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9절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성경은 마지막 때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르고 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19가지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2-4)
말세에 징조들을 보면.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고. 이단들이 득세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돈을 사랑하며 무정하며. 선을 행치 않고 불의를 일삼습니다. 그런가하면 서로가 모함하며 사랑이 식고. 가정적으로는 자식이 부모를 거역합니다. 뿐만아니라 부모는 자식을 학대하고. 주 안에서 가족 돌아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알라’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알다’의 ‘기노스코’로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분명하게 알라는 말입니다. 그 지속적으로 반드시 알아야하는 사항은 마지막 끝에는 혹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고통의 때가 온다는 것이며 그 모습은 2절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통의 날들을 허용하신 걸까요?
고통이란 참을 수 없는 괴로움, 견디기 힘들고, 위험하고 끔찍한 것을 말합니다. 이런한 고통을 허용하시는 까닭은 모든 세대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성도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세력들을 심판받게 되는 그 때 악의 세력이 한 사람이라도 더 범죄케하고 또한 이단 사설로
참된 진리 전파를 막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해서 성도들을 하나님을 회피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통을 통하여 성도들을 회개케 하기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고, 그 때가 세상의 끝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마24:13절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사야도 예언을 하셨습니다. 사8:21절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예수님은 마24:21절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사회현상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을 19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서 비롯되는 것들과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저지르게 되는 잘못된 행동들은 자신을 높이거나 사람들을 비난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해서 나타나는 현상은 도덕적 타락과 왜곡된 관계로 나타나게 됩니다. 2-4절을 보면서 혹시 말세의 특징이 나에게서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면 성도가 고통하는 때이고, 또 자신을 돌아 보아 2-4절의 나열된 것들이 있다면 회개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24:11-12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기주의 물질 만능주의는 말세의 현상입니다.
2-5절의 19가지 중에 어느것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옛날과 오늘날에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자기사랑, 돈사랑, 이타가 아닌 이기주의입니다. 요즘은 동물사랑이 많은 메스컴을 탑니다. 뚝길을 걷고 있는데 나이드신 분이 강아지를 등에 업고 젊은이는 앞으로 안고 길을 걷는 것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개도 교회에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단어 하나 살펴보면 ‘배반하여 팔며’‘프로도타이’는 가료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자로 소개되는 말씀에서 ‘프로도타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스승이나 친구를 막론하고 쉽게 져버리는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4절은 자기사랑에 도취되어 도덕적 가치를 파괴하고 그 잘못된 사랑은 이기적이고 쾌락으로 인한 악덕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는 자기가 옳은 대로 살아가는, 그리고 돈이 주인이 되어가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모하지 못하는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는 고통을 당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마치 롯이 소돔에 들어가서 죄악에 꽉찬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면서 의인과 그의 가족을 건져 내신 사건처럼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는 징후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딤전6: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약5:3절“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5절 경건은 모양만으로는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여기서 ‘모양’‘모르포신’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를 지칭합니다. 당시에 교회에는 거짓 유대주의 이단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침투로 교회가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와 예배와 말씀에 참여하는 등 경건의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세상의 힘이나 물질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를 뜻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딛2:12절에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하셨습니다. 딤전4:7절에서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그래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원한다면 그릇된 환경에서 과감하게 떠나라 하십니다.
5절에서 ‘네가 돌아서라’ ‘아포트레푸’는 ‘~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너 자신을 돌이키다’ 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명령형이므로 계속해서 떨어지라는 것입니다. 거짓교훈을 일삼는 자들에게서 떠나 순수한 신앙을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살후3:6절“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롬16:17절“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연약한 그릇임을 인정하고 그릇된 환경에서 돌아서는 결단을 항상 해야 합니다.
6절입니다. 죄의 유혹은 ‘가만히’ 시작합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간다는 것은 말씀에 깊이가 없어 영적인 분별력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살며시 접근하여 거짓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 혹은 교활한 말로 현혹하여 자신의 죄의 쾌락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마약을 권하는 자들은 하루에 많은 것을 권하지 않고 조금씩 권하다가 나중에는 그가 중독이 되어 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게 되어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리석은 여자’‘귀나이카리아’ ‘도덕성이 결여된 여자,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여자’를 의미합니다. 결국 그런 여자들은 자기 정욕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살며시 접근하여 오는 교활한 자들이 미혹하는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를 무겁게 지고’에 해당하는 ‘세소류메나’는 ‘쌓아올리다’의 완료 수동분사로 ‘죄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쌓아 올려져서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보니 죄의 유혹이 갖는 특성으로 누구라도 그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고전10:12절에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베드로는 벧전 5:8절“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했습니다.
7-9절에서 말씀하시기를“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말세에는 진리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는 일들이 더 교묘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8절 ‘얀네와 얌브레’는 아람어로 ‘유혹하는 자, 반란을 일으키는 자’로 이 두 사람은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얄팍한 술수로 모세를 대적한 것처럼 진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거짓 교사들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최후는 자명합니다. 9절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대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마치려합니다.
타락한 사회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보이며 살아가고, 또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