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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부동산이 아니다
(신30:1-1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신명기 말씀 중심으로 해서 <복지는 부동산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복지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부동산하면 다 개념이 분명하실 거라고 믿어집니다.
부동산이 뭡니까? 토지나 집처럼 움직여서 옮길 수가 없는 재산을 말합니다. 그 외에 것들은 다 우리가 동산이라고 말하지요. movable, immovable property 이렇게 얘기하죠? 움직여질 수 없는 그런 재산을 부동산이라고 말합니다.
근데 복지(福地)는 여러분, 땅 아닙니까? 가나안 땅을 말해요. 복된 땅을 말합니다. 이름 그대로.
그런데 이 땅을 말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의미에서 복지라고 하는 것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그리고 가야만 된다 라는 것이 아니라 복지가 내게로 왔다가 갔다가 할 수 있다, 움직여집니다. 복지라는 건 유동적이고 부동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산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 본문을 한번 보면 우리에게 또 주시는 메시지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이제 모세의 설교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단계에서 모세가 복지를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길할 정도로 이 포로가 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언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가정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포로가 되는 현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근데 미리 마치 내다보는 것처럼 그때 포로가 되었을 때의 상태를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에요.
자, 포로로 잡혀갑니다.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해서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1절)
포로로 잡혀간 상태, 복지에서 떠난 것이지요. 복지에서 떠난 상태에서 이 일이 기억나거든. 어떤 일이 기억나냐? 「네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이 나거든 그러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회복하게 될 것이고, 너희 마음이 회복되면 다시금 복지로 이끌어들이겠다」는 겁니다.(2-3절)
이때 복지는 아직 개념이 공간의 개념이고 그리고 부동산의 개념입니다. 그 부동산인 복지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부동산으로 옮겨온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우리의 신앙생활로 갖고 와지게 되고 적용되게 되면서 이 복지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가나안 땅처럼 중동에 있는 가나안 팔레스틴처럼 그 어느 지역을 한정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복지가 될 수도 있고 복지가 안 될 수도 있고. 우리 삶의 바탕이 복지로 깔려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복지가 움직여서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돈이 왔다가 또 그 돈이 나가는 것처럼 복지가 왔다가 복지가 떠날 수가 있어요.
복지라는 게 뭡니까?
내가 기뻐지는 거예요. 마음이 기뻐하며 사는 겁니다. 마음이 감사하며 사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아요. 어제도 11시가 돼서 집에 들어갔거든요? 부동산 아, 부동산이란다. 이게 뭐 제가 정신이 없는 거 같아요. 부흥회를 왜 부흥회를 말할 걸 부동산이라고 하여튼 부字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부흥회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니 11시입니다. 지금 주일부터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오늘 마지막인데 몸이 일어나는데 천근만근이에요. 근데 이상하죠? 여러분? 따르릉해서 딱 4시에 떠서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몸이 무거운 게 느껴져요. 느껴지는데 ‘아이고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왜 이렇게 말이 나오냐 말이에요. 왜 몸이 천근만근인데 일어나면서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거의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까?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일어나면서. 왜? 마음의 바탕이 깔려 있는 거예요. 마음의 바탕이 주어지는 현실 전체가 감사함으로 느끼고 있는 근본 바탕이 깔려져 있다는 거예요.
어느 일 하나를 놓고 내가 감사할 것이냐 말 것이냐 투쟁적으로 감사해야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바탕이 그냥 감사로 깔려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 이게 복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가서 말씀 전하고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고 그것도 요즘 현대어로 바꾼 복음의 이진법 원리다 해서 사람들이 처음 듣는 것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이 동그래지고 귀가 쫑긋해지고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왔으니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고 그보다 더 큰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감사가 되지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포로로 잡혀간다는 얘기가 나와요. 복지에서 이제 쫓겨난다는 겁니다. 근데 왜 복지에서 쫓겨납니까? 왜 복지를 상실하게 됩니까? 왜 기뻐하는 마음, 행복해하는 마음, 감사하는 그런 삶의 바탕 그것이 왜 내게서 떠나가게 됐습니까?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이미 마음이 포로가 되면 몸이 포로가 되는 일이 뒤쫓아 오면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거예요. 바벨론에 잡혀가고 앗수르에 잡혀가고. 마음이 포로가 먼저 된다는 거예요. 마음이 포로가 되면 몸이 포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세 번째 나온 게 뭐죠? 여호와께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면 돌아온다는 말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돌아온다.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아오는 겁니다. 마음이 포로가 된 상태에서. 마음이 포로가 되면 내 몸이 복지를 떠나게 되고 복지가 나를 떠나게 된다는 것이에요. 내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복지가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면」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어디로 갔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뭐 장사하는 일, 뭐 살아가게 되면서 하게 되는 모든 일이 다 내 마음을 포로로 잡아가는 거예요. 마음 하나 뺏기면 이제 끝나는 겁니다.
마음을 어디다 뺏기느냐? 자식에게 뺏겼다. 돌아와야 돼요. 돌아온다는 것은 자식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자식의 문제에 포로되어 있는 상태에서 돌아온다.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마음을 다 어디다 두냐? 하나님께로 돌린다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으면 복지라는 게 주어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다 돌아오면 복지가 또 따라 들어와요. 동산이에요. 동산..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이에요.
복지가 딱 들어오면서 삶의 바탕이 기쁨의 바탕으로, 감사의 바탕으로 쫘악 깔려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쫘악 깔려버린 상태에서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감사함만 생기는 게 아니라 오늘 10절에 보면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기쁨의 바탕과 감사의 바탕과 늘 하나님과 열려서 하나님가 대화하고 있는 이게 하나님 사랑이지요. 하나님 때문에 기쁘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고 아버지를 알게 된 게 너무 좋고 그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대화하며서 사는 그런 바탕이 돼서 복지가 이루어지면 그 복지에서 하는 손, 네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리라.
왜? 복지니까. 복지는 복만 내리는 땅입니다. 기쁨과 감사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기도의 대화가 이어지는 그 복지는 복만 주어지는 땅이라서 복지라고 합니다. 그 복지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예요. 부동산이 아니에요.
내 마음이 내 자식에게 푹 빠져있으면 복지는 떠납니다. 그리고 바탕이 뭐로 깔립니까? 걱정의 바탕으로 깔려, 불만의 바탕으로 깔려 그리고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복이 안 와요. 왜? 복지가 아니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6절)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말이 좀 달라졌어요. 그렇죠? 여러분! 들어보실래요?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한다.. 야!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 우리 마음의 원함이 뭡니까? 우리 마음에 한이 있다면 뭡니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못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아 마음에 하례를 베푸시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느냐 이거에요. 어떻게 하면..
1절에 보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무슨 얘기입니까?
자, 제가 지금 선교회 일을 막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불현듯 깜짝 놀랍니다. 내 마음이 온통 선교회 일로 다 찼구나.. 선교회 일이 곧 하나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마음으로 선교회 일이 가득 차 있는 걸 깜짝 놀라고 깹니다. 그게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포로로 잡혀있구나. 그러면서 선교회 일을 생각하는 동안에 행복함이 없어요. 기쁨이 없어요. 걱정이 있고 어느 집사님이 어떤 말을 했는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생겨버립니다. 깜짝 놀라는 거예요. 내가 포로로 잡혀간 겁니다. 그리고 복지가 부동산이 아니라서 내가 마음이 포로가 됨과 동시에 복지가 떠나버렸어요. 이걸 기억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오늘 본문 4절에 보니까 그 쫓겨난 자들이 복지를 잃어버린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 불러들인다는 겁니다.
뭘? 내가 지금 하늘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하늘가가 뭡니까? 이 하늘가라는 것은 아득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아득함.. 행복과는, 기쁨과 감사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너무너무 거리가 먼 멀리 떨어진 아득한 아득한 장소에 가 있을지라도, 느끼기에 이제는 끝장이구나 인생 막장이다 이제.. 애들 말로 인생 쪽났다, 끝났다 하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야, 내 마음이 지금 이 세상에 포로가 되어 있구나.’이걸 알면 ‘내가 아버지를 떠나 있구나. 내 본향인 천국의 기운으로부터 너무너무 멀리 떨어져 있구나.’하는 것을 머리로 기억을 하면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될 텐데 생각을 하면 그러면 할례를 베푼다는 거예요.
그 할례가 뭡니까? 마음의 할례?
예수님의 십자가에요.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마음을 갖다 걸어야 될 장소거든요. 내 마음을 거기다 갖다 걸자마자 내 마음의 손이 못이 박히고, 내 마음의 발이 못이 박히고, 내 마음의 생각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내 마음의 배에 창이 들어와서 내 마음이 딱 십자가를 생각하자마자 할례가 베풀어지는 겁니다.
이상헤요. 여러분.
마음에 십자가를 꽂는 거. 그래서 마음에 고정적으로 fix해놓는 거예요. 십자가를 fix해놓고 언제나 마음이 먼저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 그렇게 되면 참으로 이상한 것은요 마음 전체가 돈이면돈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갖고 싶어 목말라 해요. 자식의 일이면 자식의 일 목 말라하지요. 남편의 일이면 남편의 일 목 말라하지요. 사업이면 사업 목 말라합니다.
근데 십자가를 마음에 고정시켜 꽂아놓으면 마치 십자가 그 뿌리에서 마음 전체에 이상한 기운이 쭉 뻗어나가서 세상 것을 끌어들이려는 흡입력이 죽어버려요. 그게 희한한 겁니다. 다 죽고 마음이 십자가의 기둥을 통해서 어디로 올라가느냐 하면 하나님께로만 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주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할 것은 무엇이냐? 지금 하늘가에 가 있다. 복지에서 쫓겨서 멀리 멀리 아득한 곳에 행복과 참 기쁨과 참 감사와 끊임없는 아버지를 대면해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도의 대화가 없는 멀리 멀리 인생이 끝이 난 것같이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고 절망에 빠지고 힘이 들고 부담이 되고 다 망가진 것같은 하늘가에 가 있는 삶이라도 네가 머릿속으로 내가 이렇게 아버지를 떠나 있구나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와의 거리를 기억해내고 아버지께 갔으면 좋겠다 하자마자 주님의 십자가가 눈에 보이고 십자가가 마음에 박히면서 마음에 할례가 이루어지면서 마음이 그동안 잡고 있었고 오히려 거꾸로 내 마음을 포로로 삼고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갑자기 끌어당기는 인력이 다 끊어져 버려요. 그리고 마음이 온통 아버지께로 가게 된다는 거예요.
이상한 거예요. 여러분. 이게 정말 복음 이래서 복음인 것이지요.
그래서 아버지께 다 가지 않아요? 자식에게 다 가서 자식과 맞닿았을 때, 사업에게 마음이 다 가서 사업과 맞닿았을 때, 내 건강에 맞닿았을 때와 하나님께 다 가서 마음이 맞닿았을 때를 한번 비교를 여러분이 해보시지요.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로 쭉 십자가 마음에 할례 사건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쭉 마음이 하나님께 가서 마음이 하나님과 닿았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어떻겠어요? 여러분.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무슨 더 이상의 설교가 필요하겠습니까?
어제 부흥회 하는데 저녁 때 집회 전에 저녁식사를 목사님하고 같이 하게 됐는데 목사님께서 그래요. 교인들이 자꾸 전화를 하신대요. 이진법 복음으로 살려면 이런 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한분이 전화를 해서 주방장을 새로 모셨대요. 식당을 경영하시는 분인데. 아주 유능한 주방장이라서 사람도 더 쓰고 아주 이제 야심차게 새로운 국면을 시도해보는 거지요.
근데 주방장이 이렇게 뭐가 담긴 국그릇인가 국냄비인가를 큰 걸 들다가 손목이 부러져버렸대요. 세상에.. 뭔 손목이 그렇게 부실하노 주방장이.. 그거 든다고 삐는 것도 아니고 부러졌다는 거예요. 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어요.
그러면서 인제 난리가 난 거예요. 주방장이 있어야 뭐가 운영이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진법 복음의 원리로 하자면 도대체 주방장 손 부러진 이 사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느냐 이겁니다. 그거를 전화로 목사님께 여쭤봐달라고 물어보시더라는 겁니다.
아~ 난감한 거예요. 내가 식당을 경영해봤습니까, 주방장이라는 분들을 직접 만나보기를 했습니까? 또 주방장이 손 부러지면 왼손으로 할 수 있는건지 뭐 알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그분이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거냐? 이렇게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이진법 복음을 이해를 잘 못하는 거지요. 여러분?
자, 보세요.
이 경우는 식당에 마음이 뺏긴 거예요. 내 마음이 포로가 된 거지요. 그래서 그 주방장의 손이 부러진 그 불상사에 마음이 다 뺏겨 있어요.
이때 깨달으라는 겁니다. 뭘 깨달아요? ‘아, 내가 지금 내 마음이 포로가 되어 있구나. 그래서 하늘가에 와 있다. 참 난감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쁨이 있을 수 없고 감사가 있을 수 없고 걱정뿐이고 앞으로 이걸 어떻게 국면을 헤쳐나가야 될지 난감하기만 하다.’ 하늘가에 가 있는 겁니다.
그 하늘가에서 내가 기억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 일이 이 식당에서 벌어진 이 일로 인해서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고 내 마음에 기쁨의 바탕, 감사의 바탕, 기도의 바탕이 다 없어지고 복지가 상실되어 버렸구나’ 깨닫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내 마음이 어디로 갑니까? 아버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뭐에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에요. 그 주님의 십자가를 딱 기억을 합니다. ‘아, 주님 내가 죽었는데’하고 기억을 하기 시작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마음에 할례가 주어집니다. 그러면서 그 기도를 계속 붙잡고 하는 동안에, 기도해야 돼요! 기도!! 여러분? 기도를 계속 하고 있는 동안에 시간이 20분 지나 30분 지나 40분 지나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이 이상하게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힘에 의해서 계속 십자가만 바라보면서 고백하는 것뿐인데 내가 죽었다, “내가 죽었습니다. 주님! 그 주님의 죽음이 나의 현실이 되고 나의 죽음이 되게 해주세요.”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마음의 할례가 주어지는 거지요? 그러면서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다가가요.
다가가니까 갑자기 어떻게 돼요?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손목이 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해방이 되는 거예요. 이게 바벨론이에요. 바벨론.. 주방 일이 바벨론입니다. 앗수르입니다. 여기서 해방이 돼서 하나님께로 다가가자마자 삶의 전체 바탕이 기쁨과 감사의 바탕으로 깔리는 겁니다. 주방장이 성해서 그렇게 장사하면 안 되는 무슨 이유가 있었나보지요. 우리는 모르지마는.. 기쁨과 감사의 바탕으로 깔리면서 그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 속에서 뭔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먼저 포로된 자 - 그 일과 사업, 자식- 포로된 상태에서 빠져나오자.
빠져나오는데 내가 못 빠져나와요. 그러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에 할례가 주어지면 마음의 기운이 그 포로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 생각이 있으시고 방법이 있으신데 그것은 목사가 설교할 수 없다 이겁니다.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그것은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시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나가서 하나님과 괄호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나는 제로되고 유일한 방법이신 하나님, 유일한 길이신 하나님, 유일한 지혜이신 하나님, 유일한 참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그 사태를 다 수습하면서 뭐라 그래요? 네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복이 임할 것이다. 네 소생과 가축과 모든 게 복이 임할 것이다. 복지가 다 찾아오게 될 거라는 이야기지요.
복지는 이렇게 내 마음의 포로 상태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동산입니다.
복지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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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