를 대리한다고 정해 놓으심으로 그 업무를 이어가게끔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무원장님께서는 어떤 업무를 이어가시는 것인가.
그것은 도전님께서 그동안 순감을 통해 테스트 해오시던 일을 대신 맡아 도인들에게 의통을 열어 주시는 일이다.
경우정(석규) 종무원장은 일반 선감이나 교감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1969년 서울 중곡동(중앙오십토) 도장을 세우시고 영대에서 첫 봉안치성을 모실 때 도전님께서는 종무원장님의 직함으로 녹명지를 사르셨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 재단을 설립할 때 경석규 종무원장님을 처음부터 이사장으로 등록 하셨다.
이는 종무원장께서 애초 일반 도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리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도인들의 전도인이시며 선각이심에도 불구하고 종무원장님께서는 선감이나 교감 등의 직책을 부여 받지 않으셨다.
그것은 우리 일반도인들과는 격이 다른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1995년 8월 중순경에 당시 도전님께서는 여러 임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원장을 새로 내야겠다”하시고 각 도장마다 그 도장을 운영 관리할 원장을 정해 주시면서 “소장이라 하면 대외활동할 때 얕보일 수도 있으니 원장이라 하지”라는 말씀과 함께 직책을 원장으로 바꾸셨다.
그 후부터는 여주원장, 포천원장, 토성원장 등으로 불려왔다.
경우정 종무원장님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고 이제 들든 날든 상관 안하겠다.” 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상제님의 대두목 공사에서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심과 같다.
종무원장과 각 도장의 원장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경우정(석규) 종무원장님께서는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계신 분이 아니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왕래하여 전체를 통솔 관장하는 위치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대두목이신 종무원장님과 각 도장의 원장과는 전혀 다른 차원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각 도장의 원장은 종무원장의 직책을 결코 사용해서는 안된다
도전님께서 각 도장의 원장을 임명한 것은 오로지 그 도장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자를 둔 것이며, 또한 원장들은 자기가 맡은 도장 외에는 타 도장과 업무에 대해 서로 관여치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원장직은 모든 것을 총괄하고 하늘의 뜻을 대리(代理)하시는 종무원장과는 결코 비교될 수 없다.
지난 일이지만, 당시 여주도장을 관리했던 이유종 원장은 직위가 선감이다. 그리고 여주도장의 원장을 맡았다고 해서 자기가 종무원장이라고 주장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이 과연 상제님의 대두목이며 고수부의 역할로 도통을 열어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여주원장은 종무원장의 직책을 결코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후 여주본부도장에서 밀려난 이유종 원장은 스스로 "종단 대순진리회 종무원장"을 자처하면서 대외활동을 하다가 2003년 11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결로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및 대순진리회 대표자 명칭 사용을 금지당하기도 하였다.
도전님께서는 종무원장님을 해임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종무원장님으로부터 항상 보고를 받고 관여하셨다.
그러나 앞으로는 종무원장님 마음대로 왕래하고 자유롭게 하라는 분부이시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도전님께서 종무원장님을 해임 하셨다 라고 하는데 이는 자기들의 편의대로 생각한 잘못된 말이다.
경우정 종무원장님은 상제님께서 대두목공사와 수부공사로서 도수에 쓰신 네 번째 분이시며, 마지막 종통 계승자이시다. 그리고 도통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신 분이시다.
사진주(四眞主)는 네 분의 참된 주인을 말한다.
인신사해(寅申巳亥)에 문 열리니 될려는 사람의 일일세 그려.
바다 해(海)자 열 개(開)자 사진주(四眞主)가 오신다네.(선도신정경 pp215-217)
중곡동 도장의 숭도문벽화 개문납객 기수기연
1. 사슴에 타고 계신 분은 구천상제님 (1871~1909)
2. 앞에 계신 분은 조정산 옥황상제님 (1895~1958)
3. 조롱박을 메신 분은 박우당 도전님 (1917~1995)
4. 맨 뒤 복숭아를 들고 계신 종무원장님 (1919~2010)
중곡도장에 있는 이 벽화는 한 분은 사슴을 타고 세 동자가 각기 다른 물건을 갖고 함께 가는 모습의 그림이다.
종통은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어져 오는 천부적인 신성성이며 연속성이다(도전님 훈시중에서)
복숭아와 복(福)
세 동자중 한 동자는 복숭아를 들고 있는데 이는 복숭아의 이치를 갖고 계신 분이다.
복숭아의 어원은 福仙花라고 한다.
복(福)은 복판을 가리키는 중앙 오십(5 10) 토(土)를 의미하고 숭아는 선화(仙花)의 변형된 말로써 여성을 상징하며, 아이를 낳아 금줄을 칠 때 딸이면 복숭아를 거는 풍속이 있다.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책에서 나오는 가상의 선경세상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한다. 이 때에 쓰는 도 자에 복숭아 도(桃)자를 쓴다.
1. 구천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행하시고
2. 옥황상제님께서는 後人山鳥로써 상제님께서 공사로 짜놓으신 도수를 풀어
운수의 날인 운래청용시사월(運來靑龍是四月)을 皆有報하시고
3. 도전님께서는 풀어진 도수로 공부를 여시어 의통을 테스트 하시고
4. 종무원장님께서는 대두목으로써 도인들에게 의통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특히 도전님 재세시에는 대순진리회의 모든 도장을 보면 외부는 3층인데 내부는 4층으로 되어 있어 1개층은 숨어있는 형상이다. 이는 당시 도전님까지는 세상에 드러난 상태이고 4번째 분이시며 마지막으로 오신 종무원장님께서는 대순진리회의 이사장이시면서도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크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다.
도전님 화천 후 분열
도전님께서 재세시에 전국 각 도인들은 각 지역별로 여러 군데 나뉘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방면이라고 한다.
도전님 화천하신 후 그 방면들 중 경산계열 및 군소 도인들은 여주도장을 주축으로 수도하고 있으며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토성수련도장도 함께 관리하고 있었다.
무극대도와 여주도장을 제외한 타 방면과 단체들은 서가여래를 영대에서 내리고 대신 도전님을 영대 원위에 모시면서
신위도 자기들 생각대로 각각 정하고 주문도 바꾸면서 각자 자기들만의 종교를 생성하였다.
과연 그들이 도전님의 신위를 정할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한다.
결코 없다고 보며, 근거 또한 없다.
천안계열은 중곡동 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전님의 신위를 정해 영대에 모셨다.
성주계열은 대진성주회 라는 이름으로 종단을 새로 만들었다.
요즘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를 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진성주회 사람들이다.
한때 도전님께서 우리 도는 구걸하는 도가 아니므로 길거리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여러번 주의를 주셨는데도
이 대진성주회 사람들은 말을 잘 안 듣는다.
이유는 도전님의 말씀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꼭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렇게 말씀하셨다 해도 자기들은 그대로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이고 해석은 내가 유리한 쪽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하여 도전님 말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곳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방면들의 대표선감등 기타 몇몇 사람들이 본인들이 종통을 주장하면서 새로 판을 차렸다.
그래서 판을 차리는 사람들에게 보다도 판이 없이 판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아닌가 보인다.
종통은 경우정(석규) 종무원장께 이어져 갔다.
이는 천부적이며 신성성이며 연속성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종무원장님 께서는 도전님의 신위를 정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무극대도로 새로 창건하신 후 영대도 주문도 바꾸지 않고 도전님께서 정해주신 원래대로 진행하셨으며,
도전님에 대한 제사나 치성을 올리지 않으셨으며, 신위 또한 정하지 않으셨다.
* 즉 이 뜻은 도전님에 대해 화천의 의미로 신명계로 가시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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