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문을 열어보면 정체 모를 검정 비닐 봉지들이 가득하다. 언제 넣어둔지도 모르고, 어떤 음식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꽁꽁 언 덩어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모든 음식은 냉동실에만 들어가면 평생 보관이 되는 걸까?
여성중앙 스마트 맘 김주현씨의 집을 찾았다. 각 가정의 냉동실 모습이 어떨지 사전 조사를 위해 스마트 맘들에게 냉동실 안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주현씨는 조심스레 고백했다. “저희 집 냉장고는 정말 답이 없어요. 블랙홀 같아서 함부로 건드릴 엄두가 안 나네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녀만의 고민이랴. 2012년 현재 대한민국 가정의 냉동실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김주현씨의 냉동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과연 우리 집 냉동실과 얼마나 닮았을까.
고추, 말린 채소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표면에 얼음이 붙어 있었다. 채소 안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냉동실의 찬 공기와 만나 겉면에 하얗게 결정이 생겨 얼음이 된 것이다.
시골에서 대량으로 사 온 청국장과 된장. 한 번에 먹을 만큼 나눠 위생 랩에 싸 두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보관해둔 된장을 합치면 냉동실의 1/5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매우 많았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꼭 냉동실을 차지하는 전. 김주현씨의 냉동실에도 어김없이 제사 때 만든 전들이 밀폐 용기에 담겨 있었다. 기름으로 인한 산패가 우려된다.
만두, 떡갈비 등 냉동 가공 식품도 많았다.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만두가 단 2개 들어 있는데, 그것도 버리지 않고 냉동실에 그대로 두었다. 직접 만든 만두는 한 번에 먹을 분량씩 나누어 담아 놓았다. 약 6봉지가 나왔다. 냉동 찐빵의 유통 기한은 2011년 10월 28일까지였다.
김주현씨의 냉장고엔 유독 곡물 가루가 많았다. 콩가루, 들깨 가루, 고춧가루 등. 비닐봉지에 넣어 대충 묶어두기도 하고, 밀폐 용기에 넣어두기도 했다. 각각 색깔도 비슷하고 시간이 오래돼 고유의 향도 사라진 상태라 쉽게 구분하기 힘들었다.
냉동실 곳곳에 크고 작은 생선들이 비닐봉지에 싸여 있었다. 제사 때 사용하려고 산 것도 있었고, 마트에서 세일할 때 많이 산 것도 있었다. 곳곳에 숨어 있던 탓에 있는 줄도 모르고 새로 구매한 것도 꽤 됐다. 끊임없이 발견되는 생선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닐봉지째 넣어둔 말린 대추는 밀봉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비닐봉지가 열려 있어 냉동실 속 공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겉봉지에 찍힌 유통 기한은 2009년 12월 31일이었다. 말린 버섯도 사정은 마찬가지.
마트에서 꽃게를 싸게 팔기에 대량으로 사 온 것. 비교적 산 지 얼마 안 된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김주현씨는 ‘아! 꽃게가 여기 있었네!’ 하고 무릎을 치며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빨리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꽁꽁 언 수제비 반죽. 다른 음식에 넣어 먹으면 되겠다 싶어 넣어놓았다. 결국 오래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녹용과 참치는 고가의 식품이라 아껴 먹으려고 넣었는데, 참치는 푸석푸석하게 말랐고 색깔도 변했다.
어류의 지방은 불포화도가 높아 쉽게 산패되고 저장하는 동안 저급 지방산, 알데히드 등을 생성한다. 때문에 공기가 직접 동결 식품과 접촉하지 않도록 식품 표면에 얼음 막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 어패류를 냉동시키면 자체 내의 물이 얼어 전체 부피가 증가하고, 얼음 결정이 생겨 조직이 파괴된다. 해동할 때는 육류나 가금류보다 더 많은 양의 체액이 분리되고 그만큼 영양 성분이 빠져나간다. 얼음 결정을 최소화하고 조직 파괴를 감소하기 위해서는 급속 냉동 후 진공 포장하는 것이 좋다.
마늘은 썰거나 다지면서 조직이 파괴되면 알리신이란 성분이 활성화되어 매운맛이 생기게 되는데, 알리신 성분 자체가 불안정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식품의 변화를 일으켜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마늘을 다지게 되면 산소 접촉이 많아져 더욱 악화된다.
건조 식품은 이미 80~90% 정도 수분이 날아간 상태이므로 다른 식품보다 비교적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멸치같이 말린 생선ㆍ해물류는 냉동실에서 오래 보관할 경우 눅눅해지고 비린 맛이 심해진다. 또 버섯, 시래기 같은 채소류는 말리면 영양 성분이 증가하는데, 이것을 냉동시키면 오히려 영양소가 파괴되므로 상온에 보관하는 게 좋다.
냉동과 해동에 의한 품질 손상은 동물 조직보다 과일이나 채소 등 식물 조직이 더 심하게 진행된다.
분말 형태는 가루로 빻는 과정에서 이미 산소와 접촉이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빠르게 산패가 진행된다. 특히 같은 분말이어도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 들깨 가루는 보관할 때 확실히 밀봉을 해둔다. 하지만 아무리 밀봉해 냉동실에 보관한다고 해도 산소가 닿으면 더 빨리 산패된다. 색이 변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면 바로 버리는 것이 좋다.
육류를 두꺼운 상태로 냉동시킨 경우 부패가 더 빨리 진행된다. 식품의 겉면에서부터 냉동이 시작되므로 두꺼우면 내부에 존재하는 균이 저온의 영향을 늦게 받게 되고, 그동안 부패가 이뤄지게 된다. 또 한 번 해동했다가 다시 얼리는 경우 지속적으로 균에 노출되어 온전한 식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되도록 두껍지 않게 썰어 급속 냉동시키거나 진공 포장하는 것이 좋다. 육류는 산화되면서 체내에 염증이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지방 성분인 과산화지질이 생성되고 단백질 변성이 발생해 복통이나 설사를 동반하는 식중독을 유발한다. 육류는 냉동실에 오랫동안 방치되면 검게 변하게 된다. 이는 육류가 갖고 있는 지방 성분이 산소와 접촉해 변하는 것. 하지만 색이 변한 육류는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면 어느 정도 복구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