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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숙 프로필
아호 /禮䀆堂(예진당)
60년 10월 충남보령 웅천산
효지도사 1급. 인성교육실천지도사 1급
요양보호사
무량사 신도회장
목요 문학방 수학
1. 나를 세워 준 불심(佛心)
예진당/ 황해숙
오늘 아침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는 촉촉하게 자연을 적시고 나의 마음도 적신다. 나의 평상심을 달래며 늘 균형감 있는 삶으로 안내해 주는 무량사 대웅전 옆 작은 초막에 내려오는 비는 긴 세월 천년의 공의 빗줄기마다 바윗돌을 뚫고 한결같은 불공처럼 흔적이 쌓여 있다.
일편단심 오직 그 한줄기로 내려온 가냘픈 빗줄기가 오랜 세월 인고의 아픔을 견디고 바위를 뚫고 여적의 사실을 전해 주듯 암팡진 모습으로 나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준다. 기와집 고랑 끝에 맺혀 다툼도 없이 순서대로 차분하게 내려와 결국 바윗돌을 뚫은 모습이 끝없이 나란하다.
무량사 뒷길 김시습 시비에는 20자로 되어있는 시 구절이 있고, 고려 말 천재의 명성답게 낮고 한적한 곳을 찾아 가부좌로 점잖게 앉아 있다. 시비를 돌아 서서히 길을 걷다 보면 빗방울들이 모여 합창을 하다가 여울목을 돌 갈 떄 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산사 돌아 늦겨울 지쳐서 부서진 살얼음을 등에 업고 맑고 청정한 물이 흐른다.
언제가 어느 시인이 나에게 정몽주의 춘흥(春興)이라는 시(詩)를 자세히 알려주며 그 시의 내용에 흐르는 느낌을 잔잔하고 맑고 조용하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좁다란 산사실 모퉁이를 돌면서 그 시가 생각이 났다. 춘흥(春興)- 춘우세불적(春雨細不摘) 야 중미 유성(夜中微有聲)이라 설진 남계창(雪盡湳溪漲) 초아 다소 생(草芽多少生)이라는 시다. 봄비는 가늘어서 쌓이질 않고 밤에 내리는 비는 소리가 적다 하여 눈이 녹아 개울이 불어서 이제 풀싹이 다소 생겨 나겠구나 하는 지극히 욕심이 없고 단아한 선비의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느끼게 하는 시다.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상처가 받고 오해도 받으며 무재질시(無財七施)를 읊조리며 살아가더라도 알게 모르게 마음이 심란하고 어려울 때가 간혹 있다.
나는 이런 때마다 스스로를 크게 위로하는 것은 무량사 신도회 회장을 올해로 10여 년 하면서 내새 삶의 가장 중요한 시기, 불심이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으니 오늘로 무량사 신사 뒷길을 걸으며 행복한 여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계절 내내 수목은 우거지고 장태 숲에서 토해내는 천연 산소에 온몸을 산림욕 하며 혼자 걸을 때 입을 딱딱 벌려 심호흡하며 어딘가 숨어 있을 노폐물을 구석구석 청소하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산을 오르며 소나무에서 내 품는 피톤치드에 취하고 산에서 내려오며 이름 모를 새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급히도 날아와 내 머리 위에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빠른 새소리 남기고 폴짝 날아가는 새소리의 여운에 지친 심신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아! 이 순간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만족감을 느낀다. 내가 어느새 또 행복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구나 하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덤까지 받는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삼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이제 서서히 불심을 가슴 한복판에 가지런히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선한 아낙들이 하나, 둘 모여 와서 석탄일 기념 등을 빚으며 옹골진 손끝에 불심(佛心)을 실천하며 부여에서 인근 지역의 불국 왕생을 기원하며 간절히 기도드리는 음성이 무량사 대웅전을 시작으로 잠에서 깨어난 미물까지 독경소리에 귀가 쫑긋하리라 생각하며 미소의 자국을 남긴다.
2. 내가 찾은 행복 (잔잔한 감동)
예진당/ 황 해숙
어릴 때부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고 유년 시대를 지냈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어른 섬기기를 좋아해서 내가 스스로 도와드리고 대접해 드리면 그 도움을 고맙게 받고 평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호강을 받는 사람이 된 양 기뻤다. 성장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그 귀한 말이다. 학문적인 말씀이 아니라 오랜 실천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포근히 안주하고 있는 명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무 철도 없던 시절, 그것은 엄격한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서 마음의 길을 가다 보니 올바르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스스로 한 것이었을 뿐,.
나는 그때만 해도 내 또래는 모드 그렇게 사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모두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믿었던 이웃들까지 마음이 변절되어 가고 이에 피해를 보고 원근 간의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접하다 보니 내가 붙잡고 살아온 지난날이 쓸모없는 단단한 말뚝 하나를 움켜쥐고 살았나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러나 인성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는 별 교육이 다 있구나"하는 의아심을 가졌다. 효심은 태어나면서 지니는 것으로 알고 어릴 적에 가정교육만으로 일깨워 가는 것으로 알았다. 인성 또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오는 것으로 알았다. 교육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왔으나 가까이 접해 보니 우리가 겪고 있는 잘못되어 가는 인간사회의 현실을 바로 잡아가는 현실적 대안이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 자신을 다시 깨닫고 공감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자꾸 차올랐다.
지난해 충청 효 교육원을 추천해 주신 분을 따라서 최기복 원장님을 처음 뵙고 인사드렸다. 알아갈수록 뵈면 뵐수록 최기복 원장님은 귀한 분이다. 100년 전쯤이면 국가의 사표가 될 정승 한자리할 분인데 시대를 잘 못 만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갖게 하곤 했다. 효교육을 받게 된 것은 지난날 삶의 지표가 되었던 돌아가신 아버지께 효도하는 일이고. 불효를 반성하는 일이 되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이 왜 소중한 것인지, 소중한 인생 공부를 조금은 늦은 나이에 배우고 깨달으면서 잔잔한 감동의 파도가 나를 들뜨게 하고 있다. 자신에 감사하고 선택에 감사하며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나는 요양 보호와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봉사센터를 운영하여 왔다. 지금도 어른을 모시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베풀고, 드리고, 나누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집에서 나설 때는 봉지와 그릇에 바리바리 싸 들고 출발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각각 찾아서 나누어 드리고 함께 기뻐한다. 빈손으로 집에 와서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생각해 보면 오늘 내가 행한 선행이 나를 행복한 기분으로 이끈다. 그 기분으로 마음은 부유하고 행복한 마음이 넓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습관이 되어 그 행복감에 젖는 일에 익숙해졌다. 남들은 이를 선행이라고 말하지만 계속 실천하고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나 자신의 행복 충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나도 어려움을 느낄 나이가 되어간다. 모시는 어르신들도 평안하고 잘 드셔서 예전 노인들과는 다르다. 예전 노인들은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처럼 야위고 몸무게도 가벼웠다. 하여 모시기가 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통 70-80kg 되시는 몸무게에 복잡 미묘한 감정의 굴곡이 심해서 모시기가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보람은 크지만 한계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때로 땀이 비 오듯 하고 탈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구나 어머니를 지근거리에 모시고 산다. 어머니도 올해 85세다. 나는 언제나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다른 어른들을 대한다.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자식 얘기를 하시면서 자식이 멀쩡하게 잘 살면서도 해가 지나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눈가에 번지는 어른들의 외로움이 나의 눈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려운 일상에 대한 보람으로 나를 이겨 내곤 한다.
사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외로움은 어떡할거나? 혼곤한 꿈속에서 부르짖는 또 하나의 음성이 귀속에 맴돈다. 사람은 누구도 죽는다. 다만 언제 죽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루의 보람은 보람 없이 사는 사람의 몇 배가 되는지 모른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인성교육은 효 교육의 정체성이다. 강의실 벽에 붙어 있는 교수님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등단 소감문>
禮䀆堂/황해숙
종합문예지 <덕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민망하여 몸 둘 곳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수필가라는 거룩한 이름을 제가 소유해도 되는지요? 어렵지만 행복했던 유. 소녀 시대는 고향에서 보냈습니다. 목포에 있는 제일 정보고등학교에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는 순간의 감격은 하버드 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교육에 목말라했던 갈증 때문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평범한 아낙으로 그럭저럭 살아온 인생에 보람과 긍지를 가져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만한 업적은 없다손 바쁘게 살아왔고 그 바쁨의 의미는 가족과 주변과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웃어른께 대한 예의범절을 배우고 몸에 익혔습니다. 지금부터는 평범하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간추려서 하나씩 꺼내보려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충청 창의인성교육원에서 <효와 인성>을 수업하면서 최기복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몇 겁의 인연이 쌓여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기복 원장님을 만난 것은 어쩌면 필연인가 봅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처음에 <효와 인성>을 배운다고 했을 때, 의아해서 이런 공부도 있나 하고 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가정교육을 통하여 웃어른을 섬기는 DNA를 몸에 장착하고 사회복지와 요양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봉사센터를 운영했습니다. 여전히 어른을 모시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나 어디서나 베풀고 드리고 나누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제 삶의 여정에서 <효와 인성>이라는 수업을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부여군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무량사 신도회 회장을 올해로 17년째로 마감하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진리처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발걸음 크게 내 보일 것은 없습니다만 정직하고 반듯하게 걸어왔다고 고백합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감사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가 감사합니다. 탐욕을 내려놓고 마음에 불심을 가지런히 모시고 살아가는 지금이 내 생애 가장 잔잔한 순간입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중년의 여인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경험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씩 수필로 엮어보겠습니다.
보잘것없는 글에 <등단 심사평>으로 찬란한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수필은 살아가는 잔잔한 자기감정의 표현을 공유하는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글보다 사람을 추천한다고 하시며 좋은 글을 쓸 것을 믿는다고 용기를 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지켜봐야겠다는 말씀이 참으로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자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되새겨 봅니다. 근엄했지만 자애스러웠던 친정 부모님 그립습니다. 내 남편 구요회를 낳아주시고 8남매를 잘 키워 주신 시부모님 구종서, 이승규 두 분에게 수필 쓰는 며느리 되었다고 신고 드립니다. 세 딸 민지, 도연, 민하 예쁘게 잘 자라 줘서 고맙고 금쪽같은 아들 태은이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 월력으로 나를 지켜 주신 무량사의 부처님과 스님 신도회원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끝으로 지켜봐 주시고 지도해 주신 최관수 원장님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 환영해주시는 <덕향문학> 선배 문인들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최기복 원장님, 하해와 같은 사랑과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등단 심사평>
잔잔한 이야기꾼 황해숙
얼굴 표정 속에 살아 숨 쉬는 관음 보살상
보는 짧은 순간에 마음속에는 평화가 자리를 잡는다.
수필이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은 할 수 있어도 문인으로서 작가로서 예우를 받는 일이 수월 하지 않다
붓 가는 대로 쓰는 짧은 글이 어떤 감동을 불러올 수 있을까? 소설과 시 사이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자유롭게 쓰는 글에 문학적 가치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누군가에게 읽힐 것인즉 홀로 간직해야 할 곤혹스러운 비밀 일기처럼 정직하게 써야 할 선비의 글인데 선비도 아닌 내가 그런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살아온 지금까지의 족적이 비천한데 고고한 인격과 품위가 내보이는 수필은 자칫 허위와 과장 속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 쓰지 않고 발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후회막급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은 아닐까?
피천득 님은 수필은 학(鶴)이요! 난(蘭)이요! 청자연적(靑瓷硯滴)이라고 읋었다. 고고하고 청초하고 단아하고 품위가 있는 글이라는 표현을 이토록 거창하게 표현했다. 시가 5분 내외의 단상에 고뇌와 혼을 불어넣어 한 줄 혹은 몇 줄의 행으로 엮어내는 과장과 은유의 산물이라면 소설은 짜 맞추기 허구의 플롯(구성)이다. 수필은 살아가는 잔잔한 자기감정의 표현을 공유하는 글이다.
이제 중년 여인이 되어 삶 전체가 자기희생의 꽃으로 불려야 하는 황해숙의 수필을 대하면서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 혹은 못 쓰느냐 의 등단 심사원으로서가 아니라 70 생애를 구축해온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경건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진솔한 문인 하나를 발견하고 감이 추천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두게 되었다.
사는 게 시인 사람이 있고, 사는 게 소설인 사람이 있고, 사는 게 수필인 사람이 있고, 사는 게 내로남불의 기조 위에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증가 일로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필가 황해숙은 사는 게 수필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무량사의 신도 회장을 10년째 이어오고 있고, 85세의 노모를 모시면서 노모 모시듯 동네 어르신네들을 모시고 산다. 자식으로부터 버려진 느낌을 받는 고독한 노인들의 신체적 부양과 정서적 봉양에서 보람과 행복을 채취하는 이 시대의 여인. 그런 와중에서 승용차로 2시간 남짓 달려야 하는 천안의 효 교육장을 한주에 두 번씩 오가는 일상.
견딜 수 없는 고단함에서 오는 자탄 "내가 늙어가나 봐요." 절규가 아니라 다하지 못함에 대하는 겸연쩍은 표현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선비의 향기가 난다. 산을 오르내리며 시비(詩碑)에 새겨진 글귀에서 마음 비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배운다.
자연이 주는 피톤치드에게 감사할 줄 알고 산새의 울음을 노래로 듣는다. 손수 떡을 만들어 부처에게 공양하고 동네 노인들에게 나누어 드리려고 산을 오르내리며 피곤을 감사로 푼다. 이름하여 그녀의 불심은 행복한 중년 여인의 수필 내용이다.
또 하나 배움의 의지다. 효를 배우고 인성을 익히며 착하기만 한 심성이 활로를 찾은 내용을 두 번째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살아온 일상을 잔잔하게 기술한다. 그리고 노인들의 고독을 공유한다. 그 일을 숙명으로 긍정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긍정적 절규를 한다. 생색조차 낼 줄 모르는 어머니의 DNA를 몸에 담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좋은 글을 쓸 것임을 믿는다, 그녀의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 감동을 나누어 주고 있다. 글보다 사람을 추천한다. 글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모든 여성이 닮아야 할 우상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문운을 기원하며 평생을 지켜봐야겠다.
( 심사위원 김구부, 신상성, 최기복, 최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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