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구성하는 것은 누구인가
- 학내 구성원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는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 부쳐 -
지난 제55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단일 후보가 경고 누적 3회로 인해 자격이 박탈되며 후보자 궐위로 제55대 총학생회 건설을 위한 선거가 무산되었다. 이렇게 3년째 비상대책위원회로 학생사회가 지속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총학생회 선거를 통해 “학내 구성원, 즉 이화를 만드는 것이 누구인지”와 “이화를 대표하는 총학생회는 누구를 위한 총학생회여야 하는지”, 그리고 결국 “다수만을 위한 총학생회의 배제적인 태도가 결국 우리 모두를 배제하는 총학생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학교의 보이지 않는 곳에 학내 노동자가 있다
1) 학생, 교수, 교직원, 학내 노동자가 이화 안에서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다.
현재 이화여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은 ‘재학생’이라 칭해지는 이화인이다.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오롯이 ‘투표권을 가진’ 혹은 ‘선본 본인에게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재학생’만을 위한 기구여야 하는 것인가. 이화를 굴리는 구성원에는 학생,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구성하는 교직원, 교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학생들과 교직원, 교수가 이화라는 공간 안에서 더 안전하고 더 청결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학내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학내 노동자가 학내 구성원으로서 포함되는지의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은 결국 이화를 구성하고 만드는 사람들에 ‘학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 변화를 만드는 이화, 학내 노동자 권리의 불을 밝히는 변화를 만드는 이화가 되기를 바란다
이화는 언제나 변화의 중심에 서왔다. 명문이화라고 부르지만, 그 명문이라는 이름은 누가 달았던 것인가. 수많은 이화의 명성을 떨친 선배님들, 동문들, 교수님들, 재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이화를 함께 만든 과정에는 학내 노동자도 함께해왔다. 언제나 깨끗한 미화를 위해 힘쓰시는 노동자들, 안전한 공간이 되기 위한 노동들이 존재해왔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학교 교직원 교수님들이 출근하기 전부터 해 뜨기 전부터 학교에 와 학교의 불을 켜고 바닥을 닦는 노동자들이 있다. 변화를 만드는 이화의 이름에 걸맞게 학내 노동자들의 권리의 불을 밝히는 변화를 만드는 이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학내 노동자가 학내 구성원으로 포함되지 않기에 연대를 하지 못하는 것은 명문이화에 걸맞지 못하다.
학내 노동자를 학내 구성원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과 노동자와의 연대는 ‘불필요’한 일, 즉 2022년 타대학 학내 노동자 고소 사건 및 시위를 비난한 사건 속 대학생들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과도한 스펙 경쟁과 취업난 속에서 자신의 먹고 살 길이 바빠진 대학생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내가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이유로 ‘타인’과의 연결된 삶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나의 권리’조차도 외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과 동일하다. 학내 노동자들이 마주한 ‘원하청 구조의 이중 노동시장 구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결국, ‘내 삶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이 먼저가 되는 한국사회’는 곧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되는 대학생 청년, 즉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와의 연대, 결국 나와의 연대를 하게 된다. 스스로와의 연대를 부정함에 유감을 표한다.
2. 선거운동본부가 제시하는 정책은 이화 학생사회의 ‘정치적인 방향성’을 나타낸다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는 유세를 통해 이화인의 신뢰와 지지를 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정책자료집 속 정책을 통해 해당 선본이 이끌 학생사회의 방향성을 나타내며, 공약을 통해 그 방향성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은 해당 선본이 이끌 이화여대 학생사회의 방향성에 동의/비동의를 표하며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권한을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게 위임해준다. 하지만 이번 선거운동본부는 연대권리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정책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이 100% 일치하지 않았기에 총학생회는 정치적인 입장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화인 100% 의견이 일치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며, 다양한 개개인의 이화인의 의견을 모아 하나의 방향성과 입장을 내는 것이 바로 총학생회 기구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이다. 이화인 개개인의 의견의 다양성을 고려하다가 결국 그 누구도 보호하고 대변하지 못하는, 결국 그마저도 누군가에게 혐오의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충분히 ‘정치적인’ 총학생회가 될 수 있음에 유감을 표한다.
3. 총학생회는 ‘다수의 이화인’만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기성 정치에서 소위 말하는 ‘기득권만을 위한’ 정치를 비판한 적이 있는가. ‘반대하는 이화인이 있는 의제이기 때문에 어떠한 입장 혹은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결국 ‘주류의 의견’에 편승하여 ‘소수의 의견’에 눈 감는다는 전형적인 ‘혐오정치’의 모습이다. 총학생회는 90%의 이화인이 찬성하더라도 10%의 이화인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 90%의 의견만을 따르고 10%를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 달라졌던 근원과 이유를 살피는 것이 의무이다. 동시에 10%의 반대가 있기 때문에 나머지 다양한 의견을 표하는 이화인의 요구를 ‘분쟁이 있는 의제에 있어서 정치적 입장을 낼 수 없다’로 눈 감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총학생회다. 어떠한 의견이 다수인지 혹은 소수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총학생회 역할이 아니며, 그 ‘판단’을 기저로 효율과 비정치를 말하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총학생회가 그들이 말하는 ‘중립적인 총학생회’가 아닐 것이다.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는 이화를 위한 총학생회, 그리고 이화의 학생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떠한 소수자와도 연대하지 않는 것이 ‘비정치적인 것’인가?
과연 학내 노동자는 배제하고 재학생만을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 ‘비정치적인 것’인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화의 재학생들만을 위한 사업 집행 기구가 ‘총학생회’인가?
과연 이 이화를 구성하고 굴리는 것은 누구인가?
더욱 더 다수가 아닌 모든 ‘이화인’과 함께하는 총학생회를 바란다.
더욱 더 한국사회 안에 대학생과 청년으로서 살아가는 ‘이화인’을 위한 총학생회를 바란다.
더욱 더 ‘우리’ 모두를 위한 총학생회를 바란다.
2022.12.06.화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