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김세윤 교수, "구원파 이단이라 하면서,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 선포"
'칭의와 성화' 세미나서 한국교회 현실 질타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초청 목회자 세미나가 2013년 12월 16일 오후 서울 논현동 서울영동교회(담임 정현구 목사)에서 개최됐다.
김세윤 박사는 이날 '칭의와 성화'를 주제로 2시간 동안 참석한 3백여 명의 목회자들에게 강연했다. 김 박사는 지난해 했던 종교개혁 기념강연 내용을 기초로 올해 8월 <칭의와 성화>(두란노)를 펴낸 바 있다.
"보수·개혁교회, 성경 비평 막아 천박한 해석 초래
예정론·성도의 견인 잘못 이해하면 '잘못된 안심'"
김세윤 박사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도덕적 타락과 신학적 부패'라고 요약하면서, △사제주의, 공로(상급)신학, 스콜라 신학방법 등 중세 가톨릭주의로의 회귀 △부분적이고 왜곡된 복음 등의 원인을 열거했다. 김 박사는 "한국 보수교회, 개혁교회는 불쌍한 성도들이 이단의 밥이 되도록 하는 '모판'이 되고 있다"며 "이는 성경에 대해 비평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비평을 막아버려 성경은 중세처럼 '닫힌 책'이 됐고, 기존 교리들이나 문자적·율법적 방식으로만 해석하게 되고, 읽기 좋아하는 구절들만 읽는 천박한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
그는 "보수 교회에서 어디까지나 교리에 맞춰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리어 성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복음에 힘이 없어졌다"며 "은혜는 싸구려로 전락해 버리고,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한국의 정통교회가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스콜라 신학방법론과 교조주의에 의해, 닫혀버린 성경의 가르침과 설교에 의해 수십 년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큐티를 해본들 성경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기껏 해야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말씀을 찾거나 복 주는 말씀을 읽는 문자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특히 김세윤 박사는 '칭의의 복음에 대한 왜곡'에 주목하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의로운 삶이 없는 칭의론으로 인해, 본회퍼가 말했듯 싸구려(값싼) 복음과 구원파적 복음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박사는 "보수 교회에서는 의로운 삶을 막고, 도리어 방해하는 칭의론이 공공연히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선포되고 있다"며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윤리란 몇 가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걸로 끝난다"고 밝혔다. 교회에서는 주일성수·헌금·전도 세 가지만 하면 되고, 술·담배·제사 세 가지만 하지 않으면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김 박사는 "술과 담배는 음식을 가리는 문제로, 예수님은 성경에서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별파'들인 바리새인·서기관들과 가장 논쟁을 많이 하시지 않았느냐"며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게 한다며 이런 부분들을 싹 무시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이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경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과 이웃 사랑의 관점에서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신학적으로는 칭의론에 대해 법정적 의미만 강조하고 관계적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적 의미가 중요하지만, 의(義)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의무를 다한다는 뜻도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의는 신실한 관계이고 원만한 관계는 바로 '샬롬'이 되며, 죄는 관계에서 나오는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이 불의(不義)"라고 설명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차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행위구원을 배격하기 위해 의인이 되었다는 말 대신 의인으로 칭함받았다는 말만 강조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또 칭의의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가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칭의는 지레 받았다는 선취(先取)이지, 완성이 아니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선취한 의인됨의 상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칭의론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로마서만 봐도 3-4장에서 칭의를 설명한 후 5장에서 '이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고도 설명했다.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일방적이고 사변적 이해로 앙양된 잘못된 안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 교리를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면 안 되고, '오직 은혜로만'을 말하려면 예정론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한다"면서도 "칭의는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심'이라는 데서 보듯 결국 미래적인 것으로, 성경은 구원으로부터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분명히 경고하고(고전 10:12, 롬 11:17-24, 히 6:1-10) 있다"고 했다.
이밖에 "성화를 새로운 단계로 보아 버리는 우를 범했다"며 '구원의 서정 구도 안에서 성화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칭의란 사단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주권 전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화와 의의 열매 맺는 삶 살아야"
이후 김세윤 박사는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회심 때 우리는 그리스도 대속 제사의 덕(은혜)를 믿음으로 입어, 우리 죄에 대한 사면을 받고(aquittal) 의인이라 칭함받는다(declared righteous)는 것이다(은혜로만·믿음으로만). '의인이라 칭함받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됐다는 뜻이므로, 칭의란 '주권의 전이', 즉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아들 예수가 하나님 대신 왕권을 대행하는 나라(하나님 아들의 나라)에로 이전됨을 의미한다(롬 1:3-4, 고전 15:23-28, 골 1:13-14). 그러므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이다.
또 세례 때 얻는 '칭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얻을 칭의의 선취에 불과하므로(롬 8:31-39), 현재 회복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음,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실존에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로 우리를 통치하시며,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8장까지의 '칭의의 복음'에 대한 강해를 12-15장에서 '의로운 삶에 대한 권면'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여 이 두 계명을 지키도록 돕는다. 이러한 삶은 '의의 열매(빌 1:11)'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칭의된 자들임을 증거하게 되는데, 이는 곧 '성령의 열매(갈 5:22-23)'이다.
그리고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과거·현재·미래)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믿음의 시작점(세례) 때 다 이뤄지고 성화의 단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성화'는 칭의를 따르는 구원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구원의 전 과정을 통칭하는 또 하나의 '그림언어'로, 칭의와 병행되는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김 박사는 "성화는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으로서 세상의 오염을 계속 피하고 거룩하게 사는 현재성을 띠어야 한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칭의론을 실제적으로 의로운 삶을 살라는 윤리적 요구와 분리시키는 구원파적 왜곡은 '언어도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는 <칭의와 성화>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바울의 구원론을 '칭의-성화-영화'의 세 단계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틀리진 않았지만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전통 신학계 '구원의 서정'에서의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에 대해 이름을 잘못 붙였다는 것. 그에 따르면 칭의 다음이 성화가 아니라, 둘은 같은 실재를 말하는 다른 그림언어들(metahpors)이다.
칭의가 죄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구원을 이 죄를 해결하는 것이라 표현하는 법정적 뉘앙스라면, 성화는 죄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이 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는 제의적(cultic) 뉘앙스이다. 한 마디로 '성화'는 칭의의 구조 속 현재적 삶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동의어적 어휘이다.
이렇게 보면, '성화'는 확정된 구원 이후 하늘나라 상급의 구도가 아니라, '칭의된 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려고 더 노력하게 만든다. 김세윤 박사는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의 구원과 윤리적 요구의 통합이라는 논지가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칭의(장로교)와 성화(감리회·성결교) 중 어떤 면을 강조하는 전통에 속하든 우리 모두 칭의론은 결국 하나님 또는 하나님 아들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롬 1:5, 16:26)을 골자로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이로써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그릇된 칭의론이 아니라, 이를 요구하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세윤 박사는 "삼위일체적 하나님에 의해 즉 하나님 은혜로만 이뤄지고 지탱되는 우리의 칭의·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우리는 우리의 칭의(구원)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뤄가야 한다"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하여, 즉 우리의 실존에서 그의 하나님·이웃 사랑의 계명을 성령의 도움으로 지킴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늘 의식하면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주최로 마련된 이날 세미나 후 오후 7시 30분부터는 평신도를 위한 김세윤 박사의 열린 강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교회: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시 생각하기'가 진행된다.
-이대웅 기자, 기독일보 2013년 12월 16일 기사
2.
예수를 믿는가, 구원의 공식을 믿는가?
요즘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제게도 오래도록 중요한 질문이었으며,
구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제 삶이 크게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의인이 되며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직업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지만
특히 선교사로서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교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곧잘 말하곤 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하거나
선한 일에 힘쓰거나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구원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하는 것뿐이다."
그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돌보고 있는 후배들 가운데
매주 교회는 다니고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지만,
삶에 전혀 변화가 없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그렇게 살면 너는 구원을 받지 못할 거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저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받은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년 후 더 큰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제 마음에서 열정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싶은 열심도 희미해졌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반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좋았습니다.
특별히 나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권고가 계속 주어졌습니다.
"어둠에서 나와 빛의 자녀가 되라."
"도움이 필요한 형제에게 도움을 베풀어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도 용서받을 수 없다."
모두 제게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구원을 확보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저를 위해 죽으신 것을 철저히 믿었고
한치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
성경이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저는 적당히 무시했습니다.
제가 예전의 그 후배들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제가 후배에게 어쩔 줄 몰라했던 것처럼
바울이 이런 저를 보면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후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
고통 속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후,
성경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알려준 바는...
제가 예수를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만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보이시고 가르치신 삶만이 진정한 삶,
그 길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려고 하는 길도
그냥 '썩 나쁘지 않은 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제가 믿었던 것은 예수가 아니라 구원의 공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나는 구원을 얻는다"라는 공식 말입니다.
저는 이 교리 자체가
제게 구원을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를 버리고
교리만 붙들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교리는 제게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줄 뿐
저를 간섭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달랐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실 때,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염려마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우신다"
라고 말씀하실 때, 제가 이렇게 응답할 수 있을까요?
"당신 말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군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일이 제 필요를 채우시겠습니까?
제 필요는 제가 알아서 챙겨야지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당신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은 믿으니까요."
다시(어쩌면 처음으로)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믿음은 그의 말, 그의 삶, 그의 죽음, 그의 부활이
제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또 다시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나는 어둠 가운데 헤매며 진정한 생명을 살지 못하고
껍데기 인생을 살게 됨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거대한 일회적 사건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후로도 매일 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돈을 믿고 살까, 예수를 믿고 살까?
예수께서는 돈보다도 더 확실하게 내 안전을 보장하는가?
명예를 믿고 살까, 예수를 믿고 살까?
저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정말 더 중요할까?
내 자존심을 세우고 살까, 예수의 길을 따를까?
나를 모욕한 저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으면
나를 더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믿음이라는 단어 하나도 여러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지만,
제가 깨달아야 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믿음은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냐는 문제를 넘어서서,
내 행위와 삶이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지느냐를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결정합니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믿고 살지,
무엇에 의지해서 살아갈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나의 존재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명의 성도

첫댓글 최근 책 '칭의와 성화'(두란노)를 펴낸 김세윤 교수님이 강연을 통해 그 책의 핵심을 소개하고, 한 무명 성도가 예수 믿기보다 구원의 공식을 믿었던 삶을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어본다고해서 구원파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복음과 진리를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더욱, 칭의와 성화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거룩한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같은 교회 성도로부터 들은 얘기. 1년 내내 성경을 단 한 절도 읽지 못했다는 고백이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이 그녀의 구원 여부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참된 믿음은 '구원의 공식'에 따른 일회적인 믿음에서 "매일, 매순간" 믿는 현재적인 믿음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그렇다면, 1년 내내 성경을 단 한 구절도 읽지 않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