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아동문학사조 발행인,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고문)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 회자되는 말이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소한 일로 학생이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갑질하는 황당한 상황이 한국 교육의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작태에 절망하고, 자괴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묵묵히 교사의 본분인 제자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스승의 날이 오면 목숨을 바쳐 제자들을 구하고 산화(散華)한 두 스승의 거룩한 미담이 떠오른다. 이춘길(李春吉), 한상신(韓相信) 선생님!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61년 전인 1964년 여름과 가을에 스물넷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부산과 고창에서 제자들의 목숨을 구하고 유명을 달리한 참 스승들이었다.
1964년 7월 11일 유난히 무덥던 한낮, 부산 구포초등학교 3학년 4반 담임 이춘길 선생님은 “4반 아이들이 저수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급한 연락을 받았다. 한걸음에 저수지로 달려간 그는 멱 감던 학생 세명이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보고 지체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바로 두명을 구출해 저수지 밖으로 내보냈다. 남은 한 명 최태성 군(10)을 구하려고 팔을 뻗다 갑자기 헤엄을 멈추었다. 별안간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선생님이 다가오는 걸 보고 팔을 뻗어 잡으려던 최 군과 함께 이 선생님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7월 13일 구포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두 사제의 장례식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그 자리에서 이 선생님이 2대 독자라는 것, 봄에 부산교육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첫 임지인 구포초등학교에 왔으며 다른 교사들에게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다짐했던 일들이 소개되었다. 이문영 교장은 “초임교사로 학교에 부임해 오로지 제자 사랑 일념으로 헌신하던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제자를 구하려다 숨진 숭고한 뜻을 구포 어린이들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학교는 교정에 이 교사 추모비를 세우고 그의 높은 뜻을 학생들의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1964년 10월 17일 또 한 명의 선생님이 제자들을 살리려다 귀중한 목숨을 바쳤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용교초등학교 4학년 담임인 한상신 선생님은 호남선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갈망에 따라 학생 40명을 인솔하여 기차를 굽어볼 수 있는 방장산으로 가을소풍을 갔다.
선생님은 소풍을 가는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았으나, 제자 사랑의 일념으로 방장산을 계속 올랐다. 앞서간 제자의 발에 큰 바위가 굴러 뒤따르는 제자들을 덮치려는 순간, 온몸으로 바위를 막으며 굴러 어린 제자들의 생명을 구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산을 내려와 제자들이 이상 없음을 확인한 선생님은 바로 그 자리에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결식은 사랑하는 제자와 동료교사, 학부모의 애도 속에 10월 20일 용교초등학교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한 고 한상신 선생님의 묘소는 고창군 성내초등학교 뒷산에 있다가 1994년 가을에 성내초등학교 교내로 이장되었다. 선생님의 영혼이 깃든 추모탑은 고창읍 교촌리에 위치한 새마을공원에 있다.
두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지 61년이 되었고, 살아있다면 8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한창 젊은 나이 배롱꽃 활짝 피던 날 부산 구포 저수지에서, 구절초꽃 향기롭던 날 전북 고창 방장산에서 꽃잎처럼 산화한 두 분 선생님의 숭고한 제자 사랑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명복을 빈다.
(특별기고)스물 넷에 산화한 두 분의 참스승 < 행사축체 < 기사본문 - 공무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