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만 바꾸면 여유와 행복이(?) -
-잘난 체라고 비웃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혹시 ‘여유 있는 삶’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 있어서
귀를 기울여 준다는 가정 하에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하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지상에 주차장이 있고
또 지하 3층까지 주차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주차장에 지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지하 1,2,3층 순으로 주차를 합니다.
간혹 새 차를 마련한 사람들은 지상에 자리가 있어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 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 전부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지하주차장을 애용합니다.
돈을 주고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하는 생각과,
차를 지하에 주차해 놓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운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물론 차도 좋겠지요. 풍우에 내버려 두기보다는 실내에 모셔두니 말입니다.
둘,
큰애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중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대천 시내에는 대천여중과 한내여중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나 학생들은 한내여중보다 대천여중에 배정받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는 복잡한 시내버스를 한번 혹은 두 번 타야만 갈 수 있는
학교보다는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를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저의 큰애는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대천여중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큰애는 물론 아내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쁨을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큰애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의 버스비를 계산하여 그 돈을 모아두었다가
1년에 한 번씩 애육원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2년 후에는 둘째도 대천여중에 배정을 받아서 졸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5년 동안 계속하여 애육원을 방문 할 수 있었습니다.
셋,
아침에 아내와 함께 산에 오르는 이야기는 이 코너가 생기고 나서
처음 올린 글에 있습니다.
산에 오르는 일이 습관화되면서 우리는 산에 오를 때마다 1,000원씩
입장료를 내기로 했습니다.
너무도 맑고 상쾌한 공기를 아침마다 우리 부부에게 제공하는
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산에 오르지 못하는 날은 이유가 어떻든지 벌금으로
2,000원을 내기로 했답니다. 벌금을 내는 이유는
우리 부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산을 배신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 후, 정확히 1년 후에는 한사람이 그로인하여 모은 돈이
47만원쯤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니까 당연히 돈도 두 배인 구십 여 만원이 됐지요.
우리는 그 돈을 가지고 신대리에 있는 서부 장애인 복지관을 찾았습니다.
넷,
지금부터 십 칠년 전에 300평 대지위에 80평정도의 단층 건물을 건축했습니다.
물론 제 사업인 도시락 공장이었지요.
건물을 짓기 위해서 부족한 돈은 얼마간 은행에서 빌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명의로 등기도 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 앞으로 십년동안 그 건물을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글세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매월 혹은 1년에 한 번씩 세를 내야했지요.
부동산사무실에 문의하여 알아보고 그 세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모아서 공돈을 쓰듯이 마음 놓고 펑펑 썼습니다.
중, 고,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으로 혹은 매월 용돈으로,
도시락이 필요한 곳에 도시락 무료제공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 교회에 종자돈으로,
암 병이 걸린 이웃들에게는 위로금으로,
십여 년 동안 독거노인 십 여가정의 반찬 제공비로, 등등
그러던 중, 결혼하여 어렵게 사는 막내 여동생을 도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가능하면 이 돈은 나와 개인적으로 연관이 없는 사람에게 사용한다는
저 나름대로의 규정이 있었지만,
아내의 호소에 못이기는 척 여동생도 도왔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지만 남편이 실직하고,
특히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동생이었습니다.
그 여동생에게는 공장 사글세 2년분에 해당되는 돈을 한꺼번에 주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10년의 기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5년을 더 연장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늘 가슴에 두고 있었지만 어쩌다보니 남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 마음에는 나를 알아준다는 생각에 좋기도 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여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동안 돈을 많이 쓴 덕분인지는 몰라도
세무서에서 세무 감사를 받기도 했지요. ㅎ ㅎ ㅎ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문득,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이어주는 법칙은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는
알 듯 말 듯 한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끝으로,
아들이 춘천에 있는 103보충대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삼척의 보충부대로
배치 받았을 때 나눈 대화입니다.
나 : 최전방부대로 배치되었으면 너도 힘들고, 모든 가족이 걱정이 많았을 것인데
다행히 삼척에 배치되어 다행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구나.
아들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전방에 배치되었더라도 아버지께서는 다른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저를 위로해주시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셨을 거예요.
저의 생각도 아버지와 똑 같고요.
이 글을 올릴까? 말까?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조차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이기에 자랑이 아닌 교육적인 차원에서
언젠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책익는마을에 글을 올리면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하루 천원 이 천원씩 모은 돈을 사용한 내용의 글이
본의 아니게 이렇게 큰 모양의 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장사를 하면서 세를 내는데
저 역시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세를 내는 마음으로 돈을 모았고
또 그 돈을 사용했을 뿐인데 너무나도 나의 자랑을 크게 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글을 올리는데 망설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지명도가 거의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너무 크게 말하는 글인 것 같아서
더욱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는 것은 뻔뻔함과 배짱뿐인데 하는 마음과,
저의 애들을 포함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의 진정한 의도를 발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끔 ‘생각만 바꾸면’,
“아하! 이런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한다면,
이 글 쓴 보람을 느끼겠습니다. (2010. 10. 18)
다음 이야기는 ‘딩씨마을의 꿈’ 독후감입니다.
첫댓글 방법을 알고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읽으며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서로 등 두드렸습니다.*^^*
아하!~ 고맙습니다.
여러곳에 나눔의 씨앗을 퍼트리셨네요. 좋은 교훈 얻어갑니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나만의 벌금이 더불어 살아 가는 사회로 나가는데 일정부분 큰 역할을 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작은 실천으로 따뜻한 마음까지 나눈 것 같아 큰 감동 받았습니다.
정말 지혜롭게 사시고 계신것 같아요. "풍요로운 삶의 달인"으로 모시고 싶어요.
사장님은 뵈면 뵐수록 양파같은 분이십니다. 진주를 품고 있는 ......
방금 '모래의 여자'를 읽고 우울 했는데 이 글 읽으니 마음이 밝아집니다.
많이 많이 자랑해 주세요....부끄러워 마시고요. 그리고 참 존경합니다^^
요즈음 사회적기업이다 커뮤니티비즈니스다 해서 일본을 모방해서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팍팍한 생활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멋진중년 님의 삶이 바로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를 살리는 모범답안인것 같습니다. 관심이고 실천의 문제겠지요 늘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빠같은 남자 만나려다보니 결혼이 늦어지는것 뿐,,,^^ 아빠탓이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시기를....보고싶네요.아빠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