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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1-8:6)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계속해서 심판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묵상은 믿는 사람은 심판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흰 보좌 심판대에서는 생명 책에 녹명(쓰여)된(있는) 사람도 심판 받는가?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믿는 사람보다 더 바르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도 심판 받고 불못(지옥)에 왜 가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롬8:1에서 말하는 정죄함이 없는 심판에 대하여 묵상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심판에는 하나님의 심판대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흰 보좌 심판대가 있습니다. 인을 치는 차원에서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생각하여 말로 범하는 죄를 심판하는 심판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획하여 말로 지은 죄를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심판 받아 그것이 죄라고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실행한다면 이를 심판하는 심판대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말로 하거나 이를 몸으로 실행하는 것이 책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계20:12-15의 흰 보좌 심판대의 말씀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계22:11-13)
(11)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심판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라고……하나님께서 속히 오셔서 주시는 상이 정죄 함이 없는 심판입니다. 흰 보좌 심판대에서 정죄 받고 불 못에 가는 것은 벌이고……
그러나 정죄함을 안 받는다고 해서 심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버려둠이라는 무서운 심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죄함이 있는 심판이든 정죄함이 없는 심판이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로마서1장28절-32절)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롬1:28-32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내버려두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면 너무 두렵지 않나요? 그러므로 즉각 정죄하여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심판 받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13:13-16)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저는 마13:13-16의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이 오랫동안 이해가 안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성령)의 말씀을 듣고,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기 원하시지만 이 백성들이 완악하여져서 돌이켜 고침을 받기를 두려워 하고 있다는 하나님의 탄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내버려두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이 백성들이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자 반어법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롬8: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데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도 왜 죽지 않는 것일까요? 과연 죽지 않은 것일까요? 태초로 돌아가서 이에 대하여 살펴 봅니다.
(창2: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4-6)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은 뱀이 하와에게 한(가르친) 말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말씀대로 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데……그래서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그 남편 아담도 먹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라고 하였으나 안 죽어요? 과연 죽은 것일까요? 안 죽은 것일까요? 혹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롬8: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의 말씀이 거짓말일까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죽지 않자 그렇게 생각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원어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반드시(무트) 죽으리라(무트)는 말씀이 원어에는 “무트” “무트” 라고 만 쓰여 있습니다. 이를 왜 반드시 죽으리라고 번역을 하였을까요? “무트” “무트”에 감추어진 비밀을 모르고 사람이 두번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무트”는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라는 말씀을 부인할 때 말씀(그리스도)이 죽고 그때 나도 함께 죽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무트”는 자기를 부인하는 내가 자기 십자가에서 죽으면 말씀(그리스도)이 살아나고 나도 함께 살아나는 자기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라고 말씀 하셨는데 말씀대로 하지 않고 먹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창2:16-17은 거짓말, 창3:4은 참 말씀이라고……이는 뱀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카)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 하였다고 한 것입니다.(창4:1)그리고 이어지는 가(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 사건은 아담과 하와가 말씀(그리스도)을 부인하여 죽인 것을 말하는 말씀입니다(창4:1-15)
이렇게 첫 번째 “무트”의 죽음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육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죽지 않은 줄 알지만 말씀(그리스도)이 부인되어 죽을 때 나도 함께 죽는 자살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룟 유다의 자살의 죽음의 이야기가 바로 같은 이야기 입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롬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유가 죄를 지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처벌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정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정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죄하는 것도 정죄하지 않는 것도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므로 구원의 결론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내가 자기 십자가에서 죽어야 말씀인 그리스도가 살아나고 그래야 비로소 나도 함께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는 말씀이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니 이미 오해합니다. 그러면 구원이 나의 십자가로 인한 것 아니냐고? 그래서 말합니다. 자기 의로 구원 받는다고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에서 죽을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비유가 2000년 전에도 골고다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죽을 대 함께 죽은 두 강도 입니다. 왼편 강도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강도 입니다. 반면에 우편 강도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함께 죽지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자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5:24-30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