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天地人)으로 구성되는 삼재사상(三才思想) 가운데 인(人)적인 부분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말한다. 특히 인사(人事)의 경우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가문이나 집안의 인적 구성요소가 사람의 운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완산 전씨(完山 全氏) 전상우(全相禹)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점문(金點文)의 10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궁성이론(宮星理論)에 의하면 년주는 본인의 의식하지 못하는 조상이나 가계를 말한다. 그의 가계는 몰락 양반 가계로 14대조인 전제(全霽·1558~1597)는 무과에 합격해 영산현감(靈山縣監)을 지내며 의병활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창녕 영산에는 전두환 대통령 재임기간인 1982년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이 조성됐다. 여기에 ‘영산현감 전제 장군 충절사적비’가 있다. 전제는 합천 초계에서 의병을 일으킨 탁계 전치원(濯溪 全致遠·1527~1596)의 조카다. 전치원은 설학 이대기(雪壑 李大期·1551~1628)와 함께 초계를 대표하는 의병장으로, 전제는 전치원의 밑에서 조호장(調護將)으로 의병활동을 했는데 전적이 부풀어진 면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 무관이 몇 명 배출됐으나 한동안 벼슬에 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아버지 전상우(1898~1967)는 횡포를 부리는 일본인 순사를 벼랑에서 때려눕히고 일본 순사의 수배를 피해 만주 지린성 반석현에 숨어 살다가 1년 3개월 만에 귀국했을 정도로 반일감정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위로 형 열환(1915년생), 형 규곤(1916년생), 누나 홍렬(1918년생), 명렬(1922년생), 누나 선학(1925년생), 형 기환(1929년생)이 있었다. 그가 태어난 뒤로도 여동생 점학(1935년생), 남동생 석환(1937년생), 경환(1942년생)이 태어났다. 전두환이 태어날 때 그 위로 세 명의 형이 있었으나, 큰형 전열환은 고향 친구들과의 놀이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 둘째 형 전규곤은 어려서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전두환과 전경환 사이의 동생 전석환은 어렸을 때 병으로 사망해 셋째 형 전기환과 전두환, 동생 전경환과 누이들만 살아남았다. 이런 운명적인 영향들은 주로 년월로 판단한다.
그가 5세 되던 해에 그의 가정은 합천에서 대구 봉덕동 1035번지로 이사했다. 보통 년지와 월지가 충(沖)을 하면 파거이조(波居離祖)라 해 부모대에 고향을 떠난다. 전두환의 사주가 축미충(丑未沖)으로 이런 현상을 보인다. 전두환은 1943년 3월 다시 가족과 함께 귀국해 대구로 내려와 바로 희도(喜道)초등학교(현 대구 종로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47년 3월 25일에 희도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만주 망명 때문에 전두환은 2~3년 늦게 보통소학교를 졸업했고 1947년 대구공업중학교 기계과에 입학해 10㎞ 거리를 통학했다. 그는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부양하기도 했다.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그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때는 권투부 부원으로 고등학교 때는 축구부 골키퍼로 활약했다. 1951년 10월 15일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했다.
그의 사주에서 특이한 점은 년월과 일지에 편인성이 많다는 점이다. 편인성이 년주나 월주에 있으면 선대의 유산이 부족하고 부모와의 인연이 불리하거나 형제자매가 많아도 고독하다. 제도권공부의 중단수나 교과서를 싫어한다. 예체능에 강한 면모를 보이거나 기술계통에 능하다. 편인과 칠살의 조합은 출세욕이 강하며 이기심과 독선적인 면이 강하다. 리더쉽이 강해 군인, 경찰, 검찰, 특수직업, 특기분야 등에 독보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소위 살인격이다.
류동학 원장 프로필
▲ 류동학 원장 |
△혜명동양학아카데미 원장(현) △대전대 철학과 외래교수(현)
△전 안동정보대학 교수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대전대 철학과 박사과정 △단국대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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