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나와 보니 지척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다.
며칠 전, 시누아에서 저녁을먹은 후 롯지 마당에 앉아
발 아래 펼쳐진 지누단다와 간드룩 등 크고 작은 마을들이 어둠으로 채워지고,
불빛이 하나둘씩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몇몇 이들과 즐기며 담소를 나누던 중,
아랫쪽에서 올라오는 가스층을 보며 “아래 가스층이 심하네요”라고 말했더니,
이해성 대표님이 궁금해 하셨다. “구름이 아니라 왜 가스층이라고 해요? 오대장도 가스층이라고 하던데요.”
그때 저는, “구름으로 발전하기 전에, 안개와 비슷한 현상이 가스층이라고 합니다”라고 답했었다.
고산지대에서 형성되는 가스층
고산지대에서는 해발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압과 공기의 조성이 저지대와 다르게 나타난다.
고산지대에서도 대기의 기체 조성(질소 78%, 산소 21%, 기타 1%)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기압이 낮아지면서 공기의 밀도와 산소 분압이 감소하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이 낮아진다.
일반적인 공기 조성 외에도 특정 환경적 요인에 따라 독특한 가스층이 형성될 수 있다.
고산지대는 기온이 낮고 대기 중 수증기가 쉽게 응결하여 구름을 형성하고
낮과 밤의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대기 중에 안개나 낮은 구름층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히말라야에서는 수증기가 산을 타고 오르면서 응결하여 지속적인 안개층을 형성되고 점차 찬공기를 만나면서 구름이 된다.
롯지 주인장이 애정을 담아 가장 좋은 자리에 놓아둔 꽃 화분. 안개에 살짝 감싸인 그 모습이 몽환적이다.
이어폰을 끼고 이른 아침, 정훈희와 송창식이 듀엣으로 부른 “헤어질 결심”의 주제곡 “안개”를 듣는다.
몽환적인 멜로디가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겨와, 풍경과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새벽 감성이 더욱 짙어진다
“언갯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그래, 이제 다시 안나푸르나 여신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때다.
이번 여정 동안 풍요롭게 선사한 대자연의 변화,
어려운 난관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순간들,
넘치도록 채워준 감동과 기쁨, 그리고 행복한 포만감.
수차례 찾아왔음에도 한 번도 친견하지 못한 풍요의 여신에게 감사한다.
비록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그 존재는 언제나 이곳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옴~~~”
아침을 먹고 출발할 때까지도 안개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온 세상이 뿌연 베일에 싸인 듯, 산과 계곡은 희미한 윤곽만 드러낼 뿐이었다.
발아래로 깊게 패인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물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듯 하고,
그 위로 서스펜션 다리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다리만 건너면, 길고도 험난했던 트레킹이 사실상 끝나게 된다.
고된 여정 속에서 함께 웃고, 땀 흘리고, 때로는 숨을 고르며 버텨온 날들이
이제 저 다리를 넘어가면 추억으로 남게 된다.
번거러움과 불편함, 그리고 수고로움이 몇 배는 더 큰 감동과 경험으로 치환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결국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힘들게 얻은 경험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이 하나하나 다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것.
이 순간들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나 해발고도 4,130m 올라 갔던 사람이야."
서스펜션 다리.
서스펜션 다리(Suspension Bridge)는 강이나 계곡처럼 깊고 넓은 지형을 가로지르기 위해 건설된 다리로,
주로 케이블이나 로프에 의해 지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다리는 기둥과 케이블이 주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여,
다른 형태의 다리보다 더 긴 거리를 건너는 데 유리하다. 흔히 산악지대나 깊은 협곡을 넘는 데 사용된다.
서스펜션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리가 유연하게 흔들리며,
걸을 때마다 다리가 살짝 흔들리는 독특한 경험을 준다는 점이다.
이 다리 위를 걷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도전적인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리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 자체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서스펜션 다리는 그 구조적인 미학과 함께, 여행지에서 강이나 계곡을 넘어서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여겨진다.
그 다리를 건넜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은 그 자체로 여행의 의미를 더해준다.
약간의 공포와 떨리는 다리로 조심스럽게 건넌 서스펜션 다리,
새로운 재미와 경험,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추가된다.
한동안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간드록.
안개가 내려 앉은 간드룩은 꽤 규모있는 마을로 트래킹을 위한 시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버스터미널도 있고 점차 안나푸르나 트랙의 중심이 이곳으로 옮겨지지 않을까한다.
울레리를 거쳐 반단티, 고레파니를 지나 푼힐에 이르는 코스보다는
간드룩-타다파니-고레파니-푼힐 코스가 여러가지 면으로 효율적일테니까.
또한 여러 코스를 재조합해서 운영하기도 매우 편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간드룩 마을 외곽을 걸어서 연결되는 도로까지 걷는 동안 즐거운 대화들을 이어간다.
“원숭이다!”
원숭이 서식지로 알려진 뱀부에서도
밤이면 온천하러 온다는 지누단다에서도 보지못한 원숭이를 간드룩에서 보다니.
원숭이의 출현으로 이번 여정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마을길이 끝나는 간드록 입구
걷는 것이 끝나는 종착역이다.
대기하고 있던 지프에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Trek에 마침표를 찍는다.
여행지를 고를 때 우리는 멋진 풍경, 유명한 명소, 맛있는 음식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돌아와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정작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아무리 절경이 펼쳐진 곳이라도 동행이 맞지 않으면 여행이 고단해진다.
반대로, 평범한 장소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모든 순간이 특별한 추억이 된다.
힘든 일정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웃음을 나누며,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각자의 감상을 나누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길을 잃어도, 그 길을 함께 걸을 사람만 있다면 그것은 모험이 된다.
날아갈 것 같은 돌풍을 만나도, 예상치 못한 비가 내려도, 그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는다.
결국,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체크포인트가 있는 팅가퉁게, 예전과 다름없다.
다리도 그대로, 건물들도 그대로.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
예전에는 트레킹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요즘은 울레리 아래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어, 이 길을 걸어서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만큼 오가는 발길이 줄었고, 상권도 자연스레 퇴락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풍경 속에서, 흐름은 달라지고 있다.
지프는 예전처럼 붐비는 나야풀 거리를 가로지르는 대신, 우회도로를 따라 돌아 나야풀 입구에 도착한다.
“아. 이렇게 변했구나.”
나야풀 입구, 그 모습이 예전 그대로다.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 푼힐과 ABC 트레킹을 떠날 때, 이곳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북적였고, 몰려드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뒤섞여 마을은 활기로 가득했다.
새로운 우회길로 내려오다 보니 나야풀의 중심부를 지나쳐 아쉬웠는데,
다행히 주방팀이 제공하는 마지막 식사가 시간이 걸린다기에, 그 사이에 마을을 천천히 둘러 본다.
예전의 향기와 소리가 여전히 여기에 살아있는 것 같다.
익숙한 큰 골목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한때 길게 늘어서 있던 등산용품점과 기념품 가게들은 이제 그 자취를 감췄다.
대신, 지역 주민들의 생활형 가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길 한가운데서 지나는 차며 오토바이를 피해가며 낡은 공으로 배구를 하는 아이들과 함께 공을 몇 번 튕기고,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 마음이 복잡해진다.
예전에는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었는데, 이제 그 자리는 너무나도 한가롭다.
겉으로는 변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세월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곳을 바꿔 놓았다.
그 변화를 느끼며 나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어서 이자리에 다시 왔을까를 생각한다.
나야풀을 출발.
드디어, 트레커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포카라에 도착했다.
숙소는 포카라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인 랜드마크 호텔.
이런, 오대장이 큰맘 먹었네.
내가 인솔자로 왔을 땐 저 구석 허름한 호텔을 줬으면서…
그러고 보니, 이 호텔에 묵었던 것도 오대장이랑 같이 왔을 때였지.
저걸 그냥..
대충 방에 짐을 풀고, 포카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바로 수염을 깎고 얼굴 마사지하는 일!
조 선생님과 안 대표와 함께 근처 이발소로 향했다.
시원하게 면도를 마치고 얼굴마사지를 하고 어깨맛사지까지 한다.
어깨 마사지까지 추가된 풀코스로 어느 틈엔가 조 선생님이 계산을 끝내버리신 것.
“룸메 형, 땡큐.”
상쾌한 얼굴로 페와 호수 변을 거닐며,
현지 불량식품도 사 먹고,
구르카 검을 파는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며 안대표님 자제분 얘기도 하며
돌고 돌아 내가 포카라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소.
‘오전오후’ 커피집으로 모셨다.
포카라 중심부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골목 어귀에.
커피맛도 분위기도 좋은 자그마한 커피집인데 그동안 거의 두배는 확장한듯 하다.
인솔로 오면 포카라에 도착하면 일행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홀로 와서 정리와 휴식을 하던 장소다.
안 대표님께 커피와 케이크까지 대접받고,
마음 편히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카페 앞에 이동형 즉석 옥수수 구이가 자리를 잡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뜨끈하게 구운 옥수수 한 개를 사서 나눠 먹으며 포카라의 낭만을 한껏 즐겼다.
중년도 넘은 남자 셋이 다니는 것도 참 재미지다.
서로의 이야기로 수다가 끊이지 않고, 웃음소리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나이 든다는 게 꼭 조용하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지.
함께 웃고 떠들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게 진짜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저녁은 호텔 식당에서 부페
거친 식사를 일주일간 한 탓인지 모두 엄청나게 먹는다.
예전엔 식당 한켠에 무대가 있어 전통공연을 했었는데 아쉽게도 무대도 없어졌다.
저녁을 먹고 포카라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러 나왔는데 너무 썰렁하다.
비수기에 들어서인지 여행객도 드물고.
몇 몇분은 물욕의 화신이 되어 양손에 봉다리를 들고 개선장군의 모습이다.
“그래 이런 재미지. 흥정도 재미고 바가지쓰는 것도 재미고.”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