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글로벌 스탠다드·국내경제성장따라 면제범위 상향”
외국선 ‘美 103억원 미만·英 47억원 이하·獨 53억원 이하’
“기업 재무제표만 믿고 투자하시겠습니까?(모 인터넷 주식투자 강연에서)” 국제회계기준 등 매년 회계제도가 강화되고 있지만, 기업회계에 대한 불신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사태처럼 인맥과 끼리끼리 문화가 야기한 부정은 현 제도로 잡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선택과 집중’이란 이유를 들어 외부감사 대상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시민단체와 회계 전문가들은 회계투명성을 희생시켜 얻은 경제적 효익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있다.
지난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을 축소하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외감대상 기업을 자산 100억원 이상에서 12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내용은 지난 10월 공청회에서의 모습과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당시 시민단체와 민간 및 업계 전문가들이 외감대상 축소를 비판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했지만, 이들의 요구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장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며 올해 말 자산총액이 120억원 미만인 기업은 내년부터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민간에선 이 조치로 2000여 개, 정부에선 1000여 개 기업이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외감법의 변천사를 볼 때, 이번 개정안은 새삼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외감법은 ▲1980년 자산총액 30억원 또는 자본금 5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에서 출발했다. ▲1990년 자산총액 40억원 이상 ▲1993년 자산총액 60억 이상 ▲1998년 자산총액 70억원 이상 ▲2009년 자산총액 100억원 이상 등 시간에 따라 점차 상향조정돼왔다.
매번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성장과 회계투명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국내경제규모 성장 및 글로벌 스탠다드 반영 ▲중소기업의 회계감사 부담감소로 성장 촉진 ▲분식회계 등 투명성 제고를 통한 전문성 강화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국내 기업의 ‘속마음’을 명확하게 짚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4월 코스피 상장기업 23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13년 주주총회 관련 기업애로 실태’에서 외부감사 준비를 애로사항으로 꼽은 기업은 6.4%를 차지했다. 가장 큰 응답을 받았던 것은 ‘각종 의무 및 일정준수 부담(48.3%)’으로 기업들은 개정상법으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연결재무제표 상 기재해야 할 주석이 늘어 부담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 답변은 외부감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이는 회계감사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회계감사는 기업규제?
회계업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회계감사=기업부담=규제’로 보는 논리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신용, 즉 회계투명성을 기초로 성립한다. 때문에 외부감사를 기업성장 저해 규제로 보는 정부의 시각은 단기적 비용경감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국내 시장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경제개혁연대는 “시행령을 개정하여 외부감사 대상을 7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완화한 바 있어 추가로 완화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 결여가 중소기업금융 활성화를 통한 중소기업 발전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되는 현실에서 외부감사 대상의 축소는 오히려 중소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 회장 역시 “회계감사를 규제로 보는 정부의 시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기업회계정보의 불투명성은 기업에 대한 불신을 야기해 거시적인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가시적인 성장효과가 있었다고 반박한다. 금융위 자본감시국 김기한 국장은 “지난 2009년 외감법 개정으로 3400여 개 기업이 외감대상에서 제외됐다”며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자산총액 100억원 이상 성장한 기업의 수는 5000여 개나 돼 중소기업 성장촉진에 도움을 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경제성장 정도에 따라 일정 규모 이하의 중소기업을 외부감사 대상을 제외하는 것은 해외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며 “이번 개정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금융위의 설명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법 제12조(b)항, 제12조(g)항에 따라 상장회사는 외부감사 의무대상이며, 비상장회사의 경우 자산 1000만달러 미만, 주주 500인 미만인 경우에는 외부감사를 제외해주고 있다.
일본은 상법 특례법률 제2조 제1항에 의해 자본금 5억엔 미만 또는 부채총계 200억엔 미만인 주식회사여야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영국은 회사법 제384조, 제388A조에 근거해 원칙적으로 모든 회사를 외부감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자산 280만 파운드 이하, 매출액 560만 파운드 이하, 종업원수 50인 이하의 경우에는 외부감사를 면제하고 있다.
독일도 영국처럼 상법(HGB) 제316조를 근거로 모든 회사가 외부감사를 받는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자산 401.5만 유로 이하, 매출액 803만 유로 이하, 종업원수 50인 이하인 경우는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상기 나열한 해외 사례는 국내와 매우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모든 회사가 회계감사를 받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외감법 2조에 근거해 대통령령에 따라 회계감사 대상범위를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의 의향에 따라 외감대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외감대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크게 대비되는 내용이다.
또한 자산총액 120억원이란 숫자가 얼마나 ‘글로벌 스탠다드’한 지도 명확하지 않다. 지난 7일 환율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자산총계 기준 외부감사 면제대상은 ▲미국 103억원 미만 ▲영국 47억원 이하 ▲독일 53억원 이하로 국내 120억원에 비해 모두 낮았다. 물론 최근 원화강세로 인한 일시적 착시현상이란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의 경제규모와 국내 경제규모를 비교하면 외부감사범위에 대한 국내기준이 타국에 비해 낮다고 말할 수 없다. 지난해 IMF가 공개한 GDP 순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의 14배, 독일은 4배, 영국은 2배의 GDP규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후퇴하는 외감대상, 날뛰는 분식회계
한국의 회계투명성은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23조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필두로 부산저축은행의 분식회계 2조5000억원 어치, 검찰이 추적 중인 STX그룹의 분식회계 혐의 규모는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심지어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감독당국이 선후배 관계에 얽혀 분식회계를 도와 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 회계 불투명성으로 입은 국내 경제의 손실액은 55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와 WEF(세계경제포럼)이 각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자국의 회계투명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은 IMD 조사에서 60개국 중 58위, WEF에선 148개국 중 91위를 받았다. 두 결과는 모두 설문의 한계상 회계투명성을 실증적으로 증빙하는 조사는 아니지만, 회계감사에 대한 각국 주요 기업인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회계업계 일각에선 외부감사의 비정상화를 조속히 정상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 회장은 본지와의 취재에서 “분식회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투자자들이다”라며 “외부감사를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가 아닌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라고 전제하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밝혔다.
정책기조대로 지하경제 양성화와 강소기업의 육성을 이룩하려면 외부감사 기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외부감사의 평균보수는 2800만원으로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아니라면서 기업 평균 접대비의 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분식회계는 자본주의를 뿌리째 뒤흔드는 행위이고, 자본주의가 붕괴하면 정부가 말하는 중소기업 육성도 없다”며 “외부감사 대상을 줄여 거둔 성장이 얼마나 건전한 성장인지 묻고 싶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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