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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7월11일-12일(土日)雨雲
▲백두대간16차(도래기재~선달산~각곳산~봉황산~부석사....고치령, 좌석리)
해봉,메아리(42명)
♠참고
▲선달산(先達山)
위치 : 강원 영월군과 경북 봉화군·영주시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236m. 소백산맥에 속한 산으로 주위에 매봉산(梅峰山:1,268m)·어래산(御來山:1,064m) ·
봉황산(鳳凰山:819m) 등이 솟아 있다. 북쪽 비탈면을 흐르는 수계는 옥동천(玉洞川)으로
흘러 들고, 남서쪽 비탈면에서 발원하는 수계는 내성천(乃城川)으로 흘러든다.
남서쪽에는 소백산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남쪽 기슭에는 국민관광지인
오전(梧田) 약수가 있다.
▲봉황산(鳳凰山)
위치 : 경북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산의 높이는 818m이다.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의 경계를 이룬다.
산세가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봉황산이라고 부른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이 산 중턱에는 676년 (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설이 있음)이며,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석탑, 석종 등
보물이 많고, 규모가 웅장해서 이 절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부석사만 둘러보고 가는
관광객이 많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부석사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산행 기점이 해발 490m이므로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부석사에 이른 다음, 절 왼쪽의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다시 10분쯤 가서 오른쪽 길로 접어드는데,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산길이 감상할 만하다. 15분 정도 올라 696봉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주봉을 향해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이다.
하산은 올라온 길로 5분 정도 되돌아가다가 남쪽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부석사를 거쳐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이 코스는 약 4.5㎞ 거리로,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부석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방동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부석사(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 중턱.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676년 (신라 문무왕 16)
창건자 : 의상조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조사
(義湘祖師)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 ·조사당(국보 19)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
<높이 2.78m. 건물은 남향인데 이 좌상만 동향(東向)인 점이 특이-아미타불이 서방의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佛이기때문임->·조사당 벽화(국보 46)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 ·불사리
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 ·취현암(醉玄庵) ·범종루(梵鐘樓) ·안양문
(安養門) ·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
(悟眞) ·지통(智通) ·표훈(表訓) ·진정(眞定) ·진장(眞藏) ·도융(道融) ·양원(良圓) ·상원 (相源) ·
능인(能仁) ·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
(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
국사(惠哲國師) ·무염국사(無染國師) ·징효대사(澄曉大師) ·원융국사 ·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산행 코스
04시25분 도래기재
05시50분 옥돌봉
06시50분 박달령산신각
09시30분 선달산
10시50분 각곳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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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20분 봉황산
12시30분 부석사
............
14시45분 고치령, 좌석리
총 8시간
☞☞☞늦은 밤 부산진역 앞의 관광버스에 오르니 예약석 내 옆 좌석엔
지난번 달마산 산행시 동석했든 빨간 T샤스의 K양이 앉아있고 ,
메아리 산악회, 박대장의 발목 부상으로 불참한 가운데 모처럼
거의 만원이 되어 정시에 출발합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오르자 임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일정에 대한
방송을 합니다.
새벽 2시경, 쉼터휴게소에서 한번 정차하고 목적지인
'도래기재'엔 03시10분 도착.
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여 임대장이 소등 한 체
계속 취침하게 합니다.
04시경, 대부분의 대원들이 일어나 하나둘 하차하여
04시25분, 인원점검, 상견례를 하고 메아리의 안승태 대장이 선두로
좌측 절개지의 비탈을 타고 헤드램프를 비추며 급경사를 올라갑니다.
얼마가지 않아 뿌려지는 빗발 때문에 우의를 꺼내어 입습니다.
동녘이 뿌옇게 밝아 오면서 외롭게 피어있는 비에 젖은
참나리 한 송이를 발견하고 캠코더에 담습니다.
비는 거쳤지만 아랫도리는 모두 젖은 지 오래고
05시50분, 해발 1242m인 '옥돌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좌측으로 멀리 운해 속에 섬처럼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장관을 일웁니다.
이를 배경으로 언제나 과묵하고 담담한 조 대원이 촬영을 부탁합니다.
얼마가지 않아 좌로 봉화군 물야면 주실령과
연결되는 삼거리를 지납니다.
우의속의 온몸은 땀으로 목욕한지 오래고
등로변의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독버섯들이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시 좌로 떨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완만한 오름 끝의 1246봉을 올라서고
내림의 푸른 숲속의 능선을 계속 타며 갑니다.
06시50분, 좌측으로 보이는 산신각 추녀 밑에서
회원들이 식사하고 있는, 박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의
박달령에 당도합니다.
(江原道 寧越郡 下東面 內里)
산삼을 배경, 산신령을 채색도자기로 화려하게 만들어 모셔놓은
그 뒤편에 나무로 '朴達嶺坡隍神位'라고 쓴 위패가 세워져 있습니다.
드물게 잘 가꾸어 놓은 산신각 내부를 촬영하고 빵으로 식사하며
주위를 살핍니다.
좌로 임도가 나있는데 우측 지름길
약수로 유명한 봉화군 물야면 벽오동 마을
오전(梧田) 리로 떨어집니다.
07시10분 안개구름이 동쪽으로 넘어가는 헬기장으로 올라갑니다.
좌우로 물끼를 잔득 먹음은 온갖 싱그러운 야생화를 촬영하며
완만한 대간 길을 걷습니다.
여유있게 버섯을 따는 K양, 아름드리 고목에 파란 이끼가 덮여있는
식물의 기생 현장을 촬영하며 잡목과 잡초가 엉켜있는
빗긴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08시30분, 선두는 보이지 않고 중간 구릅이 집단으로 휴식하고 있는 곳에
합류하며 후미를 기다립니다.
짧은 바위사이 길의 내림과 오름을 거쳐 좌로
떨어지는 왕바위골 갈림길과 1246봉을 넘고
09시30분, '1236m 선달산 (서울 경남관광산악회)'이라 쓴
팻말이 걸려있는 선달산에 오릅니다.
신선이 놀든 곳이라는 뜻의 선달(仙達),
먼저 올라야 한다는 선달산(先達山).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운해가 덮여있는
장관을 촬영하고 곧 내려갑니다.
안개로 덮인 숲속, 이끼는 계속 깔려있고
빗물을 잔뜩 먹음은 파란 당단풍 잎이 윤기를 자랑하고
된비알을 타고 발바닥 감촉이 좋은 흙길을 내려갑니다.
10시15분, B팀이 대기하고 있는
정감어린 이름의 '늦은목이'에서 내려섭니다.
(慶尙北道 榮州市 浮石面 南大里)
임대장이 선두와 약 40분 뒤떨어져 있어
여기서 A팀과 분류 해야겠다고 합니다.
이번 대간종주산행은 '부석사'를 촬영하는데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이미 B팀으로 마음을 정했고 대부분 B팀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고치령까지 가는 A팀으로 가겠다는 두어 사람은 곧 출발 합니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여유 있게 안개로 덮인 주변을 캠코더에 담으며
느긋하게 올라갑니다.
10시47분, '부석사'로 내려가는 봉황산 갈림길,
이정목만 서있는'각곳산'에 올라섭니다.
각곳산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득한 옛날에 각곳(갑곳)산이라고 하였는데
각곳(갑곳)이라하면 배를 정박하는 선착장 으로 산의 이름에
곳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배를 타시고 은하수를 건너
봉황산 즉 각곳산으로 하강 하신다는 말이니 무녀들이...
운운하는 전설이 깃든 산입니다.
신 사장등 후미를 기다리다 28명의 대원들을 점검하고
10시55분, 왼쪽으로 꺾어져 완만한 낙엽이 깔린
푹신푹신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등산로 한가운데 겁도 없이 성냥개비 같은,
작은 파란 곤충이 갈까 말까 망설이듯
전후 운동을 하며 위기에 놓인 줄도 모르고
폼 제고 있는 걸 캠코더에 담습니다.
행여 등산화 밑에 밟힐세라
숲속으로 옮겨놓고
푸근한 마음으로 내려갑니다.
11시20분, '봉황산'으로 짐작되는 헬기장에 오릅니다.
주변은 안개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약 10분간 휴식과 간식을 하고
집행부 조양이 캠코더 앞에서 V자를 그리는 걸 비롯,
김상말양, 김경애양이 조용히 미소지어며 좌측 길로 출발합니다.
다시 완만한 내림과 오름 끝에
11시42분, 두 번째 헬기장에 올라섭니다.
'부석사로 내려가는길'이라는 낡은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누군가 여기가 바로 봉황산 정상이 라고 합니다.
12시20분, 등산로가 희미해지고 좌측으로 꺾어져 내려가는데
밭을 거쳐 싱그럽게 여물어 가는 사과나무 밑을 지나칩니다.
작은 개울을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옆을 지나
옥수수 밭을 끼고 가다
'부석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약 8시간의 산행이 끝납니다.
12시30분, 부석사의 일주문과 종루의
중간지점으로 들어가 안양문 돌계단을 오릅니다.
우선 머리위로 떠오르는 파랗게 바위 옷을 입은
국보 17호인 석등을 촬영하고 곧
장 국보 18호인 무량수전으로 닥아 섭니다.
출처:encyber.com
그 안에 모셔놓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덧붙여 만든 국보 45호인 소조여래좌상.
특이하게 높이 2.78m. 건물은 남향인데 이 좌상만
동향(東向)인 점은 아미타불이 서방의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아래에서 삼배를 올리는 K양.
무량수전과 배흘림기둥 등
내부를 촬영하고 건물 옆의 부석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의 부석사를
소개하는 글에서
‘남쪽으로 치달리는 태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이라고 잘못 표현한
안양문에서 운무로 덮인
백두대간 소백산 능선을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캠코더에 담습니다.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갈증을 풀기 위해 약수를 마시고, 병에 담고
3층 석탑을 촬영. 가픈 숨을 몰아쉬며
국보 19호인 '조사당'으로 뛰듯이 올라갑니다.
촬영이 끝나자 바로
무량수전과 안양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으로
되돌아 내려와 확 트인 시계,
심호흡하고 멀리 차기에 걸어갈 희미한 백두대간인 소백산 능선을
캐논 광각렌즈로 두어 컷 찍는데 필름이 떨어집니다.
준비한 필름을 갈아 끼울까 하다 예정시간보다 너무 늦어
나 때문에 많은 대원들이 기다 릴 걸 생각하고 곧장 하산하기로 합니다.
마침 조 대원이 니콘으로 주변을 촬영하다 나를 발견하고 피사체로 삼습니다.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리수와 천왕문을,
많은 선남선녀들과 조우하며 보물인 당간지주를 캠코더에 담고
일주문을 지나 꺾어지는 길목에서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하얀 힐에 핸드백을 어께에 걸친 아가씨가
잰걸음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부석사와
대조적이어서 한동안 촬영합니다.
13시20분, 일주문을 거쳐 주차장이 있는 상가를 지나치는데
신사장등 7,8명의 대원들이 어느 음식점 앞마당에 둘러 앉아
닭도리탕 등을 시켜놓고 캔 맥주와 소주 등으로 피로를 풀고 있습니다.
수고했다며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대원들이
권하는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안주로 점심을 대신하고
우선 땀에 저린 몸을 씻기 위해 세면장을 물었더니
식당 뒤편으로 가면 샤워장이 있다고 합니다.
바쁘게 몸을 씻고 나오니 아직 20대 젊은이들이 미도착,
이럴 줄 알았으면 무량수전 뒤편 에 있다는 '선묘각'과 석축 등을
느긋하게 촬영할건데 하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14시13분, A팀을 태우기 위해 고치령 들머리 마을인
좌석리로 출발합니다.
도중에 먼저 내려간 대원들을 태우고
길을 잘 못 드는 우여곡절 끝에
좌석리 들머리 개울에서 몸을 씻겠다며 대원들이 하차하고
A팀을 촬영해주기 위해
14시45분, 포장도로가 끝나는 좌석리에 도착합니다.
A팀 14명중 14시53분, 선두가 호기 있게 도착하고
시차를 두고 몇 명이 내려오는데 기다 리지 못하고
임대장이 마을승합차를 빌려 고치령으로 보내어
16시7분, 전원 승차하여 출발합니다.
도중에 다시 B팀을 태우고 일로 부산으로 달립니다.
고생스러웠지만 대간 길의 녹색 천지 속에
갖가지 생명체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싱그러운 모습들이 떠오르고
옛날에 보았든 부석사와는 달리 새롭게 보였든 사찰 주변들이
또 다른 의미와 사연들이 생생이 상기되어
상업적인 환경으로 오염되지 않을까 노파심에 젖습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제비원 석불'을 쳐다보는 즐거움 속에
요즘 무량수전 대신 '봉정사 극락전'이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언제 한번 귀로 에 봉정사에 들릴 수 없느냐고 임 대장에게 이야기하니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합니다.
영주 나들목으로 빠져 고속도로를 달리다
20시53분, 콘크리트 문화의 생존경쟁 마당의 들머리인,
부산T/G를 통과합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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