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똑같은 소주도 두 종류가 있는 걸 아십니까?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현지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편입니다. 나름의 호오는 갈리지요. 제주는 막걸리가 엉망인 대신 소주는 괜찮은 편입니다. 제주의 전통 막걸리(오메기 술)는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어설픈 본토 막걸리 짝퉁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끌릴 만한 막걸리가 아직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가 언젠가 한 번 맛본 적이 있는 전통주를 명맥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되살려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요. 그 일환으로 현지의 뜻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소주만큼은 한라산 소주를 즐기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소주를 너무 좋아해서 월향 1호점 개점과 동시에 메뉴에 넣었죠. 북한 소주와 함께, ‘한라에서 백두까지, 술’ 이런 제목으로. 그런데 이걸 서울에서 제 때 공급받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공급업체에서도 일정한 양 이상, 엄청난 택배비를 감당해야 보내주시고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는데요.
대신 제주에 내려가면 원 없이 이 소주를 마시다 옵니다. 한라산 소주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제주인들은 하얀 거, 파란 거로 구분하죠. 하얀 거는 오리지널 타입이고, 파란 거는 순한 프리미엄 타입이죠. 저는 그냥 마실 때는 파란 거, 폭탄주 재료로는 하얀 거를 찾는 편입니다.
그런데 몇 번 일이나 휴식 때문에 제주를 찾으면서, 이 두 가지 분류 외에 다른 종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른바 ‘차가운 거’와 ‘그냥’입니다. 제주에서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소주와 상온 보관 소주를 구분해 주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지 식당에서는 냉장고에 소주를 보관할 뿐만 아니라 상온에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해물 뚝배기로 유명한 보건식당에 들렀을 때, 너무 궁금해서 주인한테 물었습니다. “본토에서는 소주 하면 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걸 주는데, 왜 여기서는 구분해서 주문해야 해요?” 그 분은 짧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찾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뭔가 대단한 전통과 역사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저로서는 실망스러운 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현지의 주당 한 분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더군요. 주량이 꽤 센 제주인들은 효과적으로 술에 취하려 든다는 거죠. 그런데 시원한 소주는 취하지도 않고, 연배가 있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도 시려서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상온에 보관한 소주를 즐기시는 분들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다는 겁니다. 그 후부터 술 가리지 않는 저마저도 제주에서는 주의합니다. 모임 자리의 누군가 ‘흰 거’, ‘차가운 거 말고 그냥으로’라고 외칠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주당들의 천국 제주의 술자리에서 누군가 한 명은 쓰러질 거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
출처: Lifestyle Report 원문보기 글쓴이: 이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