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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찍 공항으로 나가야 하기에, 오늘 새벽이 이번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새벽 산책이다.
아직 어두운 거리에는 고요함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드물고,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과 충칭 시내 곳곳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전철만이 이 정적을 깨며 도시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차가운 공기의 신선함이 나를 깨우는 듯하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도시를 걷는 이 순간,
낯선 거리의 풍경과 익숙해져 가는 골목의 소리가 마음 한편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새벽이기에, 모든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앞의 풍경을 눈에 담고, 도시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충칭의 새벽은 낮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바쁜 일상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함 속에서,
여행의 끝을 앞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듯하다.
오늘은 이번 여정 중 가장 기대하는 날이다.
바로 "대족석각"을 보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휘주문화권에서 섬세한 조각들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 그 아쉬움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가득하다.
충칭의 보정산은 중국 서남부에서 자연경관과 문화적 중요성을 동시에 간직한 유명한 명산이다.
보정산은 유서 깊은 역사와 풍부한 생태 자원을 바탕으로 사랑받는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대족 석각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유적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걸작이다.
불교, 도교, 유교의 조각 예술과 사상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명소로,
예술적 가치와 종교적 깊이를 모두 갖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충칭 도심에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로 당나라 후기(9세기)에서 송나라 시기(12세기)에 걸쳐 조각되었다.
대족 석각은 여러 산과 협곡에 분포하며,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보정산 대족석각이며,
석각군은 약 50,000개 이상의 조각상과 100,000여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비문을 포함되어 있다.
석각군은 죽은 자들이 산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입구가 비교적 한산해서, 사람들의 북적임 없이 여유롭게 들어설 수 있었다.
호젓하게 감상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표를 사고 입장할 때, 일반적으로 흔히 있는 짐 검사도 없다
사람들로 가득 차지 않은 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이 있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계단을 몇 개 올라 첫 부조물에 들어섰을 때, 호젓하게 즐기리라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내가 상상한 고요함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곳은 아비규환처럼, 마치 모든 것이 뒤엉킨 듯한 혼란의 공간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평화로움은 그림자처럼 사라졌고, 대신 내 발걸음을 저지하는 수많은 목소리와 소란만이 남았다.
눈을 돌려보면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지나가고, 여유 있게 즐기는 시간을 기대했던 나는 그 틈에서 허망함을 느꼈다.
몇 그룹의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 지나가기도 어려웠고, 가이드는 각자 성능 좋은 휴대용 엠프를 들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더 혼잡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 시바..." 하고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지옥도에 입이 꼬챙이가 꿰여 끌려가는 조각상이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무아미....
인파와 소음에 밀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우연히 조그마한 토굴 같은 입구를 발견하고,
잠시 소란에서 벗어나 숨을 돌릴 요량으로 그곳에 들어섰는데, 그 순간 숨이 멎을 듯한 놀라움이 밀려왔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높은 천장의 규모와 사방을 뒤덮은 금빛 장식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신비와 경이로움이 살아 숨 쉬는 성스러운 장소 같았다.
금빛이 뿜어내는 화려함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생동감이 넘쳤고,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함은 손끝으로 느껴질 듯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한 디테일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 그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나는 외부의 소음과 혼잡을 잊고,
그 공간이 전해 주는 평온함과 경외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피로와 혼란마저도 모두 잊히는 듯했다.
천수관음은 관음보살 중에서 수많은 손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수"는 이 손들이 중생을 구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각 손에는 다양한 상징적인 도구들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이 불교에 관한 조각들이지만,
더러는 유교와 도교에 대한 내용도 조각되어 있어 삼교합일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삼교합일은 불교, 유교, 도교라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세 종교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융합하려는 사상을 말한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으로,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이 갈등 대신 상호 보완을 통해 공존하려는 특징인데 송나라 시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했으며
당시 지식인들은 각 좋교가 서로 보완적이라고 보았고, 유교의 윤리적 실천, 불교의 정신적 수행,
도교의 자연과 건강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는 유교식 제사를 지내면서 동시에 불교 사찰을 방문하거나
도교식 치유 의식을 행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삼교의 융합은 문학과 철학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희와 같은 학자는 성리학을 통해 유교적 도덕성을 불교와 도교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삼교합일의 철학적 기반을 형성하며, 다양한 종교적 가르침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게 만들었다.
절, 사당, 도관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사례는 삼교합일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찰의 경우, 산신각과 같은 공간이 불교적 요소와 도교적 영향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삼교합일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종교적 융합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불교를 믿으면서 집에서는 유교적 관습이 존재하고,
궁합이마 점, 사주팔자를 맹신하기도 하지 않는가.
대족석각은 삼교합일의 영향을 받은 조각들이 많다.
불교적 경전 내용 외에도 유교적 효사상과 도교적 자연관이 조각 속에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기리는 유교적 장면이 불교적 윤회사상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유명한 눈을 감고 누워있는 길이 31m 규모의 열반불.
후다닥 단체팀들이 몰려있는 곳을 벗어나니, 조금 여유로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사람들의 소란에서 벗어난 공간에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확성기의 소리는 나를 따라오며, 마치 나를 혼내는 야차처럼 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소리가 하이톤인 것으로 보아 분명히 아름다운 야차인 것 같은데.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과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이 포함된 대규모 만다라 형태의 조각이 있다.
조각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며, 신앙적 메시지와 예술적 감탄을 하게 된다.
석각의 많은 부분이 당시 민중들의 삶, 신앙, 윤리적 가치를 반영한다.
농업과 상업을 주제로 한 장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조각도 많아,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불교적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옥의 묘사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석각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서,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 기법을 자랑한다.
입체감 있는 불상과 세밀한 장식들은 석각 예술의 수준을 보여준다.
보정산 석각은 약 700m에 이르는 암벽에 조각된 거대한 작품들로
남송시대의 승려 조지봉이 70여 년에 걸쳐 조각한 길이 엄청난 크기의 석가열반상과 1,007개의 팔이 달린 관음상도 볼 수 있다.
조지봉은 1159년에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19세부터 보정산에 보정산에 석각을 세기는 작업을 시작
90세 정도에 세상을 떠났으니 70년 동안 석각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실, 구간 구간에 따라 조각기술은 디테일이 조금씩 달랐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석공들이 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스타일이나 기법 차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일 것이다.
바로 옆의 조각은 섬세하게 살아있는 듯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인물이 숨을 쉬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바로 그 옆에는, 그와는 상반되는 모습의 조각도 보였다.
그 조각은 너무 대충 다듬어진 듯, 세밀함이나 정교함이 부족해 보였고, 디테일의 차이가 더 눈에 띄었다.
아마도 그 석공은 땡땡이?
전체적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이 석각을 보호하는 데 기여했을듯 하다.
그러나 일부 석각은 자연 풍화와 인위적 훼손으로 인해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1966~1976)은 문화, 사상, 종교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파괴와 변화를 가져온 시기로,
무릉 대족석각도 이 시기의 영향을 받았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주도로 진행된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에,
대족석각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상을 강화하고, 전통적 가치와 권위를 타파하며,
공산주의적 이념을 확립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전통 종교, 예술, 문화재 등이 “봉건적 잔재”로 간주되어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대족석각은 충칭 지역의 산악 지대에 위치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파괴의 손길이 덜 미쳤다.
대족 지역 주민들은 석각이 훼손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주민들은 석각을 봉인하거나, 파괴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의도적으로 감추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일부 석각은 문화혁명 당시 적색근위대의 공격으로
안타깝게도 불상의 얼굴 부분이 손상되거나, 손과 발 같은 부분이 파손된 것도 있다.
대족석각 같은 곳은 도시락 싸가지고 일찍 들어와서 늦을 오후까지 천천히 즐기는 게 좋은데,
일정이나 함께 움직이는 일행들의 취향도 고려해야 하니 당연히 아쉬움이 깊을 수밖에 없다.
새벽 여명의 빛이 들어오는 석각은 먹빛세상에서 어둠을 줄이며 나타나는 푸른색 생동감을 느낄 수 있고,
석양빛이 물드는 석각은 붉은빛을 머금으며 긴 그림자와 함께 어둠으로 사라지는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뜻밖의 멋진 박물관에 만났다.
외관만큼이나 내부 내용도 충실한 대족석각 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이해와 감동을 선사한다.
전시관은 석각의 기원, 제작 과정, 종교적 융합, 그리고 보존 노력까지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석각의 주요 조각 작품을 복제하거나 훼손된 일부를 전시함으로써 원형에 가까운 감상을 돕는다.
또한, 조각의 세부적인 기술과 스타일 변화가 시기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
석각 예술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의 다른 유명 석굴이나 석각과 비교했을 때, 대족석각은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조각상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곳의 조각들은 종교적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표현 또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며,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 섬세한 디테일은 종교적 신념과 예술적 정교함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대족석각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체험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큰 감동을 품고 긴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마친다.
마실정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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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_()_
섬세한 조각 기술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고 불상의 얼굴 표정과 옷 주름의 세부 묘사가 뛰어난 최고의 석각
난징부터 중경까지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날씨 때문에 제대로 못 보신 장가계와 은시는 언젠가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
우선 석각을 사진으로 담을수 있어서 감사했고
보정산 제5호 화엄 삼상( 中 비로자나불,우측 문수보살,좌측 보현보살)과 11호 석가모니열반 석각을 보고 깊은 존경과
찬사를보냈습니다.기회가 된다면 다시 또 보고 싶고 북산의 석각도 보고 싶습니다
오대장님과 마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대족석각의 규모에 놀라고 섬세한 조각에 감탄했었습니다.
놓치지 않고 둘러본 박물관도 아주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