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세제도와 복지제도의 개혁방향
(연금제도 개혁 방향)
한국의 공적 연금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 연금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은 문제점과 개혁 방향은 비교적 단순하다. 물론 실제 해결에는 당연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기초연금은 지금 금액이 20만 원 정도로 생계의 기초로서 크게 부족하다. 개혁방향은 지급금액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로 대상인구가 빠르게 늘어나 재정 부담이 크다. 그리고 장애인, 청년실업, 주거비 지원 등 다른 복지수요와 비교할 때 기초연금에만 재원을 더 쏟기가 매우 어렵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의 특수직 연금은 다른 연금이나 국민경제의 능력에 비해 혜택이 과도하다. 여기에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이미 기금재원이 바닥이 나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고, 사학연금도 머지않아 기금재원의 고갈이 예상된다. 당연히 연금 기여금을 올리고 연금혜택을 줄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공무원 등 연금 대상자의 반발이 매우 크다. 또한 개혁이 일부 된다 하더라도 세대 간 심각한 기여와 혜택의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 공무원연금 등은 이미 받고 있거나 곧 받을 사람은 기여는 적게 하고 혜택은 아주 크다. 젊은 공무원 등은 기여는 많이 하겠지만 혜택은 적어진다. 개혁의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타결된 공무원 연금개혁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방향으로 개혁되어 공무원연금의 과도한 혜택은 조금 줄었다. 그러나 이번 개혁은 대부분 젊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된다. 현재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거나 곧 받을 사람은 이번 개혁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여기에다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도 종합과세 대상이기는 하나 2002년 이후 발생한 연금만 해당된다. 현재 고액의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비과세 대상이다. 젊은 공무원들은 앞으로 연금도 조금 받게 되겠지만 세금도 내야할 것이다. 엄청난 세대 간 불균형이다.
다음으로 국민연금은 문제가 아주 복잡하고 제대로 된 개혁 방향을 찾기도 더 어렵다. 주요 문제는 사각지대가 크고, 수령 금액이 노후 생활에 크게 부족하고, 2050-2060년경 연금 재원이 고갈되지만 그 이전에 주식시장 등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2035년 경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의 지급규모 더 많아질 때 주식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면 시장이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초연금제도가 국민연금과 연계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조금씩이나마 내 월 30-40만원을 수령하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제대로 못 받는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고 20만원씩 받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불만이 크다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따라서 조금 내고 조금 받느니, 차라리 내지 않고 나중에 기초연금을 받겠다는 사람이 늘어나 사각지대가 커진다. 또한 국민연금도 종합과세 문제를 포함해 공무원연금 못지않게 세대 간 불균형 문제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기초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점검해보자.
첫째, 소득대체율 인상과 같이 연금가입자의 부담과 혜택을 같이 늘리는 방안이다. 이는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담이 늘면 가입자가 줄어 사각지대가 늘어날 수 있다. 연금재원 고갈은 시기를 다소 늦출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하고, 상당기간 연금재원이 과도하게 쌓여 주식시장 등에 충격을 주는 문제는 오히려 더 커진다. 또한 젊은 세대는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데 비해 노후 연금 수령의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아 세대 간 불균형 문제도 더 커질 수 있다.
둘째는 급진적인 방안으로 국민연금의 의무가입제를 폐지하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공영의 노후연금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의 지급금액과 수혜대상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이 방안을 도입하면 젊은 세대의 탈퇴가 급격히 늘어나 세대 간 불균형 문제와 연금재원의 급증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사람이나 곧 연금을 수령할 사람은 재정지원 없이는 지속적인 연금 수령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연금탈퇴가 20-30대 뿐 아니라 40-50대까지 확산되면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붕괴되고 큰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이 방안은 합리적 대안이기는 하지만 시행이 어렵다.
셋째는 현재 많은 국민연금 적립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국민연금 적립금의 과다한 증가를 막고, 기초연금 지급액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국민연금 가입자의 반발이 아주 거셀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보험료를 어렵게 내온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들의 반발과 국민연금 납부 거부가 커질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더 빨라져 국민연금의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 이 방안 보다는 정부가 30-50년짜리 장기 국채를 발행해 국민연금에게 인수시키고 돈을 빌려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어찌되었든 가입자와 가입자가 근무하는 기업이 번 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의무가입제를 폐지하고, 자영업자를 위한 별도 국민연금(국민연금Ⅱ)을 만드는 방안이다. 국민연금Ⅱ의 관리는 현재와 같이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계속 담당한다. 국민연금Ⅱ는 가입, 탈퇴, 연금 납부 등을 자유롭게 하고 납입금액에 대해서는 소득공제 혜택을 주되 공제한도는 늘려 준다. 자영업자가 사업이 잘 될 때는 국민연금을 충분히 납부하여 소득공제 혜택을 받고 노후대비를 하면 된다. 사업이 안 될 때는 조금만 납부하든가 납부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생존에 허덕이는 영세자영업자는 마음 편하게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고 노후에 기초연금 수령자가 될 수 있다.
이 방안은 의무 가입대상자가 줄어 국민연금 적립금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완화할 수 있고 고갈시기도 조금은 뒤로 늦출 수 있다. 또한 영세자영업자의 국민연금 의무납부에 따른 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방안도 국민연금Ⅱ가 아주 잘 운영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문제와 함께 이미 국민연금에 가입된 자영업자를 강제로 국민연금Ⅱ로 옮길 수 없어 한계가 있다.
이렇게 국민연금제도 개혁은 어렵고 문제가 많다. 국민연금제도는 구조적인 문제를 완화하고 경제논리에 맞는 개혁방안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국민연금제도 개혁 자체보다는 사각지대 축소와 세대 간 불균형 해소라는 방향에서 연금제도 전반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라도 찾아야 한다. 다음의 두 가지가 어렵더라도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일 것 같다. 그리고 국민연금제도의 근본적 개혁은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추진하는 것이 국민적 합의점을 찾기 쉬울 것이다.
첫째가 부자노인의 부담을 늘려 가난한 노인을 지원하는 노인 간 연대를 통해 노인 빈곤층에 대한 연금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고 폐지를 주워야 연명할 정도로 가난한 노인이 많지만 한편으로 부자들도 노인이 많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고 돈 잘 버는 사업장의 주인도 대부분 노인일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혜택도 나이든 사람의 혜택이 훨씬 크다.
여기에다 부실한 조세제도로 인해 과거에 돈을 많이 벌고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한 임대소득, 이자 및 배당소득, 각종 연금소득 등은 대부분 분리과세 되거나, 일부는 아예 과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소득원의 대부분은 노인들이 갖고 있고, 일부 노인의 연간 소득은 젊은 봉급생활자의 평균 소득 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금이나 의료보험료 등을 전혀 내지 않거나 아주 적게 부담한다.
노인들 중에서 이러한 여러 소득의 합계액이 일정규모(예: 매년 3,600만원) 이상인 경우 저율로 과세하여 기초연금 확충과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등 노인복지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노인간 연대를 위한 새로운 세금, 가칭 ‘노인연대세’ 제도의 도입으로 증세의 문제가 있지만 과거 교육세와 농어촌 관련 세금과 같이 고령화에 따른 목적세로 보면 된다. 그리고 노인연대세는 세대 간 연금혜택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같은 세대를 어렵게 살아온 이웃을 지원한다는 연대감을 키울 수 있는 제도로서의 의미도 있다. 이와 같은 노인연대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임대소득세 과세 등 소득세제의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금을 안 내는 소득이 많은 상태에서의 증세는 조세 저항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토지, 주택 등 부동산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노인에게 부동산을 소득으로 전환시켜 자신의 노후에 사용케 하는 것이다. 노인들 중에서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은 많지만 소득이 없어 어렵게 사는 사람이 꽤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우선 부동산 보유 노인에게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 등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고, 유산 상속예정자에게는 상속을 전제로 노인에게 생활비를 지급할 것을 권유한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정부는 부동산 보유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대상자 사후에 부동산을 매각하여 연금지급액을 회수한다. 차액은 상속자산으로 상속자에게 귀속시키면 된다.
이 방안은 자신은 살기 어려워도 재산을 자식에게 주려는 생각이 많은 한국 노인들에게는 저항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고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는 나라에서 부동산의 현금화를 통해 경제 활력을 조금 회복할 수 있다. 즉, 노인 보유 재산의 회춘 방안의 하나이고, 재정부담 없이 연금 대상자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는 꽤 괜찮은 제도이다. 연구라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