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학》 2010. 10월호
왕새우 소금구이
박성민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
놓아라, 이놈들아. 짐을 어디로 데려가느냐.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적전의 영토였느니, 쏘가리의 충언을 물리친 탓이로다. 고얀 놈들 감히 용포 위에 소금을 뿌리다니. 불판에 놓일지라도 난 눌러 붙지 않을 테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쫒듯 끝끝내 네 놈들을.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
《시조세계》 2010 가을호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가는 시조미학
이 송 희
문학에서 만나는 해학과 풍자는 개인과 사회의 소소한 경험을 재미있게 풀어내며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해학과 풍자는 ‘웃음’을 동반하여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표현기법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해학이 대상에 대해 갖는 호감과 연민 의식이 긍정적 기제로 작용하는 반면, 풍자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날카롭고 공격적인 태도로 보고하고, 고발하는 방식을 취한다. 해학이 연민을 유발하는 웃음을 보이는 것에 비해 풍자는 동시대의 사회적 결함이나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조롱하는 공격적인 어조를 지닌다. 풍자를 통해서 발생하는 웃음은 상대에 대한 빈정거림이나 조롱, 공격성을 띤 웃음이다. 작가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대상의 속성에 깊이 다가가고, 부조리한 현실의 이면을 파고듦으로써 부정적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 본질을 더욱 뚜렷이 밝힌다.
박성민 시인의 「왕새우 소금구이」는 풍자와 해학의 원리로 소금구이 요리의 과정과 역사의 한 장면을 결합하여 사설조로 구사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해학과 풍자는 조선후기 양반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양심을 비판하고 모순된 사회의 계급구조를 희화화하는 사설시조에서 특별히 그 미학적 실체를 잘 드러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에서 추구하던 우아미와 숭고미 대신에 골계미를 추구한다. 정서의 부조화, 표현의 사실성 등과 같은 특유의 기법이 사설시조에 존재한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내용상의 뚜렷한 특징은 비판성, 해학성, 본능 발현성, 유락성 등이다. 사설시조에 이러한 특성이 내재하는 데는 형식의 완화와 작가 층이 주로 서민층이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설시조의 양식 안에서 세상에 대한 해학적 어조를 드러내거나, 자본주의 사회의 유희를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는 방식은 윤금초, 이지엽, 이달균, 홍성란 시인 등을 비롯한 여러 시인의 사설시조 작품 안에서 만날 수 있다. 물화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조리한 욕망의 폭력성, 지나간 역사에 대한 증언 같은 내용들이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인식 속에서 해학적으로 표현된다.
풍자와 해학의 뿌리는 양반전, 허생전, 흥부전 수궁가 등의 고전작품에부터 이정신의 「발가버슨 아해들아」, 이존오의 「구름이 무심탄 말이」, 송순의 「꽃이 진다하고」 등의 고시조에 이른다. 그리고 김광규, 김수영, 황지우, 김지하, 유하와 같은 현대시 작품과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 채만식의 「우리 동네」 등과 같은 현대소설 작품,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외국작품 등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사회 문제를 풍자와 해학과 같은 우화적 수법으로 전달한 작품은 많다.
사회 비판적 성격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일련의 작품들에 비해 「왕새우 소금구이」는 대상에 대해 호감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웃음과 익살이 묻어나는 문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해학적 요소가 강하다. 소금구이를 하는 요리의 한 과정과 백제의 쇠퇴기로 추정되는 역사적 장면을 결합시키면서 시인은 현대시조의 소재와 기법에서 새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구어체를 활용하여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재미의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읽은 후에 미소를 짓게 하며 음미할 만한 유머를 안겨주는 데 매력이 있다. 실제 인물을 재현하듯 직접화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당대 상황에 대한 상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이 시는 각 장의 화자를 다른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품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라는 초장에서 이 작품의 배경이 해상대제국이었던 백제의 멸망기가 아닐까 짐작한다. 전성기 때에 중국의 요서와 산동 지방, 왜 등을 지배했던 해상제국 백제는 이 시에서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적전의 영토였느니”로 표현된다. 당나라군이 성 안에 침입했음을 알리는 첫 수의 화자는 폐망해가는 백제의 장군이다. 한편 둘째 수의 화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으로 추정된다,
놓아라, 이놈들아. 짐을 어디로 데려가느냐.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적전의 영토였느니, 쏘가리의 충언을 물리친 탓이로다. 고얀 놈들 감히 용포 위에 소금을 뿌리다니. 불판에 놓일지라도 난 눌러 붙지 않을 테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쫒듯 끝끝내 네 놈들을.
왕새우에 소금을 뿌리고 불판에 얹는 장면을 의자왕의 최후의 모습으로 은유하는 중장의 이 장면은 단순한 웃음만을 유발하지 않는다. ‘해동증자’라 불리며 성군 소리를 들었고, 멸망하기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를 공격해 30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현장을 해학적으로 재현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신라에는 백제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필요했고, 그렇게 신라에 의해 백제 말의 역사는 각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자왕의 왕권강화에 귀족층들이 반발하고 이로 말미암아 백제 지배층이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충언하던 성충이 투옥되고, 흥수가 귀양 간 것이 모두 그 즈음의 일이다. “쏘가리의 충언을 물리친 탓이로다.”는 이러한 성충과 흥수의 충언을 물리쳤다는 것을 뜻한다. 백제가 이러한 분열을 겪고 있을 무렵 나당연합군이 침입했는데, 이 작품은 당시의 배경을 소금구이가 된 왕새우의 최후를 통해 백제의 최후를 보여준다. 웅진성으로 달아나면서도 그 안에서 지방군을 모으고 적들이 차지한 사비성을 되찾으려 했던 의자왕의 기백과 패기를 시인은 “불판에 놓일지라도 난 눌러 붙지 않을 테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쫒듯 끝끝내 네 놈들을.”에서 왕의 어법을 빌려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웅진성으로 들어간 지 닷새 만에, 특별히 적들이 공격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 의자왕은 항복하고 만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의자왕의 믿었던 신하에게 배신을 당하자, 의자왕이 동맥을 끊어 자결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당의 포로가 되어 간 것으로 전한다. 포로가 된 의자왕은 당의 소정방과 신라 무열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굴욕을 겪은 뒤, 태자 효, 왕자 융∙연 및 대신과 장병, 그리고 백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거대한 해상대제국을 호령했던 700년 역사의 백제가 이렇게 무너지고, 의자왕이 망국의 주범이 되는 상황은 「황새우 소금구이」를 통해 해학적이면서도 단순한 재미에 휘둘리지 않는 가치를 지닌다.
역사에 의하면, 의자왕은 ‘삼천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으로 낙인찍혔다.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왕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기는 어렵지만, 백제 사람이 서술한 역사서가 전하지 않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는 신라의 기록과 후대인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 아닐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카(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는 “우리가 읽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엄격히 말해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련의 공인된 의견의 기록에 불과하다.”라는 중세 연구가로 유명한 배르클라우의 말이 실려 있다. 역사가는 과거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사람이며 시인은 역사를 뒤집어 봐야 하는 존재이다.
의자왕은 이런 왜곡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백제 마지막 영웅으로서 끝까지 백제를 부흥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며, 굴욕적으로 적에게 항복하기보다는 자결을 택했던 대장부라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쫓듯”은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즉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한다는 뜻으로,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를 말한다. “사공명주생중달”은 탁월한 지략을 갖춘 인재는 죽어서도 그 값을 한다는 뜻으로 의자왕의 당당한 기세를 드러내고자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장군을 화자로 한 종장의 한 소절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는 패망한 백제의 군사들과 백성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외침이다. ‘왕새우 소금구이’가 그렇듯 당나라군들은 살고 싶다고 항복하는 백성을 온전히 살려두지 않는다. 드러눕는 즉시 죽이거나 노예를 만드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당나라 장군이 백제군과 백성을 기만하는 말일 뿐이다. 사건이나 상황의 부조화에서 비롯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다분히 왕새우 소금구이의 요리과정과 백제의 멸망과정을 절묘하게 배합하려는 의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학과 풍자 속에서 단순한 재미로만 읽히게 하지 않고 음탕한 왕으로 잘못 기억되는 의자왕의 명예를 회복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한편,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속에서 강자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밀히 비판한다. 무너진 나라의 왕을 끌고 억지로 불판에 놓는 이 장면은 마치 강자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힘없고 빈곤한 민중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질서 체계를 표상하는 “불판”에 놓일지라도 눌러 붙지 않겠다는 기개와 자존심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왜곡된 역사를 꼬집고 잘못된 의식구조에 대한 인식을 은근슬쩍 비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데 매력이 있다. 박성민 시인이 보여주는 해학과 풍자는 남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태도가 아니라 남과 함께 웃고 즐기는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역사의 왜곡된 장면과 부조리한 오늘의 현실을 들여앉히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시조 미학을 보여준다. 해학과 풍자를 통해 세계 대 자아의 대립과 갈등을 없애고, 소외된 자아의 의식을 회복하는 현대시조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송희
1976년 광주출생,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등 수상,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금 받음, 시집 [환절기의 판화]가 있음, 전남대 국문과 문학박사, 전남대, 조선대 국문과 등에서 강의 중.
[출처] 《현대시학》 2010. 10월호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가는 시조미학 - 박성민론|작성자 예쁜미소