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2015 전국 장애인 차별철페연대 의료연대활동 한의사 단장 인사말
세월호가 침몰하기 3일 전, 평소처럼 노들야학에서 장애인 진료를 하고 있던 중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악몽같은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시설에서 살다 처음으로 자립생활을 준비하던 송국현 아저씨가, 불이 났는데 대피하지 못해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청년한의사회 장애인 독립진료소 담당자로 일한지 불과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송국현 아저씨는 언어장애 3급, 지체장애 5급, 중복장애로 3급 판정을 받아 활동보조 서비스 지원 대상자(장애 등급 2급 이상)에서 탈락하여 이의신청을 낸 상태였습니다. 현장으로 달려갔던 활동가들은 울먹이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체험홈은 화재가 나면 자동으로 문이 열려요. 화재가 난지 얼마 안 되어 문 열린 방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고 집 주인이 안에 사람 있냐고 물어보았대요. 그런데 송국현 동지는 언어장애 때문에 말을 다 알아듣지만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결국 집주인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리를 떠버린 거죠. 동지가 걸을 수라도 있었다면, 아니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구조요청조차 하지 못하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받던 몇 달 전이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어요.”
여기. 사람이. 있다.
2009년 용산 참사 이후로 5년 만에 다시 이 말이 이토록 가슴을 짓누를 줄 몰랐습니다. 저에게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복지 논쟁이, 누군가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라는 끔찍한 현실과 또다시 대면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보건복지부 장관 집 앞에서 해명을 기다리며 노숙농성을 하고 세월호 분향소가 있는 시청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분향소를 세웠지만,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철수해야 했습니다. 전 국민이 함께 애도해주던 세월호 분향소 바로 뒤, 그늘진 곳의 자그마한 분향소가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요.
그런데도 정부는 안 그래도 취약한 복지를 확대하기는 커녕, 그나마 있는 의료분야의 공공성마저 심각하게 훼손하는 의료민영화 법안을 ‘규제기요틴’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기업과 자본에게만 이득을 주는 영리자회사, 원격 의료, 메디텔, 경자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등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의료선진화’로 포장하여 추진하는 국가에서, 기본적인 양질의 복지, 의료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간 장애인 독립진료소에서 환자들에게 ‘병원 가기 눈치 보인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 그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UN 세계 인권 선언이 너무나도 공허하게 들리는 사람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인사말을 무겁다 못해, 괴로운 내용으로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장의 영정이 더 이상 늘지 않도록, 우리의 연대활동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생 한의원을 해도 한 번도 마주치기 힘든 장애인분들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왜 그들이 병원에 오지 못하는지, 왜 비장애인라면 죽지 않을 문제로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2015년도 길벗 겨울 의료연대에 오신 한의사, 학생 회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15.1.17.
한의사 단장 김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